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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長城] - 활력이 가득하고 매력이 넘치는 고장
전라남도의 가장 북단에 위치한 군이다. 동쪽은 순창군과 담양군, 서쪽은 고창군과 영광군, 남쪽은 광주광역시, 북쪽은 전라북도 정읍시와 고창군에 접하고 있다. 군 전체가 대부분 산지를 이룬다
장성 문화관광 http://tour.jangseong.go.kr/index.sko
백양사[白羊寺 제1경]
필암서원[筆巖書院 제6경]
국가기록유산 http://www.memorykorea.go.kr:7779/mov/pilamseowon.html
장성8경
1경 백양사
2경 축령산휴양림
3경 장성호
4경 남창계곡
5경 홍길동테마파크
6경 필암서원
7경 입암산성
8경 금곡영화촌
* 장성 3계 : 남창계곡, 월성계곡, 몽계폭포
* 명산 : 백암산, 방장산, 축령산, 병풍산, 고성산, 불태산
* 주요 관광지 : 문화예술공원, 월성계곡, 학바위와 쌍계루, 장성호 관광지, 방장산 자연휴양림, 홍길동 우드랜드, 서삼 모암 산림욕장, 한마음자연학교, 전라남도 자연학습장, 옥정골 캠프, 장미공원, 황룡강생태공원
금곡영화마을(제8경)
또 화가 황순칠이 이 마을을 주제로 한 작품 고인돌 마을로 지난 19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영예를 안았다. 실제로 마을 건너 들판에 여기저기 고인돌이 놓여있어 마을의 유래가 깊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 바로 인접해 있는 국내 최대의 삼림욕장인 축령산 휴양림과 연계하여 지난 1995년 부터 전통초가집 건립, 전선주의 지중화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영화 민속촌으로 가꾸고 있다.
남창계곡[南倉溪谷 제4경]
문화예술공원 북하면 쌍웅리 산68-1
주요작품으로는 김소월 「산유화」,윤동주 「서시」, 고경명「용구만운」,이황 「도산십이곡」,광개토대왕 「비문」, 김홍도 「군선도」,김환기 「답교」, 김구「나는 38선을 베고」 등이 있다.
박수량 백비[朴守良白碑]
박수량은 1546년(명종 원년) 청백리에 올랐던 인물로,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38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했을 정도로 청렴했던 문신으로, 1546년(명종 1) 청백리로 뽑혔다.
장례도 치르지 못할 만큼 빈곤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이때 명종께서는 예장 비용은 물론, 서해(西海)에서 나오는 대리석의 비석을 하사하시면서 "청백함을 알면서 비석에 글을 새긴다면, 이름에 누가 될지 모르니 글자 없이 세우도록 하라" 하셨다고 상전(相傳-대대로 이여 전함)되어 오고 있다. 또한 명종은 박수량의 청백함에 감동하여 아흔 아홉 칸의 집을 하사하며, 청백당(淸白堂)이라 재호(齋號)를 내렸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이 백비만 남아 있다. 청백당의 집터는 홍길동이 태어났다고 하는 아치실의 초등학교 자리라고 전하여 온다.
방울샘 장성읍 영천리 1415-3
동네 공동 우물인 이 샘은 500여 년 전 용이 승천한 늪이였다고 한다. 옛 기록을 살펴 보면 이 샘이 영험하여 가뭄이 들면 이 샘에 기우제를 지냈고 물 색깔의 붉기도 하고 뜬물 같이 희기도 하여 이것으로서 세상일을 예측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전쟁, 천재지변 등이 일어날 때에는 황토물이 나오고 대풍년 같이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흰물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샘 안의 물고기는 모두 오른쪽 눈이 먼다고 한다. 심지어는 비록 다른 물에 있던 것도 이 샘에 들어오면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재해를 입게 된다 하여 이를 경계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오동촌의 주민들은 이를 신성히 여겨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 2곳 있는 당산나무의 당제와 함께 이 방울샘에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1931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된 후 1991년 다시 정비한 이 샘은 지금도 마을의 상수원 뿐만 아니라 농수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는데 가뭄에도 수량에는 별로 영향을 받지 않으며 물의 온도가 일정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보해양조의 천년잎새(22도)는 장성군 영천리의 노령산맥 기슭, 지하 253m의 천연 미네랄이 살아있는 방울샘 천연암반수의 건강한 물로 만들었습니다.
백양사[白羊寺 제1경] http://www.baekyangsa.org/
당시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염불을 하자 흰 양들이 몰려오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를 보고 사찰이름을 백양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중건을 거쳤다.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법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한 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소멸하여 다시 천상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 하며 절을 하였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백양사 진입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
2010 백양단풍축제. 기간 : 2010.11.05~ 11.07. 장소 : 장성군 백양사 일원
현판에 ‘극락보전(極樂寶殿)’이라고 씌어 있는데, 이 글씨는 동국진체라 여겨진다. 극락보전 안에 봉안된 후불탱화도 진경풍속화의 사실성을 가진 우수한 탱화이다. 이로 보아 조선 영조·정조 때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화기(畵記)에 '건륭 사십 몇 년'이라 손상된 채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건륭 40년대인 1775년에서 1784년 사이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 : 극락보전 신중탱화(神衆幀畵)이 불화는 비단에 채색한 것으로 가로 200cm, 세로 135cm이다. 하단중앙의 불화기에 의하면 光緖十九年 壬辰年에 조성하였다고 되어 있다. 광서 19년은 1893년이고 임진년은 1892년 이어서 1년의 차이가 나지만 간지가 더 정확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1892년에 청류암에서 조성하여 극락전에 봉안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 후불탱화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그리고, 6대 보살과 사천왕 그리고 10대 제자가 3단으로 나뉘어 그려진 영상회상도이다. 장지에 채색을 하였는데 가로 320cm, 세로 350cm이다. 향 좌측 하단에 실린 불화기에 의하면 불기(佛紀) 2949년(1922)에 금어(金魚:탱화제작의 우두머리) 봉영(琫榮)과 재명(再明)이 조성하였다고 되어 있다>
부도전[浮屠殿] 백암산 백양사(白羊寺)의 쌍계루(雙溪樓) 뒤쪽, 비자나무로 감싸인 곳에 조성된 부도전이다. 백양사에서 주석하던 역대 고승 18인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석종형 부도와 비석을 한데 모아 두었다. 가장 윗단에 6기, 중간단에 15기, 아랫단에 6기, 담장 밖에 2기 등 총 29기의 부도와 비석이 있는데 그중에는 보물 제1346호로 지정된 ‘백양사 소요대사부도’도 포함되어 있다.
진영각은 사찰의 조사 및 업적이 높은 고승의 진영을 모시는 곳으로 백양사의 진영각에는 개창자인 여환선사를 중심으로 중연선사와 각진국사 및 30여분의 고승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보리수나무 범종과 우화루 사이 키 큰 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데 이 나무는 석가모니가 그 나무 아래에서 부처가 되었다는 보리수이다. 피나무과에 속하는 보리수이며, 불교에서는 신성한 나무로 이 나무의 열매는 염주를 만들때도 쓰인다. 현재 백양사 보리수 둘레에는 소원패를 달아 자신이 염원하는 일이 꼭 이루어지도록 발원하고 소원을 빌고 있다
1. 전남순천 조계총림 송광사. 2. 전남장성 고불총림 백양사. 3. 경남양산 영축총림 통도사
4. 경남합천 해인총림 해인사. 5. 충남홍성 덕숭총림 수덕사
총림에서 가장 높은 스님이 방장인데. 총림의 방장스님은 그 문중의 가장 큰 어른이십니다.또 문중의 어른이기 때문에 교구본사 주지의 임면권도 방장 스님에게 있습니다. 5대 총림의 주지스님도 높은 분이시지만 방장스님은 종단에서도 서열 5위 안에 든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총림을 제외한 교구본사 주지는 종헌종법상 선거를 통해 하도록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종파는 공식 인정된 곳이 25개 입니다. 불교계에서 인정하는 종단은 25개 뿐입니다.
산감스님 사찰이 숲에 있었으며, 그 곳이 수행처이자 생활터전인 스님들은 사찰의 환경인 숲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님들 스스로 산감(山監)을 자처하고 숲을 가꾸며 지켜왔습니다. 현재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로 월정사가 있는 오대산,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백양사가 있는 내장산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지요.
백양사 비자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53호.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 등에서 자란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는 구충제 및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데 쓰인다.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는 전라남도 장성의 백양사(白羊寺) 주변에 8∼10m에 달하는 비자나무 5,0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비자나무가 자라는 가장 북쪽에 있는 숲이라고 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현재는 이 지역보다 더 북쪽에 있는 내장산에서도 비자나무 숲이 발견되었다.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는 우리 선조들이 비자나무 열매를 의약재료로 사용한 생활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비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지역에 있는 대표적인 숲이므로 식물분포학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특히 백양사 대웅전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백학봉과 쌍계루 앞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백학봉의 자태는 경관이 뛰어나 요즘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고 있다.
백양사 일원에서는 애기단풍뿐 아니라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백양사 비자나무 숲, 700년 된 갈참나무 등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백양사 입구에 서 있던 갈참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갈참나무 백양사에 있는 제일 늙은 나무는 갈참나무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가장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된 백양사 진입로의 아기단풍나무 길.
봉암서원[鳳岩書院]
외삼문·강당·동재·서재로 강학공간을, 내삼문·사당으로 배향공간을 이루어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취한다.
변이중은 1568년(선조 1) 사마시를 거쳐, 157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어천찰방에 재직시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의 몽진길을 수행하고 의주까지 갔다. 한편 수원에 진을 치고, 기호지방을 침입한 왜적들에게 항전하였다. 이때 왜군의 조총을 능가할 수 있는 화차 300량을 발명 제작하였다. 1603년 함안군수로 갔다가 2년 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장성으로 돌아왔으며, 사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입암산성[笠岩山城 제7경] 북하면 신성리 산20
고려말 몽골에 항쟁할때는 송군비[宋君斐]장군이 몽골군을 물리첬고 임진왜란때는 왜적을 맞아 싸우다 윤진[尹軫]장군이 전사한곳이다 성문은 북문과 남문이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공주 우금티 전투에서 패배한 전봉준 일행이 걷던 피신로인 전북 정읍 입암면 입암산성을 따라 걷기대회가 펼쳐진다
특히 성내에 크고 작은 방축(防築)을 두어 수원(水源)을 확보하여 장기간의 농성이 가능하도록 배려한 점 등이 조선 후기 관방(關方)시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성 무인양심가게
총 60여 가구, 150여명이 모여 사는 신촌마을. 여느 농촌 마을이 대부분 그렇듯 이곳 역시 잔칫날엔 ‘70대가 주전자를 들어야 할 만큼’ 고령화 된 마을이다. 지난 2005년, 줄어드는 마을에 하나 있던 구판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라면 하나, 간장 하나를 사러 4km나 떨어진 읍내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왕복 3천원의 버스비도 어르신들에게는 큰 부담일터.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마을 이장은 주인 없는 ‘무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 ‘양심가게 1호’, 여전히 성황리에 영업 중!
장성호[長城湖 제3경]
1977년 잉어, 쏘가리, 빙어, 붕어 등 각종 민물고기가 많아 강태공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 장성호는 1977년 장성호 관광지로 지정되는 등 장성관광의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장성호 관광단지내 문화예술공원 조성 사업이 추진중이다. 문화예술공원에는 기념비 1점을 포함해 시(詩.56점), 서(書.11점), 화(畵.22점), 어록(語錄.13점)을 새긴 총 103점의 조각상이 들어설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작품 수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조각 공원이고 시.서.화.어록을 테마로 한 것도 전국 최초"라며 "장성호 일대 수변 공원과 함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축령산휴양림(제2경) 서삼면 모암리
단일 군락지로 국내 최대 규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있어 "치유의 숲"으로 유명한 축령산이 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2000년)의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숲’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숲을 가로지르며 조성된 약 6km의 길은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2년 산림청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 이 나무들을 사들이고 "고 임종국 조림지"로 이름 지었며 얼마 전 자신의 숲속에 편백나무 숲 한가운데 느티나무 밑에 수목장(2005년)으로 다시 돌아오셨다. 산림 녹화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에는 광릉 국립수목원 안에 조성한 ‘숲의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사진 : 춘원 임종국 조림 공적비.>
축령산을 뒤로하며 자리잡은 문암리 금곡마을은 1950~60년대의 한국적 시골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더구나 이 마을은 장성 출신인 임권택 영화감독이 태백산맥을 촬영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장차 이 마을에 들어서게 될 영화 민속촌, 그래서 널리 개방되면서 정겨운 옛 마을의 풍경과 정취가 손상되지 않고 더욱 물씬 풍기기를 기대해 본다.
필암서원[筆巖書院 제6경]
국가기록유산 http://www.memorykorea.go.kr:7779/mov/pilamseowon.html
김인후[金麟厚] 조선 중기의 문신. 1540년 문과에 합격하고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 설서를 역임하여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다. 인종이 즉위하여 8개월 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정진하였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 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숭의재 옆에는 3칸의 경장각(사진 : 敬藏閣 경장각이란 글씨는 정조가 써서 하사하였다)이 있어서 인종의 어필묵죽(御筆墨竹)을 소장하였다
이 서원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의 판각(墨竹板刻)이 경장각에 보관되어 있고, 하서집 등 1,300여권의 서책과 보물 제587호로 지정된 노비보(奴婢譜) 등이 소장되어 있어서 필암서원의 역사 뿐 아니라 유교의 지방교육제도와 당시 사회 경제사의 연구에도 중요한 사료가 된다고 한다. 경장각 벽면과 건축 부재는 용, 봉황, 삼태극, 국화, 연꽃 등 그림과 도안 들로 장식되어 있다. 용은 왕을 상징하고 국화무늬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무늬였다
필암서원의 이름은 곧 붓 형태의 바위(붓바위)를 지칭한 것이 되고, 실제로 서원서 멀지않은 그가 태어난 마을 입구엔 붓을 닮은 바위가 있다. 바위에 ‘筆巖’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매년 4월에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춘향제가, 9월에는 추향제가 열린다. 이때는 익힌 음식을 올리지 않는다. 장성군주최로 ‘선비학당 강좌’가 매주 수요일 열려 주민 학습공간에도 도움을 준다
한마음자연학교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마령리. 청량산 자락 너른 터에 백운저수지를 굽어보며 '한마음자연학교'가 들어서 있다. 지난 20여 년간 농촌운동에 매달려온 남상도 목사가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일구어낸 황토천국이다. 폐교였던 5200평 황량했던 터는 지난 2000년 3월에 자연학교로 문을 연 뒤 '우리 농촌의 미래'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1990년 3월 시작한 '한마음공동체'가 이룬 가장 큰 성과다
한마음환경농업교육장을 설립한 남상도 목사는 1997년 전라남도 농민대상을 수상하였을 뿐 아니라, 2000년 전라남도 신지식인 1위로 선정되었고 '한마음환경농업교육장'설립에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방수코팅제사용, 단일규모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흙집이 있다
홍길동생가터 황룡면 아곡리 390
생가터에서 200m 더 들어가면 암탉골(밤골) 입구 개울가에 홍길동이 어려서 먹고 살았다는 길동샘이 있다. 1997년 홍길동 사업의 하나로 생가터 가는 길을 홍길동로라 이름하였으며 생가터 발굴 작업 및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생가 복원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장성군에서는 생가터에 양반촌, 양민촌, 승마훈련장, 민속무예광장, 민속놀이터 등을 조성하고 있다.
주변에 축령산휴양림, 금곡 영화촌, 추암관광공원, 장성댐과 632년 창건된 고찰 백양사 등 관광지가 있다.
생가에는 211.38m2 에 안채(한식기와, 40여평), 아래채(초가, 5평), 사랑채 (9평), 문간채 (10평) 등 4채의 목조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는 홍길동의 아버지와 홍길동의 생모 등 소설 속 등장인물의 모형과 15세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마구간, 말박제, 장독대 등으로 꾸며져 있다. <홍길동축제>
홍길동 테마파크(제5경)
전남 장성군 홍길동테마파크 내 야영지에서 관광객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의 멋을 즐기고 있다. 12일 군에 따르면 홍길동 테마파크 안에 마련된 청소년 야영장에 매주 주말이면 청소년과 가족 단위로 20여개 팀, 80~120명이 야영을 즐기고 있다
황룡강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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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金麟厚] 호 하서(河西)·담재(澹齋). 1510년 전라도 장성현 대맥동리에서 출생하였다. 1528년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李滉)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1540년(중종 3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정자(正字)에 등용되었다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뒤에 설서(說書)·부수찬(副修撰)을 거쳤고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다. 1545년(인종 1) 인종이 즉위 8개월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난 뒤에는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인 장성에 돌아가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였다. 누차 교리(校理)에 임명되나 취임하지 않았는데 인종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아 한때 술과 시로 방황하였다고 전한다.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律曆)에도 정통하였다. 문묘(文廟)를 비롯하여 장성의 필암서원, 남원의 노봉서원, 옥과(玉果)의 영귀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하서전집》, 저서에 《주역관상편》 《서명사천도》 《백련초해》 등이 있다. 매년 4월에 선생을 기리는 춘향제가, 9월에는 추향제가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필암서원에서 열린다.
장성곶감 장성군에 따르면 지역 특산품으로 널리 알려진 장성대봉곶감이 설 성수기를 맞아 본격적으로 출하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장미공원 한국 수자원공사가 평림댐을 조성하면서 우리군의 건의에 따라, 명품 장미공원을 조성, 이를 군에서는 인근주민과 군민, 관광객들의 편안한 휴식공간과 관광자원의 명소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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