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토요일
탐방코스 : 외씨버선길 장승~주실령~박달령~오전약수관광단지~보부상위령비~생달마을~상운사
박달령
박달령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과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을 잇는 보부상의 고개로 백두대간 능선상의 옥돌봉(1,244m)과 선달산(1,236m) 사이에 위치한 해발고도 973m의 고개이다
박달령 정상석 앞에 서니 2011년 11월과 2014년 2월 백두대간 종주할 때 이곳을 지나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감회가 새롭다
점심 식사 후 정상석 앞에서 다녀간 흔적 남기고...
박달령 산령각(朴達嶺 山靈閣)
최근에 단장을 하였는지 말끔하다
그 사이 편액도 '閣靈山'에서 '朴達嶺 山靈閣'으로 바뀌고...
박달령 산령각은 선달산(先達山)과 옥돌봉(玉石山) 중간에 위치한 박달령 고갯마루에 자리 잡고 있다
매년 4월 초파일에 오전리 마을에서 박달령을 찾는 사람들의 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고, 자연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는 고사(告祀)를 지낸다고 한다
정상석 뒤에는 쉬면서 식사도 할 수 있는 정자가 있어 궂은날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에게는 꼭 필요한 안식처가 될 수 있겠다
박달령 정상에서 50여 미터를 내려가면 옹달샘도 있다고 하는데 찾아보지는 못했다
옛 기억을 되살려 박달령에서 외씨버선길을 버리고 선달산을 거쳐 상운사까지 가는 대간길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일행에서 이탈하면 여러 사람에게 걱정을 끼칠 수 있겠다 싶어 포기하고 일행을 뒤따른다
가던 길이나 부지런히 가자.^^
박달령에서 '대간길'로 가던 '외씨버선길'로 가던 오늘의 목적지인 '상운사'까지의 거리는 7~8km로 비슷하다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박달령 정상석과 작별 인사 나누고 오전약수터로 향한다
정상에서 20~30미터 내려와 오전약수터 방향으로 내려서는 입구(12:20)
박달령에서 오전약수터로 내려서는 구간도 울창한 숲길의 연속이다
기분 좋은 감촉!
숲길은 스펀지처럼 부드럽고 푹신푹신하다
통행하기 쉽도록 일부러 파 놓았을까? 사람들이 많이 다녀 자연스럽게 길이 파였을까?
하산길엔 움푹 파인 지반 사이를 통과하는 길들이 유난히 자주 나온다
숲길에는 철쭉이 많아 봄이 되면 화사한 연분홍 꽃길로 변하겠다
숲 속에는 조록싸리꽃이 이쁘게 피어있다
하산길은 다소 경사가 있는 내리막이지만 대부분 부드러운 흙길이라 걷는데 큰 부담은 없다
오늘은 자주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알바의 염려가 없는 이렇게 부드러운 숲길이라면 혼자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갈 길은 바빠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분위기...
이것저것 참견하면서도 조금은 부지런히 서둘렀더니 후미의 일행과도 다시 조우하고...
(12:57)
박달령을 출발한 지 약 25분 만에 오전약수 관광단지로 내려선다
나는 왜 저 간판을 보고 '먹고자고 튀는 곳'이라고 읽었을까?ㅎ
망초밭
관광단지 안에는 크고 작은 음식점들이 즐비하지만 주말인데도 거리는 한산하다
관광단지 안에는 인공 주상절리대로 꾸며 놓은 멋진 분수대도 있고....
오전약수탕 정류소
아~
그러고 보니 '약수탕길'을 걸으면서 약수를 마셔보기는커녕 아직 약수터를 보지도 못했네~
안내도를 보니 약수터를 지나쳐 온 것 같다
아쉽지만 약수 마시는 건 포기....
(후에 일행들에게 들으니 약수터가 물이 안 나와 다녀온 사람들도 약수를 맛보지 못했단다.^^)
<오전약수탕>
오전약수탕이 있는 마을은 예전에는 '쑥밭'이란 뜻에 '애전(艾田)'으로 불리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 쑥밭(애전)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① 이 지역이 생달과 물집 계곡의 물이 합수되는 지역으로 하천이 범람하여 항상 늪지대를 형성하게 되어 그런 뜻으로 水田(수전)이라고 하였으며
늪지대 즉, 수전을 또 다른 말로 쑤뱅이등으로 불리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말이 변천되어 쑤밭. 쑥밭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1904년 행정구역 개편과 더불어 지역명칭도 정리를 하게 되어 쑥밭으로 불리던 명칭이 한자로 쑥 애(艾) 자와 밭 전(田) 자를 따서 애전(艾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② 옛날에 약수탕 약물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문둥병 환자들이 약물을 먹고 몸을 씻고 이 지역에 있는 쑥으로 피부에 뜸을 뜨고 달여먹고 하여
병을 고쳤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쑥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봉화군청)
조선 9대 성종(1469~1494) 때 발견된 오전약수는 이듬해 가장 물맛이 좋은 약수를 뽑는 대회에서 전국 최고의 약수로 뽑혔다고 하며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이 약수를 마시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라고 칭송했다는 기록이 있단다
그 좋다는 약수를 여기까지 와서 못 마시고 가네~ㅠ
외씨버선길 봉화객주
외씨버선길을 함께 걷는 우리 일행 중에는 객주에서 인증도장을 받으며 걷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버선길은 '이몽룡생가' 안내표지판을 지나면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10여 분 정도의 짧은 산길을 벗어나면 마주치는 '오전교'를 뒤로 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생달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오전교
생달마을로...
오전교에서 100여 미터를 들어가니 오른쪽 언덕 위에 '보부상 위령비 표지석'이 서 있다
보부상 위령비 표지석 비문
이 비는 조선 9대 성종(1469~1494) 때 농수산물을 교환거래하기 위해 강원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던 도중 오전약수를 발견한 보부상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위령비이다
비문에 등재된 보부상들이 모은 전 재산으로 이곳 애전(쑥밭)에 토지를 구입 경작하다가 마을 주민들에게 희사하였다
이에 그 고마운 뜻을 기리고자 매년 9월 말일에 이들 영령에 대한 추모제를 올리던 중 1995년 오전댐의 건설로 묘소가 수몰되자 이곳으로 옮겨 위령비와 제단을 마련하였으며
2008년도 1차 정비사업을 시작으로 2009년도에 위령비와 제단을 재정비하고 이 표지석을 세워 영원히 보부상들의 영령을 기리고자 한다
2009년 6월 25일
오전 2리 주민일동
이청양, 황태인, 곽제천, 강영월, 권봉순, 김울산, 문진개, 문울산, 권원주, 김길수, 이평창
合同慰靈之碑
위령비 전면에는 11명의 보부상 이름만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름들이 좀 이상하지 아니한가? 장난스럽게 갑자기 지어 새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당시의 보부상들은 대부분 미천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본인 이름도 제대로 사용 못하고 태어난 고향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야저수지 주변에는 데크길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물야저수지
저수지 주변으로 약 3km의 벚꽃길이 조성되어 봄이 되면 주변의 수려한 경치와 벚꽃을 구경하려는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특히 물야저수지는 백두대간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인근 다른 지역보다 개화가 1주일 이상 늦기 때문에 '벚꽃 엔딩'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나무의 수령이 오래되어 벚꽃이 필 때도 이쁘겠지만 초록초록한 지금도 머물다 가고 싶을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길이다
물야저수지
물야저수지는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 등 태풍과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자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용수공급을 위해 백병마을 부지에 댐을 건설한 곳으로 오전댐이라고 한다
봉룡사 입구
저수지 끝부분에 이르자 생달마을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생달마을은 先達山(선달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흘러가는데 굽이쳐 흘러내리는 형세가 마치 둥글게 두 개의 달과 같은 형상이라고 하여
'쌍달'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천하여 '생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야저수지를 지나면서 생달마을이 시작된다
생달마을 입구에는 버스 정류장과 외씨버선길 완주인증 촬영장소가 있다
생달마을 정류장
생달마을 정류장에서 종점인 상운사까지의 거리는 2.7km
마을길이 비좁아 버스가 들어갈 수 없으니 오롯이 상운사까지 왕복해야 한다
다 온 줄 알았는데 왕복 5.4km면 만만치 않은 거리다
생달마을에 들어서니 백두대간 선달산이 가깝다
'오전리(생달마을)~늦은목이'는 백두대간 접속구간이라 대간종주 할 때도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생달마을에서 상운사까지 가는 길은 예상했던 것보다 경사가 있고 거리도 멀게 느껴진다
주목산장
선달산 방향 늦은목이 입구
상운사
봉화군 물야면 생달길 354-65
사찰의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상운사에서 내려오면서 다음 구간에 오르게 될 선달산을 바라보며 탐방을 마무리한다
외씨버선길 10코스 약수탕길의 끝 부분에 걷게 되는 '생달 마을'은 작가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서 주인공 천봉삼이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찾아간 정착지로 묘사된 지명이라 생소하지 않다
<객주>
이튿날 천봉삼과 곽개천 그리고 박원산 세 사람은 중두리를 지고 곧장 생달 마을로 발행하였다.
나머지 행중은 흥부장으로 발행하여 포주인 조기출이 지키고 있는 어물 도가에서 소금과 미역을 떼어 다시 십이령길에 올랐다.
그리고 보름 뒤에 말래 접소 근처에 흩어져 기거하던 농투성이들과 아녀자들도 생달 마을로 떠났다.
밤이면 비루먹은 개 짖는 소리만 공허하였던 생달 마을에 다시 인총이 붐비기 시작하여 생기가 돌고, 구룡산 도래기재를 넘던 영월 태백 부상들도 박달령 상로길로 돌아왔다.
경상도 내성과 안동의 경계는 멀어야 50여 리 내외였고, 충청도 단양과의 경계는 60여 리 상거였다.
박달령만 넘으면 영월과 태백이 코앞이었고, 울진으로 곧장 가자면 십이령 넘어 150리, 그야말로 사통팔당의 길지에 상단들은 춘수전과 추수전 때마다 여축 없이 갹출하여 토지를 사들였다.
피폐하였던 마을에 인총이 늘어나면서 각성바지 유민이 모여들어 마을은 금세 30여 가호로 늘어났다.
밭에는 옥수수가 길길이 자라 지붕을 덮을 지경이었고, 풀무간이 들어서고 마방 딸린 숫막이 다섯이나 들어섰다.
마당에는 대낮에도 노루가 뛰어들고, 솥에는 꿩이 저절로 날아들었다.
천봉삼 내외는 생달 마을 한가운데서 객주를 열었고, 달덩이 같은 아들을 얻었다.
천봉삼은 이제 생달 마을의 촌장이면서 울진 흥부장, 내성장과 영월 태백의 장시의 거래를 주름잡는 객주가 되었고,
적굴에서 거둔 농투성이들은 각자 집을 가지고 오동나무골과 생달 일대의 드넓은 묵정밭을 꿀이 흐르는 문전옥답으로 바꾸는 데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첫댓글 후미그룹에서 앞만보고 열심히 걷다보니 둘레길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무심히 걸어서 ㆍ사진을 보니 지나온 길이 생각납니다 ㆍ우리의 예쁜사진도 있구 ㆍ감사합니다 ~~
박달령을 끝없이 오를 때는 다소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부드러운 숲길이 좋았던 '약수탕길'이었습니다
하산길에 찍은 사진은 촛점이 잡히지 않았네요.ㅠ
소설 "객주" 의 얘기가 반갑네요... 풍경사진 및 설명도 멋지고요. 즐감했습니다. 그리고 사진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전약수터 사진입니다. 약수가 철분맛에 탄산가스가 포함되어 있드라구요~^^.
약수를 드시고 오셨군요?
저는 무심코 내려오다 약수를 마셔보는 건 차치하고 약수터를 보지도 못하고 지나쳐 둘레길의 일부 구간을 빠뜨리고 온 것처럼 허전했답니다.^^
담 구간에서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