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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잠언 (39)/지혜
제목 : 지혜로운 자의 삶의 방식(方式)
성경 : 잠 20:15-30
찬송 : 425,549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00909 낙양교회 수요예배
잠 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잠 20:16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잠 20:17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잠 20:18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잠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잠 20: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잠 20: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잠 20: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잠 20:23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잠 20:25 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
잠 20:26 지혜로운 왕은 악인들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를 그들 위에 굴리느니라
잠 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 20: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잠 20:29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잠 20:30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지혜로운 입술은 금과 진주보다 귀합니다. 한담하는 자와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보증을 서면 볼모로 잡히고, 속히 잡은 산업은 복이 안 됩니다. 직접 악을 갚지 말고 구원의 여호와를 기다려야 합니다. 지혜로운 왕은 악인을 키질합니다.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한 길에서 떠나 지혜로운 의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은 지혜로운 자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입술이 지혜로운 자(15-20절)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는 언어 사용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논쟁할 때라도 지혜로운 자는 대체로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상대방의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대화하는 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과격한 말로 상대방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합니다. 사실 잠언 곳곳에 지혜로운 입술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이 자주 반복되는 이유는 입술의 지혜를 갖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잠 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지혜의 가치를 강조하는 잠언입니다. 이후의 잠언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잠언은 지혜의 가치가 보물보다 더 소중하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에 ‘말’이라는 주제를 연결해서 지혜로운 입이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가치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지혜로운 입의 가치는 18절에서 경영과 지략으로 드러납니다.
보물을 캐내는 것이 어렵기에 가치가 있고 비싼 값에 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최고의 보물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입술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보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담으면 내 인격 전체가 보물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고 기도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예언이 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아서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말하면 상한 마음이 치유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려면 우리 마음에서 교만이나 남을 무시하는 마음을 다 버리고 우리 속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말씀이고 뒤에서는 자기 멋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데 이것은 실패입니다.
엘리 제사장 때는 말씀이 희귀했습니다(삼상 3:1). 말씀이 희귀했다는 것은 백성들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풍성하고 그 풍성한 말씀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정말로 지혜로운 입술이고 더욱 귀한 보배입니다.
잠 20:16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6-19절은 타인과의 관계 윤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16절은 보증에 관한 경고입니다. 보증은 지혜 없는 자의 행동방식입니다. 보증의 위험은 ‘타인’(낯선 자)이라는 단어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타인이란 즉, ‘낯선 사람, 외국인, 변덕스러운 여인’을 위해서 보증을 서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를 믿고 돈을 빌려 준다면 그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담보물이 필요합니다. 어리석은 자도 자신의 중요한 자산을 담보물로 요구할 때에는 자신의 결정을 재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창녀인 줄 알고 성관계를 한 것도 어리석은 행동이었고 창녀를 믿고 자신의 중요한 증표를 맡긴 것도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다말의 입장에서 그의 증표는 시아버지와의 성관계를 통해서 생겨날 후환을 막아주는 안전장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말은 지혜로웠고 유다는 어리석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증의 심각성은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가정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몸까지 볼모로 잡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잠 20:17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이것은 부정하게 취한 이득은 결코 유익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잠언입니다. 입에 가득한 모래(자갈)는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상태를 표현합니다. ‘거짓의 빵’은 인생을 파멸로 이끈다는 강한 메시지입니다.
미련한 여인이 어리석은 자들은 미혹하는 말과 연결이 됩니다.
잠 9:17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아간이 여리고 전투에서 몰래 취한 재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이 몰살을 당하는 비극을 당하였고,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수 7:21-24).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을 속이고 금과 외투를 취하였다가 엘리사로부터 저주를 받아 나병이 생긴 것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대하 5:20-27).
잠 20:18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사람의 계획은 타인과 의논함이 있어야만 성취됩니다. 계획과 의논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계획대로 실현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원리의 좋은 예로 전쟁의 경우를 듭니다. 전쟁에서는 다양한 지략을 수렴하고 잘 준비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사람들의 조언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잠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두루 다니며 남의 말을 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단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똑똑한 것 같고 또 발이 아주 넓은 것 같습니다. 대개 모임 같은 데 가보면 남들이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대체로 이야기를 주도하고 인기를 독차지 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루 다니면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일단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남의 정보를 캐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대개 책임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책임질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발이 넓고 주워듣는 것이 많을지 몰라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런 사람과 사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잠 20: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부모를 저주하는 자의 운명을 ‘어두워질 때 꺼져 가는 등불’로 묘사합니다. 어두워져서 등불이 필요할 때 불이 꺼져 가는 것은 커다란 재앙이며 위험입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자들의 인생이 이렇듯 재앙의 때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자식은 넘지 말아야 할 선(bounddary)을 넘는 자식입니다. 부모를 저주할 정도의 분노는 극심한 분노입니다. 화가 났다고 해서 안 될 일을 하거나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을 넘는 행동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치명적인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가운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고, 부모를 저주하는 자식을 죽이라는 율법 규정을 주셨습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부모에게 권위를 부여하신 하나님을 저주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로운 입술을 갖는 것이 금이나 진주를 소유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입술의 지혜는 좋은 생각과 마음에서 비롯되며 많은 사람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기 때문에 금보다 귀합니다. 말은 종종 씨앗으로 비유됩니다. 어떤 종류의 말을 뿌리느냐에 따라 복된 열매를 맺기도 하고 파멸의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려 있다고 한 만큼(18:21) 우리는 늘 지혜로운 말을 하며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추수의 법칙을 따릅니다.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 처럼(25;11) 사람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는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21-25절)
지혜로운 의인은 원통한 일을 당하거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가해자에게 직접 보복을 행하는 대신 하나님이 보응해주실 것을 기다립니다. 사실 원수 갚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계획은 그 자체로는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신학적인 통찰을 가지고 자신의 뜻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
잠 20: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지혜가 없을 때 거둔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인생의 후반에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미성숙한 상태에서 빠른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지혜로운 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서 나와서 정상 코스로 이동했다면 한 달에서 길게 잡아도 두 달이면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애굽의 잔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노예근성을 가지고 가나안 복지에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노예근성을 뿌리 뽑는 시간이 40년이 걸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갑자기 거부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권에 이렇게 당첨된 사람이 그 물질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이 오래가지 못해서 재산 다 날리고 알거지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못한다는 잠언이 실감나지 않습니까?
잠 20: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는 잠언으로, 복수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고 명령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복수를 하려는 것은 다시 한 번 인생에 억울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됩니다. 결국 그 인생은 반복된 상처로 실패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절대주권을 신뢰하는 것이 지혜임을 강조합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악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을 믿었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식하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피난 갈 때 사울 족속에 속한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졌지만 이때도 다윗은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시므이에게 다윗을 저주하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재해석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로부터 이 귀한 믿음과 진리를 체득했을 것입니다. 악한 자로부터 억울한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려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악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에게 간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잠 20:23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로 번역된 어구의 의미는 ‘각각의 저울추’ 혹은 ‘돌과 돌’입니다. 저울추의 무게가 각각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무게가 다른 저울추와 속이는 저울은 거짓된 상술의 대표적인 비유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좋지 못한 것입니다.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22절과 연결된 잠언으로, 여호와의 절대주권에 대한 신뢰를 강조합니다. 사람이 앞날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은 여호와를 신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라는 수사의문문은 사람은 결코 자신의 앞길을 알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잠 20:25 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
신중하지 않은 판단이 얼마나 큰 폐단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짐승이 덫에 걸리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서원이라는 행동보다는 성급함이라는 부정적인 태도에 더 초점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말과 행동은 항상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깊은 생각과 신중함은 지혜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절대로 충동적으로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과 맺는 언약 관계는 기분에 따라 맺거나 파기하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참으로 믿을 만 하고 신실합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라는 찬송 가사는 진리를 잘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자기의 길을 알 수 없다는 것을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의 도움과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갑자기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 인간들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릅니다. 더욱이 하나님마저 침묵하신다면 우리의 마음은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주관하며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믿습니까?
지혜로운 지도자의 통치 방식(26-30절)
지혜로운 왕은 마치 농부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것처럼 의인과 악인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악인에게 적당한 형량을 부과합니다. 또 본문은 지혜로운 왕은 인자와 진리로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왕은 백성들을 향한 언약적인 사랑과 신실함으로 약속한 바를 지켜 행합니다. 이런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 20:26 지혜로운 왕은 악인들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를 그들 위에 굴리느니라
지혜로운 왕은 악인들을 키질한다고 말씀합니다. 키질은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곡식을 탈곡한 후에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기 위해서 키질을 합니다.
시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지혜로운 왕은 악한 자를 키질해서 걸러낼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통치 초기에 세기에 남을 유명한 재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재판이었습니다. 키질을 하니까 쭉정이가 바로 드러난 것입니다.
잠 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특별한 은총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영혼은 등불과 같아서 영적으로 보게 하며 깨닫게 하며 통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영혼이 살아 있어야 인간은 선악을 분별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영혼의 등불이 꺼져 하나님을 아는 빛을 상실하였습니다. 마치 시신경이 죽은 시각 장애인은 빛이 비치어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성을 느끼며 찾는 기능은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빛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를 하며 다른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누구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등불 즉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불이 소멸된 위험성이 커집니다. 성도는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틈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며 자신의 내면을 살필 수 없게 됩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성전의 등잔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각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의 몸과 영혼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잠 20: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자기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라를 인자와 진리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즉 백성을 긍휼히 여기며 백성을 위해서 통치하되 공의를 성실히 행할 때 그 왕의 정권이 튼튼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잔학과 폭력, 부패와 불의로 다스리는 통치자는 스스로의 정권을 파괴하는 자일 뿐입니다.
잠 20:29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젊은 자와 늙은 자가 대조되며, 힘과 백발이 대조됩니다. 한편 영화와 아름다움은 동의어입니다. 늙은 자는 젊은 시절을 거칩니다. 젊은 자에게는 왕성한 힘과 에너지가 있지만 늙은 자에게는 젊은 자에 비해 정신적으로 성숙하며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젊은이와 늙은이는 서로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인생은 각 발달 단계에 따라 모든 단계가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 아이로서 가질 수 있는 영화로움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노년기의 삶이라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마치 늦가을에 단풍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은 어느 시기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따라서 노년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우울해하거나 슬퍼하는 자가 되면 안 됩니다. 아름다운 백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 수 있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잠 20:30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아무런 징계 없이 복을 받는 의인과 매를 맞고 악을 제해야 하는 악인을 대조하는 말씀입니다. 큰 재앙 없이 살아가는 의인은 젊을 때 힘을 얻고 노년에 백발을 얻어 평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악인은 여호와께서 보내신 징벌을 채찍을 맞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은 매로 때리는 것과 처벌하는 것의 긍정적인 효과를 지지합니다. 매와 처벌의 목적과 방법이 적절하면 효과적입니다. 적절한 매는 아이에게 이미 있는 악을 제거하며, 악습관을 버리게 하는데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내 아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체벌하면 안 됩니다. 법에 저촉됩니다.
포천에 가면 어떤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 수도원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교인들을 안찰하는 일을 합니다. 지금 구속 중에 있는 신옥주라는 목사가 교인들을 타작마당이라 해서 뺨을 때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사람을 눕혀 놓고 여러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안찰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상하게 맞아서 악이 없어진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 이단들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로운 왕이 다스리는 방식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줍니까? 지혜로운 지도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조화롭게 적용하면서 공동체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이런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지도자를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자와 진리로 공동체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을 구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