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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료는 스님이 매월 첫 주에 가서 법회를 진행하는
남원지역 군부대 호국홍제사의 법문 자료입니다.
이번 국난을 뛰어넘는 산불 대재앙에 관한 것인데요.
자료를 활용하실 님들은 쓰시라고 올려드립니다.
또 자료의 활용과 별개로
장병들에게 설법하였듯이 여러분들 이해를 돕는 설명을 붙여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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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산불을 보는 관점을 정리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보살님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6가지 수행이 있습니다.
6바라밀이라고 하지요.
그가운데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도에서 무엇으로 이해했든
또 한문에서 무엇으로 인식하건 다 필요 없이
우리 동이족의 고유언어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범어(산스크리트어) 자체가 우리말이기 때문이에요.
이걸 놓쳐서고 여러 잡설이 만들어져 버렸습니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지혜(智慧)'와 '도피안(到彼岸)'으로 번역하고
'도피안'은 '저 언덕에 도착하다(到)' '이르다(到)'는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범어로는 '바라밀다, 파라믿다(波羅蜜多paramita) '입니다.
이게 벌써 버려논거에요.
앞서 기라성 같은 역경승들을 잘못 되었다 지적하는 것이 송구스럽지만
이건 분명이 잘못 되었습니다.
'지혜(智慧)'와 '도피안(到彼岸)'으로의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건 불교의 의미를 엄청나게 축소시키고 왜곡시킨 번역입니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동이족의 언어를 그대로 음을 따서 쓴 것입니다.
그렇기에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봤냐? 제대로 봤으면 바로 믿어. 그리고 그렇게 수행해.'
이런 뜻입니다.
6바라밀 보다 한 단계 아래 인간들이 정진하는 것으로는 '팔정도(八正道)'가 있는데요.
팔정도 가운데 '정견(正見) 정사(正思)'가 '반야(봤냐)'가 되고
나머지 여섯가지가 '바로믿다(바로 믿고 행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팔정도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풀어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기본 설명이 되야 해요.
그리고 반야바라밀은 급수가 무수합니다.
뭐든 제대로 보고 올바르게 대처하면 전부 반야바라밀입니다.
그 수많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최고가 '마하반야바라밀'이고요.
이 '마하반야바라밀'은 총 6가지가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은 '마하의 경지에 오른분의 반야바라밀'일는 뜻입니다.
그 마하는 이 사바대우주에 총 6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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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불교는 전체가 과학이고요.
'마하반야바라밀'을 완성하기 위한 수행임에 분명합니다.
이번 산불도 그런 관점으로 보자고 스님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죽은 이론이나 종교적 국뽕이 아니라
익히면 실시간으로 크게 도움되는 그런 유익한 가르침.
이런게 진짜 종교(宗敎)죠..
종교(宗敎)는 가장 최상이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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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1번은 이번 산불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CCTV들입니다.
우리나라 도로에는 저렇게 많은 CCTV들이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갑나죠???
이게 360도에요.
이렇게 생기기도 했고요.
이런 모습도 있습니다.
요렇게도 생겼죠.
전부 360도 회전되고요.
다 땡겨집니다.
CCTV를 관제하는 곳은 아주 겁나게 생겼습니다.
겁나죠??
이렇게 실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저 화면을 크게 띄워버려요.
정말 조심하셔야 하고요.
우리나라 도로에만 깔린게 아래와 같습니다.
이거 외에도 개인 CCTV에... 블랙박스까지..
죄 지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국가적 재난산불에서 이 CCTV들이 큰공을 세웠습니다.
이걸로 스님은 실시간으로 무시무시했던 산불을 봤고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건 당시 산불 현장과 법문 준비를 하며 비교한 영상입니다.
열흘 정도의 차이..
저 사진은 온순한 사진이고요.
현장은 더욱 참혹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경북 의성 산불... 대확산... 대규모 인명피해 우려...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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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는 이번 산불의 규몬데요...
여기뿐 아닌거 아시죠??
위에 불붙은 현장의 모습이 아래 전지역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위의 자료는 이번 산불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데이터.
문제는 동시다발로 다량 발생했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는 거죠.
하늘에서는 당시 발생한 산불과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추가 산불 모두를 한 덩어리로 본다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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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현장 블박 영상이죠.
카페에도 올렸습니다.
아래 첨부해 두었으니 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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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을 정리하면
이 산불을 보는 관점을 두 가지로 해라..
국가와 개인...
국가는 어떻게 할것인가
| 06.국가적 교훈(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팔정도의 정견(正見) 정사(正思)) -원인, -현장대처법, -계곡이 전멸할 수 있다, -불이 강(대략 거리 500미터)을 뛰어넘을 수 있다. -복구방법 -방어법 |
개인은 어떻게 할것인가
| 07.개인적 교훈 -우선 저런 상황이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3월 25일 해당지역 일몰은 18:41 –한국천문연구원-)//4월 5일 일몰 18:50 -헤드라이트도 무용지물이다 -차가 길이 아닌곳으로 갈수도 있다 -조수석에서 봐주면 도움이 된다 -다른 차에 막힐수도 있다. -바퀴가 녹아 터질수 있다. -바퀴 터지는 경우 강한 폭발음이 나고 충격이 있다. -바퀴가 터지면 빠른 속도인 경우 전복(뒤집어짐) 된다. -4륜차가 도움이 된다. -4륜차가 아닌 차는 처박히거나 빠져서 서면 그대로 끝난다 -차에 비상 견인 로프가 있다면 막힌자를 빼서 같이 탈출이 가능함 -일반차가 빠져 주행이 불가하다면 밀어내고 탈출 -무조건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 -차량 소화기 반드시 비치(나나 타인을 1회는 구해줄수 있다) -평상시 생각한 위기시 긴급피난 방식이 무용지물이 될수 있는 긴박함도 있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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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해 성중님께서는
-산불..거대 산불이 생기면 막을 길이 없다...
-뚜렷한 예방책도 없다...
-느티나무가 지연시킬수 있다. 심어라.
-종교적으로 예정된거 말고 인간이 실수해도 바람을 만나면 거대 산불 될 수 있다.
-실제 상황에선 큰불이 나면 각 지역별 용왕 기도터어서 용왕님들께 보고를 하고 도움을 요청해라.
-모든걸 동원해 총력을 다해 막아라.
-기우제 모셔라.
영선사는 위에 언급된 종교적 내용 그대로 실천했고요...
현장에서는 불가항력을 느끼고...
오직 하늘에 기댔다고 합니다.
실제로 비가 와서 잡힌 것이 분명 있습니다.
여러군데서 기우제를 모셨다고 해요.
경전에 나온 기우제는 설단이 매우 엄격합니다만
우리 성중님 번은 어찌보면 간단합니다.
어렵지 않은 설단이기에 급한 대처가 가능하니까요.
아래 글을 읽어 보시고 위기가 닥치면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영선사 기우제 당시 대중을 모아 함께 하라하셨는데요.
상황이 너무 급해 스님과 대성보살님 둘이서만 진행했습니다.
기우제는 대중이 모여야 좋다는거.
현재도 무척 가문데요.
이시기 우리나라엔는 에정된 물이 없답니다.
그걸 바꿔야만 한다면??
기돌 해야죠.....
바꿀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라시대 문무대왕 시절에 당군이 침입했을 할 때
'명랑법사'가 '문두루비법'을 행해 전멸시킨 일이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가능합니다.
물론 문무대왕님은 일반인이 아닙니다.
당연히 명랑 법사도 일반인이 아니시죠.
성중님이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보살님 두 분이 계시는데 스님꿈에서는 그 어른들을 '참모총장'이라 불렀습니다.
1분은 동해 감포 대왕암의 주인공이시고요.
상주하시는 보살님이십니다.
이어른을 '공군참모총장'님으로 부르더군요.
1분은 남해 보리암의 보살님이신데요.
이어른을 '육군참모총장'님이라 부른답니다.
문무대왕님은 감포대왕암의 보살님 '좌보처'성중님이시래요.
역사에 등장하는 대왕암의 '용'신은 다른분이고요.
좌보처 성중님 아래에 배속.
이런 숨은 사연이 있습니다.
종교인이라면 어차피 안 된다고 퇴굴심을 내거나
어차피 비올건데 뭐하러하냐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왜냐고요?
국가적 재난이나 그이상의 재난은 올바른 종교가 개입 안되면 해결 어렵습니다.
비예보요??? 그게 매번 맞던가요?
예보 틀린게 어디 한 두 번입니까?
이번에도 정말 비 어렵게 왔습니다.
영선사는 계속해서 비를 내리는 목탁을 쳤고요.
하늘도 곤혹스럽다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원래 지금 이시기 우리나라에 물이 전혀 없었답니다.
여기저기 내리던 비...그냥 온거 아닙니다...
2017년도 전국 가뭄이 들었을 때..
남들이 말라죽고..굉장한 가뭄이었습니다...
당시 영선사가 지장기도 때 기돌 했습니다.
그 밤에 인근 지역에서 100밀리가 넘게 폭우가 쏟아졌었어요.
당시는 쥐 요괴가 설쳐서 그랬던거...
이후 국지성 호우들이 내리다가 다 해갈되었지요.
이런게 종교의 힘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여럽답니다..
우리나라에 물이 아예 없는 상태.
이걸 빠구는데 그게 쉽겠습니까?
그래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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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군(唐軍)을 수장시킨 '문두루 비법'이란?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33〉사천왕사라는 절 (1) 김대식 서울디지털대 교수 | 기사입력 2006.08.21. 14:48:00 ▲ 경주시 배반동 낭산 기슭에 위치한 사적 제8호 사천왕사터의 금당터. 5, 6년 전의 사진이다. 일제 때인 1929년 처음 발굴된 이후 77년만인 올해 4월 재발굴에 들어갔다. 올해는 중심 사역(寺域)인 금당터와 서(西)목탑터에 대해 중점적으로 재조사를 벌인다. ⓒ프레시안 660년 신라 무열왕이 당(唐)의 군대를 끌어들여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한 후, 당은 옛 백제 땅 부여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했다. 663년 당은 신라마저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무열왕에 이어 즉위한 문무왕을 계림주 대도독으로 삼는 한편, 중국으로 데려갔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륭을 다시 귀국시켜 웅진도독으로 삼아 문무왕과 함께 서로 맹약을 맺도록 했다. 668년 신라와 당이 고구려를 멸한 후,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고구려 영역을 직접 지배하려 들면서 동맹국이었던 신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신라도 고구려 부흥 세력을 배후에서 지원하여 당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백제 지역에서 당군을 몰아내고 옛 백제 땅에 대한 지배력을 장악하였다. 그러자 당은 신라에 대해 여러 차례 대규모 무력 공격을 시도했는데, 당의 공세가 본격화되던 무렵의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총장(總章) 원년 무신(668년)에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이 대군을 거느리고 신라 군사와 합세하여 고구려를 멸하였다. 그 뒤에 남은 군사가 백제에 머물면서 장차 신라를 쳐서 멸망시키려 하는 것을 신라 사람들이 알아채고 군사를 내어 이를 대항하더니 당 고종(高宗)이 이 소문을 듣고 분노하여 설방(薛邦)을 시켜 군사를 동원하여 치려 했다. 문무왕(文武王)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명랑법사를 청해다가 비법을 써서 빌어서 이를 물리치게 했다." 신주편 "명랑 신인"조에 나오는 위의 기사는 기이편 '문호왕 법민'조에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왕은 몹시 두려워하여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것을 막아 낼 방법을 물었다. 각간 김천존(金天尊)이 말했다. "요새 명랑법사가 용궁에 들어가서 비법(秘法)을 배워 왔으니 그를 불러 물어보십시오." 명랑이 말했다. "낭산(狼山) 남쪽에 신유림(神遊林)이 있으니 거기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고 도량을 개설하면 좋겠습니다." 그때 정주(貞州)에서 사람이 달려와 보고했다. "당나라 군사가 무수히 우리 국경에 이르러 바다 위를 돌고 있습니다." 왕은 명랑을 불러 물었다. "일이 이미 급하게 되었으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 명랑이 말했다. "채색 비단으로 절을 가설(假設)하면 될 것입니다." 이에 채색 비단으로 임시로 절을 만들고 풀[草]로 오방(五方)의 신상(神像)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가(瑜伽)의 명승(明僧) 열두 명으로 하여금 명랑을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文豆婁) 비법을 쓰게 했다. 그때 당나라 군사와 신라 군사는 아직 교전하기 전인데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서 당나라 군사는 모두 바다 속에 침몰되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의 한 대목을 연상했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갈량이 연환계를 써서 조조의 군선(軍船)을 모두 묶어놓은 다음, 제단을 차려 동남풍이 불기를 기도하여, 동남풍이 불어오자 오(吳)의 장수 주유가 화공(火攻)으로 조조군을 대파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이들 두 사례에는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 제갈량의 동남풍 기구(祈求)가 해마다 그 무렵이면 동남쪽에서 무역풍이 불어온다는 사실을 이용했던 것임에 비해, 명랑의 문두루 비법은 그와는 다른 차원의 종교적 의식(儀式) 행위였다는 점이 다. 문두루 비법은 『관정경(灌頂經)』이라는 밀교 경전에 나오는 주술(呪術)이다. 『관정경』에서는 문두루 비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내가 너를 위하여 대선(大仙)의 법을 말하리라. 만일 4부 대중 중에 사악한 귀신에게 홀려 털이 곤두서도록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몸을 상상하고 나서, 다음에 다시 천이백오십명의 제자들을 생각하고, 다음에 다시 여러 보살승을 생각하라. 이 세 가지를 상상하여 생각하고 나서 또다시 오방대신(五方大神)을 생각하라. 그 첫째는 단차아가(亶遮阿加)라 이름하는데, 그 몸이 장대하여 1장2척이고 청색 옷을 입고 청색 기운을 토하여 동방에 있다. 둘째는 이름을 마가기두(摩呵祇斗)라 하며, 그 몸이 장대하여 1장2척이고 적색 옷을 입고 적색 기운을 토하여 남방에 있다. 셋째는 이름을 이도열라(移兜涅羅)라 하며, 그 몸이 장대하여 1장2척이고 흰색 옷을 입고 흰색 기운을 토하여 서방에 있다. 넷째는 이름을 마하가니(摩訶伽尼)라 하며, 그 몸이 장대하여 1장2척이고 검정색 옷을 입고 검정색 기운을 토하여 북방에 있다. 다섯째는 이름을 오달라내(烏呾羅嬭)라 하며, 그 몸이 장대하여 1장2척이고 황색 옷을 입고 황색 기운을 토하여 중앙에 있다." (…) 부처님께서 천제석(天帝釋)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오방신의 이름이다. 만일 후대 말세에 4부 대중이 위험한 재앙을 당하는 날에는 위의 오방신왕의 이름과 그 권속들을 원목(員木) 위에 써놓고 문두루법이라고 하라. 그 이치가 이와 같으니 너희는 마땅히 행하도록 하라." 천제석이 물었다. "원목 문두루는 가로와 세로를 얼마쯤 되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로와 세로를 사십구분(49分)으로 하라." 천제석이 물었다. "어떤 나무가 제일 좋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금과 은과 진보(珍寶)가 가장 좋고 다음이 전단목(栴檀木)이나 온갖 잡향(雜香)이다. 그런 것들로 문두루의 형상으로 삼아라." (…) 부처님께서 천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이 문두루는 모든 귀신을 압착시켜 갈아 없애어, 망령되이 그른 일들을 행할 수 없게 한다. 이 문두루로 산을 찍으면[印] 산이 무너지고, 모든 수목을 찍으면 그로 인해 수목이 부러지고, 강이나 바다를 찍으면 그로 인해서 물이 고갈되며, 물이나 불을 찍으면 물이나 불이 그로 인해서 소멸된다. 만일 사방에서 돌풍이 불어 흙먼지를 날릴 때, 인(印)을 들어 그곳으로 향하면 곧 바람이 멈추고 불지 않으며, 인을 들어 땅을 향하면 땅이 움직인다." 이러한 문두루 비법이 과연 어떠한 효과를 가져왔는지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 기사들이 참고가 된다. 당군은 신라와의 전쟁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몰리다가 마침내는 매초성 전투, 기벌포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는 것이다. 당시 신라와 당 사이의 전투 기사를 추려보자면 이렇다. ▲ 사천왕사터의 금당 뒤편, 단석(壇席)으로 추정되는 곳의 초석(礎石). 그 독특한 생김새로 보아 문두루 비법의 설행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레시안 "14년(674년) 봄 (문무)왕이 고구려의 배반한 무리를 받아들이고 또 백제의 옛 땅을 차지하고서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니, 당나라 고종이 크게 화를 내어 조서로써 왕의 관작(官爵)을 깎아 없앴다. 왕의 동생 김인문이 당의 서울에 있어, 그를 신라 왕으로 삼아 귀국하게 하고 유인궤(劉仁軌)를 계림도대총관으로 삼고, 이필(李弼), 이근행으로 보좌하게 하여 군사를 일으켜 공격해 왔다. 15년(675년) 봄 2월, 유인궤가 우리 나라 군사를 칠중성에서 격파하였다. 인궤가 군사를 이끌고 귀국하니, 황제가 이근행을 안동진무대사로 삼아 그 곳 일을 처리하게 하였다. 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또한 사죄하니 황제가 이를 용서하고 왕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의 땅을 많이 빼앗아 마침내 국경이 고구려 남쪽 지방에 이르렀고, 그 곳을 주와 군으로 만들었다. 당나라 군사가 거란과 말갈 군사와 함께 침범한다는 소문을 듣고, 구군(九軍)을 출동시켜 이에 대비하였다. 가을 9월, 설인귀가 숙위(宿衛) 학생 풍훈을 향도로 삼아 천성(泉城)을 공격하였다. 우리 장군 문훈 등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 1400명의 머리를 베었으며, 병선 40척을 빼앗았다. 설인귀가 포위를 뚫고 후퇴하여, 우리는 전마(戰馬) 1천필을 또 얻게 되었다. 그 달 29일, 이근행이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매초성에 주둔하자, 우리 군사가 그들을 격퇴시키고 3만380필의 전마와 그 이외에 이에 상당하는 병기도 얻었다. 안북하를 따라 관문과 성을 건설하고 또한 철관성을 쌓았다. 말갈이 아달성에 들어와 약탈을 하므로, 성주(城主) 소나가 그들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거란 및 말갈 군사와 함께 칠중성을 포위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소수(小守) 유동이 전사하였다. 말갈이 또 적목성을 포위 공격하자, 현령(縣令) 탈기가 백성들을 이끌고 대항하다가 힘이 다하여 백성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또한 석현성을 포위하고 이를 점령하려 하자, 현령 선백과 실모 등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또 우리 군사가 당나라 군사와 크고 작은 18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여 6047명의 머리를 베고 2백필의 전마를 얻었다. 16년(676년) 가을 7월에 당나라 군사가 도림성(道臨城)을 공격해 와 함락시켰는데, 현령 거시지(居尸知)가 전사하였다. 겨울 11월, 사찬 시득이 수군을 이끌고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싸우다가 패하였으나, 다시 크고 작은 22회의 전투에 나아가 승리하고 4000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동국대 김상현 교수는 '사천왕사의 창건과 의의'라는 논문에서, 문무왕을 비롯한 신라의 지배층이 대부분 불교를 신봉했으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신앙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예컨대, 문무왕은 '죽은 뒤 나라를 수호하는 큰 용이 되어 불교를 떠받들고 국가를 보위코자 한다'고 말했고, 김유신은 군사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기도를 하여 감응을 얻었다고 한다. 신라가 백제 땅에서 당군을 축출한 일로 김인문이 당나라 옥에 갇히게 되자, 신라 사람들은 인용사를 창건하여 그의 안전을 기원했다는 사실도 기록에 남아 있다. 김상현 교수는 문두루 비법 설행(設行)을 통해 표출된 신라인의 단합된 의지가 당나라 군사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문두루 비법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문무왕은 당의 침략에 대하여 문두루 비법이라는 응급처방으로 대처하는 한편, 명랑의 건의에 따라 사천왕사의 건립에 착수하게 되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9년(679년) 기사에 사천왕사를 낙성하였다는 짤막한 기록이 나온다. 문두루 비법을 처음 설행한 지 10년만에 사천왕사의 낙성을 보게 된 것이다. 명랑은 사천왕사의 건립 장소로 낭산의 남쪽 신유림을 선택했다. 낭산은 신라 도성을 중심으로 동악 토함산, 서악 선도산, 남악 금오산, 북악 금강산 등으로 구성되는 오악(五嶽)의 중심인 중악(中嶽)이다. 또 '신(神)이 노니는 숲'이라는 뜻의 신유림(神遊林)은 신라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성소(聖所)로, 전불시대 7처 가람 중의 한 곳이었다. 그뿐 아니라, 낭산 정상에는 도리천(忉利天)으로 비정된 선덕여왕의 능이 있는데, 도리천은 수미산의 중심으로 제석(帝釋)이 머무른다는 곳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수미산의 네 방위를 수호하는 존재로 일찍부터 호법(護法) 혹은 호국신으로 여겨져왔다. 따라서 도리천 아래에 사천왕사가 세워졌다면 사천왕사 일대는 사천왕천(四天王天)으로 비정되고 낭산 자체는 불교 성지인 수미산으로 관념되게 된다. 한 마디로, 사천왕사라는 절은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는 중차대한 시점에, 신라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낭산의 신유림에 건립되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중대(中代) 신라에서 사천왕사가 차지하는 위치는 그보다 앞선 중고기(中古期) 신라에서 황룡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버금간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은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의 성전사원(成典寺院)에 관한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성전사원이란 왕실의 원찰(願刹) 성격이 강한 사찰로서 국가가 관부(官府)를 설치하고 관원을 파견한 곳이었다. 『삼국사기』 직관지는 사천왕사, 봉성사, 감은사 등 7개소의 성전사원을 꼽고 있는데 사천왕사가 이들 성전사원의 첫머리에 꼽히고 있음으로 미루어 볼 때, 사천왕사의 사격(寺格)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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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국가적 재난인 산불 상황입니다.. 실제 현장 영상이니 꼭 보세요..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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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자신의 지역이 산불로 고통 받는 다면?? 종교적 해결기도법...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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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산불 국난 극복을 위한 기우제... 준비와 봉행(26일 오전)..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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