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매(Samādhi) 속에서의 상(像)
어느 날 아찬 문이 리압 사원에서 ‘붓도’를 주제로 명상하고 있을 때였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퉁퉁 부어 곪아터진 시체의 상(像)이 떠올랐다. 그의 앞에 있던 시체는 독수리, 까마귀, 개들이 뜯어먹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강한 역겨움과 피로를 느꼈다. 명상을 그친 후에도 그 상(像)은 밤낮으로 앉으나 서나 매순간, 머리 속을 따라다녔다. 명상 중에 그 상은 다시 나타났고, 명상이 계속되면서 그의 앞에 있던 시체 대신 한 장의 유리 원반이 눈앞에 떠올랐다. 명상이 더 깊이 계속되자, 끊임없이 다양한 사물과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러한 장면이 끊임없이 변하면서 계속되는 것은 다음에는 무슨 장면이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와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그가 높은 산을 오르고 있는 장면이 나타났다. 칼자루를 들고 산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앞에 벽이 나타났고 벽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자 그 안에는 몇몇의 스님(bhikku)들이 명상 중에 있었다. 그 장면이 점차 넓어지면서 그 옆에 절벽과 동굴들이 보였고 그 안의 몇 군데에는 수행자들이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는 절벽 위에서 바구니 같은 것이 떨어졌다. 그가 바구니 속으로 들어가자 그것은 절벽 위로 올려졌으며 바구니 안에서 밖을 보니 네모난 탁자가 있는 큰배가 보였다. 그 순간 산이 밝은 빛으로 휩싸였고 그는 산 위에서 요기를 때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처럼 계속 변화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끊임없이 펼쳐졌다.
3개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용할 수 없는 장면들이 명상 중에 계속해서 나타났다. 내적인 성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고, 그러한 명상을 한 후에 그는 발작적으로 기뻐했다 슬퍼했다 할만큼 마음은 매우 민감해졌다. 그는 명상을 통해 고요해질 수도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도 없었다.
그는 그 때 이것이 해탈로 이르는 정도(正道)가 아님을 확신했다. 이것이 바른 길이라면 명상의 결과로서 민감한 감수성이 아닌, 고요한 마음의 평정이 얻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민감성은 명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보통 사람이나 갖고 있다. 외부의 대상이나 경계에 신경 쓰이는 것은 마음수행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고, 그래서 당연히 기대했던 지복과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때부터 아찬 문은 정신 집중의 초점을 다시 몸에다 맞추었다. 예리한 마음 챙김(sati, mindfulness)의 눈으로 몸 전체를 여러 각도로, 즉 수직․수평으로, 위․아래․옆으로 섬세하고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행(徑行)을 하면서 보냈다. 이따금 좌선을 할 때에는 정신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고 균형 있게 신체의 여러 현상을 관찰하였다. 잠을 자는 도중에도 몸에 집중된 관찰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