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고대 촉(蜀)문화의 발원지이다.
당시 저명한 시인 이백, 두보, 이상음, 소식,
육여사 등은 성도에 머물면서 성도의 풍물을 시, 노래, 가사 등으로 읊었다고
하며 지금도 두보초당, 육여사, 양승업사 등의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있다.
성도의 명칭은 사서에 의하면
“주나라의 태왕이 양산에서 기산으로 와서, 첫해에
는 읍을 세우고 3년째에는 도시를 세웠기 때문에, 이를 成都라 명하였다고
한다.성도는 중국 역사상 두 가지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성도의 명칭이 2000여 년 동안 바뀌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것으로
중국 역사 상 매우 드문 일이다.
둘째, 2000여 년 동안 성도는 사천과 그 일대인 중국서남지역의 행정수뇌기구
의 소재지 역할을 지속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성도 내의 종교 인구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천
성에는 불교 인구가 800만 명으로 가장 많고, 천주교가 약 35만 명, 기독교가
약 25만명, 이슬람교가 약 8만 명, 도교가 약 2만 명으로 성 전체인구에 비해
기독교 인구는 극히 적은 편이다.
위내용을 검토해 보면 사천성의 성도인 성도는 참으로 특이한 곳이라고 할수
있다. 비록 1949년 모택동의 공산당에 의하여 접수된이후 신중국으로 전환되
었지만은 여전히 티벳불교가 장악을 하고 있으며 티벳 사천성 칭해성 감숙성
신장을 잇는 거대한 티벳 문화권과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삼성퇴 유적지와 더불어 히말라야 대단군의 후손들이
히말라야의 천산과 천부의 역활을 척박한 자연환경을 벗어나 두강언등 치수
문제와 먹거리 문제 등등 자연 인문 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낙원을 건설한
최초의 공간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것이 동이족이라 알려진 하은주 나라의 주문공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고
삼국지의 파촉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고 후에 고구려 백제도 사천백제에
뿌리를 내리면서 히말라야 대단군의 세계를 평쳐나간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첫댓글 성도 청성산 아미산 여행은
7~8월이 좋습니다
날씨가 안개가 많고 비가 오기 때문에
안개가 짙은 날은 먼 풍경보기가 어렵다는것
사천 여행은 7, 8월이 좋군요.
덥지 않을까요
그곳은 기온차가 심한 곳이 아니랍니다
안개의 실루엣이 신성감을 더하고
습하니 얼굴이 건조하지 않다는...
성도!
도심속에 호수가 한가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