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신인문학상 응모작품
아버지의 술래 외 4편
김자향
꼭꼭 숨겨둔 여인이 참다못해 전화했을까?
돌아가신 아버지 찾는 낯선 전화에
화들짝 놀란 친정엄마,
이미 저세상 사람 되었다는 말에도
막무가내 매달리던,
수도관 곧 터질 듯 울먹이는 소리에
돌아가신 아버지 살아오신 줄 착각되더란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저승으로 전화해보던가!”
관뚜껑 닫듯 전화기 탁 내려놓으며
엄마 억장이 또 무너진다.
울 아버지, 이승의 종점에서
막차 타고 내리신 지 석삼년이 지났어도 시들지 않는 바람기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죽어서도 계집질이라는
시퍼런 질투가 꽃 져도 떨어지지 않는 장미 가시 같다
슬도에 와서
김자향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지, 저 바위들이 갯바람과 파도와 억겁의 세월에얼마나 뒹굴고, 부딪쳤으면 몸에서 거문고 소리가 났을까? 더 타오르지 못한 미련은 마마자국을 남기고, 은장도 품고 허벅지 찌르는 대신 거문고를 튕기면서 모든 걸 초월할 수 있다고 착각도 했지
철썩철썩 코발트블루 파도가 어루만질 때마다 영 불편하지만은 않았어! 그런 횟수가 잦아질수록 구멍 난 가슴에 운율을 남기고 틈을 만들었지, 틈이라는 단어 긍정적이야 언제든 채울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말이지 키득키득, 남자는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고, 여자는 집에서 행복을 만들라 했지 쩍쩍, 서로의 혀끝에서 흘러내린 타액으로 숭숭 구멍은 더 크게, 더 많이 커져만 갔지, 괜찮아 토닥토닥
모험을 즐기는 그는 유영하는 고래처럼 하늘을 날고 싶어 했지, 그럴 때면 춤추는 상상으로 혈기 왕성해지고, 집에 갇혀있을 때는 유월 작열하는 태양 빛에 시들어 가는 호박잎같이 축, 쳐져 있었지
한쪽이 또 다른 한쪽을 관리한다는 건, 야호! 신나는 일이지
이제는 말할 수 있어
사랑은 맑거나 탁하거나, 즐겁거나 괴로운 차이라고 킬킬,
명자
김자향
명자란 명자는 달성습지 둑길에 모두 모였다 엄마 따라 의성 오일장 갔을 때 미니스커트 입고 시장통 누비던 은하수 지하다방 레지 닮고 싶어 몰래 루즈 꺼내 바른 붉은 명자가 쭉 입술 내민 것 같다
―자야 자야 명자야
불타는 트롯맨이 애절하게 명자를 부를 때
내 친구 명자, 유난히 하얀 얼굴에 도톰한 입술을 가진 명자, 울 엄마도 고향 친구 딸이라고 애지중지하던 명자,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더니 범강장달이 같이 생긴 섬유공장 사장 집으로 시집을 가고, 나는 몇 날을 명자꽃처럼 뒤척이는 날을 보냈다 다음 해, 그다음 해 명자꽃이 피어도 명자는 더 이상 붉은 입술을 내밀지 않았다
서문시장 2지구 상가 인파 틈바구니로 양은 식판을 머리에 이고 명자가 나타났다 하얀 얼굴에 동그란 눈매, 뒤축이 삐딱하게 닳은 플라스틱 주방 실내화를 신은, 영락없이 명자였다 하마터면 명자야! 부를 뻔했는데 순식간에 명자는 사라지고
명자 엄마 장례식장에서 만난 명자는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는, 그날 내가 본 명자는 짬 내어 달성습지에 꽃구경 나온 붉은 명자라고 믿기로 했다
단층 촬영실에서
김자향
확, 공포감이 밀려옵니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눈알이 아프도록 부릅뜹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신체 사이즈를 어떻게 알았는지
자로 잰 관처럼 안성맞춤입니다
선택 여지가 없는 갑질에
졸지에 시체가 되어
반항 한번 못하고 어두컴컴한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모든 걸 체념하고 온몸을 맡깁니다
둥 둥 둥!
귀청을 울리는 기계음에 발가락을 까닥이며
장단을 맞춰봅니다
꿈틀꿈틀 리듬이 살아납니다
저 멀리서 목탁 소리도 들립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경을 외웁니다
에헤야 디야!
무아지경으로 들어갑니다
퇴로가 출구입니다.
달무리 지다
김자향
이태 만에 받아보는 산부인과 정기 검진 양다리 벌리고 드러누워 천정을 올려다보니 눈부신 조명등 안에 하루살이들이 소복이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허연 뱃가죽을 드러내고 파르르 떨고 있는 개구리, 밀짚으로 아랫구멍에 바람 불어 넣던 기억에, 그곳이 찬바람이 들어오듯 싸하게 시려오는데, 조카뻘 되는 풋풋한 간호사 둘은 어젯밤 드라마 이야기로 키득거린다
48와트 집어등이 내 몸속을 비출 때, 예전에 보았던 ‘표본실의 청개구리’한 장면이 떠올라 찌리릿 감전되어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몸 안에 스며든 슬픔의 밀물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밀려들었다
한창때 한 사내가 시시때때로 드나들어 아들 하나, 딸 둘을 소출한 황금 비율의 밭, 오랜 가뭄에 바짝 말라버렸지만, 몸 안에 뜨거운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는데 한 철 활짝 핀 장미꽃밭이었던 거기, 누가 달무리 졌다 하는가?
당선소감
김자향
기쁜 일에는 눈물이 마중 나온다
당신이라는 시詩가 오지 않는 서럽고 우울한 날, 아이러니하게도 입은 웃고 있는데, 안구 건조증 치료를 받는 눈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재규어처럼, 날아오는 민들레 씨앗까지 덥석 덮치고 싶은 조급한 심사, 그럴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당신 배회하던 시간, 조작되는 기억들
쪼이지도 늘어나지도 않는 고무 바지처럼 그런 당신을 간절히 갖고 싶었다.
요동치고, 심장 뛰고 들썩여야만 사랑인 줄 알았다. 은근하지만, 퍼펙트 있는 그런 당신을 쓰고 싶다.
그렇게 언어와 문장들의 밀림 속에서 길을 헤매고 어둠의 뒤편 출구를 찾아 한참을 더듬거릴 때, 투영된 알레고리, 설득력 있는 어조, 막혀버린 문장들 사이로 여명의 빛줄기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시가 뭐라꼬? 자존감이 바닥에서 빅보이처럼 뒹굴었지만, 굴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토닥토닥하면서, 이 영광을 장옥관 교수님과 원이문 가족들, 시의 산실 <다락헌시인학교> 장하빈 선생님과 문우님들께 돌리고 싶다. 그리고 시(詩)와 사랑에 빠져 집안일을 등한시해도 나의 꿈을 존중하는 남편과 금쪽같은 내 새끼 지영, 지은, 상훈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끝으로 부족한 글에 날개를 달아 주신 『애지』 반경환 주간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름 :김자향 (본명 김향자)
약력 :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본적 : 경북 의성 출생
e-mail : gidwk5272@naver.com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김자향 시인님~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