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해부학의 역사
인류가 시작되면서 사람은 다른 모든 동물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종족을 번식시키고 병들고 죽어가는 일이 되풀이되는 역사를 이어왔는데 다른 동물 같으면 숙명적인 것으로 알고 순순히 받아들였겠지만 지능이 발달한 사람은 그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무서운 죽음으로 이끄는 질병으로부터 벗어날까 생각해 왔을 것이다. 실제로 원시적인 것이나마 의술이 생기기 이전에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주술, 마술, 부적 같은 것에 의존하고 있었고 기원전 4-5 세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환자에게서 얻은 경험적 사실을 모으고 이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아나가기 시작함으로써 희미하게나마 의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해결 방법을 체계적으로 전수하려는 시도가 오늘날의 의학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이 초창기의 의술은 너무나 사람 몸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었기 때문에 몸속의 구조를 알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갈라서 보는 일을 시작하였다고 기록에는 남아있는데 이것이 해부의 시작이다.
기록상으로 남은 가장 오래 된 해부는 기원전 460년 경 그리스의 학자들이 죽은 사람의 몸을 칼로 잘라 속을 관찰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까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된 셈이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지만 그 당시 사람의 몸을 갈라보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처음에는 동물의 몸을 갈라서 보는 것으로 시작하다가 차츰 죽은 사람의 시체를 직접 칼로 잘라서 속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초창기에는 어떻게 해서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질병을 고쳐서 과학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의 이러한 행위도 당시의 종교적 율법으로는 불법으로 되어 있어 해부를 하는데 많은 고초를 겪다가 훨씬 나중인 16 세기에 로마법황청으로부터 비로소 시체해부의 합법성을 인정받으면서부터 본격적인 해부가 시작되었다. 계통해부학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엮어 근대해부학 책의 시초가 되었던 '인체구조'의 저자인 벨지움의 해부학자 베자리우스(Andreas Vesalius)도 시체해부를 했다고 고발당하여 속죄하는 뜻에서 성지순례를 강요당하였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유럽에서 사회적인 일반법으로 해부가 공인된 것은 1832년(Anatomy Acts)이었고 일본에서는 법률 제204호인 시체해부보존법(1949년)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1962년 법률 제1021호인 시체해부보존법이 제정 공포됨으로써 비로소 시체해부가 합법화되었다. 서양이나 일본에서 그랬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법이 생기기 이전이지만 이미 각 의과대학에서는 교육과정의 하나로 해부학을 가르쳐왔고 실습시간에 시체해부를 시행하여 왔었는데 의과대학이니까 의례히 시체해부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져 온 것일 뿐이지 엄밀하게는 법적인 뒷받침이 없이 시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용으로 쓸 목적으로 연고자 없는 시체를 구해 옮겨오던 어느 해부학 교수가 경찰에 붙들려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우리나라에서도 그 때 처음으로 명문화가 된 것이다.
지금 통용되는 해부라는 말의 기원은 서양에서 시작된 것인데 기원전 해부를 시작하고 약 100년이 지난 뒤에야 그 시절의 대표적인 그리스 학자 아리스토틀(Aristotle, 384-322 B.C.)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시절에 쓰이던 그리스어인 anatome (anatome)는 원래 Ana(분리한다)와 temnein(자른다)라는 뜻을 가진 두 말이 합쳐진 것으로서 여기에서 영어의 잘게 자른다는 뜻의 anatomy(to cut up, to dissect)도 생겨났고 비슷하게 독일어의 Anatomie, 불어의 Anatomie도 생겨났으며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도 쪼개어 푼다는 뜻으로 해부(解剖)라는 말이 생겨났다. 한자를 쓰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解剖라고 바로 쓰지만 우리는 한글로 풀어 '해부'로 쓴다.
이처럼 해부는 훨씬 오래전부터 시행되었었지만 기원전 420년경 의학의 원조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의사를 교육시키는 체계적인 기틀을 잡으면서 해부를 통하여 몸의 구조를 공부하는 것은 필수적인 한 분야가 되었고 거기에서 지금의 학문분야인 해부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른다'는 뜻만을 가졌던 이 anatome이라는 낱말이 나중에는 해부학(anatomy)이라는 학문분야 이름의 시작이 되었고 해부(dissection)라는 낱말은 해부학을 공부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시체를 자르고 관찰하는' 한 '과정'으로만 그 뜻이 제한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해부(시체를 잘라서 관찰하는 일)는 해부학(사람 몸의 구조를 다루는 학문분야)을 공부하기 위한 한 방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