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 수필: 백령도 이야기>
내 창 앞으로 찾아온 봄
콩돌해안 / 백령도 북포초등학교
백령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진 탓인지 모든 절기가 조금씩 늦는 것 같다. 지금 4월 말인데도 학교 운동장 둘레의 벚꽃은 피었지만 앞뜰의 철쭉은 아직 꽃망울을 터뜨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자주 끼는 해무와 바람이 아직도 차갑게 느껴져 두꺼운 옷들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사택 창문을 열면 하얗게 꽃이 핀 자두나무가 있어 꽃을 매단 가지들이 창문 앞까지 다가와 있다.
사택 앞에는 커다란 자두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데 사택이 2층이라 바로 눈앞에 꽃방석이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이 자두나무는 매년 주먹만 한 자두가 많이 달리는데 얼마나 달고 맛이 좋은지 모두들 익기 전부터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자두가 완전히 익어 맛이 드는 것은 여름방학 중이어서 방학하는 날까지 맛도 못 보는데 방학 때 학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만 횡재를 한다고 한다.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맛을 보이는, 참으로 신통한 나무이다. 요새 안개도 많이 끼고 바람도 을씨년스러워 움츠리는데 창문을 열고 자두 꽃을 보고 있노라면 바야흐로 다시금 찾아온 봄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사택 앞 그 자두나무 아래에 있는 텃밭을 일구고 씨앗을 넣었다. 오늘이 수요일 직원연수의 날이라 고기 파티를 열어주기로 하고 전 직원을 불러내었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지만 방호원이 로터리를 가져다 갈아엎고 미리 준비하여 둔 가지가지 씨앗을 넣었다. 배추, 무, 상추, 갓, 아욱, 쑥갓 여섯 가지 씨를 손바닥만큼씩 뿌리고는 나중 오이, 고추를 심을 양으로 몇 이랑은 검은 비닐을 덮고 비워두었다. 파종이 끝난 후 전 교직원 회식이 준비되었다.
학교에서 준비한 돼지고기 20근, 친목회에서 사온 홍어 두 마리가 오늘의 파티메뉴이다.
마침 대청도에서 이곳 백령도 연안까지 올라와 이곳에서 잡힌 홍어를 가져 왔는데 7~8kg 짜리 암컷 두 마리를 20만원에 샀다고 하니 무척 싼게 산 셈이다. 요새 대청도 쪽에서 홍어가 많이 잡혀 가격이 내려갔다고 한다.
방호원이 익숙한 솜씨로 손질을 하는데 처음 보는 것이라 사뭇 신기하였다. 다시마 같이 생긴 알집도 신기하고, 간도 제법 큼직하다. 손질하다 보니 양이 너무 많아서 한 마리만 회로 뜨고 나머지 한 마리는 학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보내 삭히기로 하였다. 홍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서 내장은 손질하여 무를 넣어 맑은 물로 끓이기로 하고, 회는 떠서 은박접시에 담았다.
또 돼지고기는 삶아서 썰고, 밥은 물론이려니와 가지가지 반찬까지 준비하여서는 전 직원이 콩돌해안으로 장소를 옮겼다. 식당 아주머니들은 물론이려니와 해병대에서 지원하는 태권도 교관과 영어 보조교사까지 참석하는 대식구의 이동이다.
탁 트인 한적한 바닷가에 오순도순 둘러 앉아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교직원들의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싱싱한 홍어 회, 진미 중의 진미인 홍어 내장 탕의 맛, 고소하게 삶아진 돼지고기를 안주삼아 잔이 한 순배 돌자, 온갖 시름을 벗어 던진 해맑은 웃음과 바다소리가 어우러진 가운데 우리들의 봄맞이 파티가 무르익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