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이야기] 등불처럼 숲 밝히는 연노란빛 흰색 꽃… 땅속 균과 상부상조하며 살아요
노루발
김민하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
입력 2024.06.03. 00:29
이맘때(6월)쯤 땅에서 가느다란 꽃대를 올려 흰색의 작은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어요. 지난 겨울에도 산속 그늘에서 작고 푸른 잎을 유지했지요. 우리나라 숲속 어디서나 볼 수 있고 풀이 잘 자라지 않는 소나무 숲에서도 자라는 ‘노루발’이에요. ‘노루발풀’이라고도 하죠.
노루발은 노루발과(科)의 여러해살이풀로 두툼하고 반질거리는 잎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살아있어요. 땅속의 흰색 뿌리줄기는 가늘고 길게 옆으로 뻗으면서 자라요. 잎은 길이 4cm 정도의 타원형으로, 밑부분에 1~8개가 모여 나요. 잎 앞면은 진한 녹색이며 연한 녹색의 잎맥으로 인해 무늬가 있는 것처럼 보여요.
꽃은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 되면 피기 시작해요. 약 20㎝ 길이로 꽃대가 올라오고 끝부분에 꽃 5~12개가 작은 방울처럼 모여 달려요. 꽃은 지름이 1.2~1.5㎝로 작고, 연한 노란빛이 도는 흰색이라 불 켜진 등처럼 어두운 숲속을 밝히는 느낌이 들어요. 5개의 꽃잎 안에는 특이한 모양의 수술과 암술이 있어요. 수술은 10개이며 끝부분이 둘로 갈라져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여요. 꽃잎 밖으로 길게 나와 있는 앞술은 끝이 위로 휘어져 있어요. 땅을 향해 고개 숙인 꽃은 작은 우산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여 재미있어요. 동글납작한 열매는 가을에 꽃대와 함께 진한 갈색으로 익어요.
한 뼘 남짓한 길이의 노루발은 땅속 비밀 파트너인 균(菌·fungus)들과 협력해 살아가요. 균은 식물의 무기 영양소와 수분 흡수를 돕고,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생성된 영양분을 균에게 일부 제공하는 등 상호 유익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식물 뿌리와 균들이 공생체를 이룬 것을 균근(菌根·mycorrhiza)이라고 해요.
노루발은 균근으로부터 영양분을 얻는 종속 영양과 광합성으로 직접 영양분을 얻는 독립 영양, 둘 다 하는 혼합 영양 식물이에요. 노루발이 영양분이 적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건 균근 덕분이랍니다. 이런 균들은 살아가는 데 산소가 꼭 필요해서 공기와 접할 수 있는 지표면 가까이에 분포해야 해요. 노루발 뿌리줄기가 땅속이 아닌 땅 위 낙엽 사이로 옆으로 뻗으면서 자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에요. 노루발을 관찰하다가 살짝 건드렸는데 힘없이 옆으로 넘어지거나 쉽게 뽑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우리가 잘 아는 난초도 균들과 협력해 살아가는 대표적인 식물이에요. 이런 식물들은 땅속 균들과 협력해 살아가기 때문에 자생지에서 채취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면 잘 살지 못해요. 대신 자생지에선 밖으로 드러난 뿌리줄기를 나뭇잎으로 살짝만 덮어줘도 잘 살아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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