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隻)지다
‘척’은 송사(訟事)의 ‘피고’
세상을 살다 보면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더 많다.
기쁜 일이 있다가도 슬픈 일이 뒤따르고, 좋은 일이 있다가도 나쁜 일이 뒤따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의 이치이다.
인생살이에서 슬프고 나쁜 일은 넘치고 넘쳐 난다. 그런 와중에는 남과 원수가 되어 반목하게 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서로 돕고 정을 나누며 살아도 모자란 세월인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원한까지 품고 산다면 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허망한 일인가.
이렇듯 서로 원한을 품어 반목하게 되는 것을 ‘척(隻)지다’라고 표현한다. 척(隻)은 가까운 사람과 사소한 일 때문에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족 구성원 사이에서, 친구 사이에서, 조직 구성원 사이에서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척지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척지고 사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아름답고 건강할 리 없다.
척을 지게 되면 서로 피곤하다. 늘 상대를 향해 저주를 퍼부어대니 마음이 얼마나 강퍅해지겠는가. 되도록 척질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어쩌다가 척을 졌다 하더라도 빨리 수습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여러 사람과 척을 지고 살다 보면 자신의 마음만 피폐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척지다’가 본래부터 ‘서로 원한을 품어 반목하게 되다’는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다. ‘척지다’의 본래 의미는 따로 있고,
이는 그 본래의 의미에서 파생된 의미이다. ‘척지다’의 본래 의미를 밝히려면 우선 ‘척’의 의미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척’은 한자 ‘隻’이다. ‘隻’은 ‘한 쌍의 한쪽’ 즉 ‘외짝’을 가리킨다. 그런데 ‘척지다’의 ‘척(隻)’은 이러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척지다’의 ‘척(隻)’은 아주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조선시대에 소송 사건의 피고(被告)’가 바로 그것이다.
‘척지다’의 ‘척(隻)’이 ‘피고’라는 의미를 갖는다니 놀라운 일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민사 소송은 소송을 건 ‘원고’와 소송을 당한 ‘피고’ 사이에서 성립한다.
그러니까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는 한 짝이 된다. ‘원고’ 쪽에서 보면 한 쌍의 외짝은 ‘피고’가 된다.
그러한 성격의 ‘피고’가 ‘외짝’을 가리키는 한자 ‘隻’의 의미와 부합하여 ‘척(隻)’이 ‘피고’의 의미를 띠게 된 것이다.
‘척’이라는 단어는 주로 ‘지다’와 어울려 나타난다. “친구와 나는 사소한 문제로 척이 지고 말았다”와 “우리는 이성 문제로 척을 지게 되었다”에서 보듯 ‘척’은 ‘척이 지다’, ‘척을 지다’와 같은 구(句) 구조의 일원으로 쓰인다. 여기서 ‘지다’는 ‘어떤 좋지 아니한 관계가 되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척이 지다’는 ‘송사에 연루되어 누구와 피고 관계가 되다’의 의미를, ‘척을 지다’는 ‘송사에 연루되어 누구와 피고 관계를 맺다’의 의미를 띤다. ‘척지다’는 바로 이들 ‘척이 지다’와 ‘척을 지다’에서 주격의 ‘-이’와 목적격의 ‘-을’이 탈락한 뒤 축약된 어형이다.
민사 소송에서 ‘원고’는 대체로 ‘피고’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다. 어떤 종류의 분쟁이든 그것은 잘 모르는 사람보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분쟁을 법에 호소하여 자신이 ‘원고’가 되고 가까운 사람이 ‘피고’가 되면 과거에 쌓았던 인간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다. 인간 관계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며, 정도가 심하면 급기야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누구와 ‘피고’ 관계가 되면 인간 관계가 단절됨은 물론이고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이가 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강조되어 ‘척이 지다’에 ‘서로 원한을 품어 반목하게 되다’, ‘척을 지다’에 ‘서로 원한을 품고 반목하다’와 같은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척지다’는 이들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지닐 수 있다.
‘척’은 ‘지다’와만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짓다’와도 결합한다. 그리하여 ‘척을 짓다’와 같은 구(句) 구조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척을 짓다’는 ‘서로 원한을 품고 미워할 일을 만들다’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척을 짓다’에서 목적격의 ‘-을’이 탈락한 뒤 축약된 ‘척짓다’도 그와 같은 의미를 띤다.
[네이버 지식백과] 척(隻)지다 - ‘척’은 송사(訟事)의 ‘피고’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2009. 9. 25., 조항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