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문학 2018년 봄호>
문학은 예술의 꽃이요, 문학은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원천이다. 우리가 문학을 삶의 중요한 이유 또는 전부로 삼고 살면서 일생을 글쓰기에 정진한다 해도 한 편의 글다운 글을 남겨 사람들의 가슴에 그윽한 울림을 주고,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꿈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꿈도 없이 어찌 우리가 문학의 길을 갈 수 있겠는가.
- 전원범 시인(전 광주교육대학교 교수)의 권두언 <우리들의 바람>에서
**********
소금/ 이선미
소금 내음이 났다
아버지의 옷자락에서
소금이 묻어났다
말에서도 소금기가 묻어났다
생각조차 소금에 간이 배어 있다
발자국에서도 소금기가 묻어났다
염전에 다녀왔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일가 밥상에는
늘 소금이 담겨 있었다
우리 집에는 불어오는 바람조차도
눅눅한 소금기가 배어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밥상머리에서
빛과 소금처럼 살아가라고 하셨다
우리 일가는 늘 바다였다.
***********
백련/ 정숙인
어두운 빛깔을
지워내면서
곱게 피우고 싶었다
삶의 깊이를
잴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 쌓이는 인연들
부딪치는 오욕(五慾)을
발아래 묻으며
실바람소리에 살포시 내민 얼굴
********
배추흰나비/ 이성자
텃밭에서 살던
배추흰나비는
죽어서도 다시
흰나비로 태어나는가 보다
하얀 벚꽃 나비로
하얀 눈 나비로
들판을
폴폴 날아다니더니
이제는
우리 집까지 날아와
할머니 머리카락 위에
희끗희끗 내려앉았다.
************
<광주문학 2018년 여름호>
꽃이 진 뒤엔/ 강숙자
내
그리움의 뜨락에서
꽃은 졌더라
이는 바람에
행여 다칠세라 초조했던
매 순간들
그 곱디고운 꽃들은
다 지고 없더라
세월의
애잔한 연민
마음의 생채기에 남은
긴- 여운
사념의 조각보엔
가득 머금은 사랑만 움직않고
사분사분
쌓였더라
***********
섬/ 강우인
외로운 섬 하나
오늘도
홀로 서 있다
가야할 곳도
찾아줄 사람도 없는
가끔씩 갈매기만
와서 놀다가는 곳
도시 한복판에
깜빡깜빡
외로운 섬 하나
오늘도
홀로 서 있다
*******
쇄빙선/ 구용수
펭귄이 사랑하는 남극
그 두꺼운 얼음바다를 깨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는
그대 향해 가는 쇄빙선
두꺼운 얼음은
하나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내 심장의 뜨거운 박동이 있을 뿐
얼음처럼 차가운 그대의 심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는 나의 열정
차가운 벽을 뚫어 얼음벽을 깬다.
쿵쾅거리는 심장의 엔진 소리
폭발하는 태양의 홍염을 닮았다.
나는 오직
그대만을 향해 가는 외로운 쇄빙선
두꺼운 얼음을 깨는
해머이다
사랑의 무게로 그대의 편견을 깨는
묵중한 자애다.
**********
<광주문학 2018년 가을호>
‘응어리지다’라는 말은/ 김인석
‘응어리지다’라는 그 말은
보리밭처럼 드러누운 고요까지 물고와
내 몸속 깊이 들어앉은 말
백년을 불러도 문 닫고 있는,
중심이 되는 그 말
누이가 밟고 온 지친 그 신작로 따라
오므라졌다 펴졌다
담도암 환자 같은 통증이 바둑알처럼 박혀 있다
얼마나 서럽겠는가
오늘은 계산 없이 여러 곳으로 번지고 있다
여물어서 피가 나는 그 말
너무 깨끗해서 상처가 있는 그 말
********
선물/ 조성숙
엄마 유골함을 모셔두고 돌아오는 날
언니가 툭 던진 한 마디
‘넌 엄마가 내게 준 선물이야’
가슴 뭉클했던 말
아직도 내 가슴에 지문으로 남아 있다
그래, 포장지에 예쁘게 싸서
뜯을 때마다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선물이 될게
자꾸자꾸 열어 보고 싶은
그런 선물로 살아 볼게
************
예쁜 얼음/ 문삼석
얼음은
차가워서
가까이만 가도
손과 발이 얼얼해져요.
전학 온 순이도
얼음인가 봐요.
보기만 해도 금세
입과 혀가 얼얼해지는,
순이는
예쁜 얼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