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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행사에 전주 남성합창단원으로 같이 활동 중인 67회 박종원 군과 뒤엣으로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 있어 학교 앞 피아노 학원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데 행사를 진행하는 주최 측에서 전화가 왔다. 빨리 나오라고, 무대 가까이 가보니 덕암고생 들의 농악놀이가 거의 끝나고 있었다. 대개 무대의 음향시설과 맞추어 보고 본 공연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야말로 준비 없이 황급히 무대에 올랐다. 반주기 신디사이저와 음향이 맞질 않아 반주에 들어가면서 음량을 조절하면서 노래에 들어갔다. 노래 시작하기 전에 청중들에게 박수를 유도하기 위하여 지금 엄청 떨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실제로 차분하게 반주자와 호흡을 맞추어가면서 노래를 불러 나갔다.
첫 번째 곡은 박인수, 이동원이 불렀던 향수를 불렀다. 정지용 시인의 명시에 곡을 써서 만든 노래로 아주 서정적이다. 가을의 고향 들녁이 그려지는 아름다운 멜로디이다.
두 번째는 이태리가곡 오 쏠레 미오(오 나의 태양) 리듬도 경쾌하고 끝맺음이 우렁차다.
우레와 같은 박수에 앙콜을 받았지만 준비된 곡이 없어서 내려왔다. 생각보다 잘해냈고, 모교의 무대에 섰다는 감격을 오래 오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감동에도 큰 환호와 열광을 보내준 55회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어서 각 기수별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40회 70중반의 할아버지부터 67회 70회 까지
40회 제일 고령자이신 선배님 한 분이 노래를 제법 구성지게 잘하셨다. 연세에 견주어 음정박자가 정확하고 고운소리를 가지신 분 이셨다. 나머지는 동네 노래 방 가서 부르는 수준이었다. 보통 잘하는 정도였고, 가창력이 뛰어났다거나 노래를 맛깔나게 부르는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기수별 노래자랑이라서 서로 기 싸움이 팽팽하였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자연스레 무대아래 앞마당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울러져 춤을 추었고, 같은 기수의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는 차례가 되면 모두 올라가서 박수를 치며 으쓱으쓱,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처음부터 무대가 끝날 때까지 진지하게 춤을 추는 여인이 있었다. 무대아래 마당에서 때로는 무대까지 따라 올라가서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누가 무리에 시켜주지 않아도 열심히 춤을 추는 여인이 있었다. 얼굴에 화장기는 전혀 없고, 머리는 약간 헝클어져 있었고, 살집이 있어 약간 체구는 커 보이고, 그리 청결해 보이지 않는 ,하늘색 반팔티를 입고 시종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멋드러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춤사위는 엉성하지 않았다. 손놀림이 날렵하였고, 동작이 유연할 뿐만 아니라 리듬에 맞추어 다양한 동작을 구사할 줄 알았다. 한곡의 노래가 끝나면 쉬었다가도 하련만 쉼 없이 시종 몰입하여 춤을 추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호기심이 가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내가 파트너를 자임하고 나서 그 여인의 몸놀림에 같이 하면서 슬쩍 건들어 보기도 하고 손짓 발짓 리듬을 같이해보기도 했는데 반응이 무반응이고 아주 방해하지 말라는 듯 저 구석으로 가 버린다. 말하자면 내가 춤을 청해 보기 좋게 딱지를 맞은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친구들은 좋아라고 박장대소를 하고 마치 변강쇠란 놈 수작을 피우다가 망신을 당한 격이렸다. 허허
왼쪽 끝에 무대로 올라오고 있는 하늘색 반팔 티를 입은 여인이 바로 화재의 돈 여인
그런데 그 여인이 우리친구 창례가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를 따라 무대까지 올라와서 같이춤을 추었다.
나중에 김제 친구들에게 그 여인을 물어보니 백산면 사는 정신이 약간 돌아간 여인이란다.
잔칫날 이렇게 노는 것 아니겠는가? 남녀노소를 떠나서, 성한 사람이든 성하지 못한 사람이든 같이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서 흥겹게 노는 것이 큰 잔치이고 축제이지 않겠는가? 이렇게 노래자랑이 끝나서 수상자를 발표하는데 출연자들 거의가 수상자 이다. 수상자 명단과 포상금액을 발표하는데 보통 백만 원이고, 백오십 만원. 대상은 이백 만원이다. 아뿔싸! 나도 한번 나가볼 것인디.
근디 어찌 봉투가 홀쭉해 보인다. 수표를 넣었나? 하고 보니 실제금액이 십분의 일이라. 일순간 기분은 좋았을 것이다. 허 허 허 이렇게 해서 한번 더 웃게 해주는 구나!
곧 이어 기념식과 백주년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우리고장 우리김제 그 중앙인 우리학교 ~~~~~ 하는 교가도 불러 보았고, 자랑스런 동문 시상식도 있었다. 백주년 기념탑의 조형물은 몽당연필을 거꾸로 세운 석상이었는데 상징성도 좋았고, 외양도 수려했다.
기념식을 진행하는 사이 친구들과 정말 오랜만에 교정을 둘러 보았다.
본관과 가운데 교사 그리고 뒷 교사의 배열은 그대로 지만 옛날 그 자리와 위치도 달랐고, 그 때의 건물은 다시 신축이 되었다. 우리가 6학년때의 사용했던 뒷교사의 뒷마당이 상당히 넓었는데 지금은 뒷 마당이 거의 없고 뒷벽에 가까이 교사가 붙어 있었다. 뒷 교사 언덕에 방공호가 뚫어져 있었고, 쉬는 시간만 되면 그 굴에 들어가서 놀 곤했는데 겁이 많았던 나는 조금 밖에 들어가지 못했다. 개구쟁이였고, 몸놀림이 날렵한 희영이는 이쪽 굴로 들어가 저쪽 굴로 얼굴을 불쑥 내밀고 나와 친구들을 놀라게 하곤했다.
잠깐 더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 시절 굴이 있었던 학교의 언덕을 회상해봐야겠다. 굴이 서너 개 있었고, 언덕의 비탈길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고, 편한 길은 아니지만 비탈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언덕은 어른 키로 두 길은 넘었다.
지금은 어른 키로 한길도 아니 되었다. 그날 교정을 돌아보던 친구들이 어렸을 적이라 크게 보였을 것이라 하였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 토목공사용으로 그 언덕의 흙을 다른 데에 옮겨 썼을 것이다. 그 언덕이 없어진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그 언덕 위에 약간 항상 찬바람이 거쳐 지나가는 듯이 쓸쓸해 보이는 양철집이 한 채 있었다. 일본식의 적산가옥이었는데. 그 집은 지금도 남아 있었다.
학교교사의 건물배치는 그 옛날과 같았다. 본관, 단층의 가운데 교사와 6학년 때 썼던 뒷교사, 그리고 3학년 땐가 썼던 강당 뒤의 독채의 교실 한 칸 그리고 강당 그 당시의 건물은 강당만이 남아있다. 나머지 건물은 신축되었고, 위치도 조금씩 변경이 있었다.
옛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강당에는 들어가 보고 싶었다. 아이들 작품전시회가 한창이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동시가 진열되어 있었다. 단상에 한번 올라 보았다. 초등학교 재학 에는 바보였고, 숙맥이라서 한 도 올라본 적이 없었다.
붉은 벽돌의 강당은 조금 길이를 늘린 흔적이 있고, 강당주위의 소나무와 은행나무는 거목이 되어 있었다. 강당의 측면에 놀이 공간이 있었고, 아름드리 벚나무 있었고, 그 벚나무 아래서 진원이와 윤백이가(그 당시의 두 거물) 맞짱을 떳던 장면이 생생한데 그 벚나무는 사라져 버렸다.
강당 옆으로 사택이 있었고, 그 아래 운동장 보다 낮은 동쪽으로는 학교에서 가꾸는 실습용 밭과 작은 연못도 있었다. 지금 나있는 정문은 성경학교나 여중학교 근방에 살던 아이들이 드나들던 개구멍이 나있던 자리다. 그 아래로 작은 개골창을 넘어서 다니곤 했다. 정문 좌우에 시소와 철봉이 있었고, 운동장 좌측에는 아이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던 능목 있었고, 그 시소와 능목 사이로 운동장을 한바퀴 돌아서 프라타나스 나무 그늘이 있어 운동회날은 그 그늘아래 자리를 펴곤 했다. 교사의 서쪽 공간에 변소와 매점이 있었다. 지금은 화장실이 교사의 건물 내에 있다. 내가 이렇게 당시의 학교 전경을 그리는 것은 그 시대의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있고,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시대적인 아우라가 있다. 더 이상 옛 기억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 달라진 모교를 보러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55회가 배정 받은 천막에는 음식과 술이 준비되어 있어, 수시로 목을 축이고 배를 채워서 거나한 기분에 흥을 돋우웠고, 운동장 안에는 포장 친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장난감, 사탕과자, 솜사탕, 띠기, 야광막대 등을 파는 상인들이 잔치 기분에 들떠있는 취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가는 곳 마다 호객을 한다. 그 시절 가난해서 6년동안 다니면서 한 번도 까먹어 본적이 없고 친구들 하는 것만 옆에서 구경을 하였는데 오늘은 돈을 좀 써야겠다. 띠기도 해보고 당첨된 상품 좋은 것 달라고 억지도 써보고, 야광막대 다섯 개 사는데 깎아달라고 아줌마와 실랑이를 한 참하였다. 그러면 다른 데로 가겠다고 하니 부른다. 내 분명 돈 몇 푼에 피가 나게 사는 사람은 아니고 이렇게 옥신각신하며 인정이 오가는 것이 난장의 풍경 아니겠는가? 무대에서는 쉬지 않고 흥겨운 가락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제 여기저기 불이 들어오며 밤이 이슥해지는데 드디어 인기가수의 공연이 시작되는가 보다.
오프닝 무대 한혜진의 등장, 가는 허리 늘씬한 몸매에 한쪽이 터진 원피스를 입고 나왔는데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보일락 말락 하더니만, 몸을 뒤로 젖히니 아하 다꽝 무우처럼 하얗고 쭈욱빠진 늘씬한 다리가 드러나는데 탄성을 지르지 않을 사내 어디 있겠는가?
이어서 젊은 미남가수 현진호가 나온다. 늙은 아줌마들 무인 황홀지경 거의 다 자빠져버린 지경이다. 환호와 열광하는 박수, 쉬지 않고 손을 흔들어대고 드디어 야광막대가 제값을 하는 시간이 왔다. 반짝, 반짝하고 그렇게도 흥을 못 이기면 나가서 춤을 춘다. 손은 삐쭉, 삐쭉, 궁둥이는 좌우로 흔들 흔들, 다리는 앞뒤로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고,
드디어 열차 춤 선두가 나선다. 앞선 사람의 허리춤을 잡고 왼발, 오른발, 박자를 슬로우 고고 리듬에 발을 맞추어 무대아래 마당을 아주 흥겹게 두어 바퀴 돌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 친구들 앉은 자리가 그날 기념식의 내빈석 인 맨 앞자리에 앉게 되어서 기동성도 좋았고, 행동통일도 쉬웠다. 아주 재미있게 놀고, 단결이 잘되어 단연 눈에 돋보이는 기수가 우리 55회였다.
인류가 문명을 창조하고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노래와 율동 즉 춤은 숨길 수 없는 충동이고 본능이었다. 그 원초적인 충동과 본능을 마음껏 누리는 날이었다.
박진석, 조용구, 유지나 등 십여명의 가수가 출연을 했고, 댄스가수의 원조 박남정이 마지막 출연을 하여 대미를 장식했다. 역시 그의 현란한 몸동작은 무대를 압도했다. 앙콜 또 앙콜 무대가 파하고 나서도 그 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하루 종일 즐거웠던 날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날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며 친구가 되었고,, 맛있는 음식과 술은 넘쳐나 열두 시간 이상을 취해 있었고, 오후부터 밤늦게 까지 계속 즐거웠었다.
우리 친구들 이구동성으로 지평선 축제도 이렇게 즐겁지는 아니하였다한다. 오래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
그날 색다른 만남
우리캠프로 나를 두 번이나 찾아오셨던 45회 안윤옥 선배님, 우연히 우리 55회 카페를 들어오셔서 불민한 내 글을 읽게 되었는데 아주 감명 깊게 읽으셨다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달라고 격려해주신다. 격려의 뜻으로 술을 두어 잔이나 연거푸 주셨다. 그 동안도 함부로 글을 내갈겨 쓰지는 아니하였지만, 앞으로 더욱 조심하고 또 가다듬어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새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불구대천지 원수로 생각하던 집안이 있었다. 지금은 농고의 직답포로 팔려 농고에 매입되어진 땅에 우리와 위아래 논농사를 짓던 큰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물코 싸움이 났다. 농경시대에 흔히 있었던 물코 싸움이었다. 아버지가 나이가 아들 뻘이나 되는 젊은 놈들에게 치욕을 당하셨다. 마침 우리 형님은 군대에 가 있을 때였고 어린( 국민 학교 1,2학년 때나 되었을 것이다) 내가 흙발에 짓이겨 쓰러지신 아버지를 붙들고 부들부들 떨며 울었던 씻지 못할 뼈저리게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왜 내가 두들겨 맞은 것은 용서하고 잊기도 하지만 우리 부모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옛말에 은혜와 원수는 대를 물려서 갚는다고 했다.
내가 해병대에 있을 때 휴가 나와서 소식을 들으니 그 놈 형제가 무슨 이유로 죽었다했다.
그 때 그들 나이가 사십대 중 후반이나 되었을 것이다.
그 집, 큰 동네 이발소 집 딸래미가 백주년 행사에 왔더라. 만감이 교차했다.
물론 우리 아버님도 돌아가신지 오래되었고, 그 사건의 당사자는 지금 아무도 살아있지 않다. 다만 내 가슴에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아버님이 생면부지의 객지였던 김제에 와서 겪었던 기가 막힌 질곡들을 글로써 써볼까 계획하고 있다.
첫댓글 우와! 준태의 엄청나 기억력속에 어릴적 국민학교 교정을 머리속에 그려 볼 수 있었다..
우리들 많이 신났었쥐~~~~ㅎㅎㅎㅎ
옛추억을 아스라이 떠올리게해주어 고맙고 중앙55회 어떻든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