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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500페소 지폐 속의 한국
6.25 한국전쟁 때 필리핀은 전투부대를 파병시켜 위기의 한국을 도운 우방국입니다. 당시의 필리핀군을
페프톡(PEFTOK : Philippines Expeditionary Force to Korea)이라고 불렀고, 약 1,200명의 전투부대를
1950년 9월 19일부터 철원과 연천인근에 배치시켜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1955년 5월까지 연인원
7,420명이 한국전에 참전했고 한국전쟁기념사업단에 따르면 112명의 전사자, 299명의 부상자를 내며 피
로서 한국을 지원했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딱딱하죠? 그래도 한 번 읽어보세요)
한국전 파병과 관련해서 2명의 명사가 필리핀 역사를 장식하게 됩니다. 전직 대통력이었던 라모스 대통령
(Former President Fidel Ramos)이 1952년 파병군 소대장으로 참전했고, 마닐라 타임스의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베닉노 아키노(Benigno Aquino)가 바로 장본인들입니다. 한국전에 참전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라모스 대통령 시절에 한국과의 유대를 훨씬 돈독하게 다졌었습니다.
베닉노 아키노는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타파하고 필리핀 민주화를 실현하는 빌미와 명분, 국민단결의 결정적
계기를 만든 분입니다. 35세의 촉망받는 상원의원으로 차기 대통령으로 국민의 신망을 얻어가던 그가 마르코
스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계엄령에 따라 3년을 복역하고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1983년 8월 21일에 위험을
무릅쓰고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다 마르코스가 사주한 괴한(필리핀인들의 추측으
로 그렇게 믿는다)의 총탄에 암살되었습니다. 이후 마르코스정권의 실정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항거가 3년간 지속되었고, 급기야 1986년 2월 22일에 엣사 대로(EDSA)를 가득 메운 국민들과 군의 혁명으로
마르코스 정권을 축출하게 되었습니다. 2월 25일에 끝난 이 혁명을 국민 힘의 혁명(People Power Revolu-
tion)이라 부르게 되었고, 국민의 힘으로 이룬 무혈혁명으로서 필리핀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혁명 이후에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로 베닉노 아키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애칭 Cory
Aquino) 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후에 마닐라 국제공항의 이름을 니노이 아키노(베닉노의 애칭)로
바뀌었고, 현재까지 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NAIA)로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전 참전 당시의 피
델 라모스 중위는 아키노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냈고, 코라손 아키노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굳이 한국과 6.25전쟁을 결부시키면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 집니다.
더더욱 재미있는 것은 코리 아키노 대통령 시절에 발행되기 시작한 500페소 필리핀 지폐에 한국이 등장한
다는 것입니다. 지폐 뒷면에 사진기를 앞에 놓고 있는 종군기자 시절의 아키노 그림 배경에 그의 기사 내
용이 있는데, 글자가 워낙 작아서 보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하게 38, Korea, Seoul, North Korea
란 글자가 보입니다. 아주 가끔 500페소 지폐를 보고 있노라면, 한 민족끼리 피 흘려 싸운 한국의 슬픈 역사
를 회상하게 도고, 어려운 한국을 도운 우방국 필리핀을 다시 생각하게 하곤 합니다.
The Filipino is worth dying for. (필리핀인은 자신이 믿는 옳은 명분과 조국을 위해 죽을 가치가 있다)
- 니노이 아키노가 미국 망명을 끝내고 조국 필리핀으로 돌아가려 하자 측근들이 암살위험을 이유로 만
류할 때 한 말로서, 500페소 지폐 앞면에 니노이와 함께 인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