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서청대로 간 이지나와
재판정으로 간 전 조선일보 출신 우종창이 대화형식으로 말하는
것을 옮긴 것
10월 13일은 사법부가 행정부의 눈치를 보는
사법부가 사망되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A4 3 장 분량의 3분 연설
재판은 10 시에 시작 되었다고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앞의 재판에서는 검은색 옷차림으로 나왔는데
그 날은 자주색 옷을 입고 안경도 끼고 나왔다고 하엿다
재판이 시작 되자
유영하 변호사에게 마이크를 달라고 하였다
방청객은 평소에 40명 정도 왔는데
16일 재판에는 30 명 가량 왓다고 하였다
A4 3 장의 연설을 약 3분동안 읽어 내려갔다
중요한 대목은 법이 정한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재판부에 대한 믿음을 잃어 버렸다고 하였다
그 연설을 읽자 유영하를 제외한
나머지 변호사들이 빠져 나갓다고 하였다
10시 30분 유영하 변호사도 사임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법정 안은 우는 소리로 야단 이었다고 한다
방청객중 여자 한명이 "저를 사형 시켜 주세요" 하다가
법정 밖으로 퇴장 하라고 하였는데
그 여자는 조원진과 같이 단식 투쟁 하는 여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종창은
김희종 행정관, 김한수 행정관, 홍정필(중앙일보 아들),
홍석 현, 고영태가 어떤 관계 인지도 조사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변희재도 그와 비슷하게 이야기 하였다
10월 17일 국감장에서 조원진 은
김희종, 김한수, 홍정필, 홍석현 관계도 조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더불어 민주당 이춘석은 국민의 대표라 이야기 했고,
열 받은 김진테는 열받아 고함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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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먹고 사는 정미홍은 목소리 아끼세요
목소리 잘 관리 해야 합니다
"이 내용은 정미홍이 보면 꼬시다고 할 것인데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천막이
경찰의 날 행사 대비 현장점검에 나선
경찰청 헬기가 뿜어내는 바람에 뒤집히고 있다. 2017.10.16
지만원도 보고 광주 5.18 때
8층 건물 전일 빌딩에 헬기 기총 사격을
하였다는 인간들이 보면 좋아 할 것인데
헬기 바람이 얼만나 쎈지
참깨 방송 김종환님도 너무 열받지 마세요
주옥순 님은
5 월 달엔가
박정희 생가 앞에서 보았습니다
대구 서문시장 앞에서는 서석구 가 여러 사람들에게 외치고
변희재는 논리적으로 맞추고
지나간 옛일이 기억 난다
1961년 국민학교 처음 들어거서
엠프에서 날마다 흘러 나오는
동트는 새 아침에 어둠을 뚫고
찬란히 솟아 오른 혁명을 뚫고
죄악을 뿌리 뽑고
웃음을 심고
새나라 새 살림을 호령하려나
아! 아! 감격의 새날이다
오! 새날이다.
그 노래가 5,16 혁명가라는 것을 몇년전에 알았다
내가 국민 학교 들어 가기 전에 나보다 5년 선배인 형인 받아왔던
홍보물 표지에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잇엇다
내가 국민 학교 다닐 대
미국 원조로 온 옥수수 가루로 빵도 학교 급식소에서 쪄 주고
컵에 옥수수 죽도 먹고
분유 가루를 물에 타서 만든 것을 바케스에 가지고 와서 한
컵식 먹기도 하였다
이렇게 미국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보고
미국 은혜는 다 잊어 버리고 산다
1962년 선거에선가
윤보선, 송요찬,허정, 장면, 박정희 등이 나온 홍보물이
애들이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송아지 같다 송요찬
고향 마을 흙 벽에 붙어 있었다
9살 나이에
다른 사람들은 다 늙어서 보기 싫었고
박정희는 그때 나이 43 살 정도 밖에 안되었으니까
내가 대학 다닐 때 박정희는 통일벼를 보급하고
공판은 다른 벼 가격과 같이 밭아서
아버지는 늘 박정희를 좋아했다
며칠전 1928년생 할아버지도
벼 농사 지으면 1 마지기(200평, 600 제곱미터)에서
비료 공장이 없으니
비료도 없고 하여서
기껏해야 소 오줌 똥 모은 것이나
화장실 똥 퍼다가 거름을 하니
벼가 요즈음 40 킬로 가마에 2 푸대도 안 나온다 그랬다
그런데 통일벼 이후 자꾸 품종을 개량해서
지금은 10 푸대 정도 나온다
고향에서 구미도
걸어서 5 시간 정도 되면 되엇고
아버지 나이도 박정희 보다 한살 작았다
고향에는 한 버지와 같은 나이인가 한살 작은 사람은
박정희가 다녔던 같은 대구 사범 나와서
고향 근처에서
국민학교 교장 까지 하였다
아버지가 국민 학교에 들어 갈 나이인 1928 년에는
국민 학교도 없었다
1929년에 4년제로 문을 연
고향 집에서 3 킬로 떨어진 고향의 국민학교는
2 학년인가 다니다 월사금 나락 2되(벼) 5 리터 정도도 못내게
되어 학교를 그만 두었다 하였다
지금 세상에는 애들에게 너무 매달리다 보니
세월호 같은 이야기도 등장 한다
아버지 당시에는 홍역이 닥치면 동네 마다 애들이
여러명 죽었다고 하였다
컴푸터 가지고 박근혜를 이야기 하는 자들아 박근혜가 누구인줄
알기나 아느나
박근혜는 박정희 딸로서
그 당시 대한 민국에는
전공도 없었던
서강 대에서
전자과 나와서
프랑 스로 유학 가서 공부하다가
육영수 죽고 돌아 와서
육영수 자라를 메꾸었던 사람이다
박정희가 치르는 회사 세우는 곳마다 따라 다니면서
훈련 하였던 사람이다
연설은 아무나 잘할 수 있는게 아니다
박정희 연설을 70 년대 기자 회견에서 유명 하였다
그리고 박정희 옆에서 엄청난 훈련을 받앗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포항 제철을 세우는데 힘쓴 사람은 박태준이다
포항 제철 앞에는 우리나라 제일 좋은 기업이
대구 아래의 상동 광산 중석 캐서 파(수출)는 곳이 었다
싱덩 광산 사진은 우리형 중학교 지도 책에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형 지도책에 우리나라 공장들은
북한 흥남의 비료공장
(일본은 압록강 상류를 막아서
허전강, 부전강 등의 흐름을 동해로 바꾸어 낙차를 크게 하여
전기를 많이 생산 하여 흥남 질소 공장에 보내도록 하였다)
충주 비료공장
나주 비료공장
장항(익산) 재련소
삼척 시멘트 공장 밖에 없었다
서울 공대 조선과 졸업하고
충주 비료 공장에서 일한 사람도 있었다
회사들이 없으니
취직할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에 있는 대한 조선 공사는 기껏해야 1 만톤도 안되는
작은 배 만드는 곳이 었지만
1960년대 까지만 하드라도 들어 가기 엄청 힘들었다
그러다가 1974 년에 현대 중공업 준공 해서 회사 돌리고
조선 공사는 처음에 대우 조선을 시작 했지만
못하고 대우가 인수 해서 대우 조선으로 키웠다
거제에 대우 조선과 삼성 조선이 있으니
1968년에 통영에서 거제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1968년에 내가 중학교 2 학년 때 수학 여행으로
기차타고 부산 가서
부산에서 배 타고 통영(충무)로 가면서 다 보았다
나보다 몇살 많은 선배가 그곳에 근무 하였다고 한다
박태준은 박정희가 힘껏 밀어주는 덕택으로
포항 제철을 세우고 사장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박정희가 가장 잘한 업적은 한글 전용 책이다
내가 중학 1 하년 때만 해도 한자도 섞여서 나왔다
한문을 배운 사람들은 그것이 불만이다
아직 까지도 한글과 한자 같이 사용해야 좋다고 하는
늙은 학자들이 많다
박정희가 강제로 밀어 붙였다
이승만이 독재 했다고 나쁘다고들 하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서재필(1864-1945)은 친일파다
이승만(1875-1965)은 독재자다 하는데
서재필은 독립 협회 만들어서
조선 시대 중국 사신을 맞이 하였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한글과 영어로 된 독립신문 만들 다가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서 조선을 위해 일한 사람이다
얼마나 조선에 대한 배신감을 가졌던지
해방 되고도 대한 민국으로 돌아 오지 않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도록 밀어 주었던 사람이다.
이승만도 고종 아래서 공부 하였지만
차츰 선교사들이 전하준 성경도 공 부 하고 하였는데
잡혀서 감옥으로 갓다
감옥에 갓다가
나와서는 미국으로 가서 공부해서
프린 스턴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해방 후 돌아 와서
하지 군정 아래서
대한 민국이 있도록 노력 한 분이다
해방 때도 이승만은 70살 할아버지 인데
김일성(김성주)은 33살 풋나기 였다
그래서 김성주 라는
자기 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이름을 팔고 다녔다
사진도 조작이다 지금도 마찬 가지로
거짓말을 많이 팔고 다니고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