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범람하는 각종 생활카드 엿보기
북경은 어제 오후부터 갑작스레 불어 닥친 황사먼지를 동반한 5~6급의 강풍으로 하늘이 뿌옇게 흐려졌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다시 화창하게 개었습니다. 이상 기온 때문인지, 매년 초 봄 무렵부터 시작되던 황사 현상이 올해에는 조금 앞당겨 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어제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온 미세한 먼지들을 닦아내고 집안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잡동사니들을 정리도 할 겸, 대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책상 위와 전화기 옆에 널려있던 각종 영수증, 명함, 카드들을 정리하다, 문득 북경에서 생활하는 데에 사용되는 각종 생활카드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답니다.
몇 년 전 핸드폰을 장만하기 전에 한창 많이 사용하던 공중전화 카드는 물론, 논문 자료 구입을 위해 자주 드나들던 서점의 도서할인 카드,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가스를 구입하기 위해 충전을 해야 하는 기능 카드, 게다가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북경의 대중교통 카드 등등... 그야말로 먹고, 자고, 입고, 돌아다니면서 생활하는 데에 카드가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북경의 생활에서 “카드”는 이제 빠져서는 안 될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등장했답니다. 게다가 각종 카드의 사용으로 인해 북경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물론 생활습관까지도 다각도로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사실, 북경에서 “카드(卡)”가 등장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카드는 절약 차원에서 종이 형태의 표(票)를 대체하여 사용되던 도구였을 뿐, 그다지 활성화되지는 못하였답니다. 그러다 1995년에 처음으로 “카드족(有卡族)”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고, 점차 각양각색의 카드가 활성화되면서 2002년부터는 급기야 “카드시대(卡時代)”가 도래하게 됩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현재 북경 일반 사람들의 지갑 속에는 평균 네 개 이상의 카드가 꽂혀있으며, 만약 100위안(약 1만 3천원)의 소비가 행해진다면 그 중에서 평균 35위안(약 4,500원) 이상은 카드를 사용하여 소비한 금액이라고 합니다. 은행의 현금이나 신용카드, 백화점이나 상점의 쇼핑카드, 헬스장이나 수영장의 회원카드, 회사나 학교의 식당카드, 교통카드, 도서카드 등등... 카드를 소지하지 않으면 하루라도 바깥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북경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각종 카드와 단단히 결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비단 북경만의 현상은 아니겠지요.
사회가 점차 현대화 되어가면서 편리함과 안전 그리고 실용적인 면을 더욱 강조하다보니, 위험하고 휴대하기 불편한 현금보다 카드를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현금 대신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의 카드가 지갑 속을 채워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비밀번호나 사인 하나만으로 새로운 소비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드의 무분별한 사용에 따른 부작용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이미 많은 언론 매체의 소식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절실하게 느끼고 계시는 문제인지라, 오늘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북경의 각종 생활 카드들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참고로, 북경의 생활카드는 사용빈도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답니다.
첫째는, 북경 사람들의 지갑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인리앤카(銀聯卡 - 은행카드)”가 있습니다.
이 카드를 통해 사람들은 급여를 지급받고, 일상적인 소비를 한답니다. 현금자동지급기(ATM)가 있는 장소라면, 언제든지 현금을 찾을 수가 있지요.
둘째는, 북경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용카(信用卡 - 신용카드)”가 있습니다.
체면(面子)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는 카드랍니다. 그러고 보니, 이 카드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에서라도 신용한도 금액 내에서 “슈아카(刷卡 - 카드를 긁다)”라는 간단한 행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는 유혹이 마냥 달콤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분별한 카드 남용이 대체로 이러한 신용카드에서 비롯된다고 하니,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네요.
셋째는, 북경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각종 “후이위앤카(會員卡 - 회원카드)”가 있답니다.
백화점이나 상점의 쇼핑카드(購物卡), 미용실 등의 누계카드(積分卡), 음식점의 할인카드(打折卡), 헬스장이나 수영장의 VIP 카드(VIP卡) 등이 포함되는 이러한 카드들은 대체로 할인 혜택을 누릴 수가 있답니다.
넷째는, 북경 사람들의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주기 위해 등장한 각종 “꽁넝카(功能卡 - 기능카드)”가 있습니다. 각종 신분 카드(身分卡) 외에도 교통카드(交通卡), 전화카드(電話卡), 전기카드(電卡), 가스카드(煤氣卡), 상수도카드(水卡), 식당카드(餐卡) 등 생활과 밀접한 카드들이 포함되어 있지요. 일상생활에 있어 불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절감하고, 보다 정확한 소비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는 선호할 만하지만, 의외로 불편한 점이 많은 카드랍니다.
예를 들면, 은행에 가서 선불로 충전(充錢)을 해야 사용할 수 있는 전기나 가스 카드의 경우, 동일한 은행에서 업무를 하지 않고 각기 다른 지정된 은행으로 가야하므로 별도의 시간이나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하답니다. 게다가 만약 휴일이라도 겹치는 날 전기가 끊기기라도 한다면, 하루 종일 촛불을 켜고 원치 않는 낭만(?)을 즐겨야 한답니다.
이럴 때는 편리함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랍니다.
북경 시내의 어느 은행 앞에 설치된 “인리앤카(銀聯卡 - 은행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현금자동지급기(ATM) 랍니다.
북경의 일반 주택에 설치된 전기 사용 계량기(電表箱)입니다.
전기카드(電卡)를 들고 지정된 은행으로 가서 본인이 사용하고자 하는 양만큼의 전기를 선불로 사와야 합니다. 그리고 계량기에 카드를 꽂아 충전을 해야 합니다.
만약 충전된 전기를 거의 다 사용하게 되면, 며칠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남겨두고 빨간 경고등이 반짝이게 됩니다. 그러다 주의하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전기가 여차 없이 끊기게 됩니다.
최근 일반 가정집의 주방에 설치된 가스 사용 계량기(煤氣表箱)의 모습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가스카드(煤氣卡)를 꽂고 충전을 합니다.
북경의 대로변에 설치된 공중전화 부스입니다.
북경 시내에 모두 동일한 공중전화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전화기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전화카드를 사용해야 한답니다.
이미 몇 년 전의 일이지만, 당시에 핸드폰이 없던 우리 블로그 안주인은 자금성(紫禁城)을 방문했다가 급하게 전화를 사용할 일이 생겨, 가지고 다니던 전화카드를 이용하려다 실패하고 자금성(紫禁城) 전용 공중전화 카드를 새로 구입했던 경험이 있답니다.
물론, 최근에는 개개인이 거의 핸드폰을 소지하고 다닐 정도로 이동 통신 수단이 점차 대중화되어, 길거리의 공중전화 역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카드의 종류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현재 저희 블로그 부부가 소속되어 있는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의 “카드 하나로(一卡通)”라는 학생 전용카드(校園卡)입니다. 학교 식당에서의 식사는 물론, 도서관의 도서 대여까지 모두 한 장의 카드로 해결이 된다고 합니다.
둘째는, 저희 블로그 부부가 10년 전에 석사과정으로 유학하던 당시 북경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의 식당 카드(餐卡)입니다.
다음은, 북경 시내의 서점 두 곳에서 만들어준 독자카드(書友卡)입니다.
물론 책을 구입할 시에 많게는 20%에서 적게는 10%까지 할인을 해준답니다.
카드의 뒷면에는 카드 소지인(持卡人)의 주의사항 등이 적혀 있네요.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가스카드(煤氣卡), 전기카드(電卡), 핸드폰 충전카드(充値卡), 교통카드(交通卡)가 있네요.
참고로, 중국에서 핸드폰을 사용할 시에는 대체로 두 종류의 지불 방식이 있답니다.
하나는 정액카드를 구입해서 충전을 한 후에 사용하는 선불방식이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본요금을 바탕으로 사용하는 양만큼 나중에 지불하는 후불방식이 있지요. 물론 한 달 동안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월정액제(包月)”라는 지불 방식도 있답니다.
생활 카드의 특성답게 뒷면에는 주로 사용방법 등이 적혀 있네요.
역시 왼쪽 위에서부터 발마사지 카드(足療卡), 헬스카드(健身卡), 약국의 우대카드(優惠卡), 병원의 진료카드(就診卡)가 있네요.
카드의 뒷면에는 사용 횟수와 유효기간, 우대 내용 등이 적혀 있네요.
왼쪽 위에는 몇 년 전 북경의 어느 한국식 불고기 음식점의 개업식 날에 우연히 들렀다가 받게 된 VIP 고객카드(VIP金卡)가 있네요.
다음은 10년 전 북경의 자금성(紫禁城) 안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하기 위해 구입한 30위안 (약 3,900원) 정액의 IC 전화카드(電話卡)입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대형 할인마트의 회원카드(會員卡)와 세탁소의 할인카드(打折卡)가 있네요.
역시 카드의 뒷면에는 각종 주의사항들이 적혀 있는데, 자세히 보게 되지는 않네요.
위에서 소개해 드린 카드 외에도, 점차 다변화 되어가는 현대 생활에 맞게 더욱 다양한 카드들이 등장하고 있답니다.
예를 들면, (인구 억제 정책을 실행하는 중국 정부로부터 배급받는) 피임도구 자판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IC 카드, 공산당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 카드, 북경 올림픽을 주제로 만들어진 신용 카드, 학생들의 과외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학생 카드 등등...
한편, 카드가 점차 보편화 되어가면서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과 용도에 맞게 색상과 디자인도 점점 다양해지기 시작합니다. 12 띠에 해당하는 동물(生肖)의 그림이나 별자리가 그려진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자신의 띠 혹은 별자리에 맞게 선택할 수도 있는 “셩시아오카(生肖卡 - 12 띠가 그려진 카드)”와 “싱쭈오카(星座卡 - 별자리 카드)”도 있답니다. 그 외에도, 분위기 있는 동양화나 희귀한 사진들을 인쇄해 놓은 카드들은 수집광들의 새로운 수집대상이 되기도 한답니다.
중국에서는 무분별하게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두고 “카누(卡奴 - 카드의 노예)” 혹은 “카피(卡癖 - 카드 중독자)”라고 합니다. 반대로 합리적인 경제관념을 가지고 좀 더 계획성 있게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카션(卡神 - 카드의 신)”이라는 최상급의 칭호가 붙는 답니다.
그럼, 여러분은 “카드의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