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지파의 회복[삿 21장]
[내용개요]
본장은 연합군에게 대패함으로 멸족의 위기에 처한 베냐민 지파를 보존하기 위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노력을 기록하고 있다. 내전 후 베냐민 지파와의 금혼을 맹세한 다른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가 멸족의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후회하게 되었다(1-7절). 베냐민 지파를 보존할 방법을 찾던 온 지파는 먼저 야베스 길르앗과의 전투에서 얻은 사백 명의 처녀를 광야로 도피하여 살아 남은 육백 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주었다(8-15절). 그래도 부족하자 그들로 하여금 축제일에 춤추러 나온 여자들을 강제로 납치하여 아내로 삼게 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다(16-24절).
[강 해]
본문에는 이전에 있었던 베냐민 지파와 동족 상잔의 비극을 마무리 짓는 내용이 나타나 있습니다. 기브아 비류를 두둔하다 결국 이스라엘 연합군과 전쟁을 치르게 된 베냐민 지파는 남자들이 거의 전멸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 남자들에게 딸을 주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는 결국 한 지파가 소멸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후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한 지파가 소멸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난관을 타결하기 위해 심사 숙고하며 논의하게 되는데 본문은 이런 논의 과정과 함께 소멸 위기에 놓인 베냐민 지파를 회개할 비책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회함
1) 베냐민 사람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함
베냐민 지파를 거의 전멸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의 무리들을 뿌리뽑기 위해 베냐민 지파의 생존한 남자들에게 자기들의 딸을 구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습니다. 이런 맹세는 우선 악의 무리를 소멸하겠다는 좋은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그리고 감정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맹세는 훗날 베냐민 지파를 회생시키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고, 큰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옛날 사사 입다도 이런 성급한 맹세를 하여 어처구니없게도 무남 독녀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함부로 맹세하지 말고, 삼가 기도하는 가운데 책임성 있는 약속을 함이 마땅합니다.
a. 입다의 맹세(삿11:39)
b.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마5:34)
2) 이스라엘 공동체가 파멸 위기에 놓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맹세로 인해 생존한 베냐민 남자들이 아내를 얻지 못하게 되자, 페냐민 지파는 이제 더 이상 자손을 번식하지 못해 소멸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베냐민 지파 하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소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같은 언약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의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지체 비유를 통해 신앙 공동체의 일체감과 유기적 연대감에 대해 교훈하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귀중한 진리를 마음에 새겨 우리 자신만 돌아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웃 형제도 돌아보아 행여라도 신앙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a. 지체 비유(고전12:12)
b. 이웃 형제를 돌아보라(빌2:4)
2. 길르앗 야베스를 공략함
1) 전쟁에 참여치 않은 가문을 응징하려 함
베냐민 지파의 회생 문제를 궁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득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한 가문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들은 곧 요단 강 동쪽 길르앗 지역에 있는 야베스 가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어느 한 지파를 응징하는 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이스라엘 땅에서 죄악을 없애고 하나님의 공의를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거룩한 전쟁에 불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경멸하는 불경스런 행위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번 전쟁에 불참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응징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a.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마6:33)
b.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후4:7-8)
2) 처녀 400명을 포로로 잡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르앗 야베스에서 400명의 처녀를 포로로 잡아 이들을 베냐민 지파의 생존한 남자들에게 아내로 주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회생시키기 위해 이렇게 무고한 여인 400명을 포로로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 그들의 성급한 맹세가 이렇게 비극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참으로 성급한 맹세의 결과가 얼마나 비극적인가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합니다.
a. 망령되어 맹세함(슥5:3-4)
b. 맹세는 반드시 지키라(민30:2)
3. 베냐민 남자들에게 신부를 구해 줌
1) 베냐민 남자에게 여자를 납치하게 함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남자들에게 400명의 길르앗 야베스 처녀들을 포로로 주었지만, 여전히 처녀의 숫자는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여자들이 축제일에 춤을 출 때 베냐민 남자들이 급습하여 처녀들을 납치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베냐민 남자들은 가정을 이를 수 있었고, 종족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은 성급하게 행한 맹세를 깨뜨리지 않기 위한 하나의 편법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를 교훈 삼아 항상 말이나 행실을 삼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a. 말을 삼가라(약3:2)
b. 악한 말은 올무가 됨(잠6:2)
2) 베냐민 지파가 새로이 회생함
베냐민 사람들은 우여곡절 끝에 신부를 얻게 되었고, 점차 다시 자손을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완전히 소멸될 지경에서 극적으로 회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미워하시지만, 그러나 회개하고 새로이 거듭나는 자들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은총을 베푸시는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a. 하나님의 자비(출22:27)
b. 풍성한 자비(애3:32)
결론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죄와 유혹 가운데서 동족 상잔의 비극까지 이르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은 나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나라의 결국은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그 나라의 백성답게 신실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6절. 끊쳤도다. 원어 <[d"G::가다>는 '베어내다, 끊다'를 나타내는 것으로 원래는 나무를 완전히 베어내는 것을 가리킴.
8절. 야베스 길르앗.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하고 있던 성읍으로 요단 동쪽에 위치.
11절. 진멸할. 원어 <!r"j;:하람>은 '성별하다, 봉헌하다'를 뜻하며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어떤 것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행위를 말함. 보통 전쟁 시에 사용되는데 이것은 사람을 죽임에 있어 남녀 노소와 가축 모두를 철저히 죽임을 가리킨다.
12절. 가나안 땅.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땅.
15절. 뉘우첬으니. 원어 <!j'n::나함>은 '한숨쉬다, 동정하다, 위로하다'를 의미.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 호의적인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줌. 궐이. 이스라엘 공동체 사이에서 생긴 '갈라진 틈, 분열'을 뜻.
17절. 기업.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 물건이나 재산의 상속을 의미. 원어는 <hV;rUy]:예루솨>이며 '산업, 소유, 계승'을 의미.
20절. 포도원에. 팔레스타인에는 대규모의 포도원들이 많았는데 이곳에서 재배되는 포도 나무 잎사귀들은 매우 커서 사람들이 숨기에 좋은 장소였다.
[신학주제]
이스라엘의 후회. 연합군을 결성하여 베냐민 지파의 범죄를 징계한 지파들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전쟁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가 멸족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물론 육백 명의 베냐민 사람들이 생존하였으나 다른 지파들이 베냐민파의 금혼을 맹세하였으므로 종족을 유지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야기된 것은 근본적으로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적 분노 때문에 베냐민을 징벌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달리 자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결코 멸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징계를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축복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사건은 결국 인간이 지닌 죄악의 문제는 하나님만이 온전하게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영적교훈]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징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베냐민을 친 이스라엘과 같이 인간적인 분노와 미움으로 대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서로간의 갈등과 후회만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악에 대해 질책할 때도 회개하고 바른길로 돌아오기를 나라는 사랑에서 행해야 한다. 징계가 없는 사랑이 타락을 가져온다면 사랑 없는 징계는 분열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랑과 공의가 온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교회 내에서나 사회 속에서 화해와 선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