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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4년글
생각보다 새로운 자극을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뭐, 길게 풀어쓰지는 못할 만큼 사소한 것들이라 갑자기 생각하려니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예전이었다면 극한의 안전성을 추구하며 무리에만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눈에 띄지 않는 모서리에 웅크려 있었겠지. 그러면서 약간의 관심을 받길 원하는 나는 지금 생각하면 좀 변태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동네에 있는 카페에 취직하게 됐다. 취직이라는 무게감에 맞지 않게 가벼운 주 이틀 근무지만 말이다. 오후 2:00부터 오후 9:00까지. 오픈은 1시에 하는데 한 시간 동안 사장님이 오픈 준비를 다 하시고, 2시에 나와 바톤터치하는 느낌이다. 나는 그저 중간중간마다 비워지는 재료들을 채우면 끝. 메뉴 중에 소금 커피와 다른 논 커피 위에 올라가는 크림이 떨어지면 다시 만드는 정도. 여긴 주말 장사라 평일엔 손님이 별로 없지만, 또 있을 때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없는 걸 대비해 크림을 조금만 치고 사장님이 퇴근하시는데 가끔가다 이어달리기처럼 주문하는 손님마다 크림이 올라가는 메뉴를 시키실 때가 있다. 그러면 크림이 다 떨어지지 않을지 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문을 받는다. 예전에 첫 직장에서 일했던 것보다 주어진 일들이 가벼워 부담 없이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목, 금 같은 경우엔 거의 하루 종일 카페를 지키는 지킴이로 살아가고 다른 날에는 책을 읽으며 살아간다.
예전에 나는 정말로 욕심이 나는 것을 숨겨왔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게 욕심을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욕심이 나는 것은 관심 없는 척 가벼운 말들로 흘려보내기 바빴고, 시간이 지나 후회한다. 그런 나에게 있어 욕심을 내서라도 이어가고 싶은 것이 생겼다. 아직 많은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어떤 분야로 할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로꼴을 수료하고 그 뒤부터 쭉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을 했으니 조금 된 것 같다. 예전엔 일단 무작정 100권을 읽고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나 단편소설을 써 공모전에 넣었지만 잘되진 않았다. 당연하지, 책을 의무적으로만 읽던 애가 갑자기 책 몇십 권 읽었다고 휘황찬란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건 불가능하니까.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느꼈다. 와, 난 아직 부화도 못 한 병아리라는 걸. 그래도 두 발로 잘 걷는 병아리 정도는 되겠거니 했지만, 글을 쓰면서 난 그냥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알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자 꽤 충격적이었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18살 때였다.
난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 특별한 속에 소수자들만이 만들 수 있는 단어와 가치들을 있어 보이려 가득 집어넣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고 있어 보이는 것만 집어넣게 된다면,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든, 내부에서 오는 자극이든, 작은 자극이라도 받게 된다면 한순간 터져버린다. 순간 아무도 없지만 정말 부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있어 보이는 말 속에서 가도 되나, 너무 무서운데 만은 반복하며 나태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훤히 보이게 돼서 말이다.
생각보다 내 마음은 약해서 하나 관심 있는 것을 하다 무언가에 의해 실패를 겪었다면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지만 뭔가 사람들한테 한심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욕심나는 것을 숨겼던 것인가 생각이 든다. 내가 있던 세계는 한없이 작은 세계였고, 나만 혼자 만족해 봤자 세상에 나왔을 땐 그저 한없이 사람들한테 밟혀 찢어져 버릴 실력이었다. 지식과 지혜도 아무것도 없는 나는, 로꼴에서 슬아가 칭찬해 준 말들을 상기시키며 하찮은 자존심으로라도 계속 이어 나가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정말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구나, 진심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어렸을 때 꿈을 너무 많이 꿔서 이젠 생각하는 것조차 지친다고 했던 말 속에서, 한편으로는 꿈을 위해 열심히 갈고 닦는 애들을 보며 부럽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진심으로 욕심을 부려보고 싶은 것이 생겨났고, 욕심을 부린다는 걸 보여준다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한 내가 인정하고, 꺼내 들려는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목표를 세운다. 지금 내가 현재 놓인 상황.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 그 방법들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 계속해서 생각하며 나를 자극한다. 올해 200권 읽기. 책을 읽으면서 흡수하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을 읽으려고 봤을 때, 조금은 달려졌다. 예전엔 이런 아이디어 괜찮은데? 라는 생각으로 혼자 실실 웃다가 우연히 내가 생각했던 아이디어는 소설에서 몇백 번 사용됐던 아이디어라는 걸 알게 되고, 내가 너무 책이 많이 나온 시대에 태어났다며 욕을 뱉었다면, 지금은 그 모든 책이 내가 흡수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이만큼이나 된다는 것. 생각보다 더 두근거린다.
김초엽 작가의 ‘책과 우연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읽고 있을 때였다. ‘그 무렵 다는 상상력과 지식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는 것이 없어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sf를 쓰겠다고 생각한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세계를 그럴싸하게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다보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대학시절 내내 배워서 그나마 익숙한 과학지식은 소설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에 불과했다. 대충 얼버무리려 해도 단 항 줄짜리 설명이라도 앞뒤가 맞지 않으면 독자에게 세계 전체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 정말이지 큰일이었다.’
판타지 소설을 쓰기 위해선 다양한 것들의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한테 없다는 걸 인정하고 배우고 자신의 무기로 삼는다. 그런 모습들을 담긴 책을 읽으니, 지금의 나와 겹쳐 보였다. 그래, 작가 이름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런 작가도 배우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는데 나도 할 수 있지라는 생각. 읽고 있던 ‘책과 우연들’을 페이지의 모서리가 살짝 구겨지게 힘주어 쥔다. 갑자기 두 손 가득 들어온 용기, 약한 나도 강해질 수 있단 용기에 한번 도 겪어본 적 없는 느낌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조금은 소중한 느낌이라 눈을 감고 생각한다. (울다가 웃지 마라, 지금 여긴 도서관, 이미 혼자 울었는데 웃으면 시선 집중) 겨우 마음을 달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가끔은 소설 쓰기를 낯선 여행지의 가이드가 되는 일에 비유한다. 나에게는 이 세계를 먼저 탐험하고 이곳이 지닌 매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출발 지점에서, 낯선 여행지는 아직 내게도 안개로 덮은 듯 뿌옇게 보인다. 그렇지만 안갯속에서 초고를 쓰고,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가져와 길목 구석구석을 점차 구체화하고, 또다시 쓰고 고치다 보면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공기의 냄새가 느껴지고 사각사각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온다. 시야가 점차 맑아지고 풍경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그 여행지의 풍경 속에 정말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아직 나에게 있어서 먼 이야기지만, 언젠가 나도 이 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단 다짐을 하며 다시 한번 나에게 용기를 준 구간을 반복해서 읽는다.
첫 직장에서는 많이 지친 상태였다. 공휴일을 제외한다 쳐도 주 오일동안 8시부터 출근해 3시까지 일을 한다는 것은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원래 8시 30분까지 출근 도장을 찍어 30분 동안 열심히 청소와 오늘 장사에 필요한 재료들을 만들어도 충분하지만, 그 사이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회사원분들 때문에 준비시간이 정말 부족하다. 처음엔 당황했다. 정식 오픈 시간은 9시로 표시되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들어오는 손님이라니….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직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 근데 버스 간격이 애매해 결국 일찍 출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8시에 문을 열게 됐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싸이고 싸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지친 상태였고, 조금의 쉼이 필요하다는 것들 느꼈다. 바로 그만두는 것은 사장님께도 피해가 가는 일이나 그만두기 한 달 전에 미리 말씀을 드리고 새로운 직원을 구한 다음 교육을 다 하고 깔끔하게 그만두었다.
아침 9시쯤에 일어나 두부와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산책하고 운동하고 밥을 먹고, 좋아하는 영화와 만화를 보다 보니 보름 정도 흘렀다. 하루에 한 권씩 읽었던 책은, 하루에 다섯 권 읽을 때도 있었고, 하루에 한두 권 정도 기본으로 읽게 됐다. 갑자기 연락이 왔다. 모르는 번호라 당연히 연락을 거절하고 만화를 보던 중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가 왔다.
“알바몬으로 지원해 주셨던 카페인데요, 시간 되실 때 연락하세요.”라는 말이었다.
잠깐 내가 이력서를 언제 넣었지. 아예 까먹고 있었다. 왐마. 알바를 구할 때 나에게 있어 별것 아니지만 완고한 규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관심 있어 하고 배우고 싶어 했던 것들로 구할 것. 절대로 내 몸을 망가트리는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 않을 것.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로 좁혀졌고, 카페에서도 체인점이 아닌 무조건 개인 카페에서 일을 한다는 규칙이다. 간간이 생각날 때마다 개인 카페에서 알바를 구하나 싶어 들어갔다가 나도 모르게 이력서를 넣었나 보다. 인터넷에 연락이 왔던 카페를 검색해 보니 음료 개수는 12잔 정도. 떡을 디저트로 파는 곳인데 이미 만들어진 거라 부담감은 없어 보였다. 주 이틀 알바라서 용돈벌이로 괜찮을 것 같아 면접을 잡게 됐다.
“아, 근데요. 제가 다음 주 목요일이랑 그리고 5월 둘째 주 통으로 가족 행사가 있어서 출근할 수가 없는 상태에요.”
면접 당일 이력서를 보면서 사장님은 내게 질문을 해왔고, 아무래도 첫 직장에서 1년간 일했던 게 꽤 내세울 만한 강점이 됐다. 하지만 사장님은 바로 다음 달부터 출근할 수 있는 알바생을 원하셨고 그때 나는 바로 취직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평일에 일정을 잡은 터라 꼭 사장님께 알려드려야 했다. 처음 면접하러 갈 땐 무조건 붙어야 한다는 강압적인 마음에 일단 할 수 있다고 내뱉고 봤는데, 지금은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날 잡든 안 잡든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면접을 봤다. 만약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나는 그 사장님과 함께 최선을 다해 그 카페에서 일을 할 거니 말이다. 면접을 보고 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에 아무런 연락이 없어 안 됐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바로 나올 수 없으니 그게 걸렸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만화나 실컷 봐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한 통의 연락이 왔다.
“네, 여기 카페인데요.”
“아, 네.”
“혹시 금요일에 교육받으러 올 수 있나요?”
“네, 가능해요.”
“네, 그럼, 그때 봬요.”
지금은 수요일. 내일 약속이 있는 상태였고, 그다음 날에 교육받으러 가야 한다. 오후 3시까지만 가면 돼서 오전에 보건증 검사까지 하기로 계획했다. ‘일단 사장님 만나면 근로계약서 얘기부터 꺼내야지.’ 와 ‘역시 경력직은 대단해.’라는 생각으로 통화에 방해될까 잠시 멈춰뒀던 만화를 다시 재생시킨다.
새로운 카페에서 한 교육은 처음 해보는 마감 정리와, 음료마다 쓰는 잔이 있다는 거에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긴 첫 직장에서는 그런 거와 상관없이 빠른 스피드만 있으면 되니 말이다. 아무리 우리가 예쁜 잔을 쓴다 한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테라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담배를 필 수 있는 그런 시스템만 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두 번째 직장은 정말 데이트하는 사람들과 일을 끝내고 친구들과 두런두런 얘기할 곳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낮에 오는 사람들은 아마 나와 같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인 걸까. 무턱대고 손님께 “왜 낮에 오셨어요?”라고 물어볼 순 없으니 그냥 뇌를 굴려 가며 나 혼자 추리하기 바쁘다.
지금 일하는 곳은 떡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 겸 다과점이다. 사장님이 새벽에 일어나 소량으로 만든 떡을 당일에 파는 카페이다. 사장님이 한번 맛을 보라며 썰어준 떡을 먹으니 정말 쫄깃하고 맛있는 떡이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던 떡은 로투스와 단호박 설기였다. 로투스는 현대물과 고전물이 만든 퓨전사극 같은 느낌이라 정말 잘해야만 성공할 것 같은데 다행히 성공한 맛이었다. 단호박은 개인적으로 단호박의 단맛과 특유의 향을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망설였지만, 은은한 향과 단맛에 가끔가다 그 은은한 맛이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카페 일을 하면서 가장 확실하게 눈에 띄는 거라면 역시 손님께 친근하게 말을 걸며 치고빠지는 기술을 익혔다. 첫 직장에서는 빨리빨리 그러면서도 단골손님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낯가림을 지우고 다가갔다. 눈은 여유롭게 웃고 입으로는 제발 끝내라는 듯 이빨에 힘을 준다. 덕분의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게 됐다. 지금은 스피드보단 분위기와 사진을 위해 오시는 분들이라 나 또한 최대한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음료보다 설기 종류가 더 많아 설기 주문을 하기 전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그럴 때마다 광범위한 범위를 조금 주릴 수 있게 하는 편이다.
“달달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로투스나 딸기 설기를 많이들 찾으시는 편이구요, 담백하고 기본적인 맛을 원하시는 분들은 흑임자나 꿀 설기를 많이들 찾으세요.”
내 얘기를 들으시는 분들은 달달한 걸 좋아한다면 로투스나 딸기를 포함한 과일 설기들로 범위가 줄었을 것이고, 담백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회심의 한마디!
“그럼, 단호박 설기 하나 주세요.”
“네, 단호박 설기 진짜 맛있어요.”
진실의 눈으로 손님을 보며 멋있는 선택을 했단 걸 전해준다. 부담스러워하는 분들껜 유감이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 말을 듣고 맑게 웃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띠신다.
마감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 초반에 실수도 있었다. 완벽하게 모든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돌아서 집으로 갔지만 에어컨을 안 끄고 왔다던가, 이번에 에어컨은 껐지만, 딸기를 갈 때 쓴 믹서기를 냉장고에 둔 상태로 왔다던가 뭐 그런 거 말이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의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사장님은 은근히 다가와 어제 어떤 걸 까먹고 안 하고 갔는데 이번엔 확인해달라고 조용히 부탁하신다.
친절하게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렸던 낯도 점차 사라지게 됐다. 이런 면을 보면 카페에서 일하는 걸 잘 선택했단 생각이 든다.
신메뉴가 나오면 레시피를 알기 위해 한 번 먹어보는 재미와, 너무 허기가 지면 사장님이 초반에 나에게 말했던 “배고프면 떡 먹어요~”라는 말을 잘 실천하며 카페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엔 직원은 나 빼고 아무도 없긴 하지만 뭔가 눈치가 보여 폰만 들고 와 2시부터 9까지 폰만 했다면, 시간이 지나 책을 가져오고, 그리고 아이패드를 가져와 글을 쓰고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카페를 가야지만 집중이 될 수 있는데, 음료값을 받지 않고 오랫동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평일엔 도서관에 간다. 월요일에는 도서관이 정기휴무라 집에서 만화만 주구장창보며 이번 주에 읽을 책들과 반납해야 할 책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하다 알게 된 것이 있는데 희망 도서 신청과, 상호대차라는 시스템이 있다는 거에 놀랐다. 가까운 도서관에 없었던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주는 시스템이라니 얼마나 똑똑한가! 희망 도서 신청은 수원에 있는 모든 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없다면 신청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희망 도서로 온 책을 신청한 사람이 우선권으로 빌릴 수 있다는 것! 그렇다는 건 아무도 읽지도 펼치지도 않은 책을, 내가 그토록 원하던 책을 내가 먼저 펼쳐 읽을 수 있다는 건 꽤 큰 감동으로 벅차오른다. 아쉬운 건 7권밖에 빌려지지 않아 한정적이라는 게 문제지만 밀이다. (아, 근데 이번에 도서관에 가니까 어떤 앱을 깔면 10권으로 늘려준다 길래 얼른 회원가입을 했다. 덕분에 난 10권까지 빌릴 수 있다!)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개인적인 일정이 없다면 늘 이런 생활을 하며 보낸다. 도서관에서 신청한 희망 도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인터넷에서 발견한 책을 검색해 보니,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 있다는 걸 알면 집 안에서 혼자 우두커니 서서 오두방정을 떨며 감사해하고, 목요일과 금요일에 출근해서 읽을 책을 더 진중하고 심오하게 고르고, 예약 한 책이 드럽게 늦게 온다고 전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반납을 안 하는 거냐며 욕을 하고, 두부와 산책하러 나가고, 운동을 하고, 퇴근한 엄마에게 비비적거리기 바쁘다.
사실 올해 고민을 크게 해 본 적이 없다. 예전에 계속 미리 걱정하다 막상 현실에 닥쳤을 때 “잉? 별로 아무렇지 않네?”라는 걸 너무 많이 느낀 걸까. 최대한 고민은 짧게. 지금 나에게 있어 필요할 것 같은 건 가지고 있다는 것인 걸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는지 계획하고 실행한다. 또한 지금 나에게 필요 없어 보이는 건 그냥 버려버린다. 지금 내가 필요한 걸 채우는 것도 바쁘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굳이 앞서 준비하면 뭐 하나. 계속해서 앞서 걱정하고 나중에 별거 아니라는 걸 반복하다가 내성이 새긴 걸까. 가끔 쓸데없는 고민이 깊게 파고들려 하면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는 없어진다는 마음으로 일단 저지른다.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한 번씩은 꼭 들었다. 글을 잘 쓰려면 쓰고 또 써야 한다. 그리고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말이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대학에서 글 쓰는 걸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겠지. 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지식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에 내가 들어왔다고 해도, 앉아만 있으면 글이 저절로 써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 거라면 이미 경험했으니까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다 읽어보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문장과 문체들을 기록하고, 수필이 됐든, 조금이라도 각색을 해보며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지만 자기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모습이 민이가 가진 엄청난 힘이 거 같아. 글 너무 재밌게 읽었어!!!
감나무 아래에서 또 연재해줄거지?? 기다리고 있을게!!
민아..너는 어쩜 이렇게 글을 술술 쓰는거야..
근데 끝까지 읽지는 못해써,,ㅎㅎㅎ 우리 이제 그만 만날 때가 됐다 11월 안에 보자!
민아! 글 너무 재밌다. 짧은 소설 읽는 것 같았어. 글로 네 일상을 완벽이 구경하다 온 느낌ㅎㅎ 무엇보다 매일 책을 읽고 하루 한 권으로 시작해서 이젠 하루에 여러 권 읽는다는게 참 놀라워. 닮고싶다… 여러모로 자극도 되고 재밌네. 보고싶다 우리 만나자!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10.11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