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 보면 뜻 하지않은 일이 생기는 수가 있다. 좋은 일이면 다행이요 나쁜 일이면 불행이다.
작은 신야성 같은 곳에서 겨우 생활비 벌고 애들 학교 보내고, Malpractice Insurance 로 년간 $35,000 이나 되는 큰 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내면서 감옥에 있는 것 같은 생활을 하고 있자니 좀 더 큰 도시로 나가고싶은데 이리 저리 알아 보아야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씬시내티에서 비뇨기과 개업 하고 일주일에 하루씩만 와서 환자 보고 수술하고 가는 인도인 의사 (그 놈의 인도인!) Dr.K 가 갑자기 물었다. '너 왜이런 작은 병원에서 썩고 있냐?' '씬시내티에 자리가 있어 야지.' 'Epp Memorial Hospital 이라는 작은 DO* 병원에 내가 가끔 나가는데 거기 DO 인 마취과장이 사람 찾는 것 같던데' 이게 무슨 소리냐! 귀가 번쩍 띠었다. '그래? 전화 번호좀 알려 주라.' 당장 전화를 걸었다. 몇마디 하고 내 소개를 하고 나니 언제 와서 인터뷰 하잔다. 그래 당장 가겠다고 하니 이틀후에 시간을 정하고 맞나기로 하였다.
*미국 의사 분류; M.D.- 보통 우리가 생각 하는 정규 의대 출신. 각주에 의과 대학이 몇개 없고 어느 주는 한개씩 밖에 없다. 그러니 의대 들어가기가 아주 힘들다. D.O.(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 Osteopathic Medical School 출신. 미국 전역에 8개 정도 있다. MD 되는 의대 못가는 사람들이 간다. 전에는 여기 나와도 혼자 개업 밖에 못하고 GP 하기 십상이었는데 지금은 보통 병원에서 어느 전문 과목이나 다 수련을 하고 나올수 있다. 그러나 아직 눈에보이지 않는 차별 대우를 받는다. DDS or DMD - 치과 대학. 대개 위의 두군데 갈수 없으면 간다. 때로 처음 부터 치과 의사 지망생도 있다. DPM (Doctor of Podiatry Medicine)- 足 醫師. 발목 이하만 만질수 있다. 요즘은 이들이 담대(간이 부어서) 해져서 Ankle Fusion, Ankle Bimalleolar FX ORIF 까지도 손댄다. 위의 세군데 못가는 사람이 간다. DC ( Doctor of Chiropractic)- Chiropractic School 출신.우리말로 整骨醫 (?) 아주 뛰어난 business man 들이다. 능변에 환자 잘 꼬이고 의료 수가는 보험회사에게서 제일 잘 받아 내는 친구들. 초진에 전신 X-ray 에 MRI 다찍는 친구 들이다. 한국의 일부 한의사들을 연상 시킨다. 위의 네군데 갈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이 간다.
이렇게 의사 종류가 많으니 참 정신 없다. DO 들은 자기들도 minority 라 정규 MD 한테 괄시 받고 이리저리 치이니 심정적으로 우리같은 외국인과 더 가까워 질수 밖에 없다. 나에게는 영 다행한 일이 었다.
이틀을 이년 같이 기다리다 그를 맞나러 갔다. 거구에 사람 좋아 보이는 친구 였다. 자기도 Cincinnati Gen Hosp. 마취과 수련 끝냈다는데 따져 보니 나보다 한 이년 먼저 끝난 모양이었다. 나이는 나 보다 열살 쯤 아래인 자기말로 100% Italian American 이란다. 사람이 솔직 하고 정직해 보였다. 나 보고 추천서 두장만 보내주면 되겠단다. 그 후 나와 Dr.F 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의심 않하고 내 속을 털어 놓을 수있는 몇 않되는 미국인 친구들 중의 하나 이다.
수련시절 마지막 으로 돌던 씬시내티 소아병원 마취과에 있는 두사람의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취직 하는데 꼭 필요 하니 Dr.F 에게 추천서를 꼭 좀 보내 달라고 하였다. 한 사람은 대구 의대 출신 Dr.L 로 나와 같은 년도 의대 졸업 (68년도) 이고 (이 양반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데 한달에 한번 정도는 맞나 저녁 먹는 사이이다.) 다른 사람은 미국인 교수 Dr. R 이었다.(이 양반은 아깝게도 몇년 전에 타계 했다.) 미국에서 추천서는 써 줄 사람을 잘 골라서 요청 해야 된다. 잘 못 고르면 아주 나쁘게 써주는 사람이 많으니 주의 해야 한다. 이들은 앞에서는 너 잘한다 해놓고 등에다 칼 꽂는 놈들 천지이다.
며칠 있으니까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좀 맞나잔다. 맞나니까 나에게 읽어 보라고 편지 한장을 내어 민다. 보니 Dr.R의 추천서 였다. 읽어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세 페이지에 달하는 편지는 나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이가 좀 들긴 했으나 honest, dependable, hard working, knowledgeable 기타 등등.. Dr.L 추천서야 의례대로 잘 써 준 것이었다.
Dr.F 가 묻는다. ' 너 어떻게 했길레 이런 추천서를 다 얻을수 있냐? 나는 이런 추천서는 본일이 없다.' '나도 모르 겠다. 그냥 열심히 일한 기억 밖에는.' '좋다 나 하고 같이 일해 보자. 우린 수술실이 두개니 내가 먼저 수술 케이스 고르고 남는 것 네가 하면 않되겠니?' 내가 좋다 싫다 할 계제가 못 되었다. '좋다. 그럼 잘 좀 봐주시오.'
집에와 곰곰이 생각 해보니 어느 비가 몹시오던 일요일에 내가 소아병원에서 당직을 하고 있던 일이 기억이 났다. 월요일 케이스들 수술전 환자 면담을 꼭 해야 되니 내 케이스를 마치고 수술 스케듈을 보니 Dr.R 이 가벼운 케이스 하나만 배당이 되어 있어 겨우 환자 한명 보러 일부러 비오는 날 오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어 내가 대신 환자 인터뷰 하고 수술전 처치 order 쓰고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Dr.R 오늘 날씨도 나쁘고 한데 내일 케이스는 내가 보았으니 일부러 병원에 왔다 갈 필요 없소. 당신이 내게 요청한 일은 아니지만 날씨가 워낙 나쁘니 그냥 집에 계세요. 당신만 괜챦으면 말입니다.' '아이고 Dr.Lee 고맙소. 정말로 고맙소.' 아마 이일 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조그만 호의를 베푼것이 이렇게 크게 되어 돌아 올수가 있구나! 나는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 었는데.
그렇게 하여 나의 운도 좋은쪽으로 풀리기 시작 하였다. 일을 시작 하고 보니 병원은 50 병상 규모의 작은 곳으로 수술실 두개, 회복실 병상 세개, 규모가 작기는 하나 가족 같은 화목한 분위기 였다.
문제는 수술 케이스가 너무 없어 생존이 좀 힘들것 같았다. 그 나마 케이스가 하나 밖에 없는 날은 내가 공치는 날이요 좋은 보험 케이스는 자기가 다 가져가고 나는 쭉정이 무보험 이나 Meidcaid (의료보호 대상자. 수가가 형편 없다.) 케이스만 주는 구나. 그러나 어쩌랴. 여기 들어온 것만 해도 감지 덕지지. 겨우 겨우 생활을 꾸려 나갔다.
새 생활에 적응 하며 일년 쯤 지났을까? Dr.F 가 나보고 말했다. ' 너 여기서 혼자 일하면 어쩔 것 같냐?' 이 것이 무슨 소리? '내가 좀 더 큰 병원 마취과로 옮기려 하니 두달 후부터 너 혼자 여기 맡아 하거라.' '엉? 그래 알았어.'
이 것이 나의 장래의 전환점이 될 줄이야 나도 그때는 몰랐었다. 그 후 2 년간은 나의 개업 생활의 황금기었다. 집에서 15 분거리에 병원이 있었고 한달에 100 건 될까말까 하는 수술 건수 이니 전혀 바쁘지 않았고 야간 응급 수술은 이년 동안 한 번 있었나? 마취료는 내가 보아 돈이 없는 환자는 받지 않았고 아는 사람도 무료,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깎아 주기도 하였다. 또 마취과 과장 자격으로 병원 Executive Committee (병원의 최고 의결 기관)에 참석 했다.
응급 수술은 있어 보아야 오후 늦게 아니면 초저녁에 끝났다. 매일 출근 할때면 콧노래를 부르며 나왔고 오전 수술 끝나면 수술실, 회복실 간호원들이랑 다 같이 큰 참나무 가득 늘어서 있어 공원 같은 병원 뒷뜰에서 피크닉 같은 점심을 즐기거나 아줌마들이 home cooking 같이 요리 해주는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더 이상 케이스 없으면 집에 가는 도중에 있는 골프 코스로 가서 공 치기 연습 하거나 혼자서 라운딩 하는 꿈결 같은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좋은 일이 무한정 계속 되지 않는 것이 인생 살이 아닌가?
먹구름이 닥아 오고 있었던 것을 나는 몰랐었다.
|
출처: 포도원을 찾아 가는 나그네 원문보기 글쓴이: kleetraveler
첫댓글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기도 하고, 잔잔한 물결따라 몸을 맡기기도 하고, 그런데 또 풍랑이 밀려올 예정인가보다?
그런데 앞으로의 얘기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좋은 사람만 만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