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1925
고형렬
내 몸에서 잎도 피어나기 전에 진달래꽃이 인쇄소에서
인쇄될 때
속초는 고향이 아니고 타관도 아니고
무관함이 수평선을 돌아서 친근함이 되려 흰 손을 내밀었다
산모래산에는 햇살 진달래꽃 영랑호는 세월도 가지 않아
소년들은 산에 안 보이고 물결만 찰랑거려도 좋아서
물고기들의 이마를 짚어주었다
약산이며 구성은 속초며 고성은 얼마나 서로가 먼 곳인지
일생이 가도록 가보지 못하고도
그리울 것 없이 넘치게 살았다
필요없는 것을 곁으로 삼고 살아서 그만 행복하고 짠했다
그 해, 그 해 가까운 과거의 유원지처럼 내 살같이 추운 봄햇살처럼
아름다운 웃음도 목마도 여자도 아이들도 슬퍼서
진달래꽃이며 기념 시 낭송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먼 사람
그래도 그들은 타관 나의 고향에서
꽃보다 행복하게 살다 갔다 허무하지도 않게 어제의 하루처럼
사람들은 어제로도 오늘로도 오지 않고 몇 글자나
그림만 남긴 듯
오늘은 꽃처럼 아무 추억도 일도 없이 가고마는
시나브로
낙화도 아무 슬픔이 될 일 없다 아무도 안 기대는 쓸쓸함으로
잠시 어깨를 스친 대문간의
그림자였을까
그래서 나는 진달래꽃보다 늦게 태어나서 그보다 빨리 늙었다
누가 너희가 펼친 손바닥에 받은들 받았다 하리
삭정이 몇 개만 하늘로 새처럼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