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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유다와 시므온 지파가 아도니 베섹을 잡다
이 책의 첫머리(1:1-2:5)는 사사기와 여호수아(수 24:29-30)를 연결한다. 또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을 기록하며, 유다 지파의 신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다는 가나안 공격에 앞장서고 있다(1:2). 그것은 베냐민 지파를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20:18). 유다의 지도력은 야곱 유언의 성취이다(창 49:8-12).
후에 유다 지파에 흡수된(신 33장; 수 19:1-8; 15:26-32) 시므온 지파는 유다와 함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 대항하여 싸운다. 브리스라는 이름이 이방 종족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외곽 지대 성벽이 없는 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지는 불확실하다.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베섹 백성들을 격파하고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는다. 아도니 베섹이란 “베섹의 주”란 뜻이다. 아도니 베섹은 베섹의 지배자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때때로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세덱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되기도 한다(수 10:1-3). 그러나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은(삿 1:7) 그 대부분 이스라엘 자손이 다윗의 영도 아래 예루살렘을 점령했던(삼하 5:6-10) 시기 이후에 삽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후대 시기를 반영하는 예루살렘에 대한 유사한 언급에 대해서는 삼상 17:54의 설명을 보라.
1:8-10유다 지파가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정복하다
삼하 5:6-10에는 다윗이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야기가 있다(또한 삿 1:21; 19:10-13). 1:8에 언급된 예루살렘은 아마도 요새화되지 않은 서남쪽 산악 지대를 언급하는 듯하다. 헤브론 점령에 대해서는 수 10:36-37과 수 10:28-43의 단락 요약을 보라.
1:11-15옷니엘이 드빌을 정복하다(수 15:13-19)
옷니엘은 3장에서 다시 나타난다. 거기에서 옷니엘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통치자(3:7-11)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군사 지도자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사람이다. 드빌은 헤브론 서남쪽, 유다 남부 산악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1:10).
1:16-21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승리
유다 지파는 호르마라고 개명된(1:17) 스밧 성을 포함한 산악 지역을 정복하였다. 호르마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의미는 “파괴”이다(이 도시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도시의 이름에 관련된 다른 전승에 대해서는 민 21:1-3을 보라). 그렇지만 그들은 서쪽 평원 지대와 블레셋의 도시인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은 지배하지 못했다(삿 1:18-19; 수 13:3).
1:22-26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벧엘을 점령하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두 아들로 요셉 지파가 나누어져 생긴 두 지파의 창시자이다(창 48:1-20). 그들이 정복한 단 하나의 성읍은 벧엘이다. 창 28:10-22는 야곱이 루스 성을 벧엘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벧엘이라는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 벧엘은 사사 시대에 주요 종교 중심지가 되었다(삿 20:18-28; 삼상 7:16; 10:3).
사사기에서 북쪽 지파들이 처음으로 점령한 성은 벧엘이며, 마지막으로 점령한 성은 단이다(18:27-31). 솔로몬의 죽음 이후 통일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이 두 성읍들은 북 왕국의 종교 중심지가 되었다(왕상 12:25-33; 또한 암 7:12-13). 이 역사를 편집한 사람은 이 두 성읍에서 행해진 예배를 비난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유일한 예배 장소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18:1-31의 단락 요약을 보라).
1:27-36이스라엘이 쫓아내지 못한 백성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가나안 주민들을 정복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1:22-26). 하지만 그 두 지파를 포함하여 어떤 북쪽 지파도 그들에게 할당된 영토에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하게 몰아내지 못했다. 쫓겨나지 않은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노예가 되었다(수 16:10).
단 지파는 평지에 살고 있는 아모리 족속을 몰아내지 못하고 산악 지대로 퇴각한다(1:34; 수 19:40-48). 그들은 후에 가장 북쪽 끝의 비옥한 땅을 점령하고 그 곳을 그들의 영토로 여긴다(18장). 아모리 족속이라는 말은 종종 요단 강 동쪽의 왕국들을 일컫는다(신 4:45-49). 그러나 여기서 아모리 족속은 이 왕국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서쪽 사람들’이라는 원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단 지파에게 원래 할당된 영토에서 서쪽에 거주하였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2:1-5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 나타나다
1:1-3:6의 큰 단락 요약을 보라. 길갈(2:1)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서쪽 지역에서 처음으로 예배 드린 장소이다(수 4:19). ‘우는 사람들(2:5)’이라는 뜻을 가진 보김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2:6-10여호수아가 죽다
2:6-10은 여호수아가 아직 살아 있던 시절을 반영하고 있다. 그 당시 세대들의 순종과 여호수아 죽음 이후의 세대들의 불순종을 대조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구절은 2:11-23과 함께 이 책에서 줄곧 나타나는 역사의 순환적 관점을 소개한다.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배반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대적들에게 패하게 하시어 벌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군사 지도자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 지도자가 죽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한다(개론과 2:11; 3:7,12; 4:1; 6:1; 8:33-34; 10:6; 13:1을 보라). 이와 똑같은 이야기 형식은 후기 왕정 시대의 기록에도 나타난다(왕하 13:2-6).
여호수아가 죽은 후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중단하였던 것처럼, 이후의 백성들도 각 시대마다 지도자가 죽으면 악한 길로 돌아서게 된다(2:18-19). 왕정 시대에도 요아스(대하 24장)나 웃시야(대하 26장)는, 신실한 제사장이나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후에, 그들이 남긴 경건한 영향력이 사라지자 하나님 섬기기를 중단하였다.
2:11-23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다
2:6-10의 단락 요약을 보라.
3:1-6그 땅에 남은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앙 산악 지역과 가나안 남부, 그리고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있는 영토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고고학적 연구는 이 시기 동안 이 곳의 거주자 수가 갑절 이상 증가하였고, 이곳이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블레셋은 여전히 지중해를 따라 펼쳐진 남부 해안 평지를 굳건히 지배하며 남아 있었다. 북쪽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은 골짜기와 평지의 요새 성읍을 계속해서 지배하였다. 사사기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고, 전쟁에 대해서 가르치시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을 점진적으로 점령하게 하셨다고 설명한다(출 23:29-30과 신 7:22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점진적으로 그들의 대적들을 쫓아내게 하신 것은 그 땅이 황폐하게 되지 않도록, 그리고 들짐승들이 번성하지 않도록 하게 하는 데 그 원인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과의 혼혈 결혼으로, 그리고 그들의 신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한다(신 17:17; 수 23:12-13; 왕상 11:1-4). 여러 세기 후, 바벨론 포로 이후 시기에 포로에서 귀환한 일부 유대인들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러한 혼혈 결혼을 종식시키기 위해 개혁을 시작한다(스 9-10장; 느 10:30; 13:23-27).
3:7-11사사 옷니엘
남쪽 지역 출신 사사 옷니엘은 1:11-15에서 갈렙의 조카로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는 동쪽으로부터 온 대적자에게 전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 대적자는 구산 리사다임으로 히브리어로 “구산, 두 배로 사악한 자” 또는 “구산, 두 배의 문제자”라는 의미이다. 메소보다미아는 문자적으로 “아람-나하라임”으로 수리아 북쪽의 메소보다미아 상류 지역이다. 남부 유다 지역의 옷니엘이 그토록 멀리 떨어진 왕을 공격하고 무찔렀을 가능성이 크지 않기에, 흔히 본문의 ‘아람’은 ‘에돔’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12-30사사 에훗
사해 동쪽의 모압 왕 에글론은 한때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연합의 형태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러나 얼마 후 철저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히브리 독자들은 이 이야기 안에 있는 많은 언어 유희를 즐겨왔다. 왼손잡이 에훗은 베냐민 사람(오른손의 아들)이다. 에글론이란 이름은 히브리어의 ‘송아지’나 ‘살찐’과 발음이 같다. 에훗은 칼로 ‘찌르고’(3:21) 나팔을 ‘분다’(3:27). 이 두 동사는 히브리어에서는 같은 말이다. 에훗이 ‘전하는 말’(3:19-20)은 문자적으로 ‘입’인데 그가 날 선 검으로 찌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3:16).
3:31사사 삼갈
삼갈은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 다시 나타난다(5:6). “아낫의 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왔다. 일부는 그를 벧 아낫(수 19:38) 성읍 출신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아낫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사의 여신 아낫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넓게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낫의 아들”을 군사적 명칭으로 생각하고 있다.
출처: 굿 뉴스 스터디바이블 단락요약
1:1-3이스라엘 사람들이 첫 진격에서 차지하지 못한 땅이 부분적으로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여호수아>에서도 가끔씩 느낄 수 있었다(수15:63; 16:10; 17:11-13; 19:47; 23:7,12). 그렇지만 삿1장은 다른 세부 내용을 알려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글의 흐름을 따라 잘 읽어보면, 여기에 가나안 정복에 대한 포괄적이면서 독특한 내용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여호수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리고 내지 길갈에서 시작한다. 16절 및 그 해설과 또한 2,4,9,16,22절에서 '올라가다' 및 '내려가다'라 하면서 방향을 알려 주는 것을 보라).
<여호수아>에서 땅 정복을 백성 전체의 공동 작전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지파( 유다, 시므온 등)들이 개별적으로 싸워서 제 땅을 얻는다. 이렇게 보는 것이 가나안 정복의 실제 과정에 더 가까울 것이다(<여호수아> '안내' 참조). 1장은 사사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알려주는 본문으로 여기 <사사기>의 맨 첫머리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 시대는 전체적으로 가나안 땅의 소유를 둘러싼 계속적인 전쟁에 의해 영향을 받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2:1-5에서는 가나안 정복이 완결되지 못한 한 가지 까닭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다는 것이 <여호수아>가 강조하는 바였다면(수21:43-45), <사사기>를 시작하는 장에서는 같은 사건을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1절의 여호와께 묻자와 에 대해서는 민27:21 관련 구절을 보라.
1:4-8중부 팔레스티나 산지의 북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베섹 (지도1, 다4)은 유다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본디는 시므온 지파의 정착 지역이었을 곳을 가리키는데, 3절에 따르면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와 함께 공동 작전을 펼친다(시므온 지파와 중부 팔레스티나의 세겜의 관계에 대해서는 창34:25-31 참조). 또한 브리스 사람 들도 이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창34:30; 수17:15). 수족의 엄지가락을 절단당한 왕은 전투 능력과 위엄을 잃는다. 그는 이러한 굴욕을 겪으면서 자기가 행한 대로 자기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공평한 정의를 깨닫는다(그 밖에도 그에게 패배한 임금들은 또한 승리자의 상에서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를 주워 먹어야 했다. 칠십 은 어림수이고 과장 섞인 허풍이다). 여기서 이 임금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말하고 예루살렘에서 최후를 맞은 것을 보면, 아도니베섹 은 수10:3에서 예루살렘 임금의 이름으로 나오는 '아도니세덱'(=나의 주 곧 하나님은 정의이시다)을 잘못 쓴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예루살렘은 다윗에 의해 비로소 정복되었다(삼하5:6-9. 수15:63 참조). 그렇지만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 가운데 남쪽의 르바임 골짜기는 유다가 빼앗았다(수15:8).
1:9-15예루살렘에서 볼 때 남쪽뿐만 아니라 아래쪽( 내려가서 )도 본디 유다 지파의 땅에 속한다. 20절과 수15:13-14에 따르면 헤브론 (지도1, 나7) 정복은 그니스 사람 갈렙(수14:6과 해설 참조)의 업적인데, 갈렙은 여기서 유다 지파에 속한 것으로 간주된다. 12-15절은 수15:15-19를 되풀이한다(거기 해설을 보라).
1:16 겐 사람* 들은 모세 시대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삼상15:6. 호밥 에 대해서는 민10:29-32를 보라). 이들은 반 유목민으로서 초원 지대( 남방 )의 가장자리에 산다( 아랏 에 대해서는 지도1, 나-다7-8 참조). 종려나무 성읍 은 여리고를 가리키지만(신34:3), 여기서는 본디 남방의 어느 땅 곧 사해 남쪽 끝에 있는 종려나무 성읍인 다말의 정복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지도1, 다8). 호르마 정복(17절)도 민21:1-3에 의하면 남쪽에서 시작된다.
1:17-20 호르마 근방(지도1, 나8. 앞 해설 참조)은 시므온 지파의 거주지가 된다. 해안 평야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서 정착했다( 철병거 에 대해서는 병거*를 보라. 수17:16,18 참조. 세 성읍의 위치에 대해서는 지도1, 가6-7을 보라). 20절은 10절 내지 수15:13-14와 나란히 전해 내려온 것이 분명하다( 모세의 명한 대로 에 대해서는 수14:6-9를 보라).
1:21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에 있다(수15:8을 18:16과 견주어 보라). 따라서 같은 내용을 수15:63에서는 유다의 관점에서 말한다. 또 8절 해설 참조.
1:22-26 벧엘* 에 대해서는 지도1, 다6과 용어 해설을 보라. 북쪽(수리아. 헷 사람* 의 땅 )에 새로 건설된 루스 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다. 배신과 전략(수8장 참조)은 수단으로 여기서는 아직 그에 대해 도덕적으로 따지지 않는다. 배신자들을 구해 주는 것은 기생 라합의 경우(수6:17,25)를 상기시킨다.
1:27-29정복하지 못한 성읍들이 이스르엘 평야 남쪽 가장자리 요단 저지대의 벧스안 에서부터 지중해 연안의 돌 까지 이르며 요셉 지파의 땅에서 갈릴리를 분리시키는 문빗장노릇 하듯이, 게셀 은 예루살렘과 함께(21절) 중부 팔레스티나 지역의 지파들과 유다 지파 사이에서 문빗장노릇 한다(지도1, 다-나4와 나6을 보라). 이 가나안 도시국가들은 다윗에게 비로소 독립성을 잃는다. 일부만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30-33절의 여러 장소들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게셀 의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왕상9:15-17 참조.
1:30-32 기드론 과 나할롤 (=수19:15의 나할랄)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악고 를 중심으로 보면 악십 은 북쪽에, 아빅 은 남쪽에, 르홉 은 동쪽에 있다(지도1, 나3을 보라).
1:33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가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 다는 표현은 두 지파의 지위가 든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21,27,29,30절에서는 관계가 뒤집어져 있다).
1:34-35단 지파는 본디 자기들이 정착했던 예루살렘 서쪽 지역을 내주어야 했다(수19:40-48과 해설을 보라). 요셉 족속 (문자적으로는 '요셉의 집')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말한다.
1:36지리적인 위치를 생각하면, 히브리어 본문의 아모리 는 에돔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히브리어 자음 본문에서는 쉽게 혼동할 수 있는 자모 하나만 바꾸어 써도 이름이 달라진다. 3:11 해설 참조). 옛 번역본들에서도 '에돔'으로 옮기고 있다. 이리하여 아모리 사람의 지계 를 '에돔 사람의 지계'로 읽는다면, 이 지역은 사해 남쪽까지 이른다(지도4, 다-라4). 신23:7에 의하면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친척이다(창36장의 에서, 야곱 형제에게서 두 민족이 비롯되었다). 바위 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지명('셀라')을 뜻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왕하14:7을 보라.
2:1-51장에서는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쫓아내지 )는 없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제 그 사실에 대한 해석이 뒤따른다. 곧 그 책임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불순종 또한 사실로 전제되어 있다(불순종의 내용은 6절 이후에 비로소 나온다).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에게 직접 적이 되어 위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늘 유혹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이스라엘에게 위험한 존재( 올무 )인데, 그 의미는 아래에서 자세히 밝혀진다(특히 20-23절 참조. 3절에서는 수23:13을 이끌어 쓴다). 여호와의 사자* 가 직접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6:12,14; 출3:2,4 참조). 보김 은 난외주에서 밝히듯이 '우는 자들'을 뜻한다. 옛 헬라어 번역본에는 1절의 보김 다음에 '그리고 벧엘에'가 덧붙어 있는데, 창35:8에 보면 벧엘에 '울음의 상수리나무'('알론바굿')가 있다.
2:6-9이 단락은 수24:29-31을 되풀이하면서 <여호수아>의 끝 부분과 이어진다. 여기서는 1:1에서보다 더 분명히 여호수아의 죽음을 두 시대의 경계선을 긋는 사건으로 파악한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2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전개되는데, 거기서는 원칙적인 면에서 신학적으로 성찰하여 사사 시대 전체를 미리 하나님의 심판 아래 둔다.
2:10-13새 세대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이들은 땅 소유를 자명한 사실로 여기면서, 땅과 땅의 생산이 이 땅의 신들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여신 아스다롯 (바벨론에서는 이슈타르)은 생산의 여신으로 가나안의 주신인 바알 의 짝이다(이스라엘을 유혹한 이 종교의식의 의미와 관행에 대해서는 부록 용어 해설란의 다산 종교*를 보라).
2:14-15하나님은 '불쾌'하시다고 해서 기분에 좌우되시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 을 행한다(11절). 선과 악을 구별하는 척도를 하나님은 자신이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통해 알려주셨다(신28-30장).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 는 예상할 수 없이 폭발한 노여움이 아니라 언약 상대방의 배은망덕함과 불성실함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고 적들에게 넘기신다(14-15절에 대해서는 레26:17; 신28:20 참조).
2:16-19백성이 불성실한데도 하나님의 자비가 하나님의 분노를 늘 억제한다. 사사 기드온(6장)과 삼손(13장)의 경우에 자세히 묘사되었듯이 사사* 들은 그때그때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아( 세우사 ) 어려운 가운데 있는 백성을 건져내는 사람들이다.
2:20-23늘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개별 상황에 관련된 하나님의 심판( 진노 , 14절)을 넘어서서 원칙적인 판결을 초래한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거듭거듭 새롭게 하나님에게 충성하면서 스스로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고 입증하도록, 다른 민족들이 앞으로도 이 땅에 계속 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올무'를 놓으시는 것이 아니라 과제를 주신다는 식으로 이 단락은 3절의 경우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이 과제는 유대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다른 민족들과 함께 살아야 했던 포로기 이후 시대에 새로운 현실성을 띠게 된다(스9-10장; 느13:23-31 참조).
3:1-6우선 3절에서는 본디 이스라엘에게 속한 땅 밖에 있는 적들을 열거하는데, 해안 평야에 있는 블레셋 다섯 성읍과 페니키아 사람들과 이들의 북쪽에 있는 이웃들( 가나안 이란 이름은 본디 페니키아 사람들과 결부되어 있다)이 그들이다. 그런 다음 5절에서는 지파들의 땅 안에 흩어져 사는 이방 민족들을 주목하는데, 이스라엘은 이들과 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온갖 재앙을 당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가나안 여러 족속의 이름에 대해서는 신7:1 해설 참조). 4절은 2:22에서 말한 까닭을 되풀이하는 반면, 1-2절에서는 전혀 '비신학적인' 이유를 하나 덧붙인다. 땅을 주시기로 한 약속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을 묻는 물음(수21:45와 삿1장의 긴장)은 늘 새로운 대답을 하게 자극한다.
3:7-11이 짧은 이야기는 2:11-18에서 원칙적으로 묘사한 역사 진행의 전형적인 본보기로 구성되어 있다. 옷니엘 은 이미 1:13에 나왔다. 그의 거주지가 남방에 있으므로, 멀리 떨어진 메소보다미아 (히브리어로는 '아람 나하라임') 대신에 본디는 에돔이 언급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아람과 에돔을 혼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1:36 다음 해설을 보라). 본문은 적국 임금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왜곡한다. 곧 구산 리사다임 이란 '두 배로 악한 구산 사람'을 뜻한다( 구산 도 오히려 에돔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민12:1 해설을 보라). 하나님의 영* 이 한 사사를 구원자로 세우고 그에게 능력을 준다(10절 관련 구절을 보라). 수21:44에서 '안식'이란 개념으로 표현한 태평 함이 회복되어 한 세대 동안 유지된다.
3:12-15하나님의 형벌을 집행할 대적이 이번에는 요단 동쪽 땅에서 온다.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그랬듯이, 이 대적도 이스라엘 땅에 침입하는 통로로 여리고( 종려나무 성읍 . 신34:3 참조)를 이용하지만, 거기서부터 이스라엘의 접경 지대 특히 베냐민 땅을 통제하고 조공을 받을 따름이었다(15 하반절).
3:16-23왼손잡이 에훗(15절)은 검문하는 모압 보초병들이 상상도 못할 곳에 칼 을 단단히 붙잡아 맨다. 모압 왕은 요단 서쪽에 있는 자기 왕궁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알현을 받았던 것이 틀림없다(왕궁에서 길갈 이 가깝다는 사실과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 나루를 장악하여 모압 사람들의 퇴로를 차단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28절). 다락방 은 평평한 지붕 위의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다락방은 계단을 통하여 바깥에서 바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에훗은 옆방( 현관 , 23절)을 통해 들키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명 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했기 때문인지 임금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리함으로써 결정적으로 허점을 드러낸다(에훗은 임금을 아래로부터 살짝 찔러 죽일 수가 있었다).
19절과 26절에서 돌 뜨는 곳 으로 번역한 히브리 낱말은 본디 돌로 만든 우상들을 가리키는데, 본문의 경우에는 이것들의 유래와 의미를 잘 알 수 없다. 이것들이 여기서는 도로 표지 노릇을 하지만, 26절에서는 이것들이 모압 땅과 베냐민 땅 사이의 경계를 표시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24-30한껏 익살을 부리며 묘사되던 사건이 소름끼치는 절정으로 나아간다. 이 뚱뚱한 임금은 뒷간에 오래 앉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발을 가린다'는 용변을 본다는 뜻이다). 에훗은 이 유리한 시간을 이용하여 재빨리 불러 모은 군대를 데리고 가서 요단 나루를 장악한다. 이로써 에훗은 요단 서쪽에서 모압 사람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모압의 전 병력을 몰살시킨다. '항복하다'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이후로도 비슷한 상황에서 되풀이된다(4:23; 8:28; 11:33; 삼상7:13. <개역한글판>의 번역은 다양하지만). 다시 태평함을 누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11절 해설을 보라.
3:31이 짧은 기록은 글의 흐름을 깨는데, 이는 4:1이 바로 에훗 이야기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5:6에서는 삼갈을 언급함으로써 이 구절을 생각하게 한다. 소 모는 막대기처럼 보잘것없는 무기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다. 이로써 삼갈은 이와 비슷하게 삼손이 급습한 사건들을 앞당겨 암시한다(15:15-16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시기에 바다로부터 이주해 온 블레셋 사람들이 여기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적으로 나오는데, 삼손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출처: 해설 관주 독일어성서공회판 본문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