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의 정강왕릉
풍수의 기본은 형세풍수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명제이다. 즉, 형세풍수가 주를 이루고 여기에 더해 이기풍수가 묘미를 더해주는 것이다. 이번에 계림을 방문하고 정강왕릉을 답사하면서 그 믿음은 더해 갔다. 확실히 형세풍수에 바탕을 두고 입지를 선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공간구성조차 이루고 있어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금 나의 풍수를 되돌아 보게 된다.
계림하면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산수가 천하제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곳 계림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온통 돌산인 것이다. 흙이 없이 온통 돌로된 산만이 즐비하다 보니 사람 살기에 적합한 지형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기에, 명·청대까지만 해도 굉장히 살기 힘든 지역으로 유명했다. 현대에 이르러 관광산업이 발전하게 되면서 척박한 땅이 오히려 아름다운 지형·지세로 인해 살기 좋은 곳으로 변신한 것이다.
계림을 分封받은 주원장의 조카 朱守謙은 왕성과 왕릉을 조성하게 되는데, 문제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온통 돌산으로 된 지형에서 흙산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돌산의 비탈에다 왕릉을 조성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온 지역을 뒤진 끝에 堯山지역에서 흙산을 찾을 수 있었다. 주산과 안산 그리고 좌우 청룡·백호를 완비한 지형을 살펴 왕릉을 조성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특히 용맥이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행룡을 멈춘 용진처에 왕릉을 조성할 수 있었고, 14대에 걸쳐 왕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곳 요산의 지형 덕이라 할수 있다. 당시에는 한번 분봉을 받으면, 역모나 절손같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후손들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14대에 걸쳐 왕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풍수 논리를 빌리지 않아도 무난한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명실상부하게 왕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지형적인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더해진 결과라 할 것이다. 특히 주수겸의 손자 朱佐敬의 능이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능의 풍수도 가장 뛰어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나머지 왕릉들은 원형을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 없다. 여기에서도 풍수의 위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명당에 자리 잡아야만 오랜 시간 동안 보존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