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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향하여
룻기 4장 18-22절
이제 룻기를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모두 열여섯번에 걸쳐서
룻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여러분.
룻기는 정말 슬프고도 아름답고
그리고 희망에 찬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엘리멜렉 식구들이 모압으로 살러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자들이 다 죽는 비극적인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기근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풍요로운 추수로 끝납니다.
저주받은 장면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복받음으로 끝납니다.
그렇기에 룻기는
죽음을 넘어서 생명으로
절망을 넘어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룻기 이야기는
실제로는 4장 17절에서 끝납니다.
보아스와 룻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오벳입니다.
그리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이렇게해서 모든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런데 룻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8절에서 22절까지의 구절이 뒤에 이어집니다.
이 구절들은 이야기가 아니고 족보입니다.
베레스에서 다윗까지 이어지는 족보입니다.
여러분.
이야기가 다 끝났는데,
왜 족보를 맨뒤에 붙여놓았을까요?
보아스와 룻이 결혼해서 오벳을 낳았고,
그리고 오벳이 나중에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됐지,
왜 다시
베레스에서 다윗까지 이어지는
족보를 붙여놓았을까요?
다윗이 태어나는 것을
왜 두 번씩이나 언급할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룻기의 주인공이 누구냐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룻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룻기를 처음 시작할 때 했던 질문입니다.
누가 룻기의 주인공인가?
제목이 룻기라고 되어 있으니까
룻이 주인공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룻보다 더 중요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엘리멜렉이고
나중에는 나오미이고,
그리고 보아스입니다.
여기서 보아스는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역할로 보면,
보아스를 룻기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룻기의 중심사상이 구속이기 때문에,
엘리멜렉의 남은 가족을 대속해준
보아스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룻기는
보아스가 룻과 결혼해서
오벳을 낳았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도 충분한데,
왜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지 않고
맨 끝에 다윗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그것도 두 번이나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다윗이 중요해서 그렇습니다.
룻기를 쓴 사람은
다윗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룻기를 쓴 사람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앞에 했던 이야기들이 아니고
따로 있었기 때문에,
오벳이 태어난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오벳이 다윗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굳이 두 번이나 밝힙니다.
그래서 룻기는
나오미의 이야기로 끝날 수도 없고,
보아스와 룻이 결혼한 이야기로 끝날 수도 없습니다.
또 오벳이 탄생한 것으로 끝날 수가 없습니다.
룻기를 쓴 사람이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다윗왕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윗왕 이야기는
룻기 바로 다음에 나오는
사무엘서에 들어 있습니다.
사무엘서는 완전히 다윗왕 이야기입니다.
룻기가 사무엘서 앞에 온 것은
다윗왕 이야기 때문입니다.
다윗왕 이야기로
두 책이 연결됩니다.
그리고
다윗왕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룻기를 쓴 사람은 여러 이야기를 하고,
맨 뒤에 다윗을 두 번이나 말하는 것입니다.
보아스 집안 족보를 말하는 것은
이 집안에서 다윗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태어나야 이 이야기가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엘리멜렉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보아스를 이야기하고,
보아스와 룻이 만나서 결혼하는 이야기를 하고
오벳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두 다윗 때문입니다.
그래서 룻기는
룻이나 보아스의 이야기가 아니고,
또 오벳의 이야기도 아니고,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다윗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왕은 이스라엘의 성군입니다.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왕입니다.
누구보다 나라를 잘 다스렸고,
그리고 하나님보시기에
바르게 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른 왕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다윗왕은 다른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역사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다윗왕처럼 살았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로
다른 왕들을 평가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40여명의 왕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다윗이 가장 훌륭했고
가장 위대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서나
다윗왕을 존경했고,
다윗왕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다스려주기를 원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다윗왕같은 인물을 원했습니다.
다윗왕같은 인물.
이스라엘 사람들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랬습니다.
다윗왕같은 왕이 언제가는 이땅에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고
이스라엘을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서
세상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로 모여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꼭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사야서 2장 2절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는 세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예루살렘 시온에 올라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그 말씀에 따라서 살려고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세상이 다스려져서
모든 나라들이 전쟁을 그치고
전쟁물자를 모두
인류평화를 위해서 사용함으로써
온 인류가 영원히 평화를 누리면서 사는
그런 복된 날이 오기를 바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다윗같은 왕을
메시야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기름부어주신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왕이 나타나서 다스리는
그 평화로운 나라를
메시야왕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지상천국입니다.
다윗왕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꿈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훌륭한 왕을 원했습니다.
그런 왕을 다윗을 닮은 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다윗왕같은 왕은 어떤 왕일까요?
옛날 이스라엘이 바라던 이상적인 왕은
어떤 왕이었을까요?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왕이
어떤 왕이었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시편 72편을 보십시오.
1절에서 14절까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2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 하리니
3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4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5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6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니
7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8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9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10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11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12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
여기에 보면,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떤 왕을 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하는 왕은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비로운 왕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그들의 형편을 잘 살펴서
어려운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그들을 괴롭히고 압박하는 자들을 물리치는
그런 왕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력한 왕을 기다렸습니다.
8절에서 11절까지에
그들이 원하는 강력한 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영토를 넓히고
주위 나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그런 강력한 왕을 원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가 어려울수록
그런 왕을 기다렸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족보는
역대상 2장에도 나옵니다.
5절부터 17절까지를 보십시오.
5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6 세라의 아들은
시므리와 에단과 헤만과 갈골과 다라니
모두 다섯 사람이요
7 가르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저는 마땅히 멸할 물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며
8 에단의 아들은 아사랴더라
9 헤스론의 낳은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라
10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11 나손은 살마를 낳았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았고
12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13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세째로 시므아와
14 네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15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
16 저희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
17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
아마사의 아비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더라
여기에 다윗으로 이어지는 족보가 나옵니다.
역대상은 다윗의 책입니다.
역대기는 상하 두권으로 된 책인데,
유다를 다스렸던 20명 정도의 왕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역사를 기록하려면
역대상에 20명
역대하에 20명
이렇게 기록해야 하는데,
역대상에는 다윗왕 혼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왕을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같은 왕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역대기에는 그런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역대기는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생활하다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만들어낸 책입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로 어려웠습니다.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복구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방해를 해서
성전을 건축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전을 다시 건축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너무 어렵다보니,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모범이 되는 한 사람을
신앙의 모델로 삼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한 사람이 바로
다윗왕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강조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윗은
성전건축을 준비하고
또 성전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놓은
신앙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들도 이런 다윗을 본받고 싶었고,
또 그런 위대한 왕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렇듯
다윗왕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상적인 왕이었고,
기다림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다윗왕같은 위대한 왕
메시야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약을 넘어서
신약에까지 이어집니다.
룻기 4장 18절에서 22절에 나오는 족보는
마태복음에도 나옵니다.
마태복음 1장을 봅시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다윗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룻기는
엘리멜렉을 넘어서 보아스에게로,
그리고 다시 다윗에게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가는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이것이 룻기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해서 우리는 룻기를 모두 읽었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룻기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메시야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 하실 것입니다.
출처: 천성을 향하여 글쓴이: 하늘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