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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성 훈 목사(동래 중앙 교회)
"오늘 수업 이만 끝!" 이라는 말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아주 반가운 말 중의 하나입니다.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은 "오늘 수업은 휴강합니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도 공부 안 한다고 하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남들이 쉬자고 말하면 극구 반대하면서 끝까지 공부하자고 우기던 사람입니다. 내 사전에 휴강이란 없다는 좌우명을 내세우고 어떻게 하든지 수업을 빠트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곤 했습니다. 얼마나 공부가 재미있었는지 휴식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어요. 주위 사람들로부터 '너 앞으로 큰 인물이 되겠다.'는 말을 들으며 열심히 공부만 했어요. 저같이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 거구만요.
저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만 보면 이해가 안가요. 여기서 그만해야겠습니다. 양심이 찔려서 더 이상 거짓말을 늘어놀 수가 없네요. 여러분의 얼굴도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들이신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그저 그랬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희망사항을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비젼 성서 아카데미>에 등록하여 공부하시는 분들도 보면 힘들고 어렵게 시간을 내어
공부하시면서도 교회 행사나 무슨 사정으로 인해서 "다음 주는 쉬겠습니다" 하면 쉰다는 것이 뭐 그리 좋은지 야단들이 나요.
삶이 곧 일이다.
공부하는 문제만이 아니고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날 따라 회사에 사정이 있어 한 시간 일찍 퇴근을 했다든지, 일을 하지 않고 편히 있다가 왔다든지, 이런 저런 문제로 회사 일이 수월했다든지 하면 왠지 모르게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일생토록 일 속에서 일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인간이다보니 되도록이면 일을 덜 하고 기회만 되면 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일이 있고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일이 있고 장년은 장년대로 일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부를 일이라고 본다면 일하기 위해 태어나서 일하다 죽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 할 수 있어요. 일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일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들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삶을 어떤 식으로 대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서 우리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일하기를 게을리하고 어떻게 하든지 놀고 먹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불행해 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러나 일을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일 하는 것을 통해서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아주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을 거예요. 행복한 삶이란 행복하게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은 형벌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생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일을 좋아하기 보다 일을 기피하고 어떻게 하든지 일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일을 힘든 고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은 땀을 동반하기 때문에 되도록 일을 안 하려고 발버둥칩니다. 하더라도 쉬운 일만을 골라 하려고 합니다.
일과 문화.
물론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조금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열심이란 차원에서만 본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일 거예요. 그러나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지는 의문이구요, 그보다 더 심각한 병폐 중 하나는 일의 귀천을 따지면서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문화와도 연결이 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영향을 받는 문화가 불교문화와 유교문화입니다. 뿌리가 워낙 깊어서 이 두 문화의 영향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불교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보세요. 말로는 일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일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산 속으로 들어가서 도를 닦고 고행이나 자아성찰을 통해서 자기를 구원해 보려는 노력은 있으나 세상에 뛰어들어가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노동하고 일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멉니다. 일을 고생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노동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유교는 말할 것도 없어요. 유교는 모든 직업을 귀천으로 분리해 놓고 인간으로서 할 일이 있고 못할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느 일은 귀하고 어느 일은 천하다고 구분을 지어 놓았기 때문에 일의 선택 자체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 이라고 해서 땀을 흘리고 노동하는 일은 천한 일이고 앉아서 사무나 보고 고상하게 일하는 것은 귀한 일로 취급하여 직업뿐만이 아니라 직업을 가진 사람까지 차별을 하고 있어요. 그런 풍토 속에서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사상이 선비 사상입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이 '사'자 들어간 직업만을 선호하게 되었고 그런 일에 종사해야 만이 대접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 거예요. 이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자가 죽어야.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일은 귀하고 어떤 일은 천하다고 구별해 놓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어떤 일은 악한 일이고 어떤 일은 선한 일일 수 있습니다. 선악은 구별할 수 있지만 일의 귀천을 구분하는 것은 비복음적이고 비신앙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교가 지향하는 것은 선비정신입니다. 책이나 뒤적이며 부채질이나 하는 것이 선비가 해야 할 일이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삶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땀을 흘리고 일을 하는 것은 노예나 하인들이 하는 것이고 양반은 체면이 있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궂은 일, 힘든 일, 더러운 일은 천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니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팽개쳐 버리고 그저 쉬운 일, 깨끗한 일, 좋은 일만 골라서 하려는 경향들이 생겨난 거 아닙니까.
최근에 출판되어 찬반 시비를 불러일으킨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런 겁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가 세계적으로 발전하고 도약하려면 공자가 죽어야 된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유교문화들이 한시바삐 사라져버려야 된다는 주장을 극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일찌기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전이 뒤쳐진 것도 알고 보면 일을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만드는 유교문화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저자의 주장이 다 옳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마는 그 영향이 우리에게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고종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마땅히 할 놀이가 없으니까 테니스장을 만들어 놓고 공을 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 번도 그런 놀이를 본 적이 없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저 앉아서 구경을 하는데 한번은 고종황제도 함께 관람하게 되었다지요.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뛰어 다니며 공을 쳐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종이 신하들에게 한다는 말씀, "저 서양놈들, 뭐하러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들을 하고 저러나. 참으로 한심한지고. 저런 땀나는 일은 아랫것들에게나 시키면 되지 않은가?" 라면서 혀를 끌끌 차더랍니다.
땀을 흘리는 것을 죄악시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회만이 아니라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행심리를 주의하시오.
우리가 일을 싫어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일이 고되고 힘들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든지 쉽게 일확천금을 노려 편히 놀고먹으려는 한탕주의가 우리 마음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주위를 보더라도 그래요. 어떻게 하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보다는 어떻게 하면 쉽고 편하게 일하지 않고 일생을 편안히 지낼 수 있을까라는 사행심리나 요행심리가 판을 치고 있어 일을 기피하려는 나쁜 풍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3가지 열풍.
요즈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리 사회에 불어닥치고 있는 3가지 열풍이 있습니다. 도박, 복권, 주식입니다. 벤처기업을 상장하는 코스닥이라는 주식시장이 있는데 주식 거래를 통해 하루아침에 20억을 벌었느니, 40억을 벌었느니 하는 꿈같은 얘기들이 신문에 발표되자 너도나도 주식 투자를 하겠다고 야단들입니다. 열심히 일할 생각은 않고 어떻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는지, 한 건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오직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요. 정말 그 회사를 사랑하고 기업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주식을 사서 그 기업을 키우고 그 기업이 자라나서 거기서 남는 배당금을 나누어 갖는 거야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사고 파는 과정에서 떨어지는 차액만을 노려 주식에 투자하려 드는 것은 극히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런 식으로 주식을 팔고 사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세요.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답지 못한 일입니다.
복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보니까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복권 사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구요.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 나라에 와서는 한번도 복권을 사 본 적이 없습니다만 미국에서 몇 번 해 보았습니다. 미국에는 단위가 틀리기 때문에 액수가 천문학적인 숫자로 뛰어 오릅니다. 그러니 어디 한 번 해 볼까 라는 마음이 안들 수가 없어요. 최고로 올라갔던 때가 일억이천만 불 정도였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1300억이 넘는 엄청난 상금입니다. 그런데 저하고는 거리가 멀더라구요. 그래서 이런 것은 하면 안되겠다 싶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돈으로 떼 돈 벌겠다는 생각으로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부터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조사해보니까 우리나라 복권의 종류도 여러가집디다. 주택복권, 기술복권, 자치복권, 복지복권, 축구복권, 수퍼 밀레니엄 관광복권, 온라인 복권, 심지어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등등 다양해요. 어디로 가든지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마는 요행심리나 사행심리를 가지고 돈놀이하고 떼돈을 만지려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바로 서 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타락의 길을 걷고 맙니다. 통계에 의하면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치고 가정이 파괴되지 않은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잘 들으세요. 복권이 행운일 수는 있어도 행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땀을 흘려 노력하지 않고 한 건 하려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합니다. 일은 하지 않고 놀고먹으려는 자들은 불한당 같은 못된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차원에서도 이런 불한당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한 번도 자기 충성을 바쳐보지 않고, 한 번도 헌신해 본적이 없으면서 주님으로부터 복을 받아보겠노라고 서두는 자들은 영적인 불한당에 불과합니다.
일의 의미를 찾으시오.
우리가 일하기를 거절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일을 통해서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일해도 의미가 없고 보람이 없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아무리 궂은 일이라도 보람과 가치를 맛볼 수만 있다면 일하는 것이 정말 기쁜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인간은 절망합니다. 무슨 일이나 그 일을 즐겁게 해나가려면 반드시 그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의미를 찾되 더 고상하고 차원 높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을 통해서 보람을 얻지 못할 때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보람있는 일을.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사람이 <죽은 자의 집>이라는 책에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너희가 한 인간을 철저히 파멸시키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보잘것없는 일을 주어보라" 사람은 의미가 없는 일을 계속하게 될 경우 분노와 수치감을 견디지 못해 나중에는 발광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 낸 자들이 있습니다. 독일 군인들이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들을 잡아다가 의미 없는 일들을 시켰다고 합니다. 공습으로 잿더미가 된 쓰레기들을 달구지에 싣게 하고 다른 장소로 옮기도록 명령합니다. 그 다음날 그 옮겨놓은 쓰레기를 다시 원위치로 갖다 놓도록 지시를 내립니다. 그 다음날은 또 다른 장소로 옮겨놓게 하고 그 다음날은 또 원위치로 갖다놓으라고 강요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의미도 없는 일을 계속 반복시키자 언제부턴가 포로들의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갑자기 일을 하다말고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우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대들기도 하고 발작을 일으켜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뛰어가 자살을 하는 현상들도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얻어진 결론은 이것입니다. 인간은 의미없는 일을 할 때에 정신적으로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루를 살아도 의미있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자세로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의 자세일까요? 우리의 인생을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일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 보면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하고,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일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일을 주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 머물러 살게 하시면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먹고 지내거라 하지 않으시고 에덴을 경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덴은 놀고먹으라고 주신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에 두시면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아담으로 하여금 동식물의 이름을 짓도록 하시지 않던가요.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허송세월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심히 땀을 흘리고 흘린 땀의 댓가를 통해서 소득을 얻고 그 소득으로 살아가도록 분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대궐같은 집을 먼저 지어놓으신 다음 인간들에게 들어가서 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나무와 돌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것을 다듬어서 너희들의 살집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바늘을 만들어 주시면서 이것을 가지고 옷을 깁고 이불을 꿰매며 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바늘이 아니라 바늘을 만들 수 있는 철을 공급해 주실 뿐입니다.
자원을 공급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일을 통해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야 할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하고 땀을 흘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일을 하도록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하고 싶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라고 하셨기에 마땅히 일해야 합니다. 본문에도 "너희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써서 일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놀지 마세요.
일은 구원사역의 도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일꾼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일이 항상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일을 열심히 해서 돈벌고, 출세하고, 성공해야지 라는 생각만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것만이 일의 전부가 아닙니다. 일과 밥벌이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인생이 단순히 밥벌이로 메워져서야 되겠습니까? 나의 욕구만을 채우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일이든 정신적인 일이든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일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일이 인간의 뜻에 의해 인간만을 위해 이루어진다면 결국 그 일은 죄와 허영과 타락과 교만을 불러일으키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목표달성을 위해 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허무와 죽음만을 거두게 될 거예요. 인간은 일 하다가 죽습니다. 일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이 늘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연결이 되어 움직일 때 일은 단순히 힘들고 어려운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어나가는 거룩한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내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일할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으로 의미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일해야 할 때 일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할 때 공부해야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10절 후반절입니다.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밤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허비하지 마십시오. 언제까지나 인간이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지난 주간에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하는 가운데 교회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젊은 집사님들을 향해서 이렇게 권면하시더라구요. "젊었을 때 일하세요. 나처럼 늙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때가 오면 후회한들 자기만 괴로울 뿐이에요. 건강할 때 젊을 때 더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하세요."
백 번 천 번 옳은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시간은 생각만큼 길지 않습니다. 세상에서의 일은 언젠가 끝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갈 것입니까?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아름다운 생의 보고가 아니겠습니까?
< 기도 >
은혜로우신 아버지!
저희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며 일하라 명령하시고 일할 수 있는 건강과 모든 여건을 허락해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나태하여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거부하며 불충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저희들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이든 충성으로 감당하게 하시고 일을 통하여가장 가치있는 삶, 보람있는 삶을 살아 주님께 영광돌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