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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마지막 4중주 - A Late Quartet >
- 위기와 함께 펼쳐진 '삶과 관계의 새로운
4중주'
예술가의 말년 작품은 내밀한 자기 고백인
경우가 많지요.
베토벤이 청각을 완전히 잃고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도 '현악사중주' 작곡 만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 불면 꺼질 듯한, 타들어가는 촛불을 부여잡고
빛을 비추는 심정으로 말년의 베토벤이 오롯이
집중했던 후기 현악사중주(제12번~ 16번).
이 다섯 곡은 '심오한 명상’ 이라는 평가가
말해주듯이 작품의 내면적 스케일이 매우 크고도
깊죠.
아울러 작곡가의 진지한 내면 고백이 깊이 스며든,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악음악이라는 특징이 한층
커지고 있습니다.
토마스 만의 소설 < 파우스트 박사 > 에
등장하는 문장을 인용하자면,
'(베토벤의 말년작들은) 절대적 고독 속에
자리 잡은, 완전한 개인적 자아의 영역으로
들어섰던' 게지요.
이 작품들에서는 베토벤 자신의 자기성찰은
물론 세상을 향한 격렬한 분노와 인간적인
흐느낌,
그리고 신성에 대한 갈망, 초월적인 체념,
억눌린 욕망의 분출, 고루한 인습 파괴의
욕구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베토벤은 후기 현악사중주를 통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며,
음악을 인간의 삶과 무관한 것으로 취급했던
고전주의 시대와도 결별을 선언했는지도
모르죠.
그 중에서도 베토벤이 가장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던 '현악사중주 14번' 을 철학적인
터치로 풀어낸 영화가 있습니다.
야론 질버만의 2012년 연출작 < 마지막
4중주 - A Late Quartet > 로,
'인생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불협화음’ 이라는
카피가 맛깔나게 어울리는 필름으로
다가오죠.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 '푸가(Fugue) 콰르텟' .
그들 내에서 음악적 스승과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 미첼(크리스토퍼
윌켄 분)이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단원들은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피터 본인이 말로는 쉽게 했던 "자네들보다
30살이나 많은 내가 어쩔수 없이 먼저 갈 수
밖에 없는 운명" 에 직면케 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관계인 네 사람은
이를 계기로 25년 간 숨기고 억눌러오던
감정들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삶과 음악
모두 파국이라는 최대의 기로에 서게
되지요.
당사자 피터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푸가
사중주단이 위태로워질 것을 깊이 염려한
끝에...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4번' 을 연주할 것을
제안합니다.
푸가 사중주단의 멤버는 첼리스트 피터와
그의 제자들로 구성되는데,
제1바이올린을 맡는 대니얼 러너(마크
이바니어 분)과 그의 친구 제2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겔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 ,
그리고 로버트의 아내 비올리스트 줄리엣
겔버트(캐서린 키너 분)가 그들입니다.
리더는 제1바이올린의 대니얼이지만
연륜으로 보나 인간적인 면모로 보나
피터야말로 푸가 사중주단을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 마지막 4중주 > 에는 여러 관계의 서사가
등장합니다.
부부, 스승과 제자, 친구와 연인, 경쟁자,
십대의 사랑, 하룻밤의 외도, 부인을 잃은
노년의 외로움과 그리움 등...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거기에서
비롯된 굴곡어린 갈등과 감정들이 영화의
기본 골격을 이루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중년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의 관계 속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품어내야 할 불협화음처럼 삶에는 조율이
필요할 터... 영화는 그러한 관계에다가
작은 변화 하나를 심지요.
그 변화를 계기로 모든 것들이 바뀌기
시작하고 변용의 순간 겪게 되는 그 진통
또한 크게 다가오게 됩니다.
항상 제2바이올린만 담당하던 로버트는
새로운 단원이 들어오면 어차피 소리가
완전히 바뀌니 이를 계기로 자신도 제1(?)의
바이올린을 해보고 싶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제1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대니얼은
“자넨 훌륭한 연주자야. 하지만 제1바이올린
감은 아니야” 라고 잘라 말합니다.
로버트는 “네가 항상 나보다 잘난 줄 알지?” 라고
벌컥 화를 내죠.
그의 부인이요, 음악적 동지인 줄리엣 역시
“당신만 중요한 게 아냐. 우린 전체를 생각해야 해”
라며 로버트를 달래보지만... 오히려 그는
이성을 잃고맙니다.
"내겐 중요한 문제야. 왜 당신은 내 편을 들지 않는
거야? 날 정말 사랑하긴 해? 그냥 내가 편한 거야?"
로버트는 라이벌인 대니얼과 젊은 시절
연인관계였던 아내 줄리엣이 언제나 자신을
은근히 무시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는 홧김에 아침 조깅을 같이 하던 댄서와
외도를 하다 줄리엣한테 들켜버린 채,
이혼 위기에 처하게 되지요.
영화 < 마지막 4중주 >는 위치와 관계에 따른
존재의 고민, 아울러 가정과 일터에
드리워지는... '균형과 조화' 라는 숙제를
던집니다.
이제 모녀 간, 부부 간의 가족 갈등과 더불어
멤버들 간의 오랜 사랑과 우정, 배려와 존중,
이해심 등 어쩌면 연주력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들이 시험받게 되지요.
이를 상징하는 장면은 무엇보다도 대니얼의
변화로 비춰집니다.
대니얼은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를 연주하려면
우선 "작곡가로서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면서,
제자 알렉산드라(이모겐 푸츠 분)에게
악보대신 베토벤의 전기를 읽고 그의 삶을
탐구해보라는 과제를 내주지요.
그런데 문제는 정작 자신은 실질적인
삶 속에서 베토벤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악보를 통해 분석만 한다는
것이지요.
대니얼은 악보에 깨알같이 적힌 메모 없이는
감히 연주할 생각도 못하는 완벽주의자일
정도로 냉철하면서도,
정작 제자에게는 이율배반적인 요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동료(로버트와
줄리엣) 부부의 딸이기도 한 알렉산드라와
선을 넘는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막장도 이만저만한 막장이 아닙니다만...
그는 이 관계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정은
커녕 자각조차 못합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로버트의 주먹에 맞고도,
그리고 피터의 부끄러운 줄 알라는 호된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죠.
놀랍게도 그들의 관계가 부적절하며 대니얼이
리더로서 '푸가' 사중주단을 지켜야 할 소명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 주인공은 훨씬 어린 제자
알렉산드라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결단에 의해 관계가
청산되면서 대니얼은 40대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실연의 쓰라림을 경험케 되지요.
피할 수 없는 병과 나이듦과의 대면, 그리고
관계가 주는 더 깊은 고뇌들의 혼돈 속에,
첼리스트 피터는 이제 은퇴를 준비하고,
푸가 현악사중주단이 변함없는 모습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그는 병마와도, 자기 자신과도, 팀의 불화와도
싸우며,
파국의 위기 해소를 위해서라도 기왕 물러날
때 더 아름답게 자리를 뜨고 싶어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기만 하지요.
이런 몇 겹의 충돌 상황 속에서 영화는
내밀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이 복잡 미묘한 갈등의 파고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4번 c# 단조' 와
함께 시종 출렁거리지요.
네 사람의 관계에 불협화음이 있을지라도,
푸가 사중주단에 불협화음이 있어서는
안될 진데...
극 중 현악 사중주단의 이름을 '푸가' 로
붙인 것은 왜일까요.
푸가는 다성음악의 악곡기법 중 하나로,
모두 함께 연주하지만 각자 다른 음을
연주하는 독립 개체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음들은 한데 모여
아름다운 전체의 음악을 만들어내지요.
어느 성부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은 다성음악의
독립 개체처럼 각 등장인물의 욕망과 감성,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만드는 관계의 서사를
빠짐없이 모두 담아냈기에,
'푸가' 라는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느껴집니다.
갈등과 불협화음이란 서로가 대등하고
독립적일 때라야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일런지요.
영화 초반 피터는 강의에서 베토벤
현악사중주 14번의 '불가피하게 예정된
불협화음' 을 설명하면서 학생들에게
철학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을 건넵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4번을 오래 쉼 없이
연주한다는 것은 각 악기들의 음률이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를 멈춰야 할까?
아니면 불협화음이 생겨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춰가야만 할까?”
튜닝할 시간이 없어서 불협화음이
예정되어 있을지라도 연주는 계속되어야
하지요.
그렇다면 '삶과 그 관계의 연주' 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최적의 조율이 아니라 최선의
적응이 아닐까요.
음의 이탈과 부조화 앞에서도 연주를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달라진 나의 소리와
어긋나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맞춰서,
어떻게든 더 나은 음악을 만들어 보려는
그 노력 자체처럼 말입니다.
망가진 걸 인정하지 않고 원래대로 연주하다간
더 큰 오류가 생기기 때문이겠지요.
영화의 마지막에서 푸가 사중주단의 단원들이
악보를 덮고 연주에 임하는 것은 이에 대한
사유의 암유일 것입니다.
베토벤의 치열했고도 깊었던 고뇌와
음악가로서의 자신들의 삶을 진지하게
연결코자 노력하고 있는 게지요.
인생의 무대 같은 바로 그 공연장에서 푸가
사중주단의 멤버들은 그렇게 하나씩 자신의
자리를 채워가지만,
베토벤 현악사중주 14번 c# 단조가
그러하듯이 어렵기만 합니다.
'불협화음(Disharmony) 속의 화음
(Harmony)...' '조화' 란 다름아닌 '차이' 를
전제로 합니다.
푸가 콰르텟은 25년 동안 조화로운 소리를
냈고 팀원들은 평온한 삶을 이어온 것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영화는 작은 파문으로 흔들리며
불편해지는 그들 사이의 관계와 삶을 다시금
되짚어 봅니다.
"나와 너, 나아가 우리의 삶은 제대로
잘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어느 한 순간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위험한 줄을 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 영화에서는 브렌타노 콰르텟의 베토벤
현악사중주 14번 뿐만 아니라(이 곡은
영화의 피날레 연주 장면과 엔딩 크레딧에서
6악장 일부와 7악장 전체가 흐르며 마치
영화의 5번째 '퀸텟 주인공' 처럼 느껴지게
하지요),
영화 후반부 화면엔 피터가 먼저 떠나 보낸
아내, 메조소프라노 미리암 역으로 특별
출연한 안네 소피 폰 오터의 노래가
콜라쥬됩니다.
피터가 자신의 빈자리를 채울수 있는
유일한 첼리스트로 지목한 후임 역으로
나오는,
브렌타노 현악 사중주단의 멤버이자
한국 출신 첼리스트인 니나 마리아 리의
정열적인 연주 모습을 볼 수 있는 점도
인상적이지요.
감독 야론 질버만은 이 영화를 '베토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밝힌 현악사중주 14번에
대한 오마주' 이자,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 작품 전체', 더
나아가 '현악사중주 자체에 대한 헌정'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흥미롭게도 영화 오프닝에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설명하기 위해 T.S.엘리엇의
시를 인용하고 있는데요.
"현재와 과거의 시간은 미래의 시간 속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T.S.엘리엇 역시 베토벤 말년의 걸작 후기
현악4중주곡들에 영감을 받아 그의 최고
작품인 '4개의 사중주(Four Quartets)' 라는
시를 썼죠.
엘리엇의 시와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곡
둘 다 ‘지금’ 이란 시간 개념에 대해 성찰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두 작품군은 상당히
유사한 면을 보이죠.
줄리엣이 지하철에서 읽게 되는 오그덴 내쉬의
'노인'(Old men) 이라는 시와,
부녀같은 피터와 줄리엣 두 사람이 프릭
컬렉션에서 감상하는 램브란트의 그림
시퀀스는 드라마의 인상적인 모멘텀으로
자리합니다.
영화 < 마지막 4중주 >에서는 진중한 울림의
일화가 등장하죠.
슈나벨과 부슈, 호로비츠와 밀슈타인,
루빈스타인과 하이페츠 등의 멤버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을 결성했었던,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라는 첼리스트가
실제로 겪은 일화에 기반한 이야기로, 영화
속에서는 피터의 경험담으로 나옵니다.
세계 최고의 레전드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 앞에서 피터가 첼로 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긴장감 때문인지 최악의
연주를 했지요.
낙담하고 있는 그에게 거장 카잘스는
뜻밖에도 최고의 칭찬을 해줬고, 피터가
훗날 그에게 당시 일을 언급하자 카잘스는
화답해줍니다.
"단 하나의 악구, 단 한 번의 탁월한
순간만으로도 나는 감사할 수 있었으니...
당신도 그리해야 할 것이오."
카잘스는 좋은 점, 그가 즐겼던 것만을
강조했던 셈으로, 나머지는 실수나 끄집어
내면서 판단하는 멍청이들에게 맡겨두라는
거였지요.
피터는 카잘스 앞에서 한 자신의 실수가
두고두고 기억나며 좌절하고 안타까웠을지
모르지만,
카잘스는 자신의 앞에서 연주한 젊은 첼리스트
피터의 장점들을 너그럽고도 여유로운
시각으로 즐겁게 감상하며,
그에게 허언이 아닌 진솔한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해줬던 것입니다.
멤버들의 갈등과 다툼이라는 파국적 상황에
착잡하기만 한 피터는,
1년 전 죽은 아내 미리암을 그리워 하며
레코드 판 하나를 턴 테이블에 올리죠.
'1+4' 라는 타이틀인데요, 바로 성악가였던
미리암과 푸가 콰르텟이 함께 했던
음반입니다.
미리암의 '마리에타의 노래' 가 처연하게
흘러나올 때 피터는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코른골트의 오페라 < 죽음의 도시 > 에서
파울이 그러하듯이 미리암의 환상을 보게
되지요.
영화는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의 각고의
노력끝에 활을 켜는 손의 움직임이나 핑거링,
보디 랭귀지 등 사실적인 연주 동작을
만족스럽게 펼쳐냈습니다.
감독은 흙과 나무의 느낌을 살린 악기들의
고급스런 브라운 색상이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하지요.
감정적으로 파멸 직전의 격한 상태에 도달했던
네 사람은 극적으로 피터와의 마지막 고별
무대를 함께 합니다.
결국 예술의 완성이란 완벽함의 합이 아닌,
불완전함을 조정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요.
감독은 이 부분이야말로 영화와 관객 사이에
조율이 필요한 포인트로 여기며 관객들
모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쉼없이 오랜시간 연주를 계속하며 악기들간에
서로 음정이 어긋나게 되는 것도 감수해야만
하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4번에 빗대어,
멤버 각자가 맞이하는 관계의 변화와 갈등을
통해 빚어지는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과
하모니의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 마지막
4중주 >.
영화는 사뭇 집요하게 묻습니다.
'우리는 관계의 지속을 위해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야론 질버만 감독은 답합니다.
"오랜 세월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
사이에는 복잡한 갈등과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인 바,
그 불협화음조차 인생의 한 악장으로 품어내
매일 매일 끊임없이 조율해가며 인생의
새로운 악장을 연주해야 하죠."
데이빗 린치 감독의 알터 에고라 불리우는
음악감독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OST는,
명품 배우들이 빚어낸 '오묘한 조화와 감동의
앙상블' < 마지막 4중주 > 를 아름답게
수놓으며,
인생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은 클래식 음악의
향기에 빠져들게 해줍니다.
1. < 마지막 4중주 - A Late Quaret > 예고편
https://tv.kakao.com/v/v617aqmQ2yYLyqrN28NcNNY@my
인간이 만들어낸 음악 형식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는 '현악4중주(String Quartet)'.
‘바이얼린 2대, 비올라, 첼로’ 로 연주되는
음악인 현악4중주는 실내악의 꽃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말로 다가옵니다.
독일의 문호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이 '현악4중주' 에 대해 명쾌하게 결론지었죠.
"모든 기악곡 중에서 가장 잘 이해가 되는
현악4중주는 4명의 賢者(현자)들이 나누는
대화로 들려온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1783~1842) 또한
1854년 출판된 <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메타스타시오 > 라는 전기에서 현악4중주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죠.
" 제1바이얼린은 중년의 재치 넘치는 신사로
언제나 화제를 제공하고 대화를 이끈다.
한편 제2바이얼린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추켜세우는 부드러운 신사의 모습이며,
비올라는 수다스럽고 활기찬 여성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첼로는 매우 학식이 높고 격언을 잘 쓰는
점잖은 신사로, 간결한 격언으로 화제를
마무리 하곤 한다."
영화 < 마지막 4중주 > 속 푸가 콰르텟
멤버들의 캐릭터와 어쩜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지요.
2.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14번 c#단조 Op.131
- 야스퍼 콰르텟
https://youtu.be/a7wk0M125JM
영화 < 마지막 4중주 > 는 뉴욕을 배경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유서깊은 공연장
그레이스 레이니 로저스 오디토리움(Grace
Rainey Rogers Auditorium)를 비롯,
'프릭컬렉션', '소더비', '센트럴파크' 등
세계적인 명소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 중간 어느 어린이의 천진스런 표정과
목소리로 읊어지는 '노인'(Old Men) 이라는
시...
처음에는 '어린 아이가 어쩜 저렇게 철학적인
말을 할까' 하며 의아해했는데,
화면이동으로 보여지는 지하철 객차 벽면에
쓰여진 싯구였지요.
'Old Men'
- Frederic Ogden Nash (1902-1971)
'People expect old men to die.
They do not really mourn old men.
Old men are different.
People look at them with eyes
that wonder when...
People watch with unshocked eyes;
But the old men know when an old men
dies.'
'사람들은 노인이 죽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들은 노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지 않는다.
노인들은 사람들에게 타인이다.
그들은 언제 죽나...하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흥미없는 눈으로 바라 볼 뿐;
하지만 노인들은 자기가 죽을 때를 안다.'
- https://youtu.be/0liCVnNm4n8
: 그림 파울 쿨레의 '일출녁의 성'
베토벤이 세상을 뜨기 불과 1년 전인
1826년에 작곡된 현악 사중주 14번은
어쩌면 음악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개성적인 작품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중기 현악4중주 작품' 이후
10여 년이 넘는 오랜 공백 끝에 베토벤이
현악사중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긴 후,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며 그때까지의
현악사중주 전통을 통합하면서도 전복과
일탈을 통해 쌓아 올렸던 후기 현악사중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작품은 마치 바흐의 'B단조 미사' 나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주피터' 가
그러하듯이,
서양음악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새롭고도
다채로운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후기 현악사중주에서 통상적인 4악장 구조를
계속 확장시켰던 베토벤은,
이 14번 c# 단조에 이르러 7개의 악장까지
도달했으며 이들을 모두 중단없이 연결되게
했지요.
또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마지막 악장을
제외한 다른 악장에서는 고전적인 구조를
포기하고 서로 비슷한 리듬과 음형으로
이어지게 했으며,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이 주제를 공유케
함으로써 순환적인 구조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언뜻 유사하게 보이는
악장들은 각자 고유의 다채롭고도 깊은
감정을 품고 있어서,
마치 작곡가의 내면을 따라 환희의 즐거움과
슬픔의 고통을 오가는 긴 여행을 하는 듯
여겨지지요.
3. 코른골트의 오페라 < 죽음의 도시 - Die
Tote Stadt > 1막 중 '마리에타의 노래'
: 'Glück, das mir verblieb'
-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https://youtu.be/BEUbD8KTfxQ
https://youtu.be/xGelgnzg2Dw
'Glück, das mir verblieb,
rück zu mir, mein treues Lieb.
Abend sinkt im Hag bist mir Licht
und Tag.
Bange pochet Herz an Herz
Hoffnung schwingt sich
himmelwärts.
Wie wahr, ein traurig Lied.
Das Lied vom treuen Lieb,
das sterben muss.
Ich kenne das Lied.
Ich hört es oft in jungen,
in schöneren Tagen
Es hat noch eine Strophe
weiß ich sie noch?
Naht auch Sorge trüb,
rück zu mir,
mein treues Lieb.
Neig dein blaß Gesicht
Sterben trennt uns nicht.
Mußt du einmal
von mir gehn,
glaub, es gibt ein Auferstehn.'
'그대 내게 남겨진 행복이여,
어둠이 내려앉는 이 숲속에서
나를 끌어 내주오
진실한 나의 사랑이여.
당신은 나의 빛이며 또한 생명이니
내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리고
희망은 천국을 향해 날아가버립니다.
진실로 슬픈 노래는 단지 죽을 뿐
사라지지 않는 진실한 사랑의
노래이며,
행복했던 지난 날
난 이미 그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에 숨겨진 또 다른 사랑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둠을 뚫고 슬픔이 다가오면
아직도 날 끌어 안은 사랑이여
당신의 창백한 뺨을
엎드려 내게 기대어 주십시요.
죽음도 우릴 갈라놓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어느날 당신이
내게서 떠나야만 한다면
그때는 믿으십시요,
죽음은 단지 부활일 뿐이라고.'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를
전세계에 기억하게 만든 아리아 '마리에타의
노래' 이죠.
죽은 아내 마리를 그리다 못해 거의 폐인이
된 홀아비 파울.
그가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데다 이름까지
비슷한 여인 '마리에타' 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 오페라는,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며,
수려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유명한
코른골트의 대표작입니다.
현재 가장 널리 상연되는 20세기 오페라 중
하나인 이 < 죽음의 도시 > 는,
상징주의적인 대본 내용과 걸맞게 서정적인
에피소드, 살롱풍의 로망스, 이탈리아풍의
아리아 등 다양한 요소의 콜라쥬를 활용하고
있죠.
하여, 마치 마약과도 같은 효과를 자아내는...
창백하고 푸르죽죽한 잿빛 조명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음산한 세기말적 분위기를 절묘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 李 忠 植 -
첫댓글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 c# 단조 Op.131
- 야스퍼 4중주단
https://youtu.be/a7wk0M125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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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파울 쿨레 '일출녘의 성'
https://youtu.be/0liCVnNm4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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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마지막 4중주 - A Late Quartet >
예고편
https://tv.kakao.com/v/5135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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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른골트의 오페라 < 죽음의 도시 >
'마리에타의 노래'(Marietta's Lied)
-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https://youtu.be/BEUbD8KTf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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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마지막 4중주 > 에서 피터의 아내
미리암 역으로 깜짝 출연한 스웨덴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
그녀의 고혹적인 음성으로 '마리에타의
노래' 를 들어야 하겠지만... 너무 아쉽게도
동영상이 삭제되었습니다.
대신 르네 플레밍과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를 비롯한 유명 소프라노의
노래와,
니콜라 베네디티의 바이올린, 그리고 티네 팅
헬스의 트럼펫 연주로 감상해보세요.
* 코른골트 오페라 < 죽음의 도시 - Die tote
Stadt > 속 마리에타의 노래 'Glück das mir
verblieb'
-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 앤드류 데이비스 지휘 시카고 리릭 오페라,
2014
https://youtu.be/lOuC6pO5E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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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 뮌헨 오데온스 플라츠 BR 클래식 2019
https://youtu.be/ErdxbjzOF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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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라노 올레나 토카르
https://youtu.be/NJidnjEBw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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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라노 마리아 클라크
: 루드비히 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youtu.be/ys-eeU6UV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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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네 팅 헬스(Tine Thing Helseth)의
트럼펫 : 앨범 'Storyteller'(2011)
https://youtu.be/yVk88i1-6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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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 빌헬름 쉬처 지휘 함부르크 방송 교향악단
https://youtu.be/ZoGQd1dsA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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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 베네디티 바이올린
키릴 카라비츠 지휘 부르네마우스 심포니
: BBC Proms 2015
https://youtu.be/WX1YD5syw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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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
프란츠 벨저 뫼제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1995)
https://youtu.be/x0EmGNqON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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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4중주 > 는 독주와 합주, 개성과 조화,
자존심과 양보 등 다양한 성찰의 주제를 건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매력은 스토리 라인 자체보다는
음악계 내부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디테일의
섬세함에 있지요.
공연 일정을 챙기기 위해 로버트가 전화를 받는
영화 초반부에서 수화기 너머로 보이는
'푸가 4중주단' 의 공연 포스터 부터가
그러합니다.
포스터 속 카네기 홀이라는 공연 장소와
야나첵의 현악4중주 2번 '비밀편지' 라는
연주곡목까지 클래식 음악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지요.
수첩에 빽빽하게 적혀진, 푸가 4중주단의
지난 24년간 3,000 회에 이르는 세계
연주 투어 커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타임스' 의 예술 문화 섹션이나 음악잡지
'그라모폰' 의 표지 사진을 활용한 시퀀스 또한
생생하기 그지 없지요.
제2차 세계대전 10부작 미니시리즈
< 밴드 오브 브러더스 - Band Of Brothers >
제9편 '전쟁의 이유'...
드라마는 베토벤 현악4중주 제14번 c# 단조,
6악장의 처연한 선율과 함께 그 막을 열어가죠.
전쟁의 참혹한 페허 더미 위에서 연주되는
6악장의 엘레지 풍의 비감미는 자못 숙연하게
울려옵니다.
이 6악장은 강렬한 7악장을 연결해주는
간주곡 격의 짧은 곡이지만 깊은 서정미의
에스프리를 담고 있죠.
미군 제101 공수사단 506연대 소속 '이지
중대' 병사들은 복구 현장을 보며 얘기를
나눕니다.
"독일놈들은 정리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구만.
모차르트만 들려주면 말야."
닉슨 대위는 정정해주지요.
"아니야, 베토벤일세."
"네?"
"베토벤이라고!"
그러곤 그는 히틀러가 베를린에서 자살했다고
알려줍니다.
"3년 전에 자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게 말야, 근데 안 했어..."
https://youtu.be/GwQ8vaziT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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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마지막 4중주> 는 직접 나무를 깎아서
활대를 만들고 활에 사용할 말총을 고르러 다니는
대니얼의 모습을 통해,
제1바이올린의 덕목은 무엇보다 소리에 대한
집중과 몰입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지요.
반면 제2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는 하룻밤
풋사랑을 나눈 뒤 분신과도 같은 바이올린을
그만 호탤에 놓아둔 채 허둥지둥 나오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음대 재학 시절 로버트는 실내악보다는
현대음악 작곡에 더 끌렸지만,
줄리엣을 향한 사랑때문에 푸가 4중주단에
남은 경우였지요.
로버트는 창단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을 암보로 연주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대니얼은 '작곡가가 악보에 표기한 지시를
충실하게 구현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 이라며
반대하지요.
이렇듯 도전적인 공격수 격의 로버트와 보수적인
수비수 격의 대니얼은 장중 내내 서로 주연
다툼을 벌이는... 갈등을 빚습니다.
주먹다짐 조차도 다분히 음악적(?)인 제스처로
말이죠.
삶은 음악처럼 완성된 악보나 예정된 종결부가
존재하지 않지요.
하지만 삶이든 음악이든 쉼 없이 달리다 보면
팽팽했던 긴장은 풀어진 채 잡음이나 균열로
삐걱거리게 마련입니다.
'불협화음 속의 부조화' 가 불가피한 게죠.
그럼에도 삶의 완주(完走)든 음악의 완주(完奏)든
종착점에 다다르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달려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영화 결말의 묵직한 울림은 인생의 후반기와
음악의 후기작품을 서로 포개놓는 데서
빚어지는 미려한 하모니와도 같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