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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은 우리는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지난해 말 독일 교육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현지를 둘러본 본보 취재진은 독일이 교육적 통합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고 지금은 어떤 융화를 이루고 있는지 궁금했다.교육이 주민의 의식과 정서적 통합에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동독 출신 교수들 중 이 대학에 남아 있는 사람은 10%에 불과합니다.정치성이 짙은 인문·사회계열의 아카데미(대학소속 연구소) 교수들은 1백70명중 10명만이 남아 있습니다.나머지는 전원 해고됐고 복직은 어떤 형태로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4일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에서 만난 이 학교 관계자는 통일이후 달라진 점을 묻는 기자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동독 출신 교수들은 대부분 해고됐고 이 자리를 서독 출신 교수들이 차지했다는 것이다.동독 출신인 이 관계자는 “서독측이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교수들을 해고해 순수한 학문적 전통과 대학의 정체성마저 사라질 판”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옛 서독 정부는 통일직후 옛 동독 출신 교원들 중 슈타지(비밀정보부) 요원으로 활동한 사람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숙정을 단행했었다.교원 숙정은 특히 대학부문에서 심하게 나타나 웬만한 동독지역의 대학에선 절반에서 3분의 2정도가 해고됐다.특히 훔볼트 대학은 그 정도가 심했다.
순수학문 분야의 경우에도 재임용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심사기준을 철저하게 서독식을 적용해 많은 교수들이 자격미달로 탈락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었다.
자연과학의 경우에도 교재 내용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옛 서독출판사가 발행하는 교재로 바꾸는 등 옛 동독의 흔적은 철저히 지워졌다.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가 공부한 후 아인슈타인 등 걸출한 인재들을 수없이 배출한 훔볼트 대학은 옛 동독지역에 남았다는 이유로 통일이후 철저한 인적 청산이 단행됐다.이는 옛 동독지역 출신들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베를린 자유대학 관계자는 동독지역의 인적청산과 일방적인 교육개편이 당연했다는 반응을 보였다.자유대학의 한 관계자는 “훔볼트 대학은 옛 동독지역의 수도에 위치해 있어 동독지역의 대학을 상징하고 있는데다 교수 중엔 공산당 간부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철저한 인적청산이 요구됐던 학교”라고 주장했다.
취재진이 베를린 자유대학을 방문할 무렵 마침 대학설립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벌어지고 있다.곳곳에 대규모 강연회와 자축 행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등 자유대학은 활기가 넘쳤다.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위축된 분위기가 지배적인 훔볼트 대학과는 대조를 보였다.
자유대학은 이름이 말해주듯 2차대전 직후 동베를린지역으로부터 탈출해온 학생과 교수들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훔볼트 대학에 대항하는 형태로 설립된 대학으로 냉전이후 서베를린의 대표적인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했다.설립 초기 주축이 된 교수와 학생들은 훔볼트 출신들이었다.
훔볼트 대학은 통일이후 재정지원마저 줄어들고 있어 자유대학과 설치가 중복된 학과나 소규모학과는 통폐합 또는 폐지를 추진하고 있었다.특히 훔볼트는 한국학과를 독자적으로 설립·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폐지 1순위로 거론되고 있었다.자유대학엔 한국학이 별도로 설립돼 있지 않고 일본학과만 있다.
통일 후유증은 인적청산에 따른 갈등만이 아니었다.제1외국어가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바뀌면서 러시아어 교사들이 새로 영어를 배워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다.주입식·암기식 수업에 익숙한 동독지역 학생들이 토론과 자기학습 분위기가 몸에 밴 서독 출신 교사들의 수업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본에서 만난 독일연방 교육부의 욥스트 교육국장은 다른 각도에서 교육통합을 설명했다.통일 당시 동·서독 교육제도 부문의 통합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그는 “통일이 갑작스럽게 왔기 때문에 교육적 통합이 조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그는 “학제와 대학의 구조에 있어 이데올로기를 제외하더라도 동·서독간 차이가 많았다”며 “그러나 통일을 계기로 단순히 서독학제를 일방적으로 강제하기보다 동독지역 학제를 참고해 서독의 교육제도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모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현재 동·서독 지역간 교육여건의 수준차를 줄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특히 양쪽 지역간 교사 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동독지역은 전반적인 인구 감소에 따라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어 교사가 남아돌고 있는데 반해 서독지역은 상대적으로 교사가 모자란다.통일 당시에도 동독지역은 교사 1인당 학생이 15~16명이었고 일부 지방엔 교사 1인당 학생수가 6~7명이었다.반면 서독지역은 교사 1인당 학생수가 20~25명선이었다.
욥스트 국장은 동독지역의 남아도는 교사들을 해고하기보다 교사가 부족한 서독지역으로 발령내는 등 지역통합과 주민융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독일정부가 통일과정에서 교육통합을 위해 기울인 노력은 우리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동·서독이 공식적으로 통일을 선언하기 7개월 전인 90년 3월,양측 교육 당국자들은 따로 만나 통일후 동독지역 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를 개편하는 작업을 논의했다.이 과정에서 서독측은 역사,사회,기술 등 8백여종에 대한 교과서를 새로 찍어 동독지역 교사들에게 미리 배포해 최종선정 작업을 거친 뒤 통일선언 한달 전인 9월엔 모든 동독지역 학교에 새 교과서를 배포했다.
그러나 수업연한과 대학 진학과정이 서로 달라 상당수 지역에선 4~5년간 과도기 체제의 운영 등 교육통합은 더디게 진행됐다.
독일은 올해로 통일 10년째를 맞지만 주민들이 정서적으로 완전한 통합을 이루려면 한 세대 이상이 흘러야 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가장 보수적이면서도 자라나는 2세를 길러내는 점에 있어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교육부문에서 독일이 앞으로 통일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교육발전을 이룩할지는 우리에게도 깊은 관심사이다.- kukminilbo/3/16/99 -
- 훔볼트대학 의대생 슈미트
“오전 9시 첫 강의를 시작으로 오후 6시까지 강의와 실험이 이어집니다.
과제해결과 다음 수업준비를 위해 밤 11시까지 잠자리에 들 수가 없어요”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의학을 전공중인 마르쿠스 슈미트(사진)는 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간다.식사는 학교근처 학생식당에서 빵과 커피로 간단히 때운 뒤 오전 7시30분쯤이면 도서관에 도착한다.
시험기간이 아닌데도 도서관엔 먼저 도착한 학생들이 컴퓨터실과 자료열람실에 가득하다.
의대생인 슈미트의 수업시간은 일주일에 30시간.해부학 등 전공 의무수업이 18시간이고 선택수업이 12시간이다.휴일인 토요일을 빼면 하루에 6시간씩이다.수업시간마다 있는 발표나 토론회에 대비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빼고 책과 씨름해야 하는 그에게는 강의실과 도서관을 이동하는 시간도 아깝다.
슈미트의 생활비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생활보조비 1천마르크(68만원)가 전부다.슈미트는 이 돈으로 기숙사비를 내고 교통비와 극장관람비 등 용돈으로 쓴다.아르바이트를 하면 좀더 풍족하게 쓰겠지만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책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본다.많은 학생들이 빌려 볼 정도로 도서관에 책은 넉넉하다.
5학기를 마친 슈미트는 6학기째엔 전공인 의학과목을 일체 중단하고 정보통신과목을 듣고 있다.의사가 되기 위한 국가시험이 4번인데 1차시험은 이미 통과했다.그러나 의학공부가 너무 힘들어 한 학기는 다른 분야의 과목을 들으면서 쉬어 가려고 한다.3학기부터 병원에 가서 살다시피 하면서 임상실험 위주로 공부를 해 왔는 데 이수증이 필요한 다른 과목 공부까지 겸하다보니 너무 빡빡했다.
슈미트는 정보통신이 의사가 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정보통신과 의학 두 분야 모두 성공적으로 공부를 끝내려면 8~9년 걸릴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의학공부만 하기에도 버거울 텐데 굳이 복수전공을 왜 하느냐는 질문엔 “기회가 많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남은 의사고시는 의학전공 6학기,10학기,12학기를 마쳐야 응시할 수 있다.그러나 시험합격률은 대단히 낮다.우리나라의 경우 의대생의 국가시험합격률이 80~90%에 이르지만 독일에서도 명문인 훔볼트대학의 의사고시 합격률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다.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슈미트의 의대동기생은 모두 2백7명인데 이 중 필요한 과목을 모두 들은 뒤에도 1차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이 97명이나 된다.절반이 조금 넘는 1백10명만 1차시험에 합격했다.
슈미트는 졸업까지 7~8년 걸리는 독일의 대학제도에 대해 불만이다.프랑스의 대학생들은 25세면 대학을 졸업하는 데 독일은 28세나 돼야 졸업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철저히 하는 것도 좋지만 국가경쟁력을 생각하면 낭비가 아닌가 싶다.
- 독일의 대학개혁
최근 우리 대학사회에서는 모교 출신 교수임용 제한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교수사회의 폐쇄성을 타파하고 건전한 학문발전을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찬성론자들과 특정대학 출신을 역차별하는 처사라며 반대론을 펴는 이들 사이에 논쟁이 치열하다.그러나 독일 대학사회에선 이런 논쟁이 무의미하다.
우리나라 대학교수 지망생들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경향이 유달리 강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모교강단에 서는 것에 대단히 집착한다.특정대 출신 아니면 모교 출신들이 대부분 강단을 점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하지만 독일의 경우엔 우리나라처럼 모교 출신이 대학강단을 독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적어도 다른 대학에서 충분한 강의와 연구실적을 쌓은 뒤 공개모집을 통해서만 모교강단에 설 수 있다.
독일 본대학에서 정년퇴직한 구기성 박사(62)는 요즘 자신이 후계자로 내세운 한 독일인 교수의 진로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구박사는 본대학에 한국학과를 설치하는 데 일등공신이었을 뿐 아니라 독일내에선 한국학 분야의 1인자로 꼽혔던 인물.2년 전 본대학에서 정교수직을 내놓으면서 독일인 교수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줬다.
그러나 이 독일인 교수가 아직 정교수직에 오르지 못했다.정교수가 아니다보니 한국학의 법통을 잇기에 중량감이 떨어진다.구박사는 최근 보쿰대학의 한국학과 정교수 공개모집에 응시한 자신의 후계자를 지원하기 위해 대학,교육부측과 부지런히 접촉하고 있다.
독일에선 조교수에서 부교수로,부교수에서 정교수로 한 단계씩 승진하려면 반드시 다른 대학으로 옮겨야 한다.같은 학교에서 연한이 되면 자동적으로 승진하는 일은 없다.특히 어느 대학이 정교수 자리를 채울 경우 자기 대학의 부교수들은 후보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는 중세 때부터 학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명망있는 학자를 대학측이 공개모집을 통해 초빙하는 전통이 확립돼 온 탓이라는 게 구박사의 설명이다.이 때문에 모교 출신이라 해서 교수임용과 승진에 있어 유리한 것은 조금도 없다.오히려 다른 대학에서 학문적 성과를 쌓지 않으면 모교에서 교수직을 차지하기가 불리하다.구박사의 후계자도 정교수가 되려면 다른 대학으로 옮겨야 한다.
독일에서 교수직에 오르는 데 어느 대학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자기 대학 출신들은 배제되기 때문에 실력으로 경쟁해야 하고 학문적 업적과 연구성과가 없으면 다른 대학에서 받아 줄 턱이 없다.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도 대학간판보다는 그 분야의 권위자나 실력자가 어느 대학에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교수가 학교를 옮기면 학생들도 따라서 학교를 옮기는 경우가 흔하다.
학생들이 대학의 적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풍토도 대학의 서열화나 폐쇄성을 막는데 큰 기여를 한다.독일 대학생들은 보통 졸업 때까지 1~2번 대학을 옮긴다.스승 따라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학문에 보다 나은 환경을 좇아 학교를 옮긴다.
학교를 옮기기 위한 별도의 시험은 없다.교수의 추천장만 있으면 대학을 옮기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우리나라 학생들처럼 원치 않는 대학에 마지못해 입학한 뒤 편입학 시험에 몰두하는 낭비를 독일에선 찾아볼 수 없다.베를린에서 만난 훔볼트 대학생 마르쿠스 슈미트씨(23)도 2년전 기센대학에서 지금의 학교로 옮겼다.
독일의 경우도 다른 유럽대학처럼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데다 매달 정부에서 지급되는 생활비도 8백~1천마르크에 달한다.우리 돈으로 54만~68만원이다.이 돈이면 웬만한 학생들은 별도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자립생활이 가능하다.베를린자유대학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인회씨(39)는 “이런 점에서 독일 대학생들은 행복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대학들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옮기면서 졸업을 서두르지 않아 대학체류기간이 너무 길어진다고 고민이다.독일대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데 보통 7~8년 걸린다.졸업이 늦어지는 만큼 학생들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줘야 하는 정부 부담이 그만큼 늘어난다.
사실 독일대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너무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은 독일 대학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현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독일대학은 우리나라처럼 의무적으로 한 학기에 몇 학점 이상 강의를 듣는 학기제가 아니다.전공과목에 따라 필요한 이수증만 따면 되기 때문에 졸업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이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독일에서 자격증 없이 대학을 졸업해 봐야 마땅히 갈 곳이 없는 현실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정부는 그러나 이런 느슨한 학사제도를 이용해 이수증이나 시험이 필요없는 과목위주로 강의를 들으면서 학교에 오래 눌러 앉으려는 대학생들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섰다.대학법을 개정해 4학기 말에 실시하는 졸업중간시험제를 도입하는 등 졸업시기 단축을 위해 애쓰고 있다.
베를린자유대학의 경우 2년동안 시험이 필요한 과목을 하나도 신청하지 않는 경우 1년간 유예기간을 준 뒤 제적시키고 있다.자유대학에서 새로 적용한 학사관리방침에 따라 제적된 학생이 4년간 정원의 20%에 달할 정도로 엄격하다는 게 이 대학측의 설명이었다.
또 일부 대학은 학생들에게 의무감을 지우기 위해 학기당 1백마르크씩 내도록 하고 있다.
그래봐야 우리 돈으로 겨우 6만8천원이다.
재정부담보다는 정신적 부담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 kukminilbo/3/30/99 -
- 세계최고 직업교육 국가 독일
직업교육분야 3백65개.
직업교육생 61만명.직업교육생 1명에 투자되는 연간 비용 2만5천마르크(약 1천7백만원).
독일의 직업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체제와 내실있는 운영으로 평가받고 있다.재정과 교육과정은 노사정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교과과정은 철저한 현장 위주다.
이 나라에서 국제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직업교육의 비중은 대단히 크다.90년대 들어 대학진학자 수가 처음으로 직업교육생 수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전체 독일국민 중엔 인문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직업교육 이수자가 훨씬 많다.97년 말 현재 16~17세 학생 중 절반은 직업학교 계열에 다니고 있다.반면 우리나라는 실업계 학생이 82만여명으로 전체 고등학생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독일의 직업교육시스템은 운영주체가 우선 독특하다.직업교육은 전통적으로 학교와 기업이 공동으로 담당한다.그래서 `이원적 체제의 직업교육'이라고 표현한다.우리나라는 대부분 학교에서 실습이 이뤄지지만 독일에선 실습은 기업이나 공장에서 이뤄진다.
1주일에 2일은 학교로 나가고 3일은 기업체 내에 마련된 실습장에서 돈을 받으면서 훈련을 받는다.학교교육은 기업체 실습을 지원하기 위한 이론교육에 치중한다.
“기존의 컨베이어 시스템에선 나사 조이는 사람은 나사만 조이고 기름칠하는 사람은 기름만 칠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을 익히지 못해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그러나 노동자 4~5명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한 뒤 자동차 엔진을 만들라고 했더니 엔진제작 전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여러 가지 엔진 고장이나 문제에 부닥치더라도 해결능력이 커졌습니다”
본에서 취재진이 방문한 하인리히_헤르츠 직업학교의 게르하르트 돌렌 교장(사진)은 수업내용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철저한 현장 위주,문제해결방식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식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토록 한 뒤 이를 스스로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학교는 금속 난방 자동차 전기 도배·미장 목공 건설 등 공업계 7분야에서 직업인을 양성하는 학교로 학생들은 대부분 기업체와 직업교육계약을 하고 있었다.우크라이나 출신 니콜라이(27)도 조그만 난방설비회사의 직업교육생으로 취직하면서 이 학교에 등록했다.
회사는 니콜라이에게 월 9백마르크를 주면서 3년간 실습교육을 시키고 학교는 니콜라이가 무사히 직업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이론과 실무를 익히도록 도와준다.90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건너온 니콜라이는 직업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쳐 난방설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직업교육과정을 신청했다.보다 안정적인 직책과 보다 나은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직업교육과정을 마친 뒤엔 대학에 진학,배관과 상수도 설비를 공부하는 것이 그의 장래 계획이다.
독일에서 직업학교에 들어가려면 대개 니콜라이처럼 먼저 기업체의 실습생 모집과정에 응모,직업교육계약을 해야 한다.말하자면 고용과 함께 실질적인 직업훈련비용을 기업이 부담토록 하는 셈이다.교육생에겐 월급이 6백~2천마르크 정도 지급된다.직업학교에 별도의 수업료는 내지 않는다.직업학교 운영주체는 주정부일수도 있고 상공인협회나 종교단체 또는 노조가 될 수도 있다.교사월급은 주정부에서 나오며 학교 부지는 대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된다.
기업체에서 실습자리를 못 찾은 경우엔 연방고용청에서 운영하는 직업교육원에 다닐 수 있다.1년동안 여러 가지 훈련과정을 익히면서 자신의 훈련비용과 고용을 책임질 기업체를 찾아야 한다.역시 무료다.
직업학교의 교과과정 편성권한은 노사정이 공동으로 갖고 있다.주정부와 연방정부,사용자와 노동자 대표 각 16인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결정된다.새로운 산업과 직업이 생겨나고 그에 맞는 직업교육과정을 신설한다.97년엔 컴퓨터산업과 관련한 4가지 직업교육분야 도입이 결정됐다.
최근 독일 직업교육의 특징은 광범위한 기초교육의 강화를 토대로 특정분야 전문교육을 심화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독일연방직업교육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래사회에서 어떤 직업이 새로 생기고 없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실직후에도 다른 직업에 쉽게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초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독일에선 새로운 직업은 점점 늘어나는 데 비해 직업교육분야는 오히려 줄어들었다.과거의 낡은 직업교육분야는 과감히 없애고 유사한 분야는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80년대 이전엔 5백여개에 이를 정도로 세분된 직업교육분야를 3백65개로 줄였다.현재 독일정부가 추산하는 직업의 종류는 2만5천종에 이른다.
독일의 직업교육도 최근엔 위기를 맞고 있다.대학 가기를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점점 늘어나면서 직업학교 지원자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90년엔 독일역사상 처음으로 대학생 수가 직업교육생 수보다 많아졌고 2000년이면 이 격차가 55대 45의 비율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근본적으론 직업학교 출신과 대학 출신자간 임금격차가 큰 것도 직업학교 지망자를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연방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직업학교를 마친 뒤 15년까지는 대졸자보다 직업학교 출신의 임금이 많지만 이후 임금총액이 역전된다.직업교육 출신의 임금이 3천5백마르크면 대학 출신의 평균 임금은 월 5천마르크 정도로 1.4배 정도 많다.
직업학교 출신으로 장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마이스터(기능장)'라는 칭호와 함께 부와 명예를 쥘 수 있지만 이는 대단히 좁은 문이다.
결국 직업교육이 성공하려면 교육과정의 개혁 못지않게 사회적 가치인정의 풍토가 중요하다는 것을 독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 kukminilbo/3/30/99 -
★ '하우프트슐레' 13학년 안드레 슈나이더 ★
베를린 시교육청의 소개로 직업학교 진학 이전 단계인 한 `하우프트슐레'를 방문했다.독일에선 초등학교를 마친 뒤 성적순으로 김나지움이라는 인문계 중·고등학교로 가든지,아니면 레알슐레나 하우프트슐레로 진학하게 되는데 이중 하우프트슐레는 학교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로 인식돼 있다.
하우프트슐레는 인문교육과 취업교육을 동시에 실시하긴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극히 드물다.따라서 하우프트슐레는 초등학교 졸업자가 진학하는 직업교육기관으로 분류된다.취재진이 방문한 하우프트슐레는 옛 동·서독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어 낙후된 지역인데다 지역주민들의 실업률(30%)도 높은 편이라 학생들이 졸업 후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이 때문인지 학교 규율도 엄한 것 같았다.취직자리가 마땅치 않은데다 학생들의 자질도 떨어지기 때문이다.이 학교 학부모중 절반은 독일인이고 절반은 외국인이었다.취재진이 만난 이 학교 학생중에는 북한 외교관의 자녀도 있었다.
학교측은 “성실한 직업인의 태도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 공부하라고 강요하진 않는다”며 “졸업생의 90%정도는 상급 직업학교나 취직자리를 마련한다”고 소개했다.
취재진은 안드레 슈나이더(15·사진)라는 학생을 따로 만나 학교생활을 들어보았다.우리로 치면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13학년이다.편모 슬하에서 성장했고 학교성적은 중간 정도라는 신상정보를 학교측으로부터 미리 귀띔받았다.그러나 막상 만나본 안드레는 대단히 쾌활하고 자신의 진로에 대한 뚜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 학교 생활에 만족하는가.
▲만족한다.학생들끼리 싸우는 일도 없고 사이좋게 지낸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 초등학교 다닐 땐 학생들끼리 싸우는 일이 종종 있었다.
-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하우프트슐레 진학하기를 원했나.
▲김나지움에 가고 싶었다.성적이 안 좋아서 못갔다.
-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항의하진 않았나.
▲하우프트슐레는 오고 싶진 않았지만 대안이 없었다.
- 좋아하는 과목은.
▲요리실습 시간이다.(이 대목에서 안드레는 갑자기 웃음을 보이면서 말이 빨라졌다) 4시간 연속으로 진행되는 데 처음 2시간은 뭘 만들까 토론하고 나중 2시간은 음식을 만든다.오늘은 요리실습 시간이 없어서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다.
- 장래 희망은.
▲요리사다.그러나 열심히 공부해서 김나지움 상급반으로 옮기고 싶다.
-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어린 나이에 인문계로 갈지 실업계로 갈지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생각해보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 학교를 마치고 나면 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만족한다. - kukminilbo/4/6/99 -
- 김나지움 학생 인터뷰
“자연과학자나 의사가 꿈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무용도 포기할 수 없어 매일 2시간씩 연습하랴 아비투어(김나지움 졸업자격시험으로 일종의 대학진학시험) 준비를 위한 공부도 하랴 아주 바빠요”
콘라드 아데나우어 김나지움 상급반인 13학년 학생 2명(왼쪽 사진이 제니,오른쪽이 올리버)을 따로 만나 학교생활과 장래계획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제니는 김나지움의 대학진학반 학생 치고는 의외로 춤추는 시간이 많았다.
- 하루 일과를 들려달라.
▲(제니)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서 8시 전후에 학교에 도착한다.8시30분부터 학교수업이 시작되는데 오후 1시15분이면 끝난다.잠자리엔 밤 11시30분에 든다.하루에 보통 6개 강의를 듣는다.쉬는 시간에는 도서관이나 라운지에서 공부를 하지만 집이 가까워 집에 가서 책을 보다 오기도 한다.정해진 교실은 따로 없다.
- 학교수업이 끝나면 무얼 하는가.
▲읽어야 할 책이 많긴 하지만 매일 2시간씩은 무용연습을 따로 한다.5살때부터 춤을 배웠는데 아주 재미있고 좋아한다.
- 아비투어 준비와 대학진학 후 목표는.
▲아비투어에선 생물과 독일어를 선택하려고 한다.대학에선 자연과학자나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
- 학교공부는 어떤가.
▲아비투어 시험준비 직전인 12학년에 4과목을 배우는데 공부할 양이 너무 많아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이다.(웃음)
제니와 나란히 인터뷰에 응한 올리버 역시 대학진학반 학생인데도 태권도에 심취해 있다고 말하는 등 교과공부 못지않게 과외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 학교내 특별활동이나 클럽활동에 대해 말해달라.
▲(올리버) 연극,사진,카누 등 다양한 클럽이 많다.
그러나 나는 학교와 집이 너무 멀어 특별활동을 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취미는 무엇인가.
▲ 태권도에 심취해 있다.
- 공부는 얼마나 하고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매일 4시간 정도 학과공부에 매달린다.주말엔 친구들과 파티를 하거나 극장에 간다.
- 대학진학 후 목표는.
▲경영학을 공부해 아버지 사업을 이어 받는 것이다. - kukminilbo/4/13/99 -
- 독일 김나지움 수업 참관기
“빌헬름 텔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말해 볼 사람”
교사가 질문하자 꽁지머리를 한 남학생이 용감하게 “로빈 훗이요”라며 가장 먼저 대답했다.
그러나 교사의 반응이 시원찮자 남학생은 고개를 으쓱했다.그러자 학생들은 “와”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 다 활을 잘 쏘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경쟁적으로 손을 들었다.학생 수는 모두 17명.교사가 미쳐 쳐다보지 못하면 손을 쳐든 채 손가락을 딱딱 튕기면서 지명을 요청했다.
“착한 사람이요”“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요”“자기 목숨까지 희생하려는 사람이요”
독일 본의 콘라드_아데나우어 김나지움의 9학년 국어시간 수업 모습이다.우리로 치면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쉴러의 희곡 `빌헬름 텔'을 책상위에 펼쳐놓고 있었다.교사도 희곡을 손에 들고 있었다.`빌헬름 텔'은 아들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과를 화살로 쏘아 맞춘 스위스 독립운동의 전설적인 인물을 그린 희곡으로 독일 중등학교에선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수업시간 내내 교사나 학생 누구도 책을 낭독하는 모습은 없었다.교사는 학생들이 미리 읽어 온 것을 전제로 쉬지않고 질문을 던지거나 학생들의 의견발표를 유도했다.
교사는 유달리 고개만 숙이고 있던 한 남학생을 지명하더니 “1장과 2장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말했다.
남학생은 “질문을 못 들었는데요”라며 딴청을 피웠다.교사인 비호프 캄퍼 박사는 “책 좀 미리 읽어 오라”고 질책했다.
캄퍼박사는 학생들에게 미리 복사한 스위스 지도 한 장씩을 나눠준 뒤 빌헬름 텔이 감옥을 나와 탈출하기까지 이동경로를 지도위에 그려보라고 말했다.학생들은 갑자기 미술시간이라도 된듯 신나게 연필로 비뚤비뚤 선을 이어갔다.자신이 없는지 가끔 책을 뒤적이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었다.
캄퍼박사는 지도 작성이 끝나자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대답을 못하면 다른 질문을 던져서라도 학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정답'은 제시하지 않았다.어떤 대답이라도 논리적인 설명을 덧붙이면 칭찬을 했다.
문학작품의 주제나 교과서에 나타나는 표현의 의미마저 참고서나 교사가 일러주는대로 달달 외우는 우리나라 교실수업의 현실을 떠올리면 독일 중학교의 국어수업은 독서토론회와도 같았다.우리는 교사가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나면 학생들은 주어진 것을 암기하기 바쁘지 다른 대안을 모색할 틈이 없다.
김나지움은 초등학교를 마친 뒤 대학진학을 목표로 선택하는 중등학교로 모두 9년 과정이다.이중 6년이 중학교 과정이고 나머지 3년이 고등학교 과정으로 본격적인 대학진학 준비반이다.
초등학교 4학년 과정을 마친 뒤 김나지움에 진학하면 5~6학년 2년간은 일종의 `관찰기'다.교과학습을 따라가기 어려운 학생들에겐 학교에서 따로 상담을 한뒤 레알슐레 같은 직업계 학교로 옮길 것을 권한다.이 학교에선 학생 10% 정도가 레알슐레로 옮긴다고 한다.반면 레알슐레에서 옮겨오는 학생들도 해마다 30~40명씩은 된다고 한다.
취재진은 9학년 수업이 끝난 뒤 김나지움 상급반인 13학년 강의실로 이동했다.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으로 대입준비에 여념이 없는 학년이다.김나지움 상급반은 학급 구분이 없어지고 과목별 이동 수업을 한다.강의수준이 꽤 높아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교양과목 강좌를 연상시켰다.교사진은 전원 박사학위 소지자다.
취재진이 찾은 강의실은 언어철학 강의실.강의실을 들어서는 백발의 중년교사가 풍기는 분위기도 어쩐지 대학교수 같아 보였다.
하우스만박사는 인도_게르만 언어의 명칭유래와 발음의 변천과정에 대해 5분 정도 설명했다.
그러자 한 여학생이 끼어들었다.이 학생은 “인도_게르만어에서만 그런 유형의 발음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며 한 예로 인도 고대언어인 산스크리트를 예로들며 3분 정도 설명했다.
하우스만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다”고 수긍했다.
그는 독일지역별로 나타나는 방언의 차이를 설명한 뒤 “언어의 특징에서 무엇을 유추할 수 있는가”하고 물었다.
같은 여학생이 “언어를 연구하다보면 사람의 사고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남학생이 말을 받았다.“생각이 다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기술이 발전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간 진지한 토론과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하우스만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지켜볼 뿐이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 하우스만박사는 “다음 수업시간까지 생각해 오라”며 질문지를 나눠주었다.질문지엔 △엥겔스에 따르면 언어와 노동과 사회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 △엥겔스가 말한 언어와 정신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언어의 생성과정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말해 보라 등이 적혀있었다.교사가 던진 과제는 말이 `생각해 보라'는 것이지 책 2~3권은 읽어야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수업참관에 동참했던 이상경 독일주재 교육관이 “우리 교육이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해 수업중에 활발한 대화와 토론을 주고 받는 독일 교육을 쫓아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한 말에 취재진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kukminilbo/4/1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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