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서울-도쿄 포럼 특별세션 기조발언문
일시: 2026.01.17
연사: 외교부 장관 조현
링크: 제16회 서울-도쿄 포럼 특별세션 기조발언문(1.17) 상세보기|장관 | 연설 외교부
글로서리
1. 일본 나라현 : Nara Prefecture
2. 다카이치 총리 : Prime Minister Takaichi
3.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밈(meme)’ 이론 : the theory of memes proposed by Richard Dawkins
4. 사회적 유전자 : social genes
5. 일본 국회 : Japanese Diet
6. 전전 : 제2차 세계대전 이전
387 단어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며칠 전 일본 나라현에서 진행된 한일 정상회담 직후에 이런 모임에 와서 말씀을 드리게 되어 더 의미있게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외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 상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깜짝 제안으로
이재명 대통령께서 드럼을 함께 연주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정상외교의 의미는
정상 간 만남 그 자체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양국 정상이 만들어 낸 이러한 ‘선한 영향력’이
한일관계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 사회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체감되고 있는가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일 정상이 구축해 온 양호한 관계가
이미 양국 사회 곳곳에서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작은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몇 년 전 저는 도쿄의 한 대형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른바 ‘혐한 서적코너’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은 이야기로는, ‘혐한 서적코너’는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한국어 서적코너’가 들어서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변화가 모두 정상외교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 사이에 분위기가 달라질 때 사회의 공기와 일상의 풍경도 함께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장면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간 관계는 외교 문서나 정상회담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분위기와 시민의 일상 속에 스며드는 일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밈(meme)’ 이론에 나오는 ‘사회적 유전자’ 개념을 종종 인용해 왔습니다.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동물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듯 사회도 사회·문화적 유전자, 즉 가치나 규범, 정치적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유전자가 바로 사회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유전자란 한 사회가 위기와 갈등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스스로를 교정해 나가는지를 결정하는 집단적 습성이 됩니다.
이는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고 믿습니다.
이 점에서 일본 사회의 경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998년 국빈 방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일본 국회 연설에서 “전전의 일본과 전후의 일본은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발언의 핵심은 과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변화의 능력에 대한 신뢰였다고 생각합니다.
전전의 일본은 군사적 팽창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전후의 일본은 평화헌법이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고, 자유와 민주주의, 법의 지배를 전세계에 호소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책 전환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사회적 유전자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께서도 이러한 선택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 오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러한 일본 사회의 선택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연대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뜻 있는 일본의 정치인과 시민사회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이 동북아에서 평화국가로 인식되는 토대는 바로 이러한 전후의 선택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