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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Fox Lichtenstein), 1923~1997
1. 1923년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 맨하튼에서 태어나 1997년 뉴욕에서 생을 마감한 가장 뉴욕적이며 뉴욕을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뉴욕 출신의 팝아티스트.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작품 소재로 선택하였다.
2. 1960년대 초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주제로 밝은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 뚜렷한 윤곽선 인쇄의 망점(網點:dot)까지 그려넣어 만화의 이미지를 확대한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저급문화로 알려진 만화를 회화에 도입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매스미디어 방법에 준하여 묘사한 전형적인 팝 아티스트로 평가받았다.
3. 1970년대가 되자 주제가 확대되어 고대 그리스의 신전건축과 정물화 등으로부터 피카소와 레제, 그리고 미래주의 등 모던 아트의 명작에까지 미쳤고, 그 표현방법은 인쇄미디어를 의제(擬製)한 망점이나 사선이 전개되어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였다. 청동이나 철판에 에나멜로 채색한 조각도 다루었다. 4.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경우는 만화의 형식, 주제,기법등을 그대로 사용하고 값싼 만화가 인쇄되는 제판 과정에서 생기는 망점을 세밀하게 재현하여 사물을 확대하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그는 또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넓은 붓자국을 만화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을 발표하는데 이는 추상표현주의의 과장된 표현방법을 비웃는 것으로 해석된다. 5. 그가 그리는 만화는 기성만화의 한컷을 모방한다는 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같은 성격의 것이다. 한쪽은 실물의 제출이요, 또 한쪽은 실물의 모사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미니멀의 지우기의 행위로서 징발된 사물들이다. 그가 그린 만화 한컷은 미국이라는 하나의 이념을 상징하는 하나의 스틸인 것이다.
주로 만화의 형식, 주제, 기법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였다. 그는 애정, 폭력, 전쟁 등 만화의 통속적 주제들을 선택하여 사이즈만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는 그림을 그렸다.
얼핏 보면 리히텐슈타인은 아주 손쉽게 그림의 소재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아주 신중하게 소재를 선별했다. 그는 최근의 세련된 만화 대신에 오래된 만화, 그래서 누구나가 다 알고, 지겨우리만큼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선택했다.
리히텐슈타인이 만화에서 가져온 주제들은 주로 격렬한 액션이나, 폭발장면, 센티멘탈한 로맨스 등 아주 진부한 것들이었다. 대형으로 확대된 리히텐슈타인의 통속적 이미지들은 그 스케일때문에 오히려 장엄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리히텐슈타인은 작품에 대한 중립적인 태도가 엿보인다. 추상표현주의가 작가의 개성과 독창성을 과장된 제스츄어로 드러내고 있다면, 팝아티스트들의 중립적인 냉정함은 추상표현주의자들의 태도와 매우 대조되는 것이다.
<Brattata>, 1962
리히텐슈타인이 재현한 이미지들은 일견 통속적인 만화이미지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놓은 듯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만화의 원래이미지와 차이점을 보인다.
그는 종종 슬라이드 환등기를 이용하여 작은 만화이미지를 크게 확대하여 그 윤곽을 따라 그리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 결과 인쇄과정 중에 생기는 망점이 눈에 띄게 확대되어 나타났다.
실상 이러한 망점은 상업 인쇄의 기본요소로서 작은 크기의 만화그림에서는 관객의 눈에 전혀 띄지 않는 것들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이러한 인쇄상의 기술적인 과정을 의도적으로 강조했다.
<Aloha>,1962
이 작품에서는 배경의 점들의 교차 지점을 살펴보면 문질러 제작한 흔적이 드러난다. 초벌 그림을 그린 종이 아래에 질감이 있는 물체를 놓고 그 위에서 연필로 문지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소 회화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Whaam!>, 1963 1962년부터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미국 문화의 경박함을 그대로 보여 주는 만화의 무자비한 폭력 장면과 싸구려 로맨스를 풍자하는 그림을 그렸다.
두대의 제트 전투기가 격돌하는 결정적 찰나를 포착한 것으로 리히텐슈타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다. 전쟁 만화회화들은 어떤 전쟁의 현실적 감각이 거세된 우화적 표현 스타일을 구사한다.
리히텐슈타인은 그 같은 이미지를 또 다른 수법으로 차용하여 더욱 장식적으로 밀어붙인다. <Whaam!>은 내용의 공포와 그것이 묘사된 경쾌한 기법사이의 모순이 너무나도 확연하기 때문에, 바로 그 확연함에서부터 그 그림은 어떤 비판적 긴장을 획득하기 시작한다.
<Hopeless>,1963
<Hopeless>에서는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눈물은 경질의 망점 스크린 구조 내부에서 속이 텅 비고 탈 주관적인 안타까운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Happy Tears 행복한 눈물>,1964
요즘 화제의 그림인 ‘행복한 눈물’은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취향을 보여준다. 홍 관장의 미적 취향은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에 상당히 매료돼 있는 것으로 미술계에 알려져 있다.
‘행복한 눈물’은 미국의 대표적인 팝아트 작가 리히텐슈타인이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가로, 세로 96.5㎝의 그림으로“만화 이미지를 그대로 베낀 전형적인 팝아트로 원화 속 여자의 머리가 검정인 데 반해 붉은 머리로 변형시킨 작품”으로 2002년 11월 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의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서 715만9500달러에 낙찰됐다.
<kiss 5>, 1964
그의 작품에서 묘사된 이미지가 단순히 만화 이미지를 복제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원래의 이미지보다 윤곽선을 더욱 강조하고 보다 평면화된 색면과 강한 명암법을 통하여 그래픽적인 성격을 강화하였는데, 이로써 감상적인 내용의 전달을 중시하는 만화의 특성이 제거되어진다.
<Little Big Painting>, 1965
<Little Big Painting>에서는 액션 페인팅의 필치의 세부를 주제로 차용하였다. 세부적인 묘사부분을 위해 그것을 크게 부풀리고 이것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액션 페인팅이 정서적으로 충만했던 단계를 이미 지나쳐회화적 은유가 더 이상의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액션 페인팅의 표현기법 그 자체가 자동화되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Ceramic Sculpture>, 1965
평면작업에서 출발한 작가가 작업영역을 넓힌 경우로 매우 초보적인 형태이다. 이 작품은 역시 특유의 기법인 망점패턴, 굵은 윤과선, 강렬하고 뚜렷한 색채등을 사용하였다.
계획된 색과 망점패턴은 곡선 형태의 표면에 흩어져 있지만 두꺼운 검정 선의 무딘 이미지를 약화시키지는 않았다.
이러한 표현적 특징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조각들을 통해 더욱 확고히 하게 된다.
<Modern Sculpture with Loop>, 1968
이 작품은 선재 조각으로 한정된 공간을 점유하는 전통적인 조각의 형태로써 관객에게 보여졌다. 그가 이작품을 만들었을때 미국 조각사에서 미니멀리즘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리히테슈타인이 미니멀리즘에서 느낀것은 산업적인 물체의 사용과 형태의 반복뿐이라는 것이다. 미니멀 작가들이 만들어 내려했던 수학적으로 같은 비율과 외부적 변형 없이 완전히 추상적으로 변조된 작업들이지만, 리히텐슈타인의 아르데코 위주의 작업들은 차용된 이미지이다.
<Cup and Saucer>, 1976
줄무늬 패턴의 음영효과는 회화에서처럼 대각선 방향으로 빈 공간을 채워줌으로써 조각에서 평면적 효과를 강조시킨다.
<Lamp>, 1978
1977년부터 시작된 채색한 브론즈 시리즈는 대부분이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기의 회화 작품들에서 나온 테마를 자체적으로 조각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의 모든 조각들은 먼저 연속해서 드로잉 한 후 캐스팅 전에 원래 사이즈의 모형으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을 밀랍(lost wax)으로 주조하여 브론즈의 대부분 표면을 폴리우레탄 에나멜로 채색하였다.
<Expression!!!ist Head>, 1980
리히텐슈타인 조각을은 평면에서 빠져 나와 삼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회화 같이 보이기도 한다.
<Woman: Sunlight, Moonlight>, 1996
이 작품은 양쪽 면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한쪽 면은 파랗게 물든 머리와 파란 점으로 표현된 얼굴을 가진 서늘한 느낌의 'Moonlight'편을 보게 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관객은 뜨거운 느낌의 'Sunlight'의 노랗게 색칠된 붉은 점을 보게 된다. 아이러니에 대한 그의 독특한 감각으로 리히텐슈타인은 삼차원적 현실의 결과를 제시하였고 평면 이미지에 대한 조각적인 해석을 만들어 내었다.
Roy Lichtenstein Part 1 The 50's Roy Lichtenstein Part 2 The 60's
Roy Lichtenstein Part 3 The 70's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를 미술에 응용한 대표적인 팝아티스트다. 그는 1961년 아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디즈니 만화인 도널드 오리는 그림으로써 팝아트에 만화를 응용하는 계기를 얻게 되는데, 출판 만화에서 이용하는 말풍선을 적용함으로써 형상들의 생각과 언어를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1964년부터는 색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인쇄나 사진의 표현기법인 벤데이 망점과 환등기를 사용하였고, 전쟁만화, 순정만화, 혹은 인쇄광고에서 유행하는 양식까지 응용했다. 그는 '팝 아트의 이미지는 대부분 대량 생산과 소비 상품, 광고에 바탕을 두며 일상용품, 대중매체, 대중문화는 이 주제 아래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그림이 기계로 제작한 것처럼 보이길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화가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에 앤디 워홀과는 달리 작품의 기초로 삼기 위해 사진 같은 것은 좀처럼 찍지 않고, 개인적 양식을 표현하지 않은 일러스트레이터 팀이 그린 액션만와 이미지 같은 비개성적인 스케치를 이용했다. 또한 그는 단순한 소비문화의 모습을 작품으로 보여주며 만화와 더불어 이 둘을 이용하여 원시적인 힘, 즉 집약된 시각적 호소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가 상업 미술에 주목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입체주의 미술가들이 아프리가 미술을 진정하고 강한 이미지로 여긴 것과 비슷하다. 리히텐슈타인은 상업미술의 즉각적 힘에 매료됐을 뿐더러, 상업미술 작품의 형태 속에 미술가의 의도가 효율적으로 나타나는 데 감탄했다.
그는 상업미술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간파한 사람으로서, 다른 미술가들이 일상의 주제를 그린 반면 리히텐슈타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상업적인 묘사화 복제과정을 실제로 응용했다. 전통적인 경계를 돌파하여 위험한 영역에 들어선 그는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지는 못했다. 비평가들이 지나치게 상업예술과 연관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을때 그는 대중 오락과 예술이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응수했고, 덧붙여 만화가 유머의 기본요소이며, 예술을 창조하는 밑거름이라고 주장했다.
<공을 든 소녀> 그의 작품 중 '공을 든 소녀'에서는 윤기나는 머리와 빨간 립스틱을 한 여자가 비치볼을 높이 들고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여자의 모습은 매우 진부하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이 그림에서 색채 사용을 제한하고 원래의 흑백 이미지의 소박한 효과를 단순화하였고, 몇안되는 색깔이 각기 다른 기능을 완수하는 싸구려 인쇄만화처럼, 그는 경제의 원칙에 따라 색을 사용했다. 리히텐슈타인의 초기작에는 '공을 든 소려'에 나오는 이런 젊은 여자들이 계속 나온다. 후기 만화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은 좀더 세련된 모습이며, 말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말풍선과 함께 등장한다.
<비키>
<에디2면화>
그의 작품을 보다보면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의 작품은 만화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를 그린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만화를 회화로 다시 구성한 것이다. 만화를 회화의 소재, 즉 오브제로 삼았을 뿐이다. 당연히 재료나 표현방식은 만화와 다르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라는 매체'가 아니라, '만화 매체의 특성'을 잘 살렸다고 할 수 있다.
<돋보기>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는 벤데이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점은 상업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무늬로 중첩하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더 집중적이고 복잡한 색 효과를 낼 수 있엇는데 앤디 위홀도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 벤데이 점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이런 벤데이 점은 검은 윤곽선이나 제한적으로 선택한 몇개의 산업적 색보다 그림에서 돋보였다. 만화에서 특정 장면만 따로 떼어 낸 이미지는 오랫동안 순수미술과 결합되어 왔었지만, 아무도 콜라주나 회화적 모티프 이상의 표현으로 확장할 방법을 몰랐다. 그런데 리히텐슈타인은 벤데이 점 같은 인쇄기술을 참고해, 인쇄된 출처에 적용된 구상을 그대로 살렸다. 그가 모든 초기작에 벤데이 점을 쓴 것은 아니지만, 벤데이 점은 그의 작품과 동의어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점은 쇠라의 점묘법과도 언뜻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쇠라의 점과 리히텐슈타인의 점은 구체적 주제에 추상적으로 접근했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인쇄법의 경제적 변형을 고려하여, 벤데이 색점 패턴 아잉디어를 쓰기 시작했을때, 돋보기 그림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한그림안에 한가지 크기의 점만 사용했다. 리히텐슈타인의 모네의 대성당과 건초더미를 응용해 만든 작품들이 좋은 예다. 그러나 1969년부터 리히텐슈타인은 다른 패턴도 시도하였ㄷ. 사선 줄무늬 하나만 사용하기도 하고, 큰 그림에서는 사선을 점과 결합해 좀더 다양한 표현을 구사했다. 줄무늬는 쉽고 빠르게 스케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준비 단계 드로잉에서 점을 대신했다. 그러나 자신의 회화를 그대로 구상조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리히텐슈타인은 줄무늬를 밑그림이 아닌 완성 형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금붕어 그릇'연작에서 선적인 조각들은 마치 종이에서 실제 공간으로 떨어져 나온것처럼 보여 관람자를 놀라게 한다. 2차원에 기반을 두었을 것 같은 것들이 3차원에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양식을 확립한 지 5년 뒤, 리히텐슈타인은 새로운 방향으로 관심을 돌렸는데, 그는 점차 다른 종류의 표면 패턴을 중요시했으며 벤테이 패턴의 의미를 컬러 인쇄기법의 상징에서 추상조각이나 장식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다른 그림에서 리히텐슈타인은 벤데이 점의 크기를 단계별로 변화시켰으며, 이를 통해 만화 그림에서 진정한 형태의 발전을 이루었다.
<물에 빠진 소녀>
<골프공>
<몬드리안:부두와 바다>
리히텐슈타인은 다른 작품을 참고하거나 연상시키는 방법과 다른 미술가의 작품을 직접적으로 차용하는 방법으로 미술적인 자의식을 작품에 표현했다. '물에 빠지 소녀'에서의 호쿠사이의 물결과 '골프공'에서 몬드리안의 타운형 구성을 차용한 것이 첫번째 예이고, 헝가리 신문에 실린 길버트 스튜어트의 '조지 워싱턴' 초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미술작품에 대한 강박관념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된 모티프였다. 리히텐슈타인은 자기 작품과 미술가들의 작품 양식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이를테면 명확하고 섞이지 않은 색채와 검은 윤곽선은 레제, 마티스, 피카소, 몬드리아읜 긴 미술 인생 중 한 시기를 풍미했던 특징이다. 그는 자기가 고른 미술가드르이 양식을 따르기도, 거스르기도 하면서 작업얼 했는데 그는 특별한 그림보다는 특별한 양식을 목표로 삼았다.
1962년 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 '모자 쓴 여인'을 개작했는데 배경은 벤데이 점으로, 가슴은 그가 자주 표현했던 만화속 여주인공 소녀들의 가슴처럼 부풀어 오르게 그렸다. 이 작품은 처음 보았을 땐 피카소의 그림을 변형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쉬우나 리히텐슈타인이 가한 변화를 눈여겨 보면 얘기가 달라지낟. 원작에 비해 색이 맑아지고 중심색인 노란색과 파란색만 쓰였으며 형태들도 훠씬 단순해지고 모든 형태에 똑같은 구성적 무게가 실렸다.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의도에 맞게 원작의 구성을 변형해 자기의 양식을 피카소의 형태와 결합하였는데, 그 결과 나온 작품은 입체주의의 역사적 상화과 아무 관련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그 변화란 마치 저급문화가 고급문화를 재창조하는 방식과 유사했다. 리히텐슈타인이 형태를 검은 윤곽선으로 그리고, 평면적 모양으로 형태를 단수화하는 피카소의 양식에 매력을 느꼈기에 피카소의 작품을 만화 형태로 적용했을것이라고 본다.
1965년 리히텐슈타인은 붓자국 회화 연작을 시작하였는데 그는 몬드리안과 피카소의 그림에서 이 붓자국을 형태로 발전시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실제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베껴 붓자국 형태에 도달했는데 우선 물감을 묻힌 붓으로 아세테이트 필름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물감이 마르면 필름을 캔버스에 올려놓고 하나 혹은 여러 개의 붓자국을 캔버스에 똑같이 낸 다음 그 선을 따라 스케치하고 색을 채워 넣는다. 이렇게 그린 붓자국은 마치 캔버스 표면에 직접 물감이 떨어진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붓자국 뒤의 캔버스는 벤데이 점으로 건조하게 채우는데 흥미롭게도 이 점들이 붓자국과 배경을 분리한다.
리히텐슈타인은 1963년 진 스웬슨과의 인터뷰에서 미술에 대한 미술을 비판하여, 팝 아트란 세상을 내다보는 무언가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2차우너주제만 다뤄온 그에게 이런한 정의는 모순에 가까우며 이점은 그가 얼마나 전통적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미술적 맥락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때로는 미술의 단점은 발견하기 위해 미술을 관찰하기도 했고, 어떤때는 형태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고급 예술을 저급예술의 맥락 속에 놓음으로써 어떻게든 고급예술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세상에 대한 그의 시각은 그림에 관한 그림 속에 명쾌하게 표현되었으며, 그의 진짜 일은 나해한 것이 되어버린 미술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는 미술에 관심있는 대중만이 갖추고 있을 법한 지식을 가지고 작업하긴 했으나 반 엘리트주의 입장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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