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25〉경전 연구자들도 참선의 힘 필요
목장 주인과 한국불교의 힘
선사 호칭, 부처님 열반직후 시작
행<行> 없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어
사위성의 귀족 출신이었던 두 젊은이가 부처님 법문에 감동을 받고 함께 비구가 되었다. 두 비구는 스승을 모시고 5년간 수행자로서의 기초과정을 배운 뒤 각자 원하는 공부를 위해 헤어졌다. 두 친구 중 나이가 어린 비구는 경학을 공부해 강사가 되었고, 나이가 많은 비구는 학문적인 연구보다는 수행에 뜻을 두어 부처님께 입출식념과 사념처 수행을 지도받아 선에만 전념해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 해, 헤어졌던 두 비구가 오랜만에 기원정사에서 만났다. 강사가 된 비구는 친구가 아라한이 된 줄은 까마득히 모른 채 자기의 학문적인 견해를 열심히 자랑했다. 강사 비구는 한술 더 떠서 교학에 관한 어려운 질문을 비구에게 하여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 무렵 부처님께서 천안으로 두 비구의 모습을 보시고, 두 사람 앞에 나타나셨다.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법(Dhamma)을 질문하자, 경에 자신만만했던 강사는 대답을 전혀 못하고, 아라한을 성취한 비구만 정확하게 답변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라한이 된 비구를 칭찬하시며, 두 비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경을 아무리 많이 외우더라도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마치 남의 소를 보살펴 주고 수고비를 받는 목동과 같으며, 수행을 실천하는 사람은 목장의 주인과 같다.”
근래 초기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부처님 재세시를 포함해 초기불교는 선교일치된 불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선사(禪師)라는 호칭은 중국에 선종이 발전하면서부터 생긴 것이 아니다. 부처님이 열반한 직후부터 시작해 부파불교시대에 오롯이 선정만을 닦는 이들을 선사(Jh쮄yin)라고 하였고, 후에는 유가사(瑜伽師)라고 하였다. 선사 이외에 경전을 암기해 전하는 이들을 경사(經師), 계율에 밝아 철저히 지킨 이들을 율사, 교리에 밝아 불교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이들을 법사라고 하는 호칭이 있었다. 현재 위빠사나 종주국이라고 하는 미얀마도 선(禪)만 하는 선사와 교(敎)만 하는 강사가 있어 이들의 보이지 않는 견제의식이 있다.
나는 강사 신분으로 이름을 걸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 글을 교선일치로 정리하고 싶지 않다. 교가 필요한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수행의 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마 이런 내게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입만 살아 움직인다고…. 나는 1년 넘게 미얀마에서 살았다. 이후로 초기불교 경전이나 위빠사나 이론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더불어 북방불교 선을 이해하는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경전만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참선의 힘이 필요하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진짜 목장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행을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입적한 중국의 본환(本煥, 허운의 제자, 임제종법계) 선사는 이런 말을 했다. “부처님께서 설한 모든 가르침에는 ‘행(行)’자 하나로 모아질 수 있습니다. 범부로부터 성인에 이르는 것도 행이요, 성인으로부터 부처가 되는 것도 행입니다. 행이 없다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나말 여초에 선을 최초로 전한 9산선문을 호족들과의 결탁으로 보는 학자도 있는데, 내 경우는 다른 일면으로 보고 싶다. 당시 9산선문의 선사들은 도의 국사가 37년간, 대부분의 선사들이 10년~20여 년간 중국에서 수행을 하고 법맥을 받아 귀국해 신라에 선(禪)을 심었다. 이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고대의 선사들이 있었고, 조선 500년 불교가 핍박받는 속에서도 본분을 지키는 승려들이 있었다. 현재도 결제 중에 제방의 선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다. 바로 이것이 한국불교의 힘이요, 조계종의 힘이다. 그러니 한국 승가여! 앞으로는 옆길로 세지 말자.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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