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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4 일요가족법회 지안큰스님 법문
木密不妨流水過(목밀불방유수과)
나무 빽빽해도 물은 막히지 않고 흐르나니
山高豈碍白雲飛(산고기애백운비)
산이 높다고 흰 구름이 날지 못하랴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무난사)
한 번 부지런하면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은 없나니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백 번 참는 집안에는 큰 평화가 있다.
어느덧 초여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레가 현충일이니 1년 4계절 가운데 나무에 물이 올라 이때쯤에는 산에 나무들이 가장 싱싱합니다. 산의 나무가 무성하게 잎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나가는 때입니다. 특히 반야암 주위에는 오래 된 노송 소나무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있습니다. 며칠 전에 비가 왔는데 산에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급류는 골짜기를 타고 흘러서 내려옵니다.
木密不妨流水過
원래 頌句(송구)는 竹木密不妨流水過(죽밀불방유수과)로 되어 있는데 竹(죽)을 木(목)으로 바꾸어 한번 읊어 보았습니다. 산에 나무가 아무리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도 비가 오는 빗물이 싹 빠져나가더라는 말입니다. 막힘 없이 다 골짜기로 흘러내려 와서 아래로 가면 강으로 가고, 또 바다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물이 흘러가는데 장애가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내 인생이 아무리 괴로워도 내 마음에는 본래 장애가 없는 거예요. 우리 마음은 본래 장애를 받지 않는 겁니다. 불교를 깊이 공부하면 이런 주제는 이해가 됩니다.
山高豈碍白雲飛
산이 아무리 높아도 산봉우리에 걸려서 구름이 지나가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산이 높은들 구름이 산봉우리에 막혀서 지나가지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역시 구름도 산봉우리로부터 장애를 받지 않고 갈 곳을 다 간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원래 인연 따라 될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묘한 말인데 모두 될대로 된다는 겁니다. 자연이 그렇지 않습니까? 춘하추동 사계가 봄이 되면 풀이 나고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녹음이 무성하게 되고, 활엽수 경우에는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어 낙엽이 지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가 남게 되는 이런 변화 과정이 하나의 일반적인 말로는 자연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은 본래는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왜 어려습니까? 내 마음에 貪瞋痴(탐진치) 三毒(삼독)에 기인된 한 생각이 일어나서 어려운 것입니다.
一勤天下無難事
3구와 4구는 유교에서 흔히 쓰는 말을 가져다 썼습니다. 일반적인 말로 많이 하는 一勤이라는 말은 ‘정말 부지런하게’라는 뜻으로 ‘한 번 마음을 내면, 어떤 것을 해보고자 하면’이라는 뜻입니다. 한 번 마음을 내면 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에 올 때는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정성 – 성의가 못미칠 때가 많습니다. 절을 한 번 더 하면 될 건데 잘 안 하고, 염불도 한마디 더 하면 될 텐데 그게 잘 안하게 됩니다. 불교의 입장에서 말해볼 때 그게 잘 안되는 것입니다. 주로 내가 유교 쪽에서 많이 해온 말인데 한 번은 부지런하면은 이 세상에 어려운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百忍堂中有泰和
이 구는 3구의 對句(대구)입니다. 백 번을 참으며 생활하는 집안(堂中)은 항상 태평스럼고 화목하다는 것입니다. 당나라 초에 張公藝(장공예)라는 사람은 무려 9대나 되는 대가족이 한 집에 살았다는 설화가 전해집니다. 또 彭祖(팽조) 같은 사람은 800살, 또는 900살까지 살았다는 설화도 전해집니다. 9대가 같이 살았다는 張公藝(장공예)라는 사람의 집안에는 개가 엄청 많아서 1,000마리도 넘었다고 합니다. 9대의 식구들이 기르는 개들도 사이가 좋았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많은 개들 중에 한 마리가 집 밖에 나가 안들어온 경우가 있으면 한 마리가 마저 들어올 때까지 개들이 밥을 먹지 않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화목했다는 ㅛ훈으로 전해지는 말입니다. 옛날 우리 어릴 때 간혹 이웃 마을 4대가 사는 수는 있었어요. 왜냐하면 할아버지들까지 하여 3대는 보통 살았고 증조할아버지가 살아계신 집이 가끔 있어서 4대가 사는 집이 있었습니다. 고종 황제가 태산에서 봉선의식을 치르고 돌아가는 길에 그의 집을 방문하여 그 많은 친족이 한집에서 화목하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붓과 종이를 청해 ‘참을 (忍)’자를 백 번 써서 바쳤습니다.
부지런한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한 번 잘 쓰는 것이 부지런한 것입니다. 참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지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성질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온갖 안좋은 소리도 하고, 흉도 보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불교 공부를 마음 공부라 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마음에 따르는 것이니까, 몸도 중요한 것이지만 마음 공부가 중요합니다. 마음은 남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생각은 일어났다가 없어지는 것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새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되었는데 그전에는 청와대가 대통령이 거처하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자유당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3.15 부정선거가 마산에서 터져서 중학교 들어갈 때 4.19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는 서당 공부를 하느라 학교에 1년 늦게 들어갔습니다.
자유당 시절에는 대통령이 거처하는 곳을 경무대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초대 조계종 종정이 曉峰(효봉) 스님이셨는데 법정스님의 스승이십니다. 대통령의 생신 때 경무대에 초청되어 曉峰(효봉) 스님께사 가셨습니다. 자리가 대통령 바로 옆에 배치되어 앉으셨는데 초청받아 온 사람들이 모두 대통령 곁으로 와 생신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의 인사를 다 받고 난 이승만 대통령이 스님에게 스님은 생신이 언제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효봉 스님께서 “生不生 死不死(생불생 사불사)라, 나는 생일이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태어나도 태어나지 않았고 죽어도 죽지를 않으니 생일이 없다는 禪師(선사) 특유의 법문을 한마디 해 주었던 것인데 대통령이 이 말을 축하연 중에 여러 번 중얼거리며 뜻을 음미했다고 합니다. 축하연을 마치고 스님께서 경무대를 나올 때 이승만 대통령께서 경무대 정문 앞까지 배웅해주며 “우리나라에 스님 같은 도인이 많이 나오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문까지 직접 나와서 배웅해 준 예가 그때가 유일하게 한 번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生不生死(생불생사)를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몸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의식주를 필요로 하는 건 이 육신 때문에 하는 것이지요. 육신 때문에 밥을 먹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하는 것이고, 집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밥을 안먹어도 되고, 옷 안입도 되고, 집이 없어도 됩니다. 초기 수행자들에게 부처님께서 항상 가르치시면서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律藏(율장)에 이 말이 많이 나옵니다. 하여튼 건강을 잘 보살펴야 되는 것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를 돌보는 수단이 이지만,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몸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습니다. 몸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보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한 생각 되돌리지 않고 깨치지 못하면 치유가 안 될 수도 있어요. 한이 남거나 미련이 남아서 다음 생으로 넘어갑니다. 몸의 상태는 죽으면 몸이 없어지는 거니까 다음 생으로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내 몸에 상처가 난 것은 죽으면 불에 타서 사대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다음 생에도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사람 사이에 서로 인연을 맺고 살아갈 때도 마음의 상처를 주면 안됩니다. 마음의 상처가 원수가 되는 겁니다. 어쩌다 실수해서 몸에 좀 상처가 나게 해도 자꾸 사과하고 치료해 주면 실수로 한 경우에는 상처가 아물면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많이 하는 이야기 중에 “하늘이 보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이 내려다 보니까 땅도 보는 것이고 사람도 보고 있다고 합니다. 天地人(천지인) 삼재가 서로서로 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늘을 볼 때 많습니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면 하늘을 보게 됩니다. 大地(대지) - 들판을 보게 되거나 산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도 땅도 나를 보는 것이 됩니다. 산도 땅이니까 나를 보는 거예요. 天地人(천지인) 삼재가 서로서로 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天地人(천지인) 삼재가 서로서로 보고 있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느끼고는 반성해야 합니다. 孔子(공자)는 ‘一日三省(일일삼성)’이라 하여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 하혔는데 이는 유교윤리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三省(삼성)은 내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내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이것부터 내가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것부터 행동을 어떻게 하고 있자, 모두 다 반성해야 합니다.
『中庸(중용)』에는 ‘莫見乎隱(막견호은)’이라 하여 숨긴 것 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는 역설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숨겼다, 또 내가 말을 해놓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 비밀이 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비밀처럼 잘 드러나는 건 없다는 것입니다. 비밀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 비밀인데 역설적이게도 더 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四書(사서)도 좀 보고 책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四書(사서) 중 『中庸(중용)』에 나옵니다. 그래서 자기를 勤愼(근신)하고 살피고 너무 몸 위주로 생각하지 말고 몸을 생각할 때 마음도 같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처다.’라고 하는 불교법문을 항상 되새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은 부처인데 내가 부처처럼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반성해 봐야 될 것입니다. 부처님 같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 같으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등등에서 항상 불자들의 신행을 통해서 남나는 것이 좋은 인연입니다. 반야암이 좋은 인연입니다. 좋은 인연 도량입니다. 미국에 있는 손자를 위해서 법회 있을 때마다 기도를 하는 신도분도 있고, 또 법문을 위해서 있다는 분들도 계시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좀 오래 사시라고 기도 드립니다.
震黙(진묵)스님께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지은 祭文(제문)이 있습니다.
앞부분 생략
萬歲上 에 更加萬歲 라도 子之心은 猶爲嫌焉이온데
(만세상 갱가만세 자지심 유위혐언)
만세를 사시고 다시 만세를 더 사신다 해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만족치 못 할 일이온데,
百年內 에 未萬百年 이오니 母之壽 가 何其短也오리까
(백년내 미만백년 모지수 하기단야)
백년도 채우지 못하시니, 어머니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으시옵니까.
單瓢路上 에 行乞一僧 은 旣云已矣 거니와
(단표로상 행걸일승 기운기의)
표주박 한 개로 노상에서 걸식으로 사는 이 중은 이미 그러 하거니와,
橫釵閨中 에 未婚小妹 가 寧不哀哉오니까
(횡차규중 미혼소매 영불애재)
귀밑머리도 풀지 못하고 규중에 있어 시집 못 간 어린 누이는 얼마나 슬프리요.
중략
前山疊 後山重 魂歸何處 嗚呼哀哉
(전산첩 후산중 혼귀하처 오호애재)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도 겹겹이온데 어머니의 혼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아! 슬픕니다!
제문에 나오는 사모곡에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항상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마음을 제일 잘 쓰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서, 손자들이 조부님을 위해서, 부부가 서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 이 얼마나 아름다운 거예요. 그게 제일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조용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발원을 드리면 항상 天地人(천지인) 삼재가 나를 보고 있고, 다른 사람도 나를 보고 있고, 아무리 숨겨도 숨겨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한 身口意(신구의) 삼업이 그대로 남아서 아무리 남이 모르겠거니 해도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저도 간혹 한때는 어떤 사람의 상태를 텔레파시 현상처럼 순간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분의 상태를 보니, 집을 나와서 어느 식당에 있었습니다. 나의 관법에 나타나서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가보니 나타난 그대로 있었습니다. 식당과 철가방과 자건거 등이 그대로 보이고, 또 다른 장면을 봤습니다고향 후배 하나는 출가 인연이 없는데 출가하여 행자 생활을 좀 하다가 결국 죽었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마산에 있을 때 죽었습니다. 그 후배에게 부탁하여 어디 어디 나무가 서있는 중국집에 가보라고 했더니 속가 동생이 정말 있었습니다. 이처럼 말을 안 해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어요. 말을 안 합니다. 어느 스님도 어떤 아이가 바다를 생각하고 있는 것도 다 알아맞히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항상 天地人(천지인) 삼재가 서로서로 보고 있습니다. 좋은 마음, 좋은 인연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인연 속에서 살려면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마음이 가장 좋은 마음입니다.
이번에 제가 반야암을 가지 못하여 묵광거사님께서 녹음 파일을 보내주시었습니다
묵광거사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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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몸도 안좋은데 이렇게 전문을 올리시니 감사합니다.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_(())_
아유 고맙습니다 _()_
편잖은 상황에도 법문 글 올려주시고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한주 되시길 빕니다_()_
보살님 덕분에 빨리 나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_()_
아픈 몸인데도 감로의 법문을 오려주시니,
그 정성이 하늘까지 감동하네요.
신구의 삼업을 늘 청정히 하고,
참을 인자를 잊지 않겠습니다.
속히 쾌유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워낙 큰스님 법문이 좋아서요
늘 고맙습니다 _()_
늘 애쓰시는 덕분에 복습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_()_
큰스님 항상 좋은 법문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_(())_
_()_
보살님 애써 주심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_()()()_
감사합니다 _(())_
일체에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고맙습니다 _()_
물처럼 바람처럼이란 말은
걸림없고 자유롭게 남에게 이익을 주며 살자는 의미가 들어있는
물은 흐르고 흐른다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인연되는 대로 가고 어떤 욕심 바램도 없고 상도 없이 가니 얼마나 대단한가
닮고 닮아야하는..
구름처럼 무상심으로 집착하지 않고 살아야지요
또 바람처럼 걸림없이 높은 산도 높다는 생각마저 버리고 무심히 가야지요
아름답게 살려면 꽃처럼 살아라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나무처럼 산처럼 허공처럼도 살아야하지요
말없이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게
갈길이 멀지요
누가 보지 않아도 묵묵히 가야하는데
얼마나 가느냐는 하늘에서 재고 있잖아요
자기 속마음에도 찍히겠죠
가정이 화목하려면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서로 양보하고 상대를 우선으로 하고 높여주고 사랑하는 것이라 봅니다.
쉽지 않죠
독불 자기 중심 자기 상 자기 아만에 빠져있으면 그리 하지 못하겠지요
하늘도 땅도 다른 사람도 보고 있든지 아니 그렇든지간에 아무튼 저는 먼저 하늘도 공경하고 땅도 공경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정성을 다해야지요 위에게도 아래에게도 동급에게도
내 생각대로 할려니 어려움이 생기니 놓아야..
아픈데 이리 올려주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두루 두루 감사드립니다..............()
저도요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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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