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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후천세계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 김석진, 『우리의 미래』 (대유학당, 2009.)를 읽고 -
남궁효
사회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지난 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문제로 지샜다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정부는 의당 자신들이 국민 앞에서 내걸었던 정치적 공약을 단계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떳떳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숨기고 피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켜 왔습니다. 채동욱 검찰총장 중도 하차, 윤석렬 검사 좌천, 이승만 신봉자인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임명, 친일 독재 미화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도입 및 강제 채택 공방으로 한 해를 보냈고, 막바지에는 철도 민영화로 의심되는 ‘수서발 KTX 분리 사업’ 강행과 그에 반발한 철도노조의 총파업, 공권력의 민주노총 폭력 진입 사건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앞으로 해결해 나아가야할 사회적 과제가 첩첩히 쌓여있건만 현 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으로 겉으로는 엄청 단호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전전긍긍 변명으로 일삼다가 아까운 한 해를 그렇게 흘려보냈습니다. 복지 공약과 경제 민주화 하나 보고서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참으로 어이없고 억울하기 짝이 없어 “도대체 정부가 우리에게 뭔가?” 하는 새로운 화두를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의 미래』를 읽게 된 것은 작년 여름께 였는데, 아주 우연히 인테넷 서점을 뒤지다가 한국 주역(周易) 연구의 대가의 예언서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도 세상이 말도 안 되게 엉망으로 흘러가면 비결(秘訣)을 찾고 거기에 제시된 미래상에 희망을 걸고 현실을 이겨내거나 뒤엎기도 해왔던 적이 많습니다. 국민의 절반이 대선 후 멘붕을 겪고 지난 일 년간의 정치적 퇴행으로 실망감이 큰 이 즈음에 이런 책이 혹여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2008년 세계적 대공황의 위기가 찾아들었던 시기에 주역 연구로 80평생을 살아온 대산 김석진이 그의 제자들과 한반도 앞날의 운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미 세월이 흘러 2014년에 이 글을 읽어보면 과연 맞는 일도 있고 과연 그런가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신년 토종비결 보는 셈으로 국가의 운세를 살펴본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산 김석진의 제자들은 다음의 네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하나, ‘지금 왜 우리가 이렇게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가?’
둘, ‘혼란을 다스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셋, ‘혼란은 언제쯤 안정이 되는가?’
넷, ‘그 후에 어떤 세상이 전개되는가?’
그에 대한 대산의 답변도 대략 넷으로 요약이 됩니다.
첫 번째는 세계의 중심은 대한민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둘째, 새로운 문명과 제도가 탄생할 때가 되었다.
셋째, 주역적으로 볼 때 세 제도의 탄생은 앞으로 10년 이내의 일이고, 그것은 홍익인간 사상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넷째, 그 전단계로 한국·일본·중국의 3개국이 연방제에 근접하는 친밀성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금융시장을 유치하고, 한글을 세계화 시키고, 상수역학 한의학 등의 소프트웨어가 될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
대산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꽃샘추위이고, 그러한 혼란을 모두 경험하여 새로운 사상과 제도를 만들라는 역사적 사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왜 이러한 진단이 나왔냐고 묻자, 대산은 말했습니다. “음과 양은 한 뿌리에서 나왔고, 이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에 우선하는 선(善)은 음과 양의 균형인데, 현재의 혼란은 양이 음보다 월등히 성해졌기 때문에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한 용틀임이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의 사명은 그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데 있고, 그 방법은 ‘홍익인간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들었듯이 ‘홍익(弘益)인간 철학’은 글자 그대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단군이 고조선을 다스리던 시절의 정치 이념이라고 합니다. 고대적이니 만치 아주 단순하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본질은 변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대산은 홍익인간철학이 “그것은 바로 나와 너가 하나가 되고, 귀하고 천한 것이 하나가 되는 사회를 이루려는 철학이요 사상이다.”라고 부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남도 잘 살아야 가능하다는 철학이고, 우리 민족만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민족도 잘 살아야 된다는 사상이다. 또한, 사람뿐이 아니고 모든 생물을 비롯하여 무생물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념이다.”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말씀은 요즘처럼 남을 밟고 올라서는 근현대문명과는 아주 대조적이어서 쉽게 다가오지 않을 내용이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이야기로만 상상하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음양오행적 주역의 사상에서는 세상의 일이 극치에 다다르면 반대로 변한다[극즉반(極則反)]는 이치로 2~300년 지탱해온 서구 중심의 근대과학문명도 이제는 물질의 극단에 이르러 수많은 폐해를 낳고 개인-공동체-생명체-우주로 이어지던 고대의 세계관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예언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새로운 문명과 제도가 탄생할 때가 되었다
교육계 문제로 이야기하면, 고교 졸업자의 80% 가량이 대학이나 전문대에 진학하는 구조는 분명 물질 문명과 과열 경쟁 사회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문계고가 우수한 학생으로 몰리고 일반계고가 도저히 대학갈 역량이 안 되는 학생들로 절반 이상이나 채우고 있는 현재의 교육계 상황,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학원을 7~8개나 순례하는 모습은 도저히 정상적인 교육계의 모습이 아닙니다. 제가 요즘 치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일산에서 서울 동소문동까지 1시간 반을 달려가 치료받고 옵니다. 치과는 꼭 아는 사람에게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해서 아는 분의 소개로 멀리 다니고 있습니다. 그분도 요즘 치과의들이 임플란트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을 정도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으면 이 역시 자본의 논리에 휘말린 물질의 과잉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문제로 들어가보면, 밀양 송전탑 사태는 참으로 끔찍한 국가 폭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어납니다. 서울 등의 대도시의 전력 수요를 위하여 국토 끝단에 원자력(핵)발전소를 설치하고 그 사이로 100미터 높이의 송전탑을 설치하는 일은 최소한 관계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만일 주민들이 반대하면 송전탑 설치는 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국가와 한국전력이 우월한 권력과 힘을 앞세워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폭력으로 찍어누르고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려는 모습은 과거 군부독재권력의 공공력 집행이나 다를 바가 없지요.
이웃나라에서 핵발전소가 붕괴되는 참사(후쿠시마 사태)를 겪고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역지사지로 우리의 핵발전 현황을 되돌아보면서 핵발전소 주변의 주민들과 국민 전체를 위해서라도 탈핵한국으로 나가는 것이 합리적 수순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독일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탈핵을 선언하고 2020년이나 2030년에는 핵발전을 0로 하겠다는 천명을 하였는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위험을 못 느끼고 핵발전을 더욱 증가시키는 역행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민들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모습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소위 핵마피아의 이익만을 공고화하려고 합니다. 선진화를 그토록 외쳐대던 이명박 정부나 창조경제 운운 하는 박 정부는 왜 선진국의 탈핵 추진 사례를 배우려 하지 않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지난 연말에 불거진 ‘철도 민영화’ 문제의 경우는, 공공재인 철도 산업을 ‘효율화’와 ‘적자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워 ‘민영화=사유화’함으로써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의 이익에 충성을 다하는 정치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의혹 속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의료계조차 파업에 나서고 있는 형국임을 보면 분명 ‘신자유주의’라고도 불리는 자본주의 문명의 폐해를 여실히 보게 됩니다. 미국의 의료보험계를 보면 민영화의 결과로 5천만 명의 미국인이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여 고통에 빠져 있고, 이를 개혁하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소위 ‘오바마 케어’가 보수적인 공화당 세력의 공세 아래 무산되고 있음을 우리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미국이야말로 현대자본주의 문명 국가의 극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SBS 「최후의 권력」 시리즈나, 「최후의 제국」 시리즈가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주의-자유주의의 극단화인 신자유주의의 ‘민영화=사유화’ 정책은 공동체-민족-국가의 의미를 왜소하게 만들고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기에 마침내 미국이나 유럽에서 ‘1:99’의 대결의식을 낳기에 이르렀습니다. SBS 「최후의 권력」 5부에 보면, 거대 국가주의나 대의제 민주주의 보다는 지역 자치제와 직접 민주주의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컨대 자본(물질)이 주인인 세상에서 사람이 주인인 세상으로의 전환인 셈이지요.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대하여 주역의 세계는 낮이 길면 밤이 오고, 추위가 길어지면 따듯한 봄이 오듯이 개인 보다 우리, 소수 보다 다수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점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대한민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역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반도와 만주 땅은 ‘간방(艮方)’으로 문명이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공자도 주역 설괘전에서 “간방에서 만물이 끝나고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終萬物始萬物者 莫盛乎艮) 유럽에서 발생한 근현대과학문명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정치 체제를 앞세우면서 한반도에서 대치하면서 마치 용광로처럼 지난 반만년 동안의 각종 인류 사상과 체제를 넣고 융합시키는 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체제의 대결도 70여년이 지나자 이제(2008년)는 양대 진영의 대치가 풀어지는 시기가 되었으며, 앞으로 6년은 이제까지와 비교도 안 될 혼란이 발생하겠지만 2014년 갑오년에는 후천세계의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대산은 팔순 회고록 『대산석과』(2007년 출간)에서 “자년(2008) 축년(2009)에는 확실한 심증이 가지 않지만(子丑猶未定), 인년(2010) 묘년(2011)에 대강 변한 세상의 일을 알게 되고(寅卯事可知), 진년(2012) 사년(2013)에 좋은 지도자가 나와 후천시대를 열어나가고 (辰巳聖人出), 오년(2014) 미년(2015)에 좋은 세상이 오는 것 아닌가(午未樂堂堂)?”라고 옛부터 내려오던 비결을 풀이하는 예언을 남겼습니다. 이에 대하여 제자들이 질문을 물어오자, 대산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경인년(2010)을 중심으로 선경 3년(2007~9)과 후경 3년(2011~3)의 가장 변화가 많으며, 그러한 변화가 끝난 갑오년(2014)이 되면 북한의 변화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왜 전해오는 말로 ‘가봐(甲午)야 확실히 안다’지 않아? 경인년에 발단한 문제가 갑오년에 가서 결말이 나는 거지.”
대산과 그의 제자들은 2008년 세계대공황 위기 당시 한·미간의 통화 스와프를 보면서 동아시아 5개국(한·일·중·대만·홍콩)이 소유한 4조 달러를 우리나라에 유치하는 동아시아 금융기구를 제안하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되려면 한·중·일 3국이 과거의 원한을 풀고 연방제에 근접한 친밀한 관계가 전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유럽이 유럽연합으로 대륙화되고 미국이 캐나다 등과 아메리카를 묶는 대륙화를 진행시키고 있는 즈음에(대륙화에 대해서는 제러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에 자세히 나옴) 우리 동아시아도 한·중·일 3국이 새 시대와 새 문명의 비젼을 바라보고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야 옳다고 보았지요. 어쩌면 한류(韓流)가 궁극에 가서는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걸어봅니다.
후천 세계는 무엇이 다른가?
19세기 후반부터 우리 역사에서 대두한 후천세계-후천개벽이라는 말은 주역적으로 풀이하면 음양의 이치로 변전함을 의미합니다. 밤낮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듯이 “새 세상이란 것이 무어야? 귀했던 것이 천해지고 천했던 것이 귀해지며, 드러난 것이 감춰지고 숨겨졌던 것이 드러나는 거야.” 이를 해석해서 대산이 말하기를 “... 그래서 집안 살림 하느라 숨어있던 여자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거 아니겠어? 여자 시대가 오니까 여자 국회의원 법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이 줄줄이 나오고, 세계 제일 강대국인 미국에서도 여자 대통령이 나올 뻔 했잖아....하긴 그것보다 더 큰 일이 벌어졌지. 노예로 미국에 와서 천대받던 흑인들이 사회 각층에 진출하더니 이제는 대통령까지 당선되었잖아! 그게 다 무얼 뜻하겠어. 압제만 받던 약소국가도 선진의 대열에 들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나라도 앞으로 솔선하는 나라가 된다는 가능성이고, 또 때가 되었다는 조짐들이야!”
이렇게 듣고 보면 후천세계란 이미 우리 앞에 와있는, 우리도 흔히 만나고 알 수 있는 민주화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별 다른 세계라는 인식조차 없겠지만, 19세기 조선에서 보면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나 다름없이 보였을 것입니다. 150년 전 우리의 선각자들은 어떻게 미래를 내다보셨을까요? 한 맺힌 민중의 오랜 염원과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나아가 이웃 국가와 민족 간에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 구도를 넘어서 평화적으로 교류하고 상생하는 시대로 진화하는 것이 후천세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구 생명체를 멸절시키는 핵발전 원리가 아니라 생태계와 생명을 아끼고 보호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개발, 예컨대 태양력·풍력·지열·바이오매스 등을 활용하여 생물과 무생물까지 보호하는 세상이 후천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자, 이러하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고 탈핵 한국과 지속가능 에너지 개발로 돌아서게 된다면, 남북의 갈등과 대결구도를 종식하고 평화와 상생의 관계로 나아감이 그렇고, 한중일 동아시아 연방을 이루는 것이 바로 후천세계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주역(周易)』으로 보는 『우리의 미래』는 꼭 밝고 낙관적인 미래만을 예고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밝힌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세상’, ‘모든 생물과 무생물까지도 사랑하는 세상’의 철학인 ‘홍익인간의 사상’을 펼치느냐 못 펼치느냐에 따라, 멸망의 길로 가냐 새로운 희망의 길로 가냐로 나뉘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인간의 생각과 꿈과 선택이 중요한 것이지요. 법정 스님의 법어집에 이런 말씀이 떠오릅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디 갑오년 새해에는 꽃을 많이 피우셔서 아름다운 봄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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