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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이사야 40:1–31 (참조: 마태복음 3:1–3, 고린도후서 1:3–4, 베드로전서 1:24–25, 요한복음 10:11)
핵심 명제: 세상 제국과 인간의 육체는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들지만(하-바사르 하치르) 영원히 변치 않는 여호와의 말씀(데바르-엘로헤이누 야쿰 레-올람) 위에 선 자에게는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은혜의 위로(나하무)가 선포되며, 지치고 곤비한 포로 된 절망의 광야 한복판에서도 오직 언약의 하나님만을 잠잠히 앙망하는 자(코웨이 야훼)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솟구쳐 오르는 초자연적 새 힘(야할리푸 코아흐)을 공급받는다.
1. 서론: 제2부의 서막, 흑암을 찢는 복음의 나팔
이사야 39장의 마지막은 히스기야의 교만한 보물고 개방의 대가로 선포된 바벨론 포로기라는 칠흑 같은 심판의 칙령으로 끝이 났습니다(6강).
성전은 불타고, 다윗 왕조는 끊어지며, 백성들은 쇠사슬에 묶여 1,500km 떨어진 바벨론 그발 강가로 끌려가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는 절망의 선고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벨론의 포로 수용소의 통곡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사야 40장 1절은 성경 66권의 구조(구약 39권 + 신약 27권)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것처럼,
마치 마태복음의 첫 장이 열리듯 구약 속의 신약이라 불리는 ‘이사야 제2부(40–66장, 위로와 회복의 대서사시)’의 거대한 문을 번개처럼 열어젖힙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나하무 나하무 암미)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답베루 알-레브 예루샬람 웨-키르우 엘레하)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키 말레아 체바아흐 키 니르차 아워나흐)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사 40:1–2)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단호하게 명령하십니다:
"나하무 나하무 암미(נַחֲמוּ נַחֲמוּ עַמִּי)!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기서 가장 눈부신 은혜의 단어는 ‘내 백성(암미)’과 ‘너희의 하나님(엘로헤이켐)’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어 채찍을 맞았고, 나라를 잃어버렸으며, 이방인의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잊으셨고 버리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향해 "너희는 내 백성이요, 나는 여전히 너희의 하나님이라" 언약적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선언하십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과 언덕이 낮아지며, 험한 곳이 평탄케 되어
마침내 '여호와의 영광(케보드 야훼)'이 온 땅에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웅과 바벨론의 권세는 풀처럼 시들고 꽃처럼 떨어지겠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설 것입니다(사 40:8).
그리고 바벨론 포로의 절망 속에서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다" 탄식하는 자들을 향해,
온 우주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날개를 활짝 펴고 솟구쳐 오르는 불멸의 약속을 주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제7강은 반복된 명령인 위로(나하무 나하무), 예루살렘의 심장에 속삭이는 사랑의 언어, 왕의 귀환을 위해 광야에 대로를 수축하는 소리, 풀과 꽃의 유한함과 영원한 언약의 말씀(데바르-야훼), 양 떼를 품에 안으시는 목자의 품, 그리고 무능과 탈진의 벼랑 끝에서 날아오르는 '여호와를 앙망함(코웨이 야훼)'의 구속사적 신비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심장에 속삭이는 복음의 위로(1) 나하무 나하무(נַחֲמ֥וּ נַחֲמ֖וּ): 반복된 은혜의 명령 (사 40:1)
나함 (נָחַם 나하무):
'숨을 깊이 내쉬다', '슬퍼하는 자 곁에 앉아 탄식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다(Comfort)'.
피엘(강조형) 복수 명령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중 반복의 수사학:
히브리어에서 동일한 단어의 반복은 '절대적 확실성과 긴급성'을 뜻합니다.
"어설픈 말 한마디로 때우지 말고, 진액을 다 쏟아부어 내 백성을 철저하게 위로하고 또 위로하라!"
심판의 책(1–39장)이 끝나고, 이제 온 우주의 왕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을 살려내시기 위해 은혜의 보좌를 활짝 여신 것입니다.
(2) 답베루 알-레브 예루샬람(דַּבְּרוּ֙ עַל־לֵ֣ב יְרוּשָׁלִַ֔ם): 마음에 닿도록 말하라 (사 40:2)
직역하면 "예루살렘의 심장(레브) 위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34장 3절에서 세겜이 디나를 연모하여 '그 마음을 위로하며 말했을 때', 호세아 2장 14절에서 하나님이 음란한 고멜을 광야로 데려가 '말로 위로하실 때' 쓰였던 가장 친밀한 연인 간의 사랑의 밀어(Love language)입니다.
하나님은 정죄의 호통을 치지 않으십니다.
상처받고 찢겨진 자기 백성의 심장 한복판에 손을 얹으시고, 가장 다정한 음성으로 속삭이십니다:
"이제 다 끝났다. 네 눈물의 복역의 때가 끝났느니라!"
3. 핵심 원어 강해: 3대 사면의 선언
이사야 40장 2절은 바벨론 포로 수용소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세 가지 법정적 사면 칙령을 선포합니다:
{כִּ֤י\ מָֽלְאָה֙\ צְבָאָ֔הּ}\ \mathbf{כִּ֥י\ נִרְצָ֖ה\ עֲוֺנָ֑הּ}
{כִּ֤י\ לָֽקְחָה֙\ מִיַּ֣ד\ יְהוָ֔ה\ כִּפְלַ֖יִם\ בְּכָל־חַטֹּאתֶֽיהָ׃}
{"키 말레아 체바아흐! 키 니르차 아워나흐! 키 라케하 미-야드 야훼 키플라임 베-콜-하토테이하!"}
말레아 체바아흐 (מָלְאָה צְבָאָהּ): 복역의 때가 찼도다
차바 (צָבָא): 강제 징집된 군복무, 노예의 고된 강제 노동.
군대에서 제대하듯, 포로 수용소의 강제 노역의 형벌 기간이 하나님의 정하신 시계 안에서 완벽하게 종료되었습니다.
니르차 아워나흐 (נִרְצָה עֲוֺנָהּ): 죄악이 속죄함을 받았도다
라차 (רָצָה 니르차):
레위기에서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다(Atoned/Pardoned)' 할 때 쓰이는 제사 용어의 니팔(수동형)입니다.
백성들이 죗값을 다 갚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은혜의 속죄 제물을 열납하사 그들의 죄책을 완전히 사면해 주셨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키플라임 (כִּפְלַיִם):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하나님이 잔인하게 두 배로 가혹하게 벌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 법률에서 빚을 완전히 갚았을 때 계약서 양피지를 '반으로 접어(배로 접어, 키플라임)' 영수증을 처리하던 관습을 가리킵니다.
즉, "너희의 죄의 빚문서가 하나님의 손에서 완전히 청산되어 탕감되었도다!"라는 완전한 해방의 선언입니다.
4. 핵심 원어 강해: 콜 코레 바-미드바르(ק֣וֹל קוֹרֵ֔א בַּמִּדְבָּ֕ר) — 광야의 왕의 대로
40장 3–5절은 천상의 공간을 울리는 정체불명의 장엄한 나팔 소리로 이어집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콜 코레)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바-미드바르 판누 데레크 야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밋셰루 바-아라바 메실라 레-엘로헤이누)" (사 40:3)
{ק֣וֹל\ קוֹרֵ֔א\ בַּמִּדְבָּ֕ר\ פַּנּ֖וּ\ דֶּ֣רֶךְ\ יְהוָ֑ה}
יַשְּׁרוּ֙\ בָּעֲרָבָ֔ה\ מְסִלָּ֖ה\ לֵאלֹהֵֽינוּ׃}
$$\text{"콜 코레! 바-미드바르 판누 데레크 야훼, 밋셰루 바-아라바 메실라 레-엘로헤이누!"}$$
왕의 귀환을 위한 4단계 토목공사
[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 ──> 절망과 낙심의 깊은 웅덩이를 성령의 은혜로 메움
[ 산마다 낮아지며 ] ────────> 교만과 자기 의의 거대한 바위산을 분쇄함
[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됨 ] > 왜곡된 마음과 거짓의 비틀린 성품을 바르게 폄
[ 험한 곳이 평지가 됨 ] ────> 죄악의 울퉁불퉁한 장애물을 제거함
메실라 (מְסִלָּה):
고대 근동에서 정복 군주가 행차할 때, 흙을 돋우고 자갈을 치워 넓고 평평하게 닦아놓았던 '왕실 전용 고속도로(Highway)'.
하나님은 포로 된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기 위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메마른 사막 광야 한복판을 가로질러 친히 행차하실 것입니다!
신약의 사복음서(마 3:3, 막 1:3, 눅 3:4–6, 요 1:23)는 한목소리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앞두고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외쳤던 ‘세례 요한의 사역’이 바로 이 말씀의 직접적 성취였음을 명확히 확증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웨-니글라 케보드 야훼 웨-라우 콜-바사르 야흐다우)" (사 40:5)
5. 핵심 원어 강해: 하-바사르 하치르(הַבָּשָׂ֣ר חָצִ֔יר) — 풀과 꽃, 그리고 영원한 말씀
선지자가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물었을 때, 하늘의 음성은 인간의 모든 자랑과 세속 권력의 실체를 폭로하는 시적인 일갈을 내던집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콜-하-바사르 하치르 웨-콜-하스도 케-치츠 하-사데)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아헨 하치르 하-암)" (사 40:6–7)
{יָבֵ֥שׁ\ חָצִ֖יר\ נָ֣בֵֽל\ צִ֑יץ}\\mathbf{וּדְבַר־אֱלֹהֵ֖ינוּ\ יָק֥וּם\ לְעוֹלָֽם׃}
{"야베쉬 하치르, 나벨 치츠! 우-데바르-엘로헤이누 야쿰 레-올람!"}
{"풀은 바짝 마르고 꽃은 시들어 떨어지되, 오직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토록 우뚝 서리로다!"}
(1) 하-바사르 하치르 (הַבָּשָׂר חָצִיר): 인간의 유한성
하치르 (חָצִיר, 풀):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뜨거운 동풍(시로코)이 한 번 불어오면 반나절 만에 노랗게 타버려 먼지가 되는 들풀.
치츠 (צִיץ, 꽃):
아침에 찬란하게 피었다가 저녁이면 고개를 떨구는 화려하지만 덧없는 꽃잎.
포로 된 백성들을 짓누르고 있던 거대한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 왕의 막강한 군대, 금 신상과 철갑 전차들!
사람의 눈에는 영원한 거인처럼 보였으나, 하나님의 입김(루아흐)이 한 번 불어 닥치면 한순간에 썩어 말라비틀어질 한 줌의 마른 풀(하치르)에 불과했습니다.
(2) 데바르-엘로헤이누 야쿰 레-올람: 영원한 말씀의 반석
제국은 무너지고, 황제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며, 인간의 문명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언약의 말씀(다바르)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토록 변함없이 살아 역사합니다(벧전 1:24–25).
포로 된 자들이 붙들어야 할 유일한 소망은 바벨론의 정세 변화가 아니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6. 목자의 품: 온유함과 창조의 장엄함 (사 40:9–26)
이 위대한 구원의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십니까?
40장 10–11절은 전능한 용사의 손과 가장 온유한 목자의 가슴을 동시에 묘사합니다: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케-로에 에드로 이르에 비-제로오 예캅베츠 텔라임 우-베-헤이코 이사)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올로트 예나헬)" (사 40:11)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주권자께서,
상처 입고 다리를 저는 연약한 어린양들을 가슴팍(헤이크)에 꼭 끌어안으시고,
젖먹이는 양들을 보폭에 맞추어 온순히 이끄시는 '선한 목자(요 10:11)'의 심장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12–26절에서 선지자는 우상의 헛됨을 통렬하게 비웃으며 창조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합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달아보았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는가(12절)!
열방은 하나님의 통에 든 '한 방울의 물(마르 미-델리)' 같고, 저울의 '작은 먼지(샤하크 모즈나임)'에 불과하다(15절)!
나무를 깎고 금을 입혀 넘어지지 않게 못을 박는 우상(19–20절) 따위가 어찌 창조주와 비교되겠는가!
하나님은 하늘의 수많은 별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하여 불러내시며, 그의 권세가 크고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이쉬 로 네에다르, 26절)!
7. 핵심 원어 강해: 코웨이 야훼(קֹוֵ֣י יְהוָ֔ה) — 독수리의 날개 침
말씀은 27절에 이르러, 바벨론 포로 수용소 밑바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영적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백성들의 탄식을 정면으로 소환합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니스테라 다르키 메-야훼 우-메-엘로하이 미쉬파티 야아보르)" (사 40:27)
"하나님은 나를 잊으셨다. 내 억울함(미쉬파트)에는 관심도 없으시다."
이것이 고난이 길어질 때 성도가 빠지는 가장 치명적인 영적 탄식입니다.
이에 이사야는 천둥 같은 사자후로 하나님의 영원성을 선포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엘로헤이 올람 야훼 보레 케초트 하-아레츠 로 이아프 웨-로 이이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노텐 라-야에프 코아흐 우-레-엔 오님 오츠마 야르베)" (사 40:28–29)
그리고 성경 66권 전체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눈부신 영적 비상의 약속이 폭발합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웨-이아푸 네아림 웨-이가우 우-바후림 카숄 이카쉘루)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웨-코웨이 야훼 야할리푸 코아흐)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야알루 에베르 카-네샤림)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0–31)
{וְקוֹיֵ֤\ יְהוָה֙\ יַחֲלִ֣יפוּ\ כֹ֔חַ}
{יַעֲל֥וּ\ אֵ֖בֶר\ כַּנְּשָׁרִ֑ים}
{יָרkeyוּצוּ֙\ וְלֹ֣א\ יִיגָ֔עוּ\ יֵלְכ֖וּ\ וְלֹ֥א\ יִיעָֽפוּ׃}
{"웨-코웨이 야훼 야할리푸 코아흐! 야알루 에베르 카-네샤림!"}
{"오직 여호와를 바라고 기다리는 자들(코웨이 야훼)은, 자신의 힘을 하나님의 힘으로 맞바꾸어(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감 같을 것이라!"}
(1) 카와 (קָוָה $\longrightarrow$ 코웨이): 앙망함의 본질
어원적 의미:
'굵은 밧줄을 꼬다', '간절함으로 목을 길게 빼고 인내하며 기다리다(Wait eagerly)'.
단순히 가만히 앉아 시간을 때우는 수동적 체념이 아닙니다.
내 모든 소망의 닻을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단단히 동여매고, 하나님의 구원의 때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사모하는 역동적인 기다림입니다.
(2) 할라프 (חָלַף $\longrightarrow$ 야할리푸): 옷을 갈아입듯 바꾸다
원어적 통찰:
'야할리푸'는 없던 힘이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교환하다, 갈아입다(Exchange)'는 뜻입니다!
내 바닥난 체력, 내 지친 감정, 내 한계에 부딪힌 인간의 힘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과 성령의 힘을 내 영혼의 옷으로 '맞바꾸어 입는 것'입니다!
(3) 야알루 에베르 카-네샤림 (יַעֲלוּ אֵבֶר כַּנְּשָׁרִים): 독수리의 비상
참새나 닭은 자기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가려다 지쳐 추락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네쉐르)는 폭풍이 불어올 때 바위 밑으로 숨지 않습니다.
거대한 날개(에베르)를 활짝 펴고, 거세게 불어 닥치는 '상승 기류(성령의 바람)'를 타고 날갯짓 한 번 하지 않고도 유유히 먹구름 위로 솟구쳐 올라갑니다!
환난의 바람이 불어올 때, 내 힘으로 바둥거리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의 날개 위에 자기를 내맡기는 자는 폭풍을 딛고 하늘의 보좌로 날아오르게 됩니다.
8. 구속사적 절정: 영원한 위로자요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사야 40장의 모든 약속을, 성육신하사 우리의 모든 죄의 복역을 십자가에서 끝내시고 영원한 부활의 새 힘을 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눈부신 절정으로 선포합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을 보면, 경건한 노인 시므온은 평생 동안 ‘이스라엘의 위로(파라클레시스, παράκλησις — 이사야 40:1의 성취)’를 기다리다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찬송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걸어 다니시는 하나님의 위로’이셨습니다!
| 이사야 40장의 예언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성취 (신약성경) |
| "내 백성을 위로하라(나하무)" | 보혜사(파라클레토스) 성령을 보내사 영원한 위로를 주심 (요 14:16) |
|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 |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예수의 길을 예비함 (마 3:3) |
| "복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해짐" |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선포하심 (요 19:30) |
| "모든 육체는 풀이요 꽃과 같음" | 썩어질 육체가 아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벧전 1:23–25) |
| "어린 양을 품에 안으시는 목자" | "나는 선한 목자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1) |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음"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
인간의 죄의 빚은 우리가 착하게 산다고 갚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모든 죄의 형벌과 저주를 온몸으로 다 받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시며 외치셨습니다: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 죗값이 다 지불되었다! 복역의 때가 끝났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옭아매던 죄와 사망의 쇠사슬이 영원히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은,
지치고 곤비하여 쓰러져 있는 우리를 향해
세상이 줄 수 없는 '성령의 거룩한 바람(파라클레토스)'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리스도를 앙망하는 자마다,
무덤을 뚫고 부활하신 주님의 그 초자연적인 부활의 생명(야할리푸 코아흐)을 옷 입고,
오늘도 세상의 모든 절망과 한계를 뚫고
독수리처럼 찬란하게 날아오르는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9. 목회적 적용과 묵상(1) 풀처럼 마를 '세상 제국(권력과 재물)'을 두려워하지 말라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바벨론 제국 같은 세상의 권력자, 직장의 위기, 거대한 문제의 파도 앞에 주눅 들어 계십니까?
이사야의 외침을 들으십시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라!"
아무리 화려하고 거대해 보여도, 하나님의 입김 한 번이면 하루아침에 누렇게 타버릴 한 줌의 마른 풀에 불과합니다.
썩어질 풀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영원히 변치 않고 우뚝 서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위에 당신의 영혼의 닻을 내리십시오.
(2) "내 길은 숨겨졌다"는 영적 패배주의의 탄식을 찢으라
"하나님은 나를 잊으셨는가, 내 억울함과 고통은 돌아보지 않으시는가(사 40:27)."
마귀가 심어주는 이 지독한 고립감과 자기 연민의 독가스를 십자가 예수 이름으로 걷어내십시오.
온 우주의 별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하여 불러내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26절),
어찌 피 값으로 사신 당신의 이름을 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눈물 한 방울,
신음 소리 하나까지도 선한 목자의 가슴에 품고 계심을 확신하십시오.
(3) 내 힘을 빼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기도의 날개(야할리푸)'를 펴라
신앙생활을 내 의지와 내 노력으로 하려다 보니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는 탈진(Burnout)을 겪습니다.
바둥거림을 멈추십시오.
여호와를 앙망하십시오(코웨이 야훼).
당신의 지친 손을 들고 기도의 날개를 활짝 펴십시오.
"주여, 내 힘은 바닥났사오니 내 힘을 주의 성령의 힘으로 맞바꾸어 주옵소서(야할리푸 코아흐)!"
당신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잠잠히 엎드릴 때,
위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의 강력한 바람이
당신의 삶을 집어삼키던 거센 폭풍우를 딛고
가장 높은 하늘의 영광으로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10. 결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종을 향하여
이사야 40장의 막이 내리며,
바벨론 포로 수용소의 칠흑 같던 흑암은
영원한 말씀의 반석과 독수리의 찬란한 비상으로 뒤덮였습니다.
복역의 때는 끝났고, 죄악은 사함을 받았으며,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이 친히 어린양들을 품에 안고
시온의 대로를 향해 행차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거대한 우주적 구원을 도대체 누구를 통해 이루실 것인가?
바벨론을 무너뜨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같은 군사 영웅인가?
성경은 세상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 병기를 무대 중앙으로 불러 올립니다.
그리고 이제 이사야 42장의 거룩한 장막이 열립니다!
구약성경에 흐르는 4대 ‘여호와의 종의 노래(Servant Songs)’의 첫 번째 팡파르: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헨 아브디 에트마크-보)!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 종은 소리치지 않으십니다.
목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쓸모없다고 짓밟아버리는 '상한 갈대(카네 라추츠)'를 꺾지 아니하시며,
기름이 다 떨어져 매캐한 연기만 피우는 '꺼져가는 등불(페쉬타 케하)'을 결코 끄지 아니하시는
형언할 수 없는 온유함과 자비의 종!
이스라엘의 회복을 넘어,
흑암에 갇힌 온 열방의 눈을 뜨게 할 ‘이방의 빛(오르 고임)’으로 세움 받은 메시아!
제8강: “보라 나의 종을 보라” — 여호와의 종의 노래와 이방의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