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베껴쓰기_121] 국부[國(나라 국) 父(아비 부)] / 허원순 논설위원 / 한국경제 / 2015.03.23
워싱턴DC 교외의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은 미국인들에게 각별한 곳이다. 국부[國(나라 국) 父(아비 부)] 조지 워싱턴의 사저로 미국인들에게는 성지 같은 명소다. 조지 워싱턴이 9~10세 때 그의 부친이 지은 이 대저택이 명명된 사연이 흥미롭다. 당시 본토 영국의 유명한 해군제독 버넌의 이름을 땄던 것이다. 버넌은 조지의 큰형 로렌스 워싱턴의 상관으로 '로열 브리티시 네이비'(영국 해군)의 현역 중장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가문을 친영파, 친왕파라고 비판하는 미국인은 없다. 국부를 기리는 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으니 외국인 방문객도 적지 않다.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한두 시간 동쪽으로 달리면 샬러츠빌이란 소도시가 있다. 버지니아주립대학으로 유명한 이곳에도 몬티셀로라는 고풍스런 대저택이 있다. 그리스 신전풍의 이 고택은 미국의 작은 국부격인 토머스 제퍼슨이 58년간 산 곳이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3대 대통령의 다양한 유품들이 잘 전시돼 있다. 어릴 때 부터 마운트 버넌이나 몬티셀리를 방문하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참된 민주주의 가치와 건국 정신을 산교육으로 배운다.
너무나 흔해진 게 공화국이지만 공화국에는 대개 국부가 있다. 프랑스에는 드골이, 중국인들에겐 쑨원이 있다. 인도에 네라라면 이집트엔 나세르다. 터기의 초대 대통령 아타투르크(케말 파샤)나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도 그렇게 추앙받는다. 이들 나라는 수도의 관문도 아타투르크 국제공항,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이름 붙였다.
몰락한 공산국가에서조차 그 나름대로 국부는 존재했다. 신격화되고 억지로 상징화된 게 차이점이겠지만 나라를 세운 데는 실패라도 실패의 역사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기초를 세운 초대 대통령은 동상도 하나 없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세계 최빈국에 이승만만큼 국제적 경륜과 자유민주의 참가치를 인식한 인물도 없었다는 평가가 이제 조금씩 나오고는 있지만 갈 길이 멀다. 그의 사저 이화장[梨(배나무 이) 花(꽃 화) 莊(장중할 장)]이란 이름이라도 들어본 중·고·대학생이 얼마나 될까.
마침 모레(26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박진) 주최로 탄생 14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고 한다. 올해가 작고 50주년이지만 우리 사회의 관심이 겨우 이정도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떠나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를 보면서 우남[雩(기우제 우) 南(남녁 남)]을 다시 보게 된다. 리콴유와 이별하는 싱가포르 사람들과 우남의 존재 의미에 관심도 없는 한국인들의 차이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