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완 / 비상飛翔 외 4편 / ≪한강문학≫ 36호 신작 詩

[이혜경]

◀ 이상완

전남 고흥 출생(1945), 수필가, 서울대 언어학과 졸(1974),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원 수료, 아랍어 및 고대 이집트문화사 전공(1977∼1979), 미국 죠지타운 대학원 졸(이슬람문학 및 중동관계 전공)(1984∼1986), 주이집트, 주리비아, 주미대사관 및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근무(20년),바로영어전문학원 경영(서울：1992∼2012), 《한강문학》(2020) 추대등단, 한강문학 편집위원

저서：《사하라》(김영사, 1987), 현)향토사연구 및 SNS 블로거, 발표작품：〈조선시대 천재 이야기꾼－어우당 유몽인〉, 〈오리정에 묻힌 슬픈 로맨스－화가 나혜석 이야기〉, 〈한국 미술계큰 별이 지다－화가 천경자 이야기〉 외

비상飛翔    

                         이 상 완

살다가 살다가 보면
잡 생각도 날줄 되더이다
살다가 살다가 보면
헛 생각도 씨줄이 되더이다
요놈들 얼기설기 얽히더니
그저 누에 고추되어
한줌의 욕심을 잉태하더이다

번데기 굴 속에 갇힌 욕심
그래도 차마 차마 욕심 출산시켜
언젠가 나비되어 비상할 꿈 꾸더이다

아서라 말아라 서툰 비상의 꿈
욕심이 남긴 죽음 껍질이여
언젠가 비단 날개 달아매고
누에 고추 굴 벗어난들
또다시 더 큰 욕심만 꿈꾸는
번데기로 되더이다.

유월六月

유월은 잔인한 폭군
녹의綠衣 입고 마중 나온
무력無力한 신민臣民들을 보라
새벽부터 가로수는 친위병을 선다

유월은 잔인한 폭군
사하라 열풍熱風을 몰고 오는
군력의 화신化神을 보라
몰아대는 채찍에
하늘은 갈기갈기 찢기우고
유월의 핏기 오른 발굽아래
모란은 절규한다

너도 나도
녹의 입은 신민들
모란의 절규 속에 죽음을 헐떡인다
어느 누구 돌맹이 한 개
집어 든 자도 없다

너도 나도
유월의 오만한 폭력 아래
녹의 입은 신민들다만 생중사生中死를 지속할 뿐.

하얀 파도

푸른 얼굴과 하얀 웃음이
서로 으스러지게 포옹을 한다

구경하고 있는 나도
하얀 쇄파碎波 속에 빠져들면
갑자기 비인 조개껍질이 되어 버린다

파도가 어둠 속에서 노래를 한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다고
삶이란 채웠다 비우는 것이라고

파도는 하얗게도 외쳐준다
하얗게 살거라 하얗게 죽거라

너도 산산이 부셔져 봐
너도 깡그리 속 비워 봐
그럼 하얀 웃음 웃을꺼야
이렇게 하 하 하
하얀 웃음을.

한강 밤안개

밤안개 낮은 포복으로
한강 물길 위를 기어간다

그 물결은 지난 여름 폭우의 넋인가
그것들은 심심한 하나로의 엉김새

밤안개는 페르샤 먼 나라에서 온 옛 왕자인가
밤 어둠은 요술 할멈에 쫓겨난
엣 공주인가
왕자는 백마 타고 어둠 속 공주 찾아
밤안개 한강 속으로 달린다

새소리 끊긴지 오래이고
밤안개도 이미 포복을 멈추었다
한강 물결과 포옹하며 꿈에 젖는다

예까지 이른 우여곡절
간 곳이 없는데
밤안개 영기靈氣 속에
난 암묵 속에 화석화 되어간다

아,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지금 어디서 내 마음
오색 실로 뜨개질만 하느뇨.

봄아, 너 미쳤지

봄아 너 미쳤지
봄아 너 바람났지
그제는 옆집 복순이 얼굴 살랑 만지더니
어제는 복순 입술 아예 마구 문지르네

봄아 너 미쳤지
봄아 너 진정 바람났지
오늘 아침 이웃 복순이
가슴 마구 더듬더니
오늘 오후 복순이 분홍치마
마구 치켜 올려버리네

봄이 너 정말 미쳤구나
봄아 너 바람났구나
왜 빨간 꽃으로
어제는 복순이 눈 멀게하고
왜 짙은 꽃향으로
오늘 아침 복순이 숨 멈추게 하더니
오늘 밤은 복순이 맘 몽월시켜 버리니

봄아 넌 바람난 시녀들 시켜
왜 발광체 타양마저도
낮 등불로 켜고 다니게 하나

봄아 넌 분명 미쳤어
봄아 넌 진정 바람난거야

네가 바람나면 복순이도 바람나고
구경하던 시인도 봄바람 난단다.

* 서울 구의공윈 봄맞이 산책에서(2023.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