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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된 속죄제 규정(24-30)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헌신과 진실한 마음을 나타내며, 규정에 대한 순종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제사는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공동체의 예배와 책임도 중요시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에 대한 경배를 표현해야 합니다. 이 교훈은 새겨져야 할 원칙들입니다.
2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5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제물을 잡을 것이요 26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27그 고기에 접촉하는 모든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28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29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을지니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 30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죄하게 한 속죄제 제물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24-30)
본문에서는 제사에 관한 규정이 설명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속죄제와 소제의 제사 방법을 지시하며, 제물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제사장이 제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부 사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도살 장소와 고기 먹는 장소의 지정(24-27a)
앞서 4장과 5장의 속죄제 규정에서 빠진 내용은 짐승의 남은 부위 처분 방법과 절차였습니다. 도살 장소는 4장에서 ‘여호와 앞’이라고 지정되었으나 ‘번제를 잡는 곳’으로 구체화됩니다. 1장에서 양/염소의 도살 장소는 제단의 북쪽이었고 소는 통제의 어려움 때문에 특정 장소가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속죄제는 내장 부근의 기름 덩어리와 두 콩팥, 그리고 간엽을 떼어 제단 위에 불살랐습니다. 따라서 몸통의 대부분이 남게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현재의 규정에서 보충되어 앞선 4-5장의 공백이 메워집니다. 속죄제는 고기 처분 방식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먹는 속죄제’이고 다른 하나는 ‘태우는 속죄제’입니다. 26절은 먼저 먹는 속죄제를 설명합니다. 제사장은 남은 몸통의 고기들을 소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회막 뜰에서 먹습니다. 그러나 30절에서 먹지 못하고 태워야 하는 속죄제에 대한 설명이 추가됩니다. 만일 속죄제 짐승의 피가 마당의 제단이 아닌 내성소로 가지고 들어가 향단에 뿌려졌다면 그 고기는 반드시 진영 밖으로 반출하여 태워야 합니다.
(2) 사용된 물건들의 청소와 처분 및 고기의 처분(27b-30)
속죄제 고기는 가장 거룩했습니다. 아마 단순히 ‘거룩한 고기’였던 화목제를 제외하고(레 19:8) 모든 제단 위에 바쳐진 제물들, 즉 번제와 소제, 그리고 속죄제/속건제는 모두 지극히 거룩했습니다.
27절은 다시 해석상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 고기에 접촉하는 모든 것(사람)은 거룩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거룩해야 합니까? 우선 27절은 27a절에서 끊어 읽어야 합니다. 27절의 의미는 앞서 주장한 바와 같이 그 속죄제 고기에 접촉하는 모든 것은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룩하게 된다’로 해석하여 이 구절을 거룩의 전염성의 근거로 주장해선 안 됩니다.
즉,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물이 지극히 거룩한 소제물이든 또는 현재의 지극히 거룩한 속죄제 고기든 만지거나 접촉이 되었다 해서 그것이 거룩하게 변한다는 개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격이 없는 사람/사물이 그것과 접촉할 때 그 성물이 더럽혀지며, 그런 접촉으로 성물을 속되게 한 사람/사물은 즉각 응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이 자기 방어를 하며 스스로 정화하는 과정의 결과입니다. 예컨대, 하나님의 신적 불이 내려와 다른 불로 멋대로 향단에서 향을 피우려던 나답과 아비후를 태웠습니다(레 10장).
27b절은 피가 옷에 묻을 때 그것을 세탁하라고 명령합니다. 속죄제 짐승을 드리는 과정에서 옷에 묻은 피를 빠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28절은 속죄제 고기를 그릇에 삶았는데, 왜 그 그릇을 파괴하고 유기(놋그릇)에 삶은 것은 또한 물에 씻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룩의 전염성을 주장하면서 피가 거룩하기 때문에 피 묻은 옷에 결국 거룩이 묻어 그 거룩을 닦아내는 것이며, 속죄제 고기 또한 지극히 거룩하므로 토기에는 거룩이 스며들었으므로 깨트려야 하고 유기(놋그릇)는 스며들진 않으므로 씻어낸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 옷이나 그릇들은 이미 성막 내의 거룩한 물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미 거룩한 물건에 거룩이 전염된다는 개념은 매우 괴이합니다. 더불어 거룩한 성막 내에서 어떤 거룩한 물건에 거룩이 더 묻었다 해서 닦아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거룩한 제단에 지극히 거룩한 제물이 바쳐질 때 제단에 거룩이 전달된다는 것입니까? 그들은 제물이 제단에 접촉해서 거룩해진다고 주장하는데, 제단에 올라가기 전에 그것은 안수의 순간 온전한 성물(고르반)의 지위로 변한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제단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제단에 접촉하는 것은 ‘거룩해야 한다’(출 29:37; 30:26-29). 거룩하지 않은 것이 제단과 불법적으로 접촉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설사 제단에 바쳐져서 접촉을 통해 거룩해진다 해도 왜 화목제는 평이하게 거룩하게 되고 나머지 제물들은 지극히 거룩해집니까? 대단히 해괴한 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피를 빨아서 제거하고 닦아내는 이유는 거룩의 전염 때문이 아닌 부정결의 전염 때문으로 보아야 합니다. 속죄제 짐승은 안수를 통해 제사자의 죄가 옮겨가 더럽혀진 상태이며, 피가 향단과 제단에 뿌려질 때 그 비품들의 부정결이 피에 흡수되어 세척된 뒤 짐승의 고기로 옮겨옵니다. 따라서 속죄제 짐승의 고기는 인간의 죄와 성소의 부정결이 묻어 오염된 상태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그 피가 옷에 묻으면 옷을 빨아야 하고, 그 고기를 그릇에 삶으면 깨트리고 씻어내야 합니다.
결국 속죄제로 바쳐진 짐승의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면서도 동시에 더러움으로 오염된 이중적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와 같은 거룩한 것이 부정결로 더럽혀지는 일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거룩과 부정결의 공존의 불안정성은 속히 해결되어야 합니다. 레위기 10:17은 속죄제 고기에 사람의 죄가 묻어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짐승의 피를 내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향단과 그 주위에 뿌렸다면, 그 고기는 결코 먹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태우는 속죄제의 한 가지 기준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그 피를 내성소(또한 레 16장에 의하면 지성소도 해당됨)로 가지고 들어가 뿌린 것은 먹지 않고 태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위기 10:18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기준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속죄제가 제사장 자신을 위해 드려진 경우입니다(레 4:3-12). 이유는 제사장은 그 속죄제로부터 고기를 먹는 혜택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사장이 포함된 회중 전체의 속죄제인 경우에도 제사장은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레 4:13-21). 보통은 제사장과 회중의 비고의적인 죄를 위한 속죄제는 내성소에 그 피를 뿌리지만, 간혹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의 피가 마당의 번제단에 뿌려지는 다른 몇몇 사례도 있습니다(레 8-9장). 이때 이 고기를 태워야 하는데, 피가 뿌려진 장소가 내성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죄제가 제사장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태우는 속죄제의 두 가지 기준이 도출됩니다: (1) 내성소(또한 지성소)에 피를 뿌린 것: (2)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제. 둘 다 특징은 그 고기의 오염도가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추가된 속건제 규정(1-10)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나 예물은 세상과 구별되어 지극히 거룩합니다. 속건제는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워 줍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정직하게 인정하고,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책임을 넘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1속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는 지극히 거룩하니 2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건제의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3그 기름을 모두 드리되 곧 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4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고 5제사장은 그것을 다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속건제니라 6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라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 7속죄제와 속건제는 규례가 같으니 그 제물은 속죄하는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8사람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 곧 그 제사장은 그 드린 번제물의 가죽을 자기가 가질 것이며 9화덕에 구운 소제물과 냄비에나 철판에서 만든 소제물은 모두 그 드린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10소제물은 기름 섞은 것이나 마른 것이나 모두 아론의 모든 자손이 균등하게 분배할 것이니라(1-10)
이어서 속건제와 번제 및 소제에 대한 몇몇 규정이 추가됩니다. 우선 속건제 드리는 방법이 여기서 최초로 설명되는데, 그것은 속죄제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즉, 숫양의 내장 기름과 기름진 꼬리, 두 콩팥, 그리고 간엽을 바칩니다. 태우고 남은 몸통의 고기는 역시 속죄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사장이 먹습니다. 만일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건제였다면 먹지 못하고 진영 밖에서 태울 것입니다.
그러나 5장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속죄제와 큰 차이가 하나 있는데, 피를 뿌리는 동작이 다릅니다. 즉, 속건제 짐승의 피는 번제와 화목제와 마찬가지로 피를 제단 사면 벽에 끼얹어 뿌립니다(자라크). 속건제와 속죄제의 이런 피 처리 동작의 차이는 중대한 사실을 알려주는데, 이것은 속건제의 피는 제단을 씻어내는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어디에도 속건제의 피가 제단을 씻는다는 언급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속건제가 처리하는 죄는 제단과 성막을 오염시키지는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그 범죄는 도덕적 금지 명령 위반이 아닌 상대방에게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 죄이며, 죄의 해결 방법이 물질적 배상이었기 때문으로 추론됩니다.
한편, 번제의 가죽이 집례하는 제사장의 수고비로 돌아간다는 지침이 추가됨으로써 앞서 번제 조항에서 누락되어 있던 공백이 적절히 메워집니다. 또한 9절에 의하면, 소제물의 남은 부분은 집례하는 제사장이 그 몫을 차지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10절은 동시에 그것을 모두 아론 집안의 제사장들이 나누어 가질 것을 명령합니다. 따라서 집례하는 제사장은 그 남은 소제물의 분배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우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통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참된 예배와 경배를 실천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을 원하시며, 그분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나누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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