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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녕문협 원문보기 글쓴이: 이예담
[창작동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는 생태동화-
꽃할배
임신행
자연은
스스로 찾아 나섰때
비로소
호응을 해주며
그 특유한 자애로움을 열어 보인다.
-강물은 흐르고
파초 잎 같은 남강 초록빛 강줄기를 따라 가다가 진주 촉석루에 꽃할배는 들렸다. 꽃할배는 괜히 마른기침을 두어 번 했다. 유유히 흐르는 남강을 본 꽃할배는 “남강아, 잘 있었나! 내가왔다. 내가 와.” 문득 거드름을 부려보고 싶어 큰소리를 쳤다.
“그 강을 건널라 카면 숨을 안 쉬면 건너지.......”
꽃할배는 누가 옆에 있기나 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난, 아직은 아니야, 쪼매만 더 쉬다가 가야지. 숨 쉬는 일이 우째 그리 힘드노?’
꽃할배는 가볍게 진저리를 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덕천강이랑 경호강이 만나 그윽한 풍경을 이루고 사는 진양호에 들리고 싶은 생각에 꽃할배는 진양호로 자리를 옮겼다. 변함없이 진양호는 넓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거대한 거울을 눕혀 놓은 듯 진양호는 맑고 투명했다. 가없이 넓은 진양호에는 지리산이 놀러와 몸을 담그고 있었다. 물그림자로 늠름한 그 자태를 은근히 자랑하는 지리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꽃할배는 산책을 더 하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걸음을 내딛었다. 나동을 거쳐, 북천에 와 조붓한 코스모스 꽃길에서 꽃할배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지는 꽃들은 늘 과거를 감추고, 쓸쓸한 죽음의 현실을 생각하게 하지. 후회는 누구나 나중에 하지......’
꽃할배는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지리산을 지리산답게,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의 사악하고 간악한 이야기들을 장강으로 만들어낸 책으로 만들었다. 몸집이 거쿨진 나림 선생이 긴 의자에 앉아 ‘쿨럭, 쿨럭’ 큰 기침을 하고 있지 않는가. 나림 선생의 눈은 시종 이명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조심 꽃할배는 나림 선생 곁으로 가 나란히 앉았다.
“거기서도 소설 써십니까?” 눈
치를 보다가 꽃할배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제 버릇 남 안주지요.”
고개를 돌려 힐끗 꽃할배를 바라 본 나림 선생은 흰 머리카락을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조금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어디서나 무리 하면 안 됩니다. 쉬엄쉬엄 하십시오.”
가벼운 눈웃음을 보내고 꽃할배는 돌아서서 지리산을 연상하게 하는 이병주 문학관을 유심히 살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명산 산허리 바위에서 얼굴을 불쑥 내민 마애석불이 산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 그 순간을 꽃할배는 보려고 애를 썼다. 그 분은 언제나 장중하며 근엄한 모습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내려다보고 원래의 모습을 찾고 싶어 궁리 중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꽃할배는 쓸쓸히 웃었다.
“좋은 일로 즐거우시길 발원합니다.”
꽃할배는 나림 선생에게 작별의 인사를 했다.
저 동쪽 이명산 산허리를 타고 내려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찻물이 설설 끓는 다솔사에 들러 흐리마리한 세상의 일들을 씻기 위해 박하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갈까 하는 생각에 꽃할배는 잠시 망설였다. 갈 곳이 어디 한 두 곳이며 먹고 싶은 것은 어디 한 둘인가. 포기하자는 결심을 했다. 꽃할배는 입맛을 다셨다.
은어가 숨어사는 횡천강 물목 앞에 꽃할배는 멈추어 섰다. 발아래 자란거리는 횡천 강 강물을 내려다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새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들 소리에 눈을 돌렸다. 등 뒤 횡천초등학교 운동장에는 공을 차느라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공을 따라 몰려다니고 있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 흘러 꽃할배는 두꺼비나루터가 있는 섬진강에 다다랐다.
-섬진강에는
언제나 섬진강은 흰 옥양목을 풀어 길게, 길게 이어놓은 듯 자란자란 흘러가고 있었다.
‘아! 섬진강’
꽃할배는 두 팔을 벌려 앞으로 내밀고는 사무친 듯 말했다. 그리웠던 섬진강 공기에는 알싸하고 신선한 대나무 잎 냄새가 숨어 있었다.
윤슬이 눈부셨다.
‘오, 사랑 할 지고’
섬진강 윤슬은 신라 왕관이다.
황금빛으로 눈부시도록 빛나는 섬진강 윤슬을 바라보며 꽃할배는 어린아이처럼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꽃할배는 젊은 날, 섬진강 윤슬에 반해 햇살 좋은 날이면 섬진강 윤슬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왔던 때가 있었다.
무아 무념에 젖어들게 하여 황홀하게 하는 섬진강 윤슬.
섬진강 윤슬은 반짝이다, 반짝이다 강물 아래로 숨어들어 옥 재첩이 된다고 젊은 시절 꽃할배는 생각했었다. 지난날처럼 섬진강 윤슬은 여전히 눈이 부셨다. 강둑 대나무 숲 왕대나무들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꽃할배를 향해 소리죽여 환호를 하고 있었다. 왕대나무 우듬지에 앉은 수리부엉이가 섬진강 하얀 모래톱을 아장아장 걸어가는 산비둘기 한 쌍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꽃할배 눈에 들어 왔다. 섬진강 강가에는 수줍음이 많은 쑥부쟁이와 들국화가 함초롬히 피어 나그네 눈길을 끌었다.
사계절 푸르고 푸른 지리산 골짜기, 그 골짜기를 휘돌아 맑은 공기를 앞세우고 흐르는 섬진강 강물은 은물결이 되어 소나무 숲을 지나 하동포구에 머물렀다 바다로 가 바다가 된다고 꽃할배는 생각했다. 꽃할배는 눈앞의 흘러가는 섬진강 강물은 머지않아 남해 바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어깨춤을 추었다.
‘내배 사소. 내배 사소. 단물이 철철 나는 하동 배 사소.
내감 사소. 내감 사소. 임금님께 진상한 대왕 감 사소.’
과일 가게에 들려 대왕 홍시 하나. 하동 배 하나를 사서 꽃할배는 섬진강 대로 ‘섬진강 횟집’에 들렀다. 먹고 싶었던 재첩 회를 꽃할배는 시켰다. 재첩 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배와 홍시를 먹었다. 재첩 회 한 접시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창 밖 구름과 구름사이에서 얼굴 뻐끔 내밀고 있는 금오산을 바라보며 꽃할배는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 웃었다.
-달빛 같은 동정호
꽃할배는 악양 동정호로 갔다.
한 폭의 거대한 한국화 동정호!
동정호(*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했을 때 당의 소정방이 당나라 악양의 동정호를 닮았다 하여 동정호라 불러 오늘까지 동정호라 부른다. 면적이은15정보, 물의 용적은 약 100만㎣이며, 평균 수심은 1m 정도. 자연발생 늪지대로 청둥오리, 붕어 등 수생식물이 공존하는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됨. 동정호는 악양 팔경으로 상징함)를 꽃할배는 무척 좋아했다. 보고 싶은 마음에 숨찬 줄 모르고 꽃할배는 동정호로 달려와 훠이 훠이 둘러보고는 스스로 사무쳤다. 비스듬히 서서 오백년을 살아 온 악양정 소나무 앞에 서서 꽃할배는 안부를 묻고 소나무에게 꾸벅 절을 했다. 그리고 소나무를 보듬었다. 소나무 특유의 향기와 당당한 품격에 꽃할배는 묘한 감동에 젖어 한참을 서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도 그렇습니까, 요즘 들어서 사람의 말이나, 소리를 정확히 못 들어요. 대한민국이란 훌륭한 나라 이름에 똥칠을 하고 온 국민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뭉개버린 최순실 이름이 내 귀에는 최진실로 들리고, 기밀이 비밀로, 교통사고가 고통사고로, 경호실이 병호실로, 검찰청이 경찰청으로, 청와대가 쩡아대로, 박근혜가 팍 크네로, 국회가 구해로 등 말이 잘못 들리니 야단났습니다. 바르게 들어야 바르게 실천 할 수 있는데......
” 꽃할배는 연세 많은 소나무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그때 내가 왔을 때는 달밤이라 이 넓은 동정호는 달빛 같았지....... 달빛 같은 동정호!” 한 그루 소나무가 되어 꽃할배는 한없는 생각 속에 동정호를 바라보며 한동안 서 있었다. 꽃할배는 평사리 최 참판 댁을 거쳐 봄이면 스물세 살, 아가씨 속옷같이 화려한 벚나무 꽃길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 ‘벚나무 터널 십리 길’(*우리나라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1위)을 꽃할배는 신나게 달렸다. 지금은 벚나무 터널의 벚나무들은 그토록 무성했던 잎들을 다 지우고 앙상한 가지로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화개장터. 화개 마을. 천년의 다향의 고장이 바로 화개면. 하동포구 팔십 리가 시작되는 화개(花開) 탑리. 화개마을 탑리에는 지금도 화개장이 열리고....... 길 너머 그 나루터에는 나룻배가 섬진강을 건너 갈 손님을 기다리고.
화개 마을. 버스 터미널 한 쪽에 턱 자리 잡고 선 작은 비석이 그간 부귀영화를 누렸던 화개장터를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것을 꽃할배는 읽었다.
-꽃들은 피고 지고 사계절 온갖 꽃들이 피는 산촌 화개! 꽃들은 피고 지고 꽃들은 떠났다 다시 오는 화개마을....... 지구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더 없는 참으로 소중한 화개마을.
꿈속 같은 학교. 동화속의 학교, 화개초등학교. 솔숲 속의 화개초등학교로 가기 위해 꽃할배는 타고 온 승용차를 화개천 둔지 주차장 구석에 세웠다. 운전석 옆에 둔 초록빛 배낭을 챙겼다. 어느 길로 가야 할까를 잠시 생각했다. 좋은 길을 굳이 옆에 두고 꽃할배는 화개천을 따라 올라 가기로 결정했다. 화개 마을 공기에는 청청 푸른 지리산 솔잎 향기가 났다. 화개천은 벌써 초겨울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토록 기세 좋게 한 여름을 살던 며느리밑씻개, 수크령, 환삼덩굴. 명아주가 말라 비틀어져 황량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천천히, 천천히 꽃할배는 걸었다. 꽃할배는 아기 오리 떼처럼 졸졸거리고 흐르는 개울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는 너럭바위에 냉큼 올라가 앉았다. “산은 의구한데 천은 많이 변했네......” 칠불사 쪽을 꽃할배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화개천을 끼고 있는 삼신리, 범왕리에 크고 작은 펜션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것을 바라보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걸머지고 있던 초록빛 배낭을 내려놓고 꽃할배는 페트병의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배낭에서 꽃할배는 비상용으로 넣고 다니는 초콜릿 한 개와 귤 한 개를 꺼내 소풍 온 기분으로 먹기 시작했다. 꽃할배는 바짓가랑이에 덕지덕지 붙은 도깨비바늘과 도꼬마리를 떼 흘러가는 개울물에 띄어 보내며 감개무량해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여길 다시 오는데, 사십년에서 일 년이 모자라네......” 꽃할배는 탄식을 하듯 말을 하고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감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청 보리 같았던 젊음은 어물어물 하는 사이에 다 지나가고 책임을 다해 할 일이 없는 처지에 놓인 스스로가 안타까웠다. 일이 하고 싶어 꽃할배는 일자리를 찾아 다녔지만 어느 한 곳 일을 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정을 주고 의지 할 곳이 없었다. 반은 남인 아내는 큰 딸네 집에 붙박이가 된지 오래다. 꽃할배는 나홀로다. 꽃할배는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신문을 읽고 책을 읽으며 나날을 보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도서관 자료실에서 묵은 신문을 읽다가 화개초등학교 다례체험 학습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꽃할배는 잊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이 기적같이 떠올랐다. 스물네 살 사범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꽃할배가 교단에 첫발을 내딛은 학교가 바로 화개초등학교였다. 3년을 근무하다 군복무를 위해 떠난 뒤 꽃할배는 화개초등학교를 까맣게 잊고 살았었던 것이다. 세월은 개울물 같은 것이었다. 묘한 감동이 새삼스럽게 가슴 속에서 뭉실뭉실 일었다. 이때였다 작은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손님처럼 날아와 꽃할배 오른쪽 무릎에 앉는 것이 아닌가. 꽃할배는 모닥불을 쬐듯 두 손을 벌려 고추잠자리를 보호했다. “반갑고 고맙구나......” 고추잠자리가 날아갈까봐 꽃할배는 조심조심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위치 확인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추억은 진실한 뉘우침이요, 새로 시작해야 할 과제다’ 꽃할배는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 사람은 사람답게,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대접하고 살아야 할 터인데 돈만 제일로 치니 사람 사는 꼴이 엉망이 되었지....... 인공지능 시대도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 사람이......” 검색창에서 꽃할배는 화개초등학교를 불러내었다. 지리산 코숭이 청솔 푸른 숲에 자리 잡은 환상의 화개초등학교에는 2016년 12월 현재 60여 명의 꽃사슴 같은 미래의 역군들이 알콩달콩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인이며, 교육자인 김용문 교장의 인사말이 잠자고 있던 꽃할배의 호기심을 자극 했다. *섬진강과 하동포구 십리벚꽃이 어우러진 지리산 자락의 맑고 아름다운 환경과 녹차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에 자리 잡고 “높고 푸른 꿈을 가꾸는 화개어린이” 라는 교육지표 아래 다례교육을 통한 예절인성교육, 기초와 기본교육 바탕 위의 창의성교육, 소질과 흥미에 따른 특기적성교육, 개인차를 고려한 학습자 중심의 자기주도적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교직원과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될 어린이들에게 보다 큰 꿈과 희망을 가슴에 심어주기 위하여 학부모, 지역민들의 신뢰와 협조아래 보다 좋은 학교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또, 화개초등학교의 상징인 학교 꽃인 목련에 대하여 뜻을 새긴 것을 꽃할배는 소리 내어 읽었다. *1억년 전부터 화석에 박혀진 교목성 꽃나무로 매혹적인 향기를 지녔으며, 북쪽을 향해 꽃이 피는 것이 특징이다. 우아한 자태와 그윽한 향기는 맑고 밝은 화개초등학교 학생들의 고운 마음씨를 상징한다.
60 여명의 화개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하여 스물여섯 분의 교직원 소개를 꽃할배는 어린아이가 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었다.
*배움터지킴이 황영배 선생. 유치원자원봉사 신경숙 선생. 특수교육실무원 김순재 선생. 돌봄전담사 강윤정 선생. 교무행정원 정혜영 선생. 조리원 김재임 선생. 조리사 제은경 선생. 시설관리 조성대 선생. 학교버스기사 한재천 기사. 행정실사무 이창기 선생. 행정실장 곽진옥 선생. 유치원 기간제 조정희 선생. 스포츠강사 강선경 선생. 원어민 Daniel Holmes 선생. 영양사 이미라 선생. 유치반 김순남 선생. 학습도움반 정형순 선생. 연구주임 백상준 선생. 진학담당 6학년 김명란 선생. 과학담당 5학년 강민경 선생. 생활담당 4학년 이순주 선생. 보건 담당 3학년 이율 선생. 체육당당 2학년 최신용 선생. 도서담당 1학년 류진주 선생. 장리 교감 박선희 선생. 통활 교장 김용진 선생....... “수고들 하시는 군요. 나도 같이 근무하면 안 될까요....... 그땐 참 좋았었는데....... 아, 옛날이여.” 꽃할배는 누가 옆에 있기나 하는 것처럼 말을 했다. 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불끈 솟았다. 무릎에 앉았던 고추잠자리가 날아가고 없었다. “가면 간다고 인사는 하고 가야지.”
소리 없이 날아 가버린 고추잠자리가 야속해 주변을 살피며 꽃할배는 말을 했다. 앉았던 너럭바위 위를 말끔하게 청소를 하고 꽃할배는 일어섰다. -아기 고라니 화개초등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학교 교문 앞이 달라져 있었다. 밭이었는데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교실 두 개 크기의 주차장에는 노란 학교 버스 넉 대가 사이좋게 줄지어 서 있었다. 언덕에는 여 나무개의 바람개비가 지리산 바람에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편백나무 사이로 보이는 학교 건물은 옛날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는 야트막한 일층짜리 건물이었다. 학교 길은 그 옛날처럼 가팔랐다. 옛날에는 황토 길이었는데 지금은 검은 아스팔트가 길을 덮고 있었다. 왼 켠 언덕 숲에는 호랑이, 고라니, 사자, 코끼리가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농구장만 했던 황토 운동장은 넓고 큰 잔디 운동장으로 변해 있었다. 꽃할배는 지리산 꽃사슴 같은 아이들이 뛰놀다간 잔디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2층 학교 건물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었다. 까닭 모를 울음이 치밀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치미는 울음을 참았다. 꽃할배는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던 그때를 떠올리고 학교 뒤로 갔다. 무덤들이 즐비했던 그 자리는 감나무 밭이 되어 있었다. 감나무들은 잎을 다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서 있었다. 감나무 밭에는 드문드문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들이 홍시가 되어 빨간 꼬마전구처럼 빛나고 있었다. 꽃할배는 감나무에 올라가 까치밥 홍시를 하나 따 맛있게 먹었다. 달디 단 홍시는 중독성이 있었다. 홍시 두 개를 따 먹고도 더 먹고 싶은 생각에 탱자나무 울타리 쪽으로 갔다. 이상한 울음소리가 났다. 꽃할배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고 소리 나는 쪽을 살폈다. “아니!” 탱자나무 울타리에 작은 개구멍이 빠끔 열렸다. 그 옆으로 이상한 물체가 버둥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꽃할배는 안경을 꺼내 쓰고는 고양이 걸음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아기 고라니가 올무에 걸려 피를 흘리고 있지 않는가. 배낭에서 장갑을 꺼냈다. 비상용으로 준비해 가지고 다니는 특수 가위를 가지고 발버둥치고 있는 아기 고라니 곁으로 꽃할배는 다가갔다. 아기 고라니는 꽃할배가 가까이 오자 겁을 집어 먹고 도망을 치려고 거칠게 버둥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풀어 줄께.” 우선 꽃할배는 피를 흘리는 아기 고라니를 꼭 보듬고 두 눈을 가렸다. 아기 고라니는 계속 발버둥을 쳤다. “조~금만 참아요. 조~금만.” 아기 고라니의 목을 조인 철사 올무를 특수 가위로 끊었다. 피를 흘리는 아기 고라니를 안고 배낭이 있는 곳으로 가 배낭 속의 구급약 봉지를 꺼냈다. 목에 난 심한 상처를 치료했다. 물을 억지로 아기 고라니에게 먹였다. 아기 고라니는 목이 말랐던지 처음 한번은 밀쳤으나 물인 것을 알고 잘도 먹었다. “이제 조심해 가거라.” 살며시 아기 고라니를 내려놓으며 꽃할배는 말했다. 어느새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기 고라니는 중심을 잃고 쓰러질듯 하더니 겨우 버티고 섰다. “가서 잘 살아.사람도 짐승보다 못한 짐승이 있느니라. 미안하다. 미안해.” 꽃할배는 손짓을 했다. 아기 고라니는 꽃할배의 말을 알아듣기나 한 것처럼 걸음을 떼었다. 비틀 비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아기 고라니는 푹 쓰러졌다.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꽃할배는 아기 고라니 앞으로 가 아기 고라니를 안았다. 한참을 아기 고라니를 보듬고 꽃할배는 서 있었다. 아기 고라니는 추운지 와들와들 떨었다. “너를 어쩌면 좋으냐?” 캄캄 어두워진 사방을 살피며 꽃할배는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 떨고 있는 아기 고라니를 안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막막했다. “무엇 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은 생명이고 그 다음이 사람이고 돈은 쓸모가 있는 것이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돈이 제일 가치 있는 걸로 착각하고 돈을 제일 좋다고 가치를 둔다면 그것은 다 허상이지. 너의 귀한 목숨도 더 없이 소중하단다.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너를 이렇게 만든 것도 돈 때문일 것이다......” 꽃할배는 벌벌 떨고 있는 아기 고라니를 꼭 보듬고 속삭이듯 말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꽃할배는 학교 쪽을 향해 소리쳤다. “.......” “와 이래 :숨 쉬기가 힘이 드노?” 푸념 아닌 푸념을 꽃할배는 했다. -0-
* 자료 : 네이버 학교 홈페이지에서
첫댓글 창녕문학 2017. 제41집에 발표한 동화입니다.
참 정감 넘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