1988년 시월의 어느 일요일, 권총을 소지한 탈주범 지강헌 등 일당 4명이 한 가정집의 일가족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면서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났다. 주택가 골목을 가득 메운 경찰 포위망 속에서 국민들에게 할 말이 있다던 탈주범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생중계였다. 그들은 경찰 스피커를 통해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청해 듣기도 하였는데 일당 중 안광술, 한의철은 이층 양옥집 바깥 계단으로 이십대 여성 인질을 끌고 나와 카메라를 향해 자신들의 ‘할 말’을 짧게 요약했다.
전국의 각 언론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보도된 그들의 ‘할 말’은 ‘죄를 져도 있는 놈은 다 빠져나가고 없는 놈만 처벌받는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비난과 저주였다.
이 유명한 법률적 잠언을 남긴 이십대 초반의 安과 韓은 이후 바로 안방에서 옆얼굴을 서로 맞댄 채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하여 함께 자결하였다. 자수를 종용하던 가족들을 향해 ‘어린 조카가 보고 싶다.’고 울먹이기도 하였던 지강헌이 창가에 나타나 경찰과 보도진을 향해 이들의 죽음을 알렸다.
투명하고 화사한 가을 햇살 아래 선글라스를 낀 채 권총을 들고 창가에 나타난 지강헌의 모습은 고뇌를 안고 문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이단아의 그것이었다.
그 극적인 외양은 영화속 주인공을 방불케 하였다.
한 손으로 권총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창틀을 붙잡은 채 지강헌은 세상을 향해 외쳤다.
“전경환이는 온갖 비리로 70억이나 해먹었는데도 징역 7년이고 나 같은 사람은 고작 556만원 해먹었다고 징역 17년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탈주범들은 국가공권력이 그들을 온통 포위한 가운데 텔레비전 카메라 저 너머의 국민들을 향해 우리사회의 법과 정의의 허위와 위선에 대해 그리고 그 부당한 불평등에 대해 야단치듯 설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림픽을 막 끝낸 수도 서울의 주택가에서 휴일 백주에 일어난 일이었다.
범죄자들은 그렇게 법률적 정의(正義)의 시대적 본질을 가르쳤다.
그들이 막가는 것인지 사회가 막 가는 것인지 먼지가 내려앉은 법전에서 잠들어 있는 갖은 법률적 잠언들이 마구잡이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돈과 권력에 대해 우리사회가 법의 이름으로 얼마나 헐겁고 느슨한 해이와 이완을 보여 왔는가를 죽음으로 이야기하였다.
법은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법은 부정한 권력과 돈에 대해 공손하기까지 하다.
백주의 인질극을 죽음으로 마무리한 탈주범들의 거친 언어는 그들만의 개별성의 밀실에 갇혀있지 않고 사회 전체에 휘발되어 일반성의 광장으로 확산되어갔다. 그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경구(警句)로 변용되어 익명의 바다를 건넜다. 보편성으로 거듭난 그 짧은 몇 마디는 우리사회의 법률적 제규범을 불평등한 이중성의 허위로 폄하하면서 모든 법적 장치를 가진 자의 장식품으로 간단히 희화화하였다.
사회는 그 불온한 언어를 쓰다듬어내지 못하고 그 언어는 불공정한 사회를 참아내지 못했다. 그 말은 불신을 드러내고 사회와 불화하였다. 그 말과 사회는 서로 공전(空轉)하며 갈등 속에 부대꼈다. 탈주범들의 언어 속에 내포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분열은 사회의 가장 여리고 연약한 곳을 찌르며 보편성을 확보해 갔다.
그들의 말이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정확히 찌르고 있음으로 해서 그들의 말은 온전히 진실이었다.
이 공감은 슬픈 것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 공감은 과거형이 아니고 현재형이다.
‘법대로 해라.’라는 80년대의 또 다른 유행어와 함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우리사회에 드리운 법적 허위와 제도적 위선을 향해 던져진 신랄한 냉소였다.
‘법대로 하라’니 이 얼마나 통렬한 야유인가.
그리고 그 야유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대립적 사자성어의 등장으로 내용적 완성을 이룩해낸다. 이 보다 더 우리사회를 조롱하고 조소하는 풍자의 완결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법대로 해라. 어차피 가진 놈은 무죄고 갖지 못한 놈은 유죄일 테니.’라고 80년대의 두 유행어가 광범한 사회적 공감 아래에서 결합될 때 이 사회의 모든 법적 절차와 법적 정의는 소멸한다. 이 위험하고 불온한 잠언은 오늘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한 진실성을 품고 있다. 이 무서운 말들은 8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를 비벼가며 만들어낸,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자조 섞인 비웃음이었다.
그 비웃음은 무섭다.
그 비웃음은 우리사회가 쌓아올린 도덕률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둘러쳐진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마저 무력화시킨다.
그 비웃음에는 이 사회를 갈아엎어도 무방하다는 반역적 항거와 묵시적 저항이 서려있다.
두 유행어에 대한 감응이 깊어질수록 억제된 분노의 폭발은 더 높은 휘발성을 갖는다.
탈주범들은 철학적 선각자와도 같이 우리사회를 관류하는 온갖 비리의 근인(根因)이 무엇인가를 갈파하고 지목하면서 근원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마음껏 조롱하고 저주하며 죽어갔다. 스물아홉 살에 불과하던 탈주극의 수괴 지광헌은 깨진 유리조각으로 자신의 목을 긋고 배를 찔러 자결을 시도하다 인질을 해하려는 줄 알고 오인 사격한 경찰특공대의 저격을 받아 절명하였다. 그의 죽음과 함께 탈주사건은 과거형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피를 뿜으며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최근 대학입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고교등급제로 시끄럽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하여 교육의 이름으로 교육부는 3不(기여입학제, 본고사, 고교등급제 금지)을 이야기하고 교육의 이름으로 대학은 변별력을 이야기하고 교육의 이름으로 비강남권 학부모는 차별을 이야기하고 교육의 이름으로 강남권 학부모는 역차별을 이야기한다.
도대체 공부 잘하는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지 왜 이렇게 말들이 많은가.
그러나 이 단순한 해법도 그렇게 간단히 적용될 일이 아닌 모양이다.
최근 일부 대학에 몰아치고 있는 비난 여론의 초점은 수시 입학 사정에 있어서 고교등급제의 적용에 맞추어져있다. 문제의 일부 대학에서 입학 사정과 관련하여 강남권 학교에 무차별적으로 유리한 점수를 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교수들의 학자적 양심에 기대어 결단코 의도적으로 비강남권 학생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들의 주장대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달리 선택 불가한 고육지책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돈 때문에 합격의 등락이 결정되는 참담한 상황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국립대학교의 모교수는 우리 시대의 돈과 과외에 따른 입시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렇게 요약한다.
“줄넘기로 학생을 선발한다하여도 줄넘기 과외로 있는 집의 자식들은 더 많이 줄을 넘어 대학에 합격할 것이다.”
이 말은 개인의 개별 역량의 평가란 결국 과외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술이다. 과외란 두말할 것도 없이 돈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다시 말해 어떤 방식으로 우열을 가름해도 학생들은 일정한 수의 줄을 넘어야하고 학생들이 넘어야 할 그 줄은 평범한 줄이 아니라 ‘돈줄’인 듯이 보인다. 결국 도리 없이 입학 사정의 본래 목적은 흐트러지고 평가의 대상은 인간의 역량이 아니라 그 역량에 엉겨 붙은 돈의 크기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줄넘기로 줄을 넘을 때 바닥을 차고 오르는 것은 인간의 몸이고 그 몸의 약동에 부풀어 오르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허공과 바닥을 오르내릴 때 인간은 달리 복잡한 노고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바닥을 차며 여유롭고 허공을 오르며 자유롭다.
줄넘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것은 개인의 노고와 피땀의 훈련일 터이지만 그조차도 돈의 힘에 의해 조련되고 사육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학생들의 줄넘기는 건강한 육체의 발랄한 약동이 아니라 기름이 부어지는 엔진과도 같이 돈에 의해 좌우되는 타율의 산물이다. 이때 세상에는 돈의 기름이 적은 탓에 숫자를 채우지 못하고 대학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학생들과 긴 돈줄로 그 문턱을 무사히 넘어서는 학생들,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요약하자면 대학입시의 성패란 바로 돈이 쥐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대학입시가 기초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비웃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
인간의 재능과 능력은 돈 앞에서 무력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줄을 넘어볼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줄넘기 실력을 단정해버리는 사태가 없었으면 한다.
재능과 능력은 가꾸어져야 빛이 난다.
돌보아주지 않는 재능은 비극에 불과하다.
지강헌 일당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제아무리 현재성을 갖는다 하여도 우리 아이들이 ‘유전합격, 무전불합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울부짖는 일은 결단코 없었으면 한다.
세상 사람들아 제발 돈으로 우리 아이들을 울리지 마라.
첫댓글 맞습니다 맞고요. 읽어보니 가슴이 허해 지고요
님의 사자후에 박수를 보냅니다. 참으로 좋은 글들, 조리가 서고 힘있는 문장에 의한 적절한 예시들..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울리지 말라..
왕수님, 닉다운 글이군요. 돈으로 인해 우는 아이들도 많지만 사랑의 부재로 우는 아이들도 너무 많아요. 돈은 내 의지대로 하기 어렵지만 사랑만이라도 풀어야지 다시 한번 다짐을 합니다. 글 감사
잘 보았습니다. 세상에 왕수님 같은 분들이 많다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님의 명 강의 경청하고 갑니다. 문장력이 뛰어나시군요. 좋은 글 자주뵙게 해주십시요. 감사합니다.꾸뻑~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셨군요. 왕수님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제 자신도 돈으로 만들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니라고 하면서도 현재 사회의 흐름속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요 /왕수님의 의견 동감합니다마는 /돈도 많고 과외도 수두룩으로 그러고도 대학을 떨어졌어요 지방에 꼴등대학도 안되고 /머리를 쓴다는게 미국유학인데요 /와보면 여기 애잡는귀신이 있어서 금방 작살 나거든요 /공부못하는 애들 미국보내지 머세요 금방 양아치됩니다 /특히 딸아는 큰일납니다 /잘 살피세요
하하 필님! 잘 알았습니다. 딸아이는 잘 살피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님들! 감사하군요. 제 글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일일이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요. 저도 덧글을 많이 남겨야 할 텐데 아직 익숙지 않아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감동, 아니 감탄합니다. 오교실카페 정말 대단한 카페라는걸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군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