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요임금
요임금은 13세에 '도(陶')라는 땅을 영지로 받고, 15세에 '당(唐)'이란 곳을 다스려 도당씨(陶唐氏)라고도 했다. 그 후 황제로 등극하여 산서성(山西省) 임분시에 터 잡으니 옛 이름은 평양(平陽, 우리나라 평양은 平壤)이었다.
우리 단군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세웠을 때가 요임금 25년이라 『동국통감』에 적혀 있으니, 기원전 2400여 년, 지금부터 4500년 전 이야기다. 중국 학자들은 임분시 남쪽 양분현 도사촌 (襄汾縣 陶寺村)이란 마을에서 요임금의 성터를 발견했다고 흥분한 적도 있다. 서양의 종교가 하나님으로 도배했듯 중국 사람들이 역사에 열광하는 것도 일종의 신앙 같았다. 이 요순시절의 이야기는 우리 고전에도 회자된다.
조선시대 소리꾼들이 부르던 <유산가>의 한 구절에 나오는."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영수(箕山潁水) 예 아니냐?" 그 부분이 바로 요 임금 시절의 이야기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요 임금이 천하의 현인 '허유(許由)'를 찾아가 대신 나라를 맡아 달라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월이 환한 대낮에 횃불을 밝힌들 그 빛이 얼마나 밝겠습니까? 내 능력의 한계를 잘 아니 나 대신 나라를 다스려 주십시오."라는 요임금의 말에 허유는 "명예는 실존의 그림자이니 어찌 그림자 때문에 내 몸을 번거롭게 할 것인가."라고 거절한다.
황보밀(皇甫謐)이라는 이가 엮은 <고사전(高士傳)>에는 그 후일담도 나온다. '영수(潁水)'에 가서 귀를 씻는 허유를 보고 마침 송아지 물 먹이려던 소부(巢父)가 까닭을 묻는다. ‘요 임금한테 속세의 때 묻은 소리를 들어 귀를 씻는 중’이란 말을 듣고 소부는 송아지를 상류로 끌고 가며 소리칩니다. "공연히 허명(虛名)만 세상에 떠내려 보내는 자네의 더러운 귀 씻은 물을 우리 송아지에게 먹일 수는 없다네.“
기산과 영수는 하남성 정주시 등봉현에 있다. 임금 자리를 선뜻 양보하려는 요 임금이나 그것을 완강하게 거절하는 허유나 그런 허유에게 '허명' 운운하며 통렬한 야유를 퍼붓는 소부, 모두 공자님이 '태평성대'로 예찬한 바로 '요순' 시절의 자유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