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보자
본 문: 히브리서 12:1-2
설교일: 2023. 8. 20(주일 낮 예배)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바라 본 사람들이
복받고, 성공하고, 강해지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며
복 받고, 성공하고, 강해지고,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축원합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을 보면 온갖 좋은 것, 온전한 선물은 다 위로부터,
빛들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온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땅에서 나는 것만 얻어 먹고 살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옛날에는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남편은 속썩이고, 아들 하나만 둔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저의 어머님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저만 바라보고 사셨던 어머니는
제가 결혼하고 1년도 안되어 가셨습니다.
아들만 바라보고 사신 분인데, 아들이 한 일은 가시기 전에 결혼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래도 저의 어머니는 예수님도 바라보시고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만일 저만 바라보셨다면 어떻게 천국에 가실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꼭 바라보아야 할 것을, 꼭 바라보아야 합니다.
물론 자식도 바라보아야 하지만, 자식보다도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잘 되고, 자식도 잘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아무리 어려운 환경, 아무리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복의 근원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근원적인 복이 임합니다.
나를 바라보면서, 나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 기대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주는 유익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 변하고, 다 한계가 있고, 종국에는 다 나를 떠납니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첫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예배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사야 17장 7절을 보면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바라보겠으며”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바라본다는 것은, 창조주를 믿고, 의지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압몬의 연합군이
유대를 공격하려고 엔게디라는 곳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유대왕 여호사밧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나님 우리에게는 이 침략자를 대적할 능력도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하는 뜻이지요!
그랬더니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대하 20장 15-17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회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그 날 여호사밧 왕과 그의 군대가 한 일은 하나님을 바라본 것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예배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싸우시고 유대를 구원하셨습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침략자를 물리쳐 주시고,
그들이 남긴 물건들을 사흘 동안이나 거두게 하셨습니다.
믿고 의지하고 예배하면서 주님만 바라보면 전쟁도 이깁니다.
숫자가 많다고 이기는 것 아닙니다.
무기가 좋다고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의 은혜로 이기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기준으로 선택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수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의 기준입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그 조카 롯의 선택 기준이 나옵니다.
하란이라는 곳에 살던 아브라함과 그 조카 롯이 가나안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목시대였기 때문에 물과 풀이 넉넉한 들판이 삶의 터전입니다.
그런데 삼촌과 조카네 짐승 떼가 불어나면서, 목동들 간에 이 물과 풀 때문에 자주 다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제안을 합니다.
“조카 ! 자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자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네 !”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보니 물과 풀이 얼마나 풍부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는 자기 기준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자기 기준으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기준으로 선택했다면 조카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는 물과 풀이 많은 것은 좋으나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이 너무도 타락해서 얼마 후 하나님은 그 땅을 유황불로 멸하셨고,
롯은 아내를 잃고 딸 둘과 함께 겨우 몸만 빠져 나왔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한 아브라함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눈에 보이는 좋은 땅을 포기한 아브라함의
선택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의 땅을 넓혀 주시고 복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싸움에 나가는 종이 318명이었으니까 그 종들의 가족까지 다 합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부자였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롯처럼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자기 기준으로 선택하며 삽니다.
그러나 내가 보는 것은 불완전합니다. 얼마든지 잘못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준 것이, 당시에는 아브라함의 결정적인 실수 같이 보였지만,
사실 결정적인 실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한 롯이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선택의 기준이 내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바라본다는 말이 소망입니다.
여러분 누가 기도하고 응답받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 12장 6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 아멘
첫째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애와 공의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항상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항상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일만이 아닙니다. 항상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항상 바라보아야 할 분입니다.
여러분 ! 누가 응답을 받는지 아십니까?
항상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축복을 받습니까?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까?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드로가 “주여 저도 물위로 오라 명하소서”하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무섭게 몰려오는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바다 물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순간도 딴 데로 돌리지 마십시요..
한눈을 팔거나 곁눈질 하지 마십시오.
들의 풀이 어떻게 자랍니까?
태양을 바라보면서 자라납니다.
어떻게 꽃이 핍니까?
태양을 바라보면서 활짝 피는 것입니다.
어떻게 과실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습니까?
태양을 바라보면서 열매가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태양,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자라납니다.
꽃이 핍니다. 열매가 풍성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고 예배합시다.
모든 선택을 예수님의 기준으로 합시다.
오직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삽시다.
오늘 본문 2절을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