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 14: 19 - 23 식물로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1)
7. 식물로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 14: 19 - 23 )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롬 14: 19 덕을 세우는 일 -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전통 사본에는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자.'라고 되어 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다른 이에게 영적 유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1] 그러므로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라 운'(*, '그러면', '그런즉')으로서 앞의 17-18절을 받고 있는 접속사이다.
앞 절에서 하나님 나라의 속성과 그 본질을 명쾌히 제시하여 그 열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신다는 것을 원리적 측면에서 선포한 바울은 이제 그 원리가 실제적인 교회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발휘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촉구한다.
2] 우리가 화평의 일과
바울이 힘쓸 것을 촉구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평의 일은 힘쓰라.
'화평의 일'(*, 타 테스 에이레네스)이란 교회의 화합(和合)을 도모하는 모든 일을 포괄적으로 지칭한 말로서 초대 교회 설교의 관용구이다.
* 딤후 2: 22 -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 히 12: 14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벧전 3: 11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이는 시 34: 14의 내용에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Dunn).
* 시 34: 14 -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사도는 연약한 자와 강한 자 간의 조화를 위한 직접적인 적용으로 화평을 추구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촉구하는 '에이레네'(*, '화평')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차원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Godet).
3]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여기서 '힘쓰나니'의 헬라어 '디오코멘'(*)은 '급히 가다', '빨리 달려가다', '추구하다', '갈망하다'는 '디오코'(*)의 1인칭 복수 현재 능동태로서 현재 문제가 있는 교회 생활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애쓸 것을 강력하게 권면한 것이다.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라. '덕(德)을 세우다'의 헬라어 '오이코도메스'(*)는 '집을 짓다', '건설하다', '굳게 하다'라는 뜻인 '오이코도메오'(*)에서 나온 말로서 주로 '건축'에 관련해서 사용된 단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세우다'라는 은유법은 아주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구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예레미야가 이를 자주 사용하였다.
* 렘 12: 16 -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르쳐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 렘 31: 4 -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 렘 33: 7 -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 렘 42: 10 -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 렘 45: 4 -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그런데 이 비유법은 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1) 그 자신의 사역에 대해 설명할 때 이를 사용하였다.
* 고전 3: 9-10 -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 고후 10: 8 -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 고후 12: 19 -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 고후 13: 10 -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2)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벽돌처럼 연결되어 함께 성전을 지어 올라가는, 즉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권할 때 사용하였다.
* 엡 2: 19-20 -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 벧전 2: 5 -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3) 이 비유법의 가장 빈번한 용례는 바울이 편지를 보낸 교회들에게 준 충고에서 나타난다.
즉, 구체적인 문제 속에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덕을 세우라는 권고로 나타난다(Dunn).
예컨데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남으로 야기된 여러 문제들을 다루는 데 바울이 사용한 핵심적인 단어 역시 '덕을 세우라'는 것이었다.(Harrison).
* 고전 14: 5, 12, 26 -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이를 종합하여 본 절의 의미를 살펴보면 서로 덕을 세우라는 이 권고는 상호 대인 관계와 상호 의존성을 결정지어 주는 중대한 기준이 된다(15: 2).
* 고전 8: 1 -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 고전 10: 23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그리고 서로 간에 상이(相異)한 은사들의 상대적 가치를 분별하고 인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 고전 14: 3-5 -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따라서 본 구절의 개념은 어떤 경건한 의식이나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이 모든 문제 속에서 실제로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세움을 입어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즉 구체적으로 모든 문제 속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 23-24)는 원리에 준하여 교회 안에서 화평, 즉 덕을 도모하라는 촉구이다(Calvin).
* 고전 9: 19-22 -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왜냐하면 로마 교회에서의 긴장은 신앙의 견해 차이로 인한 유대인과 이방 그리스도인간의 분열에 있었기 때문이다.
롬 14: 20 하나님의 사업 -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성도들이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쓸 것을 말한 바울은 이제 덕을 세우는 일을 방해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그의 논점을 강화한다(Harrison).
1]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무너뜨리다'(*, 카탈뤼에)는 말은 바울이 앞 절에서 사용한 '오이코도메오'(*, '집을 짓다', '덕을 세우다', '건설하다')의 반대말이다.
* 마 5: 17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마 24: 2 -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 마 26: 61 -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 마 27: 40 -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 고후 5: 1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 갈 2: 18 -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즉 바울은 비본질적인 음식물에 대한 이견(異見) 때문에 본질적인 하나님의 사업(일)을 파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 토 에르곤 투 데우)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 혹자는 하나님이 세우고 계신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Sanday, Barrett, Kasemann).
Ⓑ 구원사건 자체를 가리킨다고 보았다(Michel).
Ⓒ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연약한 형제, 즉 하나님이 갓 창조하기 시작한 사람 속에서 일으키는 구원 사역을 의미한다(Robertson, Murray).
여기서 Ⓐ의 견해도 무난한 해석이라고 생각되나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의 견해인 듯하다. 왜냐하면 문맥에 비추어 볼 때 13절 이하에서 계속해서 강한 자에게 교훈을 주면서 연약한 자가 근심케 되지 않기를, 그리고 그로 인해 망케 하지 말라고 권고하기 때문이다.(15절)
나아가 하나님이 불러 구원하신 한 영혼이 장성(長成)하여 굳세게 서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주된 목표이기 때문이다(Carnfield, Barmby).
2] 만물이 다 깨끗하되(*, 판타 멘 카다라)
14절을 반복한 교훈으로 강한 사람들의 슬로건처럼 보이는 이 말을 바울은 먼저 인정하였다.
* 막 7: 19 -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 행 10: 15 -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 고전 8: 4-8 -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모든 음식물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깨끗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진술은 14절의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라는 말처럼 한정적 의미의 뜻이다.
즉, 인간의 생각, 욕구, 행위 같은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피조 세계의 자원을 가리킨다.
3]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바울은 만물이 다 깨끗함을 인정하였지만 거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음식물 자체는 그릇된 것이 없지만 만일 음식물을 먹는 습관이나 마음의 자세가 어떤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먹을지라도 나쁘다는 것이다(Bruce).
그러면 여기서 '거리낌으로 먹는'(*, 프로스콤마토스 에스디온티) 행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 약한 자가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강한 그리스도인들의 압력을 받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마음으로 고기를 먹는 행위를 말한다(Kasemann).
Ⓑ 형제의 연약함을 보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고기를 먹음으로써 약한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강한 자들의 무절제한 신앙 행위를 가리킨다(Calvin, Hodge).
우리는 여기서 원어의 의미상으로나 전후 문맥으로 보나 Ⓐ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Chrysos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