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회적 경제'로 가야 할 때다
[경제시평] 양준호 교수(인천대 경제학과)
'사회적 경제'의 확산
경제의 글로벌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지역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내는 작업은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였다. 특히 인천의 경우, 전 시장이 초래한 재정파탄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외연적 확대 기조의 지역사회 운영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인천은 경제의 글로벌화와 더불어 심각한 재정 제약 하에서,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왔던 지역사회의 운영방식을 접고 더 새로운 내연적 확대 기조의 지역사회 디자인이 절실한 가운데 있다.
15개 국가의 틀을 넘어 시장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EU에서도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따라 지역사회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입각하여 EU는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해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로컬하게 행동하자(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모토로 내걸고 시민이 주체가 된 지역 풀뿌리 차원의 운동을 활성화하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EU정부 자체도 해당 권역에 속하는 여러 지역사회의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민간의 비영리조직에 대한 지원을 정책화해내고 있을 정도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EU는 정책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민간 비영리조직을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를 구축해낼 수 있는 핵심 주체라는 명칭을 붙여 총괄적으로 인식·취급하고 있다.
1989년에 EC위원회(EU위원회의 전신)의 제23총국 내에 사회적 경제 조직의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국이 설치된 바 있는데, 그 당시 사회적 경제 조직에 관한 EC위원회의 기본적인 인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정의
사회적 경제를 구축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조직 주체는 사회적 목적을 가진 자립조직이어야 하며, 연대와 1인1표제를 기반으로 한 멤버 참가를 기본적 운영 원칙으로 설정한 주체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조직은 협동조합, 공제조합, 또는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과 같은 법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2)조직의 실태
①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이 유럽 전체의 소매사업 매출 중 약 10%를 점하고 있다. 농업에서는 유럽 전체 농산물의 약 60%가 협동조합을 통해 수확·가공·판매되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협동조합은행이 유럽 전체 예금의 약 17%를 점하고 있다.
②공제조합
약 4천만 세대가 건강보험과 연금 공제조합에 가입되어 있다.
③어소시에이션
보건, 교육, 문화, 스포츠, 레저, 여행, 호텔, 환경보호, 지역개발, 빈곤대책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3)평가
지금까지 역사에서 사회적 경제 조직은 사회문화에 대한 적응능력을 보이면서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예를 들어, 이들이 사회보험 및 연금 등의 상호부조 조직을 만듦으로써 지금 유럽의 사회보장제도의 기초가 다져졌다. 사회적 경제 조직은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며 또 연대를 통해 사회적 평가가 매우 높은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시민, 생산자, 소비자와 같은 다양한 수요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어소시에이션의 경우, 공공적인 활동에 대한 시민참가를 유도해냄으로써 개인을 보호하고 또 사회의 기초적 가치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4)정책
EC는 일반적인 민간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원조조치(정보제공, 재정원조, 직업훈련에 대한 원조 등)를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해서도 제공하여, 사회적 경제 조직이 유럽 통합시장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EC가맹국의 국내법이 이와 상충될 경우에는 그 개정을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EU의 사회적 경제 또는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한 위와 같은 인식 및 정책 기조를 배경으로 하여, 지금 EU국가의 여러 지역사회에서는 '사회적 경제'의 지향이라는 대 전제 하에서, 협동조합, 공제조합, NPO의 집합체로서의 민간 비영리 부문을 구축해내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적 경제를 지향해야 하는 이념으로 설정하여 지역사회 활성화를 위한 EU의 대표적인 실천 사례는 수 없이 많지만 그중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과 영국의 '콤팩트' 합의서가 가장 유명하다.
스페인의 실업율이 약 20%에 달할 정도의 불황 하에서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은 의연히 노동자 수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약 90개의 협동조합으로 구성된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은 세 개의 서브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재정 그룹'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노동인민금고'는 204개나 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으며, 스페인의 270개 은행 중에서 25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로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공업 그룹'은 냉장고 및 세탁기 국내생산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통 그룹'은 스페인의 식품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다.
영국에서는 민간 비영리조직의 대부분이 자기 스스로를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적인 네트워크 구축뿐만 아니라 EU의 여러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 조직 간 네트워크 구축 역시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또 1998년 11월에는 노동당 정부와 영국의 민간 비영리조직 대표 간에 '콤팩트(compact)'로 불리는 합의서가 체결된 바 있다. 이 합의서는 민간 비영리조직의 활동을 '민주사회에서 불가결한 요소'로 강조하면서 '일국 및 지역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와 민간 비영리부문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또 양자 간의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한층 충실한 정책 및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 입각하여 영국 정부는 사회적 경제 부문에 대해 독립성 확보, 자금원조, 관련 정책 입안단계에서부터 참가 등을 약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회경제 시스템에서의 사회적 경제 부문의 위상
사회경제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민간 비영리조직이 모여 사회적 경제 부문을 구성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많은 나라에서 이와 같은 사회적 경제 부문은 '제3섹터'로 불리며 매우 중요한 정책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제3섹터'는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한 나라들의 사회경제 시스템 내에서 어떠한 위상을 갖고 있는지, 즉 사회경제 시스템과 관련하여 어떻게 위치를 설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빅토르 페스토프(Victor Pestoff)는 사회를 구성하는 영역으로서의 커뮤니티, 국가, 시장, 제3섹터를 그림과 같은 삼각형으로 표현함으로써, 제3섹터는 그 외 다른 세 개의 영역을 서로 관련시키는 중심적인 주체로서 위치 설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식을 통해 그는 제3섹터가 갖는 매개기능을 중시하면서 커뮤니티, 국가, 시장이 갖는 각각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주체가 제3섹터임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제3섹터의 리더십이야 말로 사회 여러 영역에서 바람직한 '혼합형 시스템(Hybrid System)'을 창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페스토프의 논의를 부연하는 형태로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제3섹터의 위치 설정과 그 역할에 관해 살펴보도록 한다. 그림에서 보이는 큰 삼각형을 네 개의 사회영역으로 구분하기 위한 첫 번째 경계선은 인간집단이 공식적인(formal) 조직인지 아니면 비공식적인(informal) 조직인지에 의해 사회영역을 구분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식적인 조직'은 '공식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조직으로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주체'이다. 예를 들어 정기적인 회합을 가지는 조직, 간부 스탭을 갖추고 있는 조직, 명시적인 절차 규정을 가지고 있는 조직, 법인격을 가진 조직 등, 일정 수준의 '계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을 의미한다. 첫 번째 경계선을 그음으로써, 가족과 지역사회는 비공식적인 영역에 속하며 그 외의 사회조직은 공식적인 영역에 속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구분은 커뮤니티와 사회적 조직 간 관련성을 명확하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근대사회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으로, 영국의 법제사가이자 비교법학자인 메인의 '신분에서 계약으로(from status to contract)'와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에스의 '게마인샤프트에서 게젤샤프트로(영역하면, from community to society)'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는 사회관계가 개인의 전통적 사회로의 귀속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에서부터 자유로운 개인 간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로의 역사적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표현이다. 또 동시에 커뮤니티, 즉 혈연 및 지연 관계에 의한 인간관계에서 전통적 공동체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개인의 자발적 의지에 의한 포멀한 조직으로의 이행과 같은 근대사회의 역사적 동향 역시 설명하고 있는 표현이다.
두 번째 경계선은 '국가이냐 아니면 민간이냐' 하는 기준으로 사회영역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경계선을 그음으로써 국가의 영역(제1섹터)이 그림으로 표시된다.
세 번째 경계선은 '영리를 추구하느냐 아니면 비영리를 추구하느냐' 하는 기준으로 사회영역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경계선을 그음으로써 민간 영리조직의 영역(제2섹터)와 민간 비영리조직의 영역(제3섹터)가 그림으로 표시된다.
사회적 경제의 현대적 의의
근대사회의 특징으로서, 비공식적인 영역(커뮤니티)이 상대적으로 점차 축소하고 반대로 공식적인 영역이 상대적으로 점차 확대한다는 점을 위에서 지적하였다. 나아가 커뮤니티와 공식적인 영역인 세 개의 섹터 간 관계에 관한 역사적 변화를 개괄해 보면, 원시사회에서는 커뮤니티가, 또 농업사회에서는 제1섹터(권력기구)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였으며, 또 3차 산업으로의 산업구조 고도화와 정보화가 진전되고 있는 후기공업사회에서는 제3섹터와 시민사회가 발전하고 있어 이들이 가장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역사적 관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제3섹터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은, 제3섹터가 가지고 있는 시민사회 형성기능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시민사회를 확립하기 위해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게 된 조직'으로서 민간 비영리조직을 손꼽고 있으며, 결국 제3섹터는 일의적으로 '시민의 섹터'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제3섹터가 가지고 있는 시민사회 형성기능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
미국의 시민사회 이론가 레스터 살라몬(Lester Salamon)은 비영리조직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지금의 세계적 현상을 글로벌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결사혁명(associational revolution)'으로 파악하여, 그 역사적 의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이와 같이 글로벌한 제3섹터를 형성하는 무수한 자립적 민간조직은 이익을 주주와 임원에게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익조직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며, 국가의 틀 외부에서 공공적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주체이다. 이와 같은 조직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간다면, 국가와 시민 간 관계가 영속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살라몬의 논의를 부연 설명하자면, 위의 주장은 '결사혁명'에 의한 시민혁명의 실현 역시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까지 시민혁명은 시민이 정치권력의 주체가 되는 즉 정치혁명으로 해석되어 온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결사혁명'에 의한 시민혁명은 사회 전체에 관한 사회혁명을 의미한다. 즉 정치권력을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정치혁명이 아니라 시민사회 틀 내에서 시민이 상호 '연대'함으로써 발휘되는 힘을 기초로 하여 사회 전체(경제, 사회, 정치, 문화와 같은 다양한 영역)에 시민이 주권자로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혁명인 것이다. 주민이 주체적으로 조직하는 각종 민간 비영리조직을 기반으로 하여 한 사회의 바닥에서부터 쌓아올려 나가는 혁명으로 환원할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과연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 근대 이후 인류사 속의 일대 과제로 불릴 수 있는 이 문제에 관해 필자의 생각을 밝히자면, 주민과 시민의 자발적인 연대 활동의 영역으로서 제3섹터가 시민사회 형성과 시민사회에서 새로운 공동체 형성을 위해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최대화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시민사회는 전통적 공동체에서부터 자유로워진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구성하는 사회를 의미하는데, 공동체로부터의 자유는 자칫 개인의 고립화를 초래하기 쉽다. 개인과 전체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간집단이며, 이와 같은 다양한 중간집단 중에서도 개인의 주체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집단형태는 자발적 결사체로서의 민간 비영리조직일 것이다.
민간 비영리조직은 시민사회에서의 공공적 활동을 통해 여러 개인을 엮어내고 또 풀뿌리 차원에서부터 공공성을 구축·확립함으로써, 시민사회 내부에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시키는 기능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젠 시장원리가 주도하는 사회가 빚어내는 부작용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일국과 지역사회는 시장과 대칭되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주도에 의해 영위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지역이 시장원리주의를 넘어 공동체원리에 입각한 '따뜻한 사회'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민간 비영리조직을 그 공간 내 핵심 주체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주체 설정의 작업이 선행될 때, 그 지역 공간에는 시민, 생산자, 소비자와 같은 다양한 수요에 대해 다양한 시민적 방법으로 대응하여 새로운 ‘시장(market)'을 개척할 수 있는 시민 공동체적 경제가 구축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 경제'이며, 이를 주도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서의 민간 비영리조직인 것이다. 이제 인천은 과거와 같이 '독재적인' 수장과 그 주위에서 떡고물이 떨어질 것만 기다리는 '지역 성장연합'에 의해 주도되어 온 시스템을 청산하고 '결사혁명'에 의해 성숙해진 '시민'들에 의해 주도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천에서부터 가능해질 때, '사회적 경제' 개념은 차기 정치 국면에서 '사회적인 것'을 혐오하지 않는 사람들을 집결시켜 낼 수 있는 유력한 담론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www.incheonin.com/detail.php?number=4836&thread=35r02r02에서 퍼옴
첫댓글 여행과 아주 무관한 글을 왜 퍼왔지.....혹시 다른 게시판에 갈 글을 여기다 잘못 옮겨놓았나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텐데요...잘못 옮긴 것은 아니고 제가 생각하는 트레블러 어소시에이션(TA)과 관련된 글이라 옮겨 왔습니다.제3섹터의 비영리사회적기업의 한 형태로 우리 여행모임이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