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 작가의 첫 소설집 『나는 포기할 권리가 있다』(푸른사상 소설선 35).
이 소설집에는 5·18민주화운동의 후유증, 노인 문제, 부부 문제 등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힘든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맞서 극복해내려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작가는 상처받은 이웃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웅숭깊은 시선으로 껴안으며 함께한다. 2022년 8월 1일 간행.
■ 작가 소개
여수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살고 있다. 2021년 「등고선」으로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같은 해 「벅수」로 여수 해양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채정’은 ‘색채의 뜰에서 놀다’라는 의미로 등단작 「등고선」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 의미가 좋아서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을 쓴다는 건, 외롭고 지친 영혼이 내 몸 밖으로 나가 스스로 만든 족쇄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은 왼쪽 귀퉁이를 풀고 내일은 오른쪽 귀퉁이를 풀어 활자화시키는 그 일련의 행동의 되풀이가 아닐까 하고. (중략)
어쨌거나 소설을 쓰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련의 행위를 멈추지 않기 위해 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것에 시간의 더께가 더해지면서 점점 밝아지고 깊어질 눈을 기대한다.
■ 작품 세계
이제 첫 소설집을 내는 작가 채정의 소설은 평범한 듯 보이는 인물들이 사실은 그 평범함 속에 내장하고 있는 부재와 결핍과 고통을 단단하게 견뎌내면서 마침내 자아, 그리고 세계와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행로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지켜나가려는 인물들의 다짐도 세계와의 불화를 끝내고 싶은 내밀한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야 비로소 온전하게 숨 쉬면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가 세상을 긍정하고 인간 존재를 따뜻한 심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하나의 태도요 세계관으로 그것 자체로 귀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중략)
문학은 인간 존재가 그렇듯이 매우 복합적인 데다 제각각의 섬세한 무늬를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이다. 「등고선」 속 여성 인물 ‘채정’이 그러하듯 작가 채정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기대하면서 지켜볼 것이다. 인간에 대한 긍정이야말로 문학의 궁극적인 가치며, 늦은 것은 문제가 아니라 늦게까지 쓸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작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 심영의(소설가,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짜릿하다! 그렇지. 이런 게 소설이다. 채정 창작집의 주인공들은 모든 소설의 주인공이 그렇듯 잔인한 운명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이유 없이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을 최선을 다해 견뎌낸다. 없는 것처럼 잊어버리지도 않고, 극복한 듯 방어막을 치지도 않는다. 때로는 상처 준 세상에 쌍욕을 날리기도 하고, 앓아눕기도 한다.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그들은 산다. 기어이 살아낸다. 현실의 우리가 그러하듯이. 육십의 나이에 문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뛰어든 채정이 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해졌다. ‘징검다리가 있는 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중풍을 앓는 노인, 막일을 하는 중년의 남자, 아마도 광주항쟁의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는 듯한 남자, 막 동거를 시작한 청춘남녀, 그들이 모여 소박한 멸치국수 잔치를 벌이고, 청춘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비틀거리며 쉬엄쉬엄 징검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나는 울었다. 그렇지, 이런 게 인생이다. 상처 입은 자들이 서로 보듬고 한 발 내디딜 힘을 내는 것. 때로는 용서할 마음을 먹기도 하는 것. 그래도 용서는 쉽지 않은 것. 그래서 보란 듯이 오줌을 갈겨주는 것. 그러나 그 오줌발이 늙어 줄줄줄줄 하염없이 흐르는 것. 보란 듯이 시원하게 쏴- 갈겨줬어야 하는 건데!
채정의 세상에 나도 슬쩍 끼어들고 싶어졌다. 이런 게 인생이고, 문학이란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한들 이런 진실을 서럽게 쓸쓸하게 애틋하게 들이미는 것 아니겠는가.
― 정지아(소설가)
채정의 첫 창작집에 실린 8편의 작품을 읽노라면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가지 않고 어딘가 미흡하게 흘러가거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천연염색을 업으로 하는「 등고선」의 주인공의 삶이 그렇고, 자신에게 주어진‘ 유공자’증이 권리가 아니라 굴레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나는 포기할 권리가 있다」의 주인공을 통해 내가 취하는 당연한 권리가 어쩌면 이웃의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작가는 창작집에 실린 8편에서 온기가 가득한 세상은 그늘 속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거라고 오롯이 말하고 있다. 이런 의식의 소유자이므로 우리는 채정이라는 소설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녀에게 문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 장마리(소설가)
■ 책 속으로
“세상이 참, 지랄맞죠? 누군 다리병신이 되었는데도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누군 멀쩡한 사지 육신을 가지고도 유공자에, 보상금에, 호사를 누리니 말입니다.”
호사를 누린다는 김의 말은 과했다. 보상금만 해도 그랬다. 보상금이 지급되었다는 보도에 이름도 모르는 시민단체에서 연락을 취해왔다. 그들은 교묘한 말로 기부를 종용했다. 처음에 망설였지만 몇 개의 단체에 기부하자 외려 홀가분했다. 사실 유공자 혜택도 별거 없었다. 국가가 지정한 병원에서의 치료비 면제와 국립공원 입장료 면제,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한 영화관 할인, 그리고 몇 번으로 한정된 기차요금 반값 할인 정도였다. 다만 애들 학비를 면제받을 때는 달랐다. 아비로서의 뿌듯함과 오래전의 행동이 옳았다는 우쭐함은 분명 있었다. 유공자 자녀에게 주어진 가산점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박이 지닌 유공자 자격을 김에게 내줄 수도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나는 포기할 권리가 있다」, 88~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