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27) 주문왕(周文王) : 중국 고대 주 왕조(周王朝)의 기초를 닦은 명군(名君). 은나라 서방(西方)에서 크게 덕을 베풀고 강국(强國)으로서 성장했다. 만년에는 여상(呂尙), 흔히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리는 현상(賢相)의 도움을 받아 더욱 덕치(德治)에 힘썼는데 후에 그 실력이 인정되어 은 왕조로부터 서방 제후의 패자(霸者)로서 서백(西伯)의 칭호를 사용하도록 허락받았다. 제후들의 신뢰를 얻어 천하 제후의 3분의 2가 모두 그를 따르게 되었다. 문왕의 사후 그의 아들 무왕(武王) 발(發)이 즉위하여 은나라를 쓰러뜨리고 주 왕조를 창건하였으며, 부왕 창에게 문왕이라는 시호(諡號)를 추존(追尊)하였다. 후세 유가(儒家)로부터 이상적인 성천자(聖天子)로서 숭앙을 받았는데 문왕과 무왕의 덕을 기리는 다수의 시가 《시경(詩經)》에 수록되어 있다.
* 함지(咸池) : ① 동쪽 양곡에서 돋은 해가 질 때 그곳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서쪽의 큰 못
* 야루(夜漏) : 밤 시각(時刻)
* 양곡(暘谷) : 해가 처음 돋는 동쪽
12. 대한(大旱) : 큰 가뭄
욕한풍여욕우풍(欲旱風如欲雨風)
만영인망작허공(謾今人望作虛空)
야다적지희묘윤(野多赤地稀苗潤)
창조교양염대홍(牕照驕陽惡影紅)
가뭄에 바람을 기다림은 마치 비바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 세상 사람의 바람을 속이고 그저 허공에서 메아리 칠 뿐이다
들은 황무지가 되고 물기 머금은 식물 드물고
창을 비추는 교만한 햇볕은 사악한 모습처럼 붉다
시기점만가앙제(時期漸晩稼秧際)
천의의념윤물중(天意宜念潤物中)
이발여패위학구(爾魃(주28)如伂爲虐久)
원장소어옥황통(願將訴語玉皇通)
점점 모심는 시기가 늦어만 가는 이 때
하늘의 뜻을 마땅히 생각하면 만물을 적시는 마음이니
이 한귀가 자리 잡고 행패가 오래되었으므로
마땅히 아뢸 소원은 옥황상제께 뜻을 통하게 함이다
주28) 가뭄과 뜨거운 햇볕, 한귀(가뭄 귀신)의 행패는 일제의 탄압으로도 볼 수 있다.
13. 성(星) : 별
성무도수신천행(星無度數信天行)
신야앙간가송영(晨夜仰看可送迎)
소회남극인다수(昭回南極人多壽)
중공북진위기성(衆拱北辰位己成)
별은 그 수를 셀 수 없이 하늘을 운행하고
밤에 별을 우러러 바라보면 맞이하고 보낼 수 있네
남극이 밝게 빛나 돌아오듯 사람들은 장수를 기원하고
두 손 모아 바라보는 북극성은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네
정능강걸성위이(精能降傑誠爲異)
망혹저흉역불경(茫或著㓙亦不輕)
보상순시관계대(輔上順時關係大)
삼태최시주공경(三台(주29)最是主公卿(주30))
정성을 다하면 큰 인물을 내리고 성의를 다하면 이변이 일어날까
망망히 아득하거나 매우 흉한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니
임금을 도와 좇아갈 때 그 관계가 크다
삼태성이최고인 것는 바로 임금과 공경이다 있기 때문이다
포괘태청한동행(布掛太淸罕動行)
삼삼상대사상영(森森相對似相迎)
전암석일정응강(傳岩昔日精應降)
염락하년서경성(濂洛(주31)何年瑞更成)
삼베를 걸어 놓은 듯 하늘이 맑아서 별들이 움직여 길을 가고
숲속의 별들이 마주함이 마치 서로 맞이하는 것 같다
옛날 전해오는 바위가 정성들이면 화답하여 내려온다 하듯
염락몇 년쯤 되면 상서로운 길운이 다시 올까
주29) 삼태(三台) : ①대웅성좌(大熊星座)에 딸린 별. 자미성(紫微星)을 지킨다고 하는 세 별. 곧 상태성(上台星)ㆍ중태성(中台星)ㆍ하태성(下台星)의 각각(各各) 두 개로 됨. 삼태(三台) ②오리온자리에 딸린 삼형제별
주30) 주공경(主公卿) : 임금과 공경(周公卿), 즉 성군과 충성스런 신하가 있던 때이다.
* 공경(公卿) : ①영의정(領議政)ㆍ좌의정(左議政)ㆍ우의정(右議政)의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을 아울러 이르는 총칭(總稱) ②고관(高官)의 총칭(總稱)
주31) 염락(濂洛) : 송(宋)나라 때 학자인 주돈이(周敦頤)와 정호(程顥)•정이(程頤)를 대표하여 부르는 것으로, 이들이 살던 지역 명칭이 각각 염계(濂溪)와 낙양(洛陽)인 데서 유래한다. ‘염락하년서경성(濂洛何年瑞更成)’란 잃어버린 나라를 언제 찾을까하는 바람이다.
* 염락풍아(濂洛風雅) : 17세기 작자 미상의 책으로 성리학자들의 시를 모은 책
14. 우(又) : 별(星) 2
중호월궁명가조(衆護月宮(주32)明可助)
삼부제좌력비경(三扶帝座力非輕)
운종혹하인환처(運從或下人寰處)
무곡문창비열경(武曲文昌備列卿)
별 무리들이 월궁을 지키고밝히니 가히 도울 수 있다
삼부의 황제자리는 그 힘이 가볍지 않다
운이 따르거나 운이 다하거나 인간 세상은 그런 것이기에
무가 그릇되고 문이 융성함을 신하들은 대비해야 한다
각안전차불상행(各安躔次不相行)
유위유경사공영(維緯維經似共迎)
낙역형용주패관(絡繹形容珠貝貫)
종횡기세석기성(縱橫氣勢石碁成)
각자 편안하게 별이 운항하며 서로 떠나가지 않도록
아래위로 꿰고 좌우로 꿰어 서로 영접하듯 하네
연락부절 이어진 모습이 구슬과 조개를 꿰어 이은듯하고
종횡으로 늘어선 기세가 바둑돌의 모양을 이루었네
채동유혐초월세(彩動猶嫌初月細)
근심각소편운경(根深却笑片雲輕)
취규송세증다의(聚奎宋世曾多意)다
기강명현여열경(幾降名賢與列卿)
빛이 흔들리고 오히려 불길하면 초승달이 미미하고
뿌리 깊어 비웃게 되면 조각구름이 가볍다
송나라 시절 별들이 모이고 일찍이 많은 사상이 흘러
얼마나 많은 명현과 훌륭한 관리가 나왔었던가
주32) 월궁(月宮) : 달 속에 있다는 궁전(宮殿)
* 전차(躔次) : 별이 운행(運行)하는 길
* 낙역(絡繹) : 사람이나 수레의 왕래(往來)가 끊이지 않음
15. 하한(河漢) : 은하수
연무장어만리성(筵袤長於萬里城)
완연은색일하청(宛然銀色一何淸)
고위장신궁중견(高爲長信宮(주33)中見)
류작노산폭하성(流作廬山瀑下城)
잔치자리 길게 늘이니 만리성이로구나
은색 빛 완연하고 오로지 맑기만 한데
높이 자리하여 장신궁을 보는 듯하고
강이 흘려 깊고 그윽한 여산을 짓고 폭포가 내려 성을 이루었네
하야허명운금괘(夏夜虛明雲錦掛)
추천교결옥귤횡(秋天皎潔玉橘橫)
약무우녀년년도(若無牛女年年渡)
수식쌍성별유정(誰識雙城別有情)
여름밤 하늘을 밝혀 구름비단 걸어놓고
가을 하늘 밝고 맑아 귤을 구슬처럼 늘여놓았네
견우직녀 없었더라면 해마다 건넜으랴
누군가 두 성 있음을 알아 애틋한 정을 갈라놓았네
주33) 장신궁(長信宮) : 중국 한(漢)나라의 장락궁(長樂宮) 안에 있던 궁(宮). 주(主)로 태후가 살았다
16. 정종대왕몽중작(正宗大王夢中作) : 정조대왕이 꿈속에서 한 숨 짓다
- 고종의 퇴위와 군대해산
한양삼월초여란(漢陽三月草如蘭)
철마래시한수빈(鐵馬來嘶漢水賓)
세객쟁권미후철(勢客爭權迷後轍)
부옹빈리암래록(富翁貧利暗來塵)
한양의 삼월 풀잎은 난과 같이 고귀한데
기차오는 기적소리 한강의 손님과 같구나
열강의 권력다툼은 어지러이 갈 길을 뒤로 미루고
부자 집 영감의 빈털터리 이득이야 어두움 다가와 티끌이 되었네
삼초성전병선오(三宵聖戰(주34)兵先午)
십월뇌명제출진(十月雷鳴(주35)帝出辰)
일편복주안정지(一片福州安靜地)
가련상대구군신(可憐相對舊君臣(주36))
삼일의 성스러운 전쟁에 군대가 먼저 흩어지고
시월의 천둥소리에 황제께서 물러나셨네
한 조각 복된 땅은 편안하고 조용한 곳이었건만
옛 군신이 대립하고 있으니 가련하게 되었구나!
▪ 조선이 열강과 일제에 주권을 빼앗기는 암울한 이 시기, 수탈의 앞잡이가 된 기차소리조차 낯선 손님과 같다고 하였다.
▪ 이 시를 편집순서에 따라 1926년 이후에 썼다면 과거에 대한 회상시가 되는데, 20년 전의 일을 이제 와서 회상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적어도 당시에 썼던 시를 중간에 끼워 넣어 만약의 일제의 검열 등을 대비하고자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나, 제목이 전혀 내용과 동떨어지고 이 시집이 딸의 집에 보관되어 내려왔다는 것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주34) 군대해산(軍隊解散) : 1907년 4월 고종은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이준·이상설·이위종을 밀사로 임명하고 6월에 개최되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하였으나 미국·프랑스·중국·독일·러시아 등의 비협조로 참석과 발언을 거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준은 분을 삭이지 못해 분사하였다.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1907년 7월 19일 고종이 퇴위하고 이를 반대하는 맹렬한 군중 시위가 벌어지고 100명 가량의 서울 시위대 제1연대 제3대대 소속 무장 군인들이 시위 군중과 함께 종로경찰파출소를 습격하여 일본 경찰과 교전으로 다수의 일본 경찰과 10여 명의 일본 상인들을 살상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은 7월 31일 밤중에 우리 조정을 위협하여 군대 해산에 대한 황제의 칙령을 반포하게 하는 동시에 그 다음날인 8월 1일 오전 8시에 동대문 훈련원에서 군대 해산식이 거행되었다. 서울 시위대 제1대대장이었던 박승환은 군대 해산 명령에 항의하며 자결하였다. 남대문과 창의문 일대에서 벌어진 제1연대 제1대대와 제2연대 제1대대 장병들의 극렬한 저항에 대하여 기관포로 무장한 일본군 제51연대 소속 3개 대대 병력이 투입되었고, 이를 맞아 대한제국군은 병영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펴고 무려 4시간 이상이나 장렬한 전투를 계속하였다. 이후 9월 3일까지 지방 진위대의 극렬한 저항이 있었으며 이후 많은 군인이 항일 의병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35) 을사보호조약의 체결일이 1905년 11월 17일인데 음력으로 10월 21일이다.
주36) 1905년 11월 17일 한일협약을 강행하기 위한 어전회의에 참석한 대신은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 탁지부대신 민영기(閔泳綺),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등이었다. 이 가운데 한규설과 민영기는 조약체결에 적극 반대하였다. 이하영과 권중현은 소극적인 반대의견을 내다가 권중현은 나중에 찬의를 표하였다. 다른 대신들은 이토히로부미의 강압에 못 이겨 약간의 수정을 조건으로 찬성 의사를 밝혔다. 격분한 한규설은 고종에게 달려가 회의의 결정을 거부하게 하려다 중도에 쓰러졌다
17. 계신시(戒慎詩) : 경계(警戒)하여 삼가하다
거향하필이경화(居鄕何必異京華)
검약수신재자가(儉約脩身在自家)
소우여금심화동(所遇如今心火動)
기방막여이풍과(其防莫如耳風過)
시골에 살지만 어찌 그리 번화한 한양과 다른가
아껴 쓰고 마음 다스리며 스스로 집에 갇혀 살지만은
지금 같은 때를 만나 마음은 울화만 치밀어 올라
울화를 막는 것은 귀 막고 소문 흘리는 것과 같구나
육장제거무비초(恧將除厺無非草)
호취간래홀시화(好取看來㧾是花)
고조사양산수외(古調斜陽山水外)
창랑일곡위군가(滄浪(주37)一曲爲君歌)
수치스러움을 잊고 지내면 잡초만도 못하리라
좋아하는 것을 보아하니 오직 이 꽃뿐이다
옛 노래도 석양이 들어 산천의 아름다움에는 어색하지만
창랑가한 곡을 임금 향해 불러본다
주37) 창랑가(滄浪歌) : 중국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어부사(漁夫辭)를 일컫는 말. 즉 간신(姦臣)의 모함을 입어 관직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초췌한 모습의 자신의 처지를 시로 읊조린 것
18. 사양(斜陽) : 석양 빛
석양홍사효양홍(夕陽紅似曉陽紅)
도사청강투수궁(倒射淸江透水宮)
미휘운제원홍반(微輝雲際遠鴻伴)
편영천애고목동(片影天涯孤鶩同)
석양이 붉은 것은 새벽 동트는 빛과 같고
거꾸로 맑은 강 비추니 수궁이 드러나 보이네
살짝 빛나는 구름 가장자리로 멀리 기러기 짝지어 날고
하늘 끝 조각 그림자에 짝 잃은 청둥오리도 날아가네
예귀별저광의촉(曳歸別渚光疑燭)
조삽군봉채승홍(照揷群峯彩勝虹)
종도몰서동복출(縱道沒西東復出)
왕래자시조건공(往來自是助乾功)
강가 떠나 돌아오려니 햇살은 촛불처럼 머뭇거리고
무리지은 산봉우리 사이 무지개가 정말 아름답구나
하늘 길 따라 서쪽으로 지고 동쪽으로 다시 떠오르니
스스로 오고 가는 것이 하늘의 조화로다
19. 대맥(大麥) 2
맥본소재한여풍(麥本少灾旱與風)
풍등전시분전공(豊登專恃糞田功)
납전설이경삼백(臘前雪已經三白)
하중반의제이홍(夏仲飯宜製二紅(주38))
보리는 본래 바람과 가뭄의 재앙이 적고
잘 익어 풍년이 드는 것은 인분을 뿌린 밭의 공덕이다
섣달 전에 이미 눈이 내려 삼백이 지났고
한 여름의 밥은 의당 이홍으로 짓는 법이네
운기농황평상하(雲起濃黃坪上下)
조비최숙무동남(鳥飛催熟畝東南)
수단화밀운신천(水團和蜜云新薦)
유유단양설예옹(猶有端陽設禮翁)
구름이 일어나 아래 위 들판은 온통 누렇고
새는 날며 동남쪽 밭이랑에 빨리 익어라 재촉한다
물을 끌어와 감미롭게 익게 하니 새로 추천하는 농사법이요
오히려 단오에 수확의 예를 올리는 노인도 있네
전추대맥종서풍(前秋大麥種西風)
설내우함진궐공(雪耐雨含奏厥功)
양입야존동압록(釀入野樽同鴨綠)
천등침묘공루홍(薦登寢廟共樓紅)
전년 가을 보리를 서풍 맞으며 파종하고
눈을 견디고 비를 견디는 것은 예를 올린 공이다
술 빚어 들판에 술병 내오는 것은 오리가 푸른 것과 같고
사당에 오르는 것을 권하는 것은 서루가 번창하라는 것과 매 한가지네
숭고축포재촌북(崇高築圃在村北)
강속수차종수동(繮屬輸車從水東)
타타성중인사망(打打聲中人事忙)
해당화하최한옹(海棠花下最閒翁)
높은 곳에 채소밭 일군 곳이 마을의 북쪽인데
말 몰아 수차 돌리고 동쪽 물을 끌어 온다
딱! 딱! 딱! 소리 내며 사람들은 일이 바쁜데
해당화 아래에는 아주 한가한 노인 앉아있다
주38) 이홍(二紅) : 아직 벼가 수확되지 않은 여름에는 곡물류 수확종은 보리(6월)와, 감자(6월), 옥수수(7뤌 하순~8월상순), 강낭콩(6월~10월) 등인데, 이황(二黃)이면 보리와 감자인데, 이홍(二紅)이 이황을 말함이 아닐까?
* 삼백(三白) : ①음력 정월(正月)에 사흘 동안 내린 눈을 일컫는 말 ②납향 전(前)에 오는 눈 ③흰밥과 무와 백비탕(白沸湯:맹물탕)
* 침묘(寢廟) : ①종묘(宗廟) ②임금의 무덤 앞에 '丁'자 모양으로 지은, 제사(祭祀)를 지내는 집. 정자각(丁字閣). 침전(寢殿)
20. 등봉암(登鳳岩) : 봉암에 올라
개연봉상좌여루(開筵峯上坐如樓)
안제창망지점두(眼際蒼茫指點頭)
원망모수천경산(遠望眸隨千景散)
고등신재반공부(高登身在半空浮)
마치 누대에 앉은 것처럼 산봉우리 올라 자리를 펴니
시야는 창망하고 가장 높은 곳을 가리키네
눈을 좆아 멀리 조망하면 천 가지 경치가 펼쳐 있고
몸은 높이 올라 반공에 떠있다
암화작작탐춘접(巖花灼灼探春蝶)
야수청청환우구(野樹靑靑喚雨鳩)
약해환우혼몽리(若海患憂渾夢裡)
투한금일파진수(偸閑今日罷塵愁)
바위틈 꽃은 활짝 피고 봄 나비 찿아도 보네
산에 사는 나무 푸르고 비 내리면 비둘기 부르네
바다 같은 큰 걱정이 있다면 꿈속에 섞여 있을 테니
휴일 틈낸 오늘에는 세상 수심을 떨치리라
21. 립(笠) : 삿갓
첨두원복일반동(尖頭圓腹一般同)
하허교재리시통(何許巧才理始通)
유자협래운영외(遊子挾來雲影外)
촌옹재립우성중(村翁載立雨聲中)
머리끝은 뽀족하고 가운데 둥근 것이 일반 것과 매 한가진데
어찌나 솜씨 좋게 만들었는지 세상의 이치가 다 통하네
나그네가 쓰고 올 때는 구름이 가려주지 않는 곳이고
시골 노인네가 쓴 곳에는 빗소리가 들리네
성음차일휴언개(成陰遮日休言盖)
피서취량우승풍(避暑就凉又勝風)
다조매년삼하사(多助每年三夏事)
농가시역불무공(農家是亦不無功)
그늘 만들고 햇볕 가리고 말을 거두고 쉬게 하네
피서하면 바로 시원하니 또한 쾌적한 바람이 불지
매년 많은 사람 도와서 여름 석 달을 보내는 일이란
농가에선 역시 그 공을 무시할 수 없네
22. 송(松) : 소나무
학서불위근청성(鶴棲不爲近靑城)
차수절고운문정(此樹節高韻文情)
엽첨양향성주기(葉尖釀香成酒氣)
지상유삽진금성(枝常留颯奏琴聲)
학은 가까운 푸른 솔밭에 살지 않네
이 나무 절조가 높아 무릇 시문에 오르내리지
잎은 뽀족하고 술 빚으면 향기 좋아 술기운 가득 하고
가지엔 항상 바람소리 거문고 연주소리 들리지
진황봉후첨명서(秦皇封後添名徆(주39))
도금무시수애정(陶(주40)今撫時受愛情)
설타상침휘미개(雪打霜侵輝未改)
고목신열십장생(故目身列十長生)
진시황은 책봉된 후 이름에 ‘곧게 갈 서(徆)’를 추가했고
질그릇은 위로할 때 따뜻한 정 주고받는 수단이 되었지
눈바람 때리고 서리 내려도 그 빛남은 바뀌지 않고
옛적에 눈과 몸은 십장생이 되었지
주39) 진시황제(秦始皇帝, 기원전 259년 1월 ~ 기원전 210년 음력 6월 14일)는 전국 칠웅 진나라의 제31대 왕이자, 중국 최초의 황제이다. 성은 영(嬴), 이름은 정(政). 혹, 씨는 진(秦), 조(趙)다. 기원전 259년 한단에서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온 진나라 공자 영자초와 그 부인 조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구절은 소나무의 절조를 ‘곧은길을 가다’의 상징으로 보고 서(徆)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40) 질그릇에 소나무를 심어 분재로 많이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23. 맥랑(麥浪) : 보리 물결
교변여충파만공(郊變如河波滿空)
출문난득변서동(出門難得辨西東)
청광편야회점우(靑光遍野同沾雨)
층랑번천위접풍(層浪飜天爲接風)
들이 변하여 하천 물결이 하늘에 가득 찬 것 같고
집 나서니 동서구분이 어렵다
온통 들판은 푸른빛 비에 젖은 듯하고
층층이 물결쳐 하늘 나부끼니 바람도 화답하네
불가행주영가객(不可行舟迎賈客)
초의입추과촌옹(梢宜立秋過村翁)
농부자축전간지(農夫自逐田間至)
각사종래벽해중(却似從來碧海中)
들판에 배 띄워 가객을 맞이할 수는 없는 일이지
조금 지나면 입추인데 지나가는 시골 노인장
농부가 스스로 쫓아가 밭 가운데 이르니
도리어 누가 쫓아오는 듯 어느새 푸른 바다에 빠져있네
24. 앵(鸎) : 꾀꼬리
앵앵제처객정거(嚶嚶啼處客停車)
녹수번음시칭거(綠樹繁陰是爾居)
남맥척판여식금(南陌擲梭(주41)如織錦)
동성환우승전서(東城喚友勝傳書)
꾀꼬리 지저귀는 곳에 손님은 수레 멈추고
녹수 우거진 그늘 이곳이 바로 내가 사는 곳이네
남쪽 두렁으로 북던지는 것이 마치 비단 짜는 듯하고
동쪽 성에서 친구 부르는 소리는 승전소식 전하는 것 같네
교전생설성화봉(巧傳笙舌聲和鳳)
신불금의류이어(身拂金衣類異魚)
전전청음문사경(囀囀淸音聞四境)
시인만작흥비속(詩人晩酌興非疎)
솜씨 좋게 애기하고 잔치자리 조잘대듯 봉황에 화답하고
몸 씻고 금빛 옷 걸치니 물고기 무리들과 다르네
지저귀는 맑은 새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데
시인이 늦게까지 술잔 기울이니 그 흥이 멀어지지 않네
주41) 사(梭) : 북(베틀에서,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푸는 기구), 모심을 때 눈금 띠 줄을 맞은 편 사람에게 던져서 긴 막대에 매고 중간 사람들이 벼 모종의 간격을 맞추어 심을 때도 쓴다.
25. 홍(虹) : 무지개
선대우여만장횡(仙帶紆餘萬丈橫)
여하차질숙연생(如何此質倏然生)
조채동요하공영(朝彩動搖霞共映)
만광혁혁우신청(晩光赩赫雨新晴)
신선이 허리띠 구부리니 가로질러 길이가 만장일세
어찌 이 모양이 갑자기 생기는가
아침 고운 빛깔 오락가락하더니 노을이 같이 비추고
저녁 햇살 붉게 빛나고 비 그쳐 새로이 맑아졌네
도수황사간류음(倒垂怳似澗流飮)
가호각의운반경(駕互却疑雲畔耕)
막도견시무기세(莫道見時無氣勢)
능수천지대뇌성(能收天地大雷聲)
아래위 뒤집혀 황홀함이 골짜기 물 마시는 듯
머뭇거림 없이 멍에 얹고 소를 몰아 구름밭 가네
길 없어 바라 볼 때 아무 기색 없는데
온 세상 거둘 듯이 천둥소리만 들리네
채교쌍출반공횡(彩橋雙出半空橫)
음흠승양운차생(陰敾勝陽云此生)
엄엄장시운공헐(晻晻藏時雲共歇)
황황견처우회청(煌煌見處雨同晴)
무지개다리 쌍으로 돋아 가까운 하늘을 가로지르니
음기 다스리고 양기 뻗어나 무지개가 나왔구나
어두운 곳에 숨어있다 구름과 함께 쉬고
비와 맑은 하늘 빛나는 곳에 함께 하네
입헌핍과시객좌(入軒逼過詩客坐)
삽교총착야인휴(揷郊襲着野人耕)
최린수거장림후(最憐收去長霖後)
요수청선홀난성(繞樹淸蟬忽亂聲)
집에 들어와 가까이 들르니 시 짓는 객의 자리라서
삽 들고 들옷 입고 시골사람 밭두렁 가네
가장 가여운 것은 장마 후에 수확하러 가는 일인데
둘러싸인 나무에 매미소리만 어지럽네
26. 관창(觀漲) : 큰물 나다
* 변년천반(邊年顚般) 운시(韻詩)
창시난충범기변(漲時難可泛其邊)
홀지소천성거천(忽地小川成巨川)
쾌윤화가풍차세(快潤禾稼豊此歲)
상원전답승전년(尙元田畓勝前年)
큰 물 날 때 냇가 넘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갑자기 작은 내가 큰 내 되었구나
촉촉이 젖어 벼농사는 금년에 풍년 들고
좋은 전답은 전년 수확 넘어 서겠지
건도당석성감장(健濤撞石聲甚壯)
해랑도천세사전(駭浪滔天勢似顚)
편시황하분차험(遍是黃河奔且險)
도부망막즉행반(棹夫妄莫卽行船)
세찬 물결 돌에 부딪쳐 그 소리가 웅장하다
놀라운 물결소리 하늘을 뒤집을 듯 높게 울려 퍼지고
황톳물 급류되어 분주히 소리치며 흐르는데
뱃사공은 잊지 않고 벌써 배를 저어갔네
하론강장탕무변(何論江壯蕩無邉)
범일농간역사공(泛溢壟間亦似恭)
분류차처귀검처(奔流此處歸何處)
대창금년사거년(大漲今年似去年)
무슨 말을 하던 강은 굳세고 넓은 것이 끝이 없다
밭두둑 사이로 물 넘치는 것이 또한 공손하다
이 물이 급히 흘러 가는 곳은 어디인가
금년 큰물은 작년과 닮았구나
쇠안혹능양류발(衰岸或能楊柳拨)
범전유공화가전(犯田維恐禾稼顚)
불식천심황랑저(不識淺深黃浪底)
욕위급도가제반(欲爲急渡可提船)
허술한 강안에 버드나무 혹시 뽑혀질까
밭이 떠내려가고 벼 엎칠까 걱정이다
황토 물결 바닥은 얕은지 깊은지 알기 어려워
급히 강을 건너려는데 배로 가는 것은 가능할까
* 변(邉) : 가변, 邊(변)의 와자(訛字:잘못된 자)
27. 희청(喜晴) : 장마 끝 청명한 날씨에 환호하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였듯이, 국민총생산의 절대비중이 농업에 달린 시대인지라, 그 흥망은 농사의 풍흉에 달렸다. 오랜 가뭄에 시달린 끝에 장마 비가 내리고 쾌청한 날씨로 그 위업을 알렸다. 하늘이 내린 은총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기쁘게 하였고, 마치 비갠 후 누구라도 붙들고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이 시에 담겨있다.
어린 시절인 1960년대, 가뭄이 들면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아낙네는 대두병에 물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입에는 버들잎을 물고 대로를 줄지어 걸어 기우제 지내러 가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 심음심심금(尋陰深心金) 운시(韻詩)
운견우각원동심(雲牽雨脚遠㠉尋)
청경이수만학음(晴景已收萬壑陰)
림여최희곡비윤(霖餘催喜穀肥潤)
료진방간계천심(潦盡方看溪淺深)
구름 이끌고 비는 다리 건너 멀리 민둥산으로 물러가고
청명한 경치는 골짜기마다 그늘을 드리운다
장마는 기쁨 남기고 곡식은 살찌고
큰비 끝나 돌아보니 시내는 얕아진 곳도 있고 깊어진 곳도 있다
상자로통개망안(商者路通開望眼)
농부사태기환심(農夫簑脫起歡心)
초대량생의일음(稍待凉生宜一飮)
노두하석송천금(壚頭何惜送千金)
상인들은 길을 터서 손님을 기다리고
농부들은 도롱이 벗고 기쁜 마음에 들떠있다
기다리니 시원한 기운 돌아 마땅히 한 잔 해야겠지
천금을 쓰더라도 주막 머리 돈이 아까우랴
희득신청희우심(喜得新晴喜友尋)
일광사송운흑음(日光射送雲黑陰)
우수세각귀봉원(雨收細脚歸峯遠)
계흡홍도입해심(溪吸洪濤入海深)
기쁨을 얻고 청명하니 또 벗을 찿게 되네
햇볕 들어 검은 구름 쫓아내고
비는 가늘게 그쳐 다리 건너 봉우리 멀리 돌아가고
시내는 크게 불어 깊은 바다로 흘러가네
창류낙도통행로(漲流落渡通行路)
제색영존동취심(霽色映樽動醉心)
화가윤수장림후(禾稼潤秀長霖後)
첨사농가억만금(添賜農家億萬金)
큰물이 통행로에 흘러 넘친다
비갠 후 햇살이 술 단지를 비추니 술 생각이 간절하다
장마 후에 벼가 물을 머금어 커가는 것은
농가에 억만금 선물을 안겨 준 것이라네
28. 신정(新亭) : 정자를 새로 짓고
피대벽지축신정(披㓫闢地築新亭)
등차심신광차성(登此心神曠且醒)
서린불탑천년백(西隣佛塔千年白)
병접봉암일말청(幷接鳳岩一抹靑(주42))
땅을 일구고 깍아 정자를 새로 짓고
여기에 오르면 심신은 잠깐 깨어 맑아진다네
바로 서쪽 불탑은 천년동안 희고
봉암은 이웃에 있어 오로지 푸르구나
양수재방잉작동(兩樹在傍仍作棟)
소계임하자환정(小溪臨河自環庭)
최애한천류석극(最愛寒泉流石隙)
시의양주수영붕(時宜釀酒數迎朋)
두 그루 나무가 곁에 있어 용마루를 만들어주고
작은 시내 하천에 닿아 뜨락을 스스로 돌아 흐르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돌 틈을 흘러나온 차가운 샘
가끔은 적당히 술을 빚어 친구를 오라하네
주42) “서쪽 불탑은 희고, 이웃 봉암은 푸르다.” 하여 백청이 댓 구를 이룬다. 이곳이 거주지이자 학당을 운영한 고달사지 동북쪽의 장소이다.
29. 풍(風) : 바람
* 향앙난량광장(香央暖凉光張) 운시(韻詩)
경혹비사소불향(勁或飛沙小拂香)
기빈래자수중앙(起蘋來自水中央)
표전화신기허난(飄傳花信幾噓暖)
전작송도상송료(轉作松濤常送凉)
가끔은 세차게 모래 날리고 조금은 향기를 떨치며
개구리밥을 일으켜 물 가운데로 흐르게 한다
바람 나부껴 꽃소식 전해오면 따뜻한 기운이 불려오기도 하고
소나무 흔드는 소리 나면 항상 시원한 바람을 보내지
조화금곡포인택(調和琴曲布仁澤)
수반옥비공경광(隨伴玉妃供景光)
진력양운응유의(振力楊雲應有意)
치금대연패궁장(致今大宴沛宮張(주43))
조화로운 거문고 타는 소리 인자롭게 연못에 퍼지고
함께 오신 옥비께서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니
무성한 버드나무도 무슨 뜻 있어 화답하고
오늘의 큰 잔치가 집안 가득 성대하네
취동계화입궤향(吹動階花入几香)
흔연욕작낙무앙(欣然欲酌樂無央)
표착원두방초난(飄着原頭芳草煖)
허래정상벽오량(噓來井上碧梧凉)
바람 불어 섬돌의 꽃잎 흔들리면 책상머리에 향기가 다가와
기분 좋아 술맛 당기고 즐거움은 끝이 없다
언덕머리에서 바람 나부낄 때 방초가 따뜻해지듯
우물 위로 불어오면 벽오동도 시원하게 흔들린다네
양성우택수운영(釀成雨澤隨雲影)
전추파문루월광(轉皺波文縷月光)
훈능해온추민재(薰能觧慍阜民財)
순전불사금일장(舜殿不辭琴一張)
술 빚었는데 연못에 비 내리고 구름은 그림자 되어 따라오네
파문일어 마른 대추 굴리고 누대엔 달빛이 그윽하네
바람의 향기는 능히 노여움을 풀어주니 백성의 재산이려니
순임금의 태평성대 기억하는 것은 오직 거문고 한대뿐이네
주43) 대연패궁장(大宴沛宮張) 바람 부는 봄의 풍광을 성대한 향연(잔치)으로 표현하였다
30. 선(扇) : 부채
의추대선방청연(疑秋大扇倣靑蓮)
하일상두준비선(夏日牀頭準備先)
조화병생풍백기(造化柄生風伯氣)
염량권유세인연(炎涼權有世人緣)
가을을 주저하는 큰 부채는 푸른 연을 닮았는데
여름날 침상머리에 미리 준비하였다가
부채 자루로 조화 부려 바람 신의 기운 일으키니
덥고 시원함의 권한이 있어 세상 사람들과 인연 맺었네
단재백우가무죽(團栽白羽可無竹)
소식경라유배전(小飾輕羅猶倍錢)
번복권서다수법(飜覆捲舒多手法)
최의가객무아연(最宜歌客舞娥筵)
흰 깃털 둥글게 심으면 대나무가 없어도 되고
장식 없이도 비단처럼 가볍긴 한데 비용은 오히려 배가 든다네
고쳐서 말고 펴는 방법은 참으로 많은데
가장 어울리는 가객은 잔치자리의 무희라네
31. 묵(墨) : 먹
오색연광정사회(烏色煙光正似灰)
정규개개완연재(廷圭箇箇宛然栽)
현향만고비범태(玄香萬古非凡態)
처회천년출중재(處晦千年出衆才)
까마귀 색 연기 빛이 바로 잿빛인데
하나 하나 조정의 서옥이니 완연한 재목이다
검은 빛 향기는 만고에 이름나고 빛깔 또한 보통이 아니었구나
그믐처럼 천년을 검었어도 구름처럼 인재를 배출하였네
소동마처모공도(小童磨處毛公到)
사자봉시지우래(士子逢時紙友來)
연전반거문방재(硯田伴去文房在)
수묵평생합가재(守墨平生盍可哉)
어린 동자 먹 가는 곳에 붓 터럭이 당도하고
선비를 맞이할 때 한지 친구 도착하네
벼루를 대동하니 바로 문방이 있고
평생 먹을 지켰으니 가히 합하여 이루었구나
조성필건여사웅(助成筆健與詞雄)
시조인동조화옹(始造人同造化翁)
모이산수전신화(摸移山水傳新畵)
사서시서견고풍(寫盡詩書見古風)
붓이 굳건하니 문장도 뛰어나고
장인이 시작하여 노옹이 조화 이루네
산수 그려 옮기고 새 그림을 전하는데
시와 글씨 완성하니 고풍을 보는구나
체제오금광본흑(體劑烏金(주44)光本黑)
품재주사채겸홍(品裁朱麝彩兼紅(주45))
지우모공상대득(紙友毛公相待得)
문방수처흥무공(文房隨處興無空)
약제로 쓰는 오금(烏金)은 본래 빛깔이 검은색인데
품격은 붉은 사향노루의 홍색을 겸비했네
종이 벗 터럭은 기다려야 득이라서
문방 따르는 곳에 흥성함은 헛됨이 없다
염한동정쟁세웅(染翰洞庭(주46)爭世雄)
역의추축적선옹(亦宜追逐謫仙翁)
광채자모분흑옥(光彩資毛噴黑玉)
정신기저동향풍(情神寄楮動香風)
동정호를 문한으로 물들여 세상의 자웅을 겨루고
귀양 간 신선옹 조차 쫓아가 사귀었네
광채 나는 터럭이 검은 옥빛을 품으니
정신은 종이에 의탁하여 향기로운 바람 불어오네
신연송도상사취(身緣松熖常舍翠(주47))
면희매화경영홍(面餙梅花更映紅)
천추서적군계기(千秋書籍君皆記)
만처문방불가공(萬處文房不可空)
몸은 소나무 빛 인연 닿아 집이 항시 푸르르고
얼굴은 매화로 장식하니 홍색 빛으로 다시 물드네
천년의 서적과 임금의 모든 기록을 써 내려가니
만군데 문방이라도 쉴 틈이 없으리라
주44) 오금(烏金) : ①구리에 1∼10%의 금을 섞은 합금(合金). 검붉은 빛인데 장식품에 쓰임 ② ‘적동’의 다른 이름 ③ ’철’의 다른 이름 ④ ’먹’의 다른 이름
주45) 사향노루 : 몸길이 약 87.5㎝, 어깨높이 50∼60㎝, 꼬리길이 약 4~6㎝, 몸무게 9∼11㎏이다. 비교적 크기가 작은 사슴으로 뿔은 암수 모두에게 없고, 위턱의 송곳니가 길게 자라서 입 밖으로 나와 있다. 몸 빛깔은 어두운 갈색이나 계절에 따라 다르다. 배 쪽에 사향 샘이 있는데, 보통 생후 3년이 넘은 수컷에게 발달되어 있으며, 한 마리에서 28∼30g의 사향을 채취할 수 있다. 뿔 모양의 사향은 잘라 말려서 상품화하는데, 호흡기능을 돕고 혈액순환과 뇌의 작용을 증진시킨다. 또 향기가 좋아 향약·분향 등으로도 사용된다. 한국·중국·중앙아시아·사할린섬·시베리아·몽골(서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1968년 11월 20일 천연기념물 제216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7월 27일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두산백과)
주46) 동정호(洞庭湖)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로 호남성에 위치하고 양쯔강과 통한다.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악양루가 있어서 더욱 이름이 알려졌고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있어서 예술적 상상을 자극했다. 역대의 많은 문인들이 앞 다퉈 노래해왔고, 화가들의 붓끝에서 신선경이 연출되었던 곳이다.
주47) 송연묵(松煙墨) : 먹은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 만드는데, 소나무 그름과 송진도 쓰였다. 조선시대는 먹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는데, 평안도의 양덕(楊德)에서 만든 송연묵(松煙墨)은 향기가 좋기로 이름이 높았다. 색깔이 검고 오래될수록 빛깔이 퇴색하지 않아 더욱 깊은 맛이 나고 부식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고서화가 잘 부패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32. 어부(漁父)
북풍미우설초비(北風微雨雪初飛)
우설초비권망귀(雨雪初飛捲網歸)
권망귀래시일모(捲網歸來時日暮)
래시일모북풍미(來時日暮北風微)
북풍이 조금 불더니 처음으로 비와 눈발이 날린다.
처음으로 눈비 날리니 그물을 거두어 집에 돌아가네
그물 거두고 집에 오니 어느덧 날은 저물고
돌아올 때 날은 저물어도 북풍은 가늘게 불어오네
33. 한강(漢江)
한강춘벽수여린(漢江春碧水如鱗)
벽수여린월색신(碧水如鱗月色新)
월색신부주자동(月色新浮舟自動)
부주자동한강춘(浮舟自動漢江春)
한강에 봄이 오고 푸른 물은 마치 물고기 비늘과 같다
푸른 물은 물고기 비늘과 같고 달빛이 새롭구나
달빛은 새로운데 떠있는 배가 저절로 움직이네
떠있는 배 저절로 움직이니 한강에 봄이 왔구나
34. 고려자기(高麗磁器)
비도비범이자명(非陶非凡以磁(주48)名)
인시고려조기성(認是高麗造器成)
수자물론개정질(壽者勿論皆靜質)
고지즉응유갱성(叩之卽應有鏗聲)
질그릇도 아니고 평범하지도 않은데 자기라고 불리운다네
알고 보니 고려시대에 만든 그릇인데
오래된 것은 물론이고 고요하고 깨끗하다
두드리면 바로 금옥소리 들리네
요분향탄한무개(要焚香炭恨無盖)
장대율병혐이앵(將代栗甁嫌異罌)
호삽화지존안상(好揷花枝存案上)
애심고물우신정(愛深古物寓新情)
분향 숯이 필요할 때 뚜껑 없는 것이 아쉽다
밤 담는 병 대신해서 다른 양병으로 쓰기를 싫어했는데
꽃가지를 예쁘게 꽂고 탁자위에 올리니
옛 물건에 애착이 깊어지고 새로운 정이 돋아난다
주48) 도자기에는 토기·도기·석기·자기 등이 있다.
▪토기 : 일반적으로 점토로 만들며 700∼900℃ 정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로 소성한 것이 많고, 그 소지는 다공성(多孔性)이며 기계적 강도가 낮다.
▪도기 : 점토질의 원료에 석영·도석·납석 및 장석질 원료를 배합하여 1,200∼1,300℃에서일단 소지를 소결시킨 다음, 다시 1,050∼1,100℃에서 숙성한다. 자기에 비하여 경도(硬度)와 기계적 강도가 낮으며, 소지는 다공질이고 흡수성이 있다. 두드리면 탁음을 내며 투광성도 거의 없다.
▪석기 : 저급점토 특히 석영·철화합물·알칼리토류 및 알칼리염류 등의 불순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점토를 배합소지로 만들고, 1,200∼1,300℃의 온도에서 소지가 거의 흡수성이 없게 될 정도로 충분히 소결한 것이며, 제품은 일반적으로 유색이고 투광성이 거의 없다.
▪자기 : 배합한 소지(素地)를 1,300∼1,500℃의 높은 온도로 소성하여 소결(燒結)시킨 것으로, 대개 백색이고 유리질이어서 흡수성이 거의 없고. 투광성이 있으며, 두드리면 금속성을 낸다. 기계적 강도가 크고 화학적 내식성·내열성도 뛰어나다
35. 감고(舌甘苽)(주49): 참외(감과 甘瓜)
전반고붕고십심(田畔苽棚(주50)高十尋)
상량겸득수중음(爽涼兼得樹重陰)
적래황백형상사(摘來黃白形相似)
작파감향미최심(斫破甘香味最深)
밭이랑에 줄풀 시렁이 높은데 열 개를 찾았다
청량하고도 나무의 녹음은 짙다
들추어 따오니 황백색 모양이 서로 닮았는데
쪼개어 깨뜨리니 달콤한 향기 진동하고 풍미는 참으로 깊다
가이요기선쾌의(可以饒飢先快意)
지인척열경청심(只因滌熱更淸心)
만년원학동수종(晩年願學東陵種)
다일행인불수금(多饐行人不受金)
굶주린 배 채우고 우선 기분이 좋아져
더위를 씻어내니 다시 마음이 맑아진다
만년에 재배법을 원하여 동쪽 언덕에 씨 뿌렸고
행인들이 목메어 갈구하니 금전조차 받을 수 없다
주49) 감(‘舌+甘)’이라는 한자가 자전에는 없고, 고(苽)라는 자의 뜻이 ‘볏과 식물, 부추, 향초’이다. 시의 내용을 보면 참외를 말하는 듯한데, 참외는 한자어로 감과(甘瓜)이다.
주50) 고붕(苽棚) : 줄풀로 만든 받침대 사다리 시렁. 당시에는 참외 넝쿨을 오이 재배하듯 시렁을 만들어 올린듯하다.
36. 희우(喜雨) 2 : 반가운 비 2
희우무방습아의(喜雨無妨濕我衣)
종언방폐시비미(終焉䨦霸始霏微)
노앙쟁삽시수만(老秧爭揷時雖晩)
후부회생원불위(涸鮒回生願不違)
반가운 비 피하지 않으니 내 옷이 다 젖었네
퍼붓는 비 그쳤으니 이제 눈이 내리겠지
나이 들어 모심고 다투어 삽질하니 시간은 비록 늦었지만
마른 개천에서 붕어 살아나길 원한다고 어긋난 것은 아니지
구객사가신유몽(久客思家新有夢)
유인경야미언귀(游人經夜未言歸)
직장립극심붕거(直將笠屐尋朋去)
병역전초상욕비(病晹全消爽欲飛)
오랜 객지생활에 옛 고향집을 생각하는 꿈을 새로 꾸었다
떠돌이로 밤새우는데 아무 말 없이 돌아왔다
곧바로 삿갓 쓰고 나막신 신고 옛 친구를 찾아 가서
병을 모두 떨치고 상쾌하게 하늘을 날고 싶다
경염사혹한점의(庚炎肆酷汗沾衣)
수차선풍선울미(手借扇風鮮鬱微)
금운매수시운합(琴韻每隨詩韻合)
패정자여세정위(覇情(주51)自與世情違)
삼복더위가 심하여 땀으로 옷이 흠뻑 젖고
쉼 없이 손을 놀려 부채바람 내는데도 하나도 시원치 않다
거문고 가락 좆아 시를 읊어도
나의 뜻을 펼치려 해도 세상 물정과 어긋난다
홍류원락유음식(紅榴院落㳺吟息)
청초지당뢰몽귀(靑草池塘瀨夢歸)
적적첨단효두우(滴滴簷端曉頭雨)
상마기처희서비(桑麻幾處喜書飛)
붉은 석류가 담장에 떨어져있고 어슬렁거리며 시를 읊고 쉬는데
푸른 풀 우거진 연못은 여울지고 비오라는 꿈이 빠지네
뚝뚝뚝 처마 끝으로 새벽녘에 비가 내려
뽕나무밭 삼밭이 몇 군데인데 기쁜 소식을 전하여주네
주51) 패정(覇情) : ‘으뜸가는 뜻’이란 ‘내가 이상으로 추구하는 뜻’이니 독립과 위국이다
* 미(㣲) : 微의 속자
* 비미(霏微) : 비비(霏霏), 부슬부슬 내리는 비나 눈발이 배고 가늚, 또는 비나 눈이 계속(繼續)하여 끊이지 않는 모양
* 경염(庚炎) : 불꽃과 같은 삼복(三伏) 더위
37. 계룡산(雞龍山)
자금동리벽송음(紫金洞裏碧松陰)
상유용연백척심(上有龍淵百尺深)
가엽동남다고사(伽葉東南多古寺)
청산비하석양금(靑山飛下夕陽禽)
자금동에 푸르른 소나무 그늘지고
윗 골짜기에 용의 연못이 있어 그 깊이가 백 척이다
동남쪽에는 나뭇가지에 달린 잎처럼 옛 절들이 많기도 한데
청산에 새들이 날아 내려오니 석양이 드는구나
38. 적상산성(赤裳山城(주52))
나환퇴운영(螺鬟堆雲影)
아미소월광(蛾眉掃月光)
옥녀수장출(玉女誰粧出)
산요효적상(山腰繞赤裳)
소라 쪽진 머리 같은 산봉우리에 구름의 그림자 지네
미인의 눈썹 같은 능선은 달빛에 파묻히고
누군가 선녀가 단장하고 오신 듯이
산허리는 붉은 치마를 둘렀네
주52) 적상산성(赤裳山城)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소재의 사적 제176호의 고려후기 에 축조된 대표적인 방어 성곽. 산성. 사적이 있다. 적상산성은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적상산에 축조된 석축산성으로 북문은 동서남북 4대문 가운데 정문이다. 조선 광해군 2년(1610) 이곳에 조선시대 5대 사고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사고의 수호를 위해 적상산성의 수비가 강화되어 조선 인조 18년(1640)에 전라감사 원두표가 산성을 증축하여 영사를 넓혔다는 기록이 호국사비(1643년에 건립)에 기록되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 성이 있는 적상산(해발 1,029m)은 그 바위색이 검붉을 뿐만 아니라 사면에 둘러쳐 있는 층암절벽이 가을 단풍과 어울려 아름답고 여인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상산 또는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은 둘레 약 8,143m, 높이 1.2~1.8m이며,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 등이 남아 있으며, 당시 성 안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한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서를 보관하였던 사각(史閣)과 기타 건물의 터만 남아 있다. 100여 년 전인 1901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네이버지식백과)
첫댓글 안녕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대종회에서 연락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하오니 저에게 연락처를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010-9977-8744 정대식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