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코쿠를 다녀와서/ 전 성훈
3월 하순에 도봉문화원 일본어 공부 모임에서 일본 시코쿠 지역 여행을 다녀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알지만 초보 수준의 나는 아내와 상의한 끝에 합류 하였다. 일본 땅을 처음 밟은 것은 2006년 6월이었다. 직장을 나가는 아내를 제외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큰 동생부부, 둘째 동생과 함께 큐슈지역 구마모토와 벳푸를 구경하였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를 통해서 간 것 아니라 자유여행이었다. 일행의 리더가 사전에 항공편과 숙박 그리고 찾아갈 장소를 정하고 예약이 가능한 곳은 모두 예약하였다. 8박9일간 16명의 인원이 함께 움직였다. 여행 중 일본의 유명한 신칸센을 제외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하였다. 한 칸짜리 ‘노면 전차’, 시내버스, 마을버스, 외곽순환번스, JR시코쿠특급열차, 고속 페리에 유람선까지 탔다.
3월 20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아시아나 비행기는 약 1 시간 20분 정도 걸려서 시코쿠 카가와현 타카마츠 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일본 관리들은 친절했지만 외국인이라고 지문을 찍고 얼굴 사진을 찍는 것은 불쾌하였다. 시코쿠는 일본 열도에서 오키나와를 제외하고는 가장 작은 섬으로 네 개의 현으로 나누어져 있다. 타카마츠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 중앙공원 앞에서 하차하여 10여분 걸어가서 Dormy Inn Hotel에 짐을 풀었다. 비즈니스호텔인데 매우 깨끗하였고 배정된 싱글 룸에서 4박을 하였다. 호텔에서 늦은 저녁에 무료로 제공하는 간단한 우동을 맛있게 먹었다.
3월 21일(금) 흐림, 아침식사는 호텔 조식으로 따뜻한 우동, 유부초밥, 김초밥 그리고 튀김을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간혹 햇볕이 나기도 하였고 빗방울도 떨어졌다. 나오시마섬 관광을 위하여 약 한 시간 정도 Ferry를 타고 미야노무라항으로 갔다. 배 삯은 970엔. 미야노무라항에 도착하여 호박모형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형상화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地中博物館이란 곳을 구경하였는데 입장료 2000엔은 비싸게 느껴졌다. 조형모형의 건축기술과 빛의 채광을 이용한 시각의 착시 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문화와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조그만 공간을 이용하여 조형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일본 장인 정신은 대단하다. 작품 관리를 위하여 입장객의 숫자와 시간을 조절하고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갈아 신게 하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선박의 출발까지 시간이 남아서 근처 시골 마을 구경에 나섰다. 간혹 폐가도 눈이 띄었고 문패에 남편 이름은 크게 적고 아내의 이름은 작게 적혀있는 것도 보았다. 지방도시 촌락의 한가한 모습을 보면서 피상적으로 일본인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3월 22일(토) 흐림, 오전에 린쓰린공원(栗林)을 방문. 일본 특유의 정원을 조성하고 인공호수를 만들고 분재를 가꾸었다. 일찍이 이어령 선생이 일본인을 ‘축소지향형 인간’이라고 갈파한 말씀이 생각났다. 분재로 쓰이는 수많은 소나무의 모습에서 老子의 우화가 떠올랐다. ‘똑바르게 자란 나무와 등이 굽은 나무’, ‘알을 낳는 거위와 알을 못 낳는 거위’의 예화는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끝임 없는 욕심의 산물임을 알았다. 린쓰린 공원을 나와 카와라마치역에서 두 칸 열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고토히라 궁’에 갔다. 이곳은 바다의 신 ‘시누키 곤피라’를 모시고 있는 곳인데 계단이 1368개로 왕복 2700개가 넘었다. 시코구 지방의 유명한 우동을 먹었는데 맛도 별로이고 서빙하는 점원들의 태도가 친절하기로 유명한 일본인의 태도와 너무 달라서 놀랐다. 시코쿠 섬 전역 1200km에 88개 사찰을 순례하는 순례자 ‘오핸로’상에게 ‘오셋타이’로 400엔을 건넸다. 걸어서 성지 순례에 나서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용기를 가진 분들이다.
3월 23일(일) 흐림, 호텔에서 걸어서 JR도쿠시마역으로 이동하여 JR도쿠시마역에서 우즈시오행 특급열차를 한 시간 정도 탔다. 이 지역이 벚꽃이 만발할 것이라는 사전 예보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때문에 만발한 벚꽃은 볼 수 없었다. 토쿠시마 성터를 구경하고 우리나라 서울 북촌 같은 전통적인 거리인 우다츠거리로 갔다. 대나무가 많이 있는 뚝 길을 3km 정도 걸었다.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불었고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은 비취색을 띠고 있는데 너무나 맑아서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듯 하였다.
3월 24일(월) 흐림, 카와라마치역에서 아시마역까지 두 칸짜리 열차로 이동하여 고토텐야시마역에서 내렸다. 옛날 산 속에서 살고 있던 전통 가옥들의 모습과 나무와 밧줄로 만든 징검다리를 건너 대나무 숲을 지났는데 볼거리가 많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멋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오후에 카가와현에서 올 시코쿠 레일패스를 이용하여 코치현으로 이동하였다. 고치에 도착하여 니시테츠인 고치 호텔에 머물렀다. 숙소 근처의 히로매 시장(야시장)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하였으나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자리를 잡기도 힘들었고 담배 냄새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근처를 배회하다가 적당한 스시 집을 발견하여 미즈와리 소주 한잔을 걸치면서 저녁을 먹었다.
3월 25일(화) 흐림, 니시테츠인 호텔 조식으로 우동 대신 볶은 밥을 먹었다. 한 칸짜리 노면 전차를 타고 고치성역으로 이동하여 고치성곽 주변 및 성루까지 올라가 전경을 구경하였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MY遊버스를 이용하였는데 외국인에게 할인해 주는 일본식의 가치관은 배울 점이다. 버스를 타고 五臺山 전망대로 이동하여 전망대 음식점에서 요상한 음식을 먹었다. 카레 밥 위에 치즈를 깔아서 얹고 뜨겁게 한 것이었다. 맛은 잘 모르겠고 배가 고파서 그냥 먹었다. 시코쿠 순례의 31번째 사찰인 오대산 전망대 옆의 지쿠린지(죽림사)로 향했다. 사찰과 일본의 신사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 일본인의 신앙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일본인처럼 토속신앙이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절을 둘러보고 옆에 있는 ‘마키노 식물원’을 구경하였다. 고치현은 일본 근대화 역사에 한 획을 제공한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으로 이 곳에서는 ‘사카모토 료마’를 숭배하면서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3월 26일(수) 비, 새벽부터 내린 비가 온 종일 내렸다. 비염 알레르기가 재발하고 재채기도 심하였다. 남부특급열차를 타고 오보케역에서 하차하여 요괴촌을 구경하였다. 섬나라 사람들에게는 옛날부터 요괴에 대한 전설이 무궁무진 한 것 같다. 오보케협곡의 초라한 유람선을 타고 협곡을 바라보니, 2억5천만 년 전에 생성된 협곡은 장대하고 물 색깔은 완연한 쪽빛이었다. 오리부부 몇 쌍과 잉어가 유려한 동작으로 놀고 있었다. 오후에 이야계곡 카즈라바시 넝쿨다리를 건넜는데 입장료가 터무니없이 비싼 500엔이다. 안개가 끼고 비는 내리지만 기분은 좋았다. 대관령 고개 길 같은 곳을 버스로 굽이굽이 넘고 넘어서 간이역 (오보케역)에서 JR열차를 타고 고치역에 도착하였다. 일행과 헤어져서 저녁 식사는 혼자서 하였다. 쏟아지는 비에 우산을 쓰고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이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 식사를 하였던 집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어느 골목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일본의 치안이 불안하지 않기에 몇 번씩이나 골목을 헤집고 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 하였다. 다행히 그제께 갔던 스시 집은 길거리 모퉁이에 있어 쉽게 찾았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음식점에 들어가서 스시와 소주를 주문하였다. 메뉴에 있는 소주를 그냥 찍었는데 정말 제대로 골랐다. 토쿠리에 따뜻하게 데운 ‘사케’로 정확히 석 잔 이었다.
3월 27일(목) 맑음, 이시테츠 인 호텔 CHECK OUT. 전차로 고치역으로, 고치역에서 JR南風특급을 타고 다도츠역에서 이시즈치 특급으로 갈아탔다. 시코쿠 남부 해안선을 끼고서 북부로 가는 열차로 오후 1시 20분경에 마지막 목적지인 에히메현 마츠야마역에 도착하였다. 국철회사가 민영화되어 열차마다 색갈이 다르고 내부 장식도 다른 것 같다. 노면전차를 이용하여 도고온천역에 도착하여 료칸에 CHECK IN. 마츠야마城을 구경하려고 ROPEWAY LIFT를 탄 다음에 걸어서 마스야마城 天守閣까지 올라갔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저녁은 료칸 각 방에서 무릎을 끊고 앉아서 서빙해주는 풍습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일행만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음식 맛이 아주 좋았다. 여행을 한 곳이 일본의 지방도시이고 시골이라서 대도시 아닌 곳의 일본인들의 생활에 관심을 두었다. 어느 곳이나 길거리가 깨끗했다. 줄을 서거나 차례를 잘 지키는 모습, 타인에 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태도, 전차나 버스 안에서 이야기할 때도 옆 사람과 소곤소곤 말하는 모습, 운행 중인 승용차의 대부분이 소형 이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들은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헬멧을 쓰고 고급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 저렴한 가격의 자전거가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한편 젊은이들은 우리처럼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고, 간혹 광광지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도 있었고 걸인도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도 실감하였다.
여행의 묘미는 눈요기와 입맛의 즐거움인데 눈요기는 그런대로 하였지만 향토 음식을 많이 맛 볼 기회가 없었다. 많은 일행과 둘러보아야 할 곳이 많아 일정이 조금 빠듯한 탓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곳의 유명한 ‘우동’은 먹어보았다. 비오는 날 저녁에 혼자서 ‘스시’집을 찾아 나선 것은 용기도 있었지만 일본의 치안에 대한 믿음이 있어 가능하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 종군 위안부, 독도문제로 우리나라에 대한 도발이 심해졌다. 그 결과 양국 간에 긴장이 고조되어 있고 국민들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간의 문제를 떠나서 국민 개개인, 체육, 학문 등 문화적인 분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여 더욱 더 가까이 사귀어야 할 이웃나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에 대한 인상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좋았고 배울 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건이 허락되면 일본으로 여행을 또 가고 싶다. (2014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