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사이 여러 번의 감정 변화를 경험했다.
첫째는 이 책의 서술 방식에 대한 거부감, 또는 경계심이다. 좋은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해서 글을 풀어가는 스타일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마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믿을 수 없는 기적 체험을 듣는 것 같은, 솔깃하지만 불편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둘째는 작은 깨달음의 기쁨이다. 이 책은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는 거룩한 진리를 찾아내 옮긴 다이렉트 복음서 같은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범신론적이고 조화론적인 세계관은 내 머리 속에 박힌 진화론적인 편견, 또는 유물론적이거나 갈등론적인 사고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책을 덮을 즈음 이 책을 어떻게 정리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진화론과 행동 경제학 관련 책들을 여러 번 뒤적여 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인간의 탐욕, 또는 만족할 줄 모르는 속성은 지난 수천 년간 잉여 축적과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어쨌거나 탐욕은 진화론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화론적 견해에 의하면 자기 합리화와 적당한 포기는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확률을 낮추기 때문에 생존의 중요 요소가 된다. 반면, 포기할 줄 모르는 욕심은 자신을 위험에 쉽게 노출시킬 뿐 아니라 스스로를 괴롭히고 면역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생존과 진화에 불리하다. 사자나 하이에나는 배부른 상태에서는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런 탐욕은 앞으로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안을 초래하고 면역력을 저하시킨다.
하지만, 탐욕이 자연 상태에서는 생존에 불리할지 몰라도, 환경을 바꾸면 얘기가 달라진다. 탐욕은 자연을 변형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인간을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해준다. 피난처를 찾은 탐욕은 긍정적인 역할을 통해 몸집을 계속 불린다. 인간의 면역력을 보강하고 의술을 통해 평균 수명도 늘려준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탐욕은 현대인의 깊은 불안을 치유할 수 없고 오히려 증폭시킨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번뇌는 증가하고 상처는 더 깊어진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연을 이길 수 있는 지도 의문이다. 언젠가 자연의 거대한 역습이 찾아올지 모른다. 종교는 이런 위기의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기독교는 탐욕(선악과)의 원죄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의 말씀을 따르라고 한다. 결국 탐욕과 교만을 버리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불교 또한 번뇌(결국 탐욕)를 버리라고 말한다.
이 책에 나오는 참사람(real people) 부족의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교만한 무탄트(돌연변이 인간)들이여, 진화의 법칙에 맞지 않는 탐욕을 버려라!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돌연변이(mutant)는 단순한 다름, 즉 변이(variation)와 다르다. 변이와 돌연변이 모두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살아남거나 소멸한다.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돌연변이 탐욕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환경을 바꾸고 결국 전 지구적인 진화의 법칙에 위협을 가한다. 마치 암세포처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무분별하게 증식하는 과정에서 몸 전체인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얻은,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세 번째는 허탈함이다. 책을 다 읽은 뒤 해외에서는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찾아 봤다. 위키피디아(1)에서는 호주 원주민 연합회에서 “말로 모건이 존재하지 않는 참사람 부족을 이용해 원주민들의 생각과 문화를 심각하게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이 발간된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이 책에 대한 논쟁과 비판을 짧게 정리한 싸이트(2)에서는 이 책이 픽션임을 주장하는 기사들이 많이 있다. 예컨대 말로 모건이 자신의 책 내용이 픽션이었다면서 원주민 대표에게 사과했다는 기사도 있다. 원주민 부족 대표 자격으로 이 글의 추천사를 쓴 부르남 부르남이 자신의 기만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도 있다. 좋은 메시지의 발신자가 사라졌다. 아니, 발신자가 사기꾼으로 추정되었다. 어렵게 움켜쥐었는데 몸통은 사라지고 꼬리만 남았다. 허탈했다.
(1) https://en.wikipedia.org/wiki/Marlo_Morgan
(2)
https://www.creativespirits.info/resources/books/marlo-morgan-mutant-message-down-under-timeline
네 번째는 고마움이다. 내 성향에 맞지 않는 이 책을 혼자 읽었다면 중간에 읽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아마 두 번째 어딘가 - 이 책 무탄트 메시지와 진화론과의 관계를 찾아보는 단계 - 쯤에서 생각을 적당히 마무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책 벗들과 크고 작은 토론을 할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의 관대함을 믿고 설익은 상태로 생각을 내뱉고 질문도 다소 공격적으로 할 수 있다.
많은 벗들의 생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이 책을 믿고 싶은 쪽과 믿을 수 없다는 쪽. 메시지가 좋아서 믿고 싶다는 견해도 있었고, 호주 백인들이 원주민을 앞세워 부당한 흠집을 많이 냈을 것이기 때문에 무작정 믿지 않는 것도 공정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믿고 싶은 쪽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은 것은 확실했다. “깨달음은 완성이 아니고 문을 하나씩 하나씩 열면서 나아지는 것이다. 참사람 부족의 삶이 바로 그런 나아짐의 과정을 보여준다.”, “내가 축하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이 책에서 알아냈다. 더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축하받았기 때문.”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은 벗들에게서 이런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책을 읽는 내내 내용을 의심하고 거북해 했던 나 자신도 탐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믿고 싶은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책을 옹호하면서 그 작은 깨달음을 말하려다보니 토론의 맥을 잘 이어가지 못했다. ‘표현하려는 욕구와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 두려는 욕구가 부딪칠 때 일어나는’ 말더듬이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오늘은 비판 정신이 많이 부족했다는 애정 어린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내게 최악이었을 책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책으로 바꿀 수 있는, 평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생각의 나아짐의 기회를 얻었는데.
<추신> 다음 책은 조지 오웰 저, 한겨레 출판사 발간,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입니다. 2019년의 거의 끝자락인 12월 28일(토) 오후 4시, 사과나무 치과 7층입니다.
첫댓글 진호님 글은 언제나 발상이 재미있어요. 책 주문때 무탄트~ 주문해서 한번 읽어보려구요. 마냥 순진무구한 저로서는 취향일것 같아서요 ㅋ 다음 선정책도 관심이 갑니다. 내년엔 책모임 한번 나가볼까 고려중인데 제가 완전우놔형이라 좌뇌형님들과 잘 지낼 자신이 영~ 없네요^^
새는 좌우 날개로 날지 않겠습니까? 언제든지 열려 있는 임책방에 와 주시면 영광입니다.
@고주백 새가 되어 날아가려면 임책방으로 와라? ^^
제가 남다른 몸무게감 때문에 못날고 있는 줄 알았더니...역시, 설득력있는 꼬드김입니다.
@율마 무겁다는 것과 날지 못한다는 것 모두 동의하기 힘들지만 꼬드김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유일하게 참석한 독서토론 무탄트메세지~^^
좋은정리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