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9UqRrX0q6TA
매헌공 이겸익(梅軒 李謙益) 일대기
<제목 차례>
1. 천성산 정기를 품은 주남에서 태어나다 2
2. 다섯 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품에서 성장하다 2
3. 열여덟 살, 임진왜란이 모든 것을 바꾸다 3
4. 어머니를 업고 원적산으로 ― 이효자곡의 탄생 3
5. 왜적과 맞닥뜨린 젊은 선비 4
6. 어머니의 죽음과 세 형제의 의병 활동 4
7. 칼만으로 나라를 세울 수 없다(어머니의 마지막 교육) 5
8. 천 리 길을 걸어 나주 관해공을 찾아가다 5
9. 3년의 수학(사서오경을 독파하다) 6
10. 돌아와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모시다 6
11. 형제들의 죽음과 세속적 성공을 뒤로하다 6
12. 스승 임회와 다시 만나다 ― 양산 유배 10년의 학문 7
13. 스승의 죽음 앞에서 보여준 제자의 도리 7
14. 매헌공의 학문 ― 대학과 중용을 깊이 탐구하다 8
15. 매헌정사를 세우다 ― 붓으로 가문을 일으키다 8
16. 학문을 가문에만 가두지 않다 9
17. 형제의 충절과 매헌공의 학문은 하나였다 9
18. 효에서 충으로, 충에서 학문으로 9
19. 울산 학성이씨의 문호를 다시 세운 매헌공 10
20. 71세, 한 선비가 남긴 마지막 길 11
21. 맺음말 ― 칼보다 깊은 붓, 죽음보다 오래가는 가르침 11
매헌공 이겸익(梅軒 李謙益) 일대기
― 칼로 나라를 지킨 형제들, 붓으로 나라와 가문을 세운 선비
1. 천성산 정기를 품은 주남에서 태어나다
매헌공 이겸익(李謙益, 1575~1645)은 자(字)가 자부(子裒), 호(號)가 매헌(梅軒)이며, 학성이씨의 후손으로 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을 지낸 이우춘(李遇春)과 흥려박씨(興麗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의 가계는 중추원사 이예(李藝)로부터 이어진 집안이었다. 선조 이예는 대마도와 관련된 왜구의 침탈에 대응하고 피로인을 쇄환하는 등 무공을 세운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후손 역시 수군과 무관으로 나라를 지키는 전통을 이어왔다. 매헌공의 아버지 이우춘 또한 상서원직장을 지냈다.
매헌공은 1575년 음력 정월 29일, 웅촌면 주남리에서 태어났다. 첨부된 가장은 공의 타고난 자질을 “단아하고 엄중하며 온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어려서부터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고 전한다. 또한 다른 묘갈명에서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깊고 기국이 컸으며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고 평가한다.
주남은 천성산에서 흘러내린 회야수의 물줄기가 자리 잡은 고장이다. 매헌공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산과 강, 그리고 전통적인 선비 가문의 정신을 몸에 익혔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2. 다섯 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품에서 성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