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그의 동굴을 방문한 것은 6월 말, 폭염이 절정에 이르던 어느 날 오후였다. 소주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냉동실에 얼려놓은 페트병 소주를 배낭에 넣어 갔는데 그새 녹아 미지근하게 될 만큼 날씨는 뜨거웠다. 그는 여느 때와는 달리 나를 보자 반색하며 일단은 그의 집으로 안내했다. 통나무로 지은 집이라 바깥 온도보다 다소 낮았으나 그런데도 등에는 땀이 배어났다.
“잘 왔소. 강시인. 아주 적절한 때에 왔구먼. 소주는 사 왔겠지요?”
“물론입니다. 동굴은 완성되었는지요?”
“그렇소. 어제 완전히 끝냈지요. 무려 삼 년에 걸친 대작업이었소. 차 한 잔 마시고 같이 가봅시다. 대공사에 대한 축배를 들어야지요. 그건 그렇고 최근 날씨를 보니 그때 내가 한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지 않소?”
그는 연방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마 동굴완성에 대한 대단한 만족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며칠 전에는 우리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산에서 산불이 크게 났습니다. 날씨도 그렇지만 비마저 오지 않아 큰일입니다.”
“그럴 거요. 내 생각에는 아마 7월 초가 제일 절정일 것 같소. 그때부터 9월까지 비는 아예 오지 않을 것이오. 전국적인 대란이 일어날 것 같아요. 지금 군과 공공기관을 제외한 모든 기업, 공장들은 가동하지 않고 학교는 이미 방학이 들어갔지요. 아마 며칠 뒤에 정부에서 비상 상태를 선포할 거요.”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백 가지 약초가 들어간 차를 내게 권했다. 동굴을 파면서도 틈틈이 효소를 만들어 복용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검지만 빛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강인한 인상의 이 동굴 파는 남자에게서 묘한 신비감마저 들었다.
이윽고 그를 따라 들어간 동굴은 신비, 그 자체였다. 입구부터 벽면을 따라 광목을 대어 무너질 염려가 없게 했고 간간이 백열등을 달아 놓아 조금도 어둡지 않았다. 태양광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약간 넓은 장소가 나왔는데 들어서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서늘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초겨울 같은 기온이었다. 자 이걸 입어요, 하며 그가 벽에 걸려 있는 겨울용 외투를 건넸다. 벽 가장자리에는 식용버섯을 키우고 있었고 그 옆에 조그만 옹달샘이 보였다. 식수를 자체 조달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엿보였다. 그리고 한 쪽에는 비상식량들이 보였는데, 쌀, 콩, 김치 등등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양식들이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사흘 뒤부터요. 정확히 사흘 뒤. 기다리겠소. 가족들을 데리고 이리로 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의 표정은 단호했다.
“사흘 뒤면?”
“대란이 일어날 것이오. 도시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며 시골은 몰려오는 도시 사람들 때문에 힘들 것이오. 그러다 보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오. 9월 초까지는 여기서 버텨야 합니다.”
그의 눈은 서늘하면서도 빛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이 일들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습니까?”
“난 한때, 한전 산하에 있는 모 전력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소. 열대야가 진행되는 폭염 때 ‘비상전력 사용량의 한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삼사 년 뒤에 이 나라에 있는 수력, 화력, 원자력, 심지어 풍력까지 동원한다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소. 윗선에 보고했지만, 번번이 뭉개지는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리로 들어온 것이요.”
“그럼, 성경에 나오는 종말이란 말씀입니까?”
“하하. 그 정도는 아니요. 이번 일을 겪고 나면 정부에서도 자각하여 대책을 세울 것이고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생활양식을 크게 바꾸겠지요. 결국 환경보호라는 이슈가 전면으로 드러나면서 실질적으로 탄소 사용량을 줄이고 온난화에 대해 심각한 자각을 하게 되면서 차츰 극복해 나가리라 봅니다.”
그는 버섯 두어 개를 따와서 간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내가 가져온 소주를 잔에 따랐다. 소주를 먹는 그의 모습은 한가롭다 못해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