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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MPORARY KOREAN LYRIC POEMS
■ 책소개
작년에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여러 자리에서 한국문학이 이미 노벨상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충분히 성숙하였으며 문제는 번역이라고 말해왔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있지만 필요성에 비해 그 규모는 턱없이 작고, 국가 차원의 투자가 이렇게 빈약하다보니 한국문학의 번역 소개 과업이 자연스럽게 민간의 개인들에게 맡겨져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여국현 선생이 낸 이 책은 참으로 소중하다.
대충 보아서는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의 선발 기준이 잘 보이지 않지만, 내가 볼 때 그 기준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 시인들인 것 같다. 여국현 선생은 시인의 지명도나 수상 경력 등과 무관하게 진실로 시에 집중하고 혼신을 다해 시를 써 온 ‘진짜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 대상으로 삼은 것 같다. 이들의 시를 한글과 영역본을 대조하며 따라 읽다 보면, 현 단계 한국 시문학의 굵은 뼈대가 느껴질 것이다.
여국현 선생은 영어와 영문학을 오래 연구해 온 학자이자 시인이다. 말하자면 한국 시를 영어로 옮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다. 가장 적절한 번역자가 가장 적절한 시인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으니, 이 번역서의 가치를 무슨 말로 더하랴. 한국 시의 풍요를 영어의 바람 소리와 함께 들어보라. 하모니카의 두 겹 바람구멍처럼 이중 언어의 시가 당신의 가슴을 아름답고 시원하게 적실 것이다.
― 표4에서,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영미인문학과 명예교수)
■ 출판사 서평
영문학 박사이자 시인인 여국현 교수가 번역한『한국 현대 서정시』영역편이 우리시 움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 작품집에는 36명의 현대 시인들의 시가 실려있다.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의 시라서 현재 우리 시단의 시 흐름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괄목할 만하다.
여국현 시인의 이번 작품집은 그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로 『박인환 시선집』(박인환문학관 기획, 2021), 임보 시인의『산상문답』(2022), 박소원 시인의『아, 아』(2024) 그리고 아직 미출간된 정지원 시인의 시조 사진집에 이어지는 작업으로 탄생했다. 여국현 사인은 한국어의 결과 맛을 살리면서도 영어권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번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참여 시인은 강민숙, 고두현, 고영민, 권선희, 권지영, 김명리, 김옥중, 김완, 김용만, 김윤현, 김윤환, 김정원, 김희정, 나종영, 맹문재, 서숙희, 손세실리아, 손창기, 손현숙, 신 휘, 여국현, 여 연, 여영현, 유은희, 유종, 이소암, 이송희, 이지담, 장우원, 전선용, 정한용, 주영국, 천지경, 최라라, 허향숙, 홍해리 등이다.
■ |차례|
옮기이의 말 •4-7
강민숙Kang Min Sook
단추를 달며Sewing on a Button
첫사랑 - 덕신리 미루나무 앞에서
First Love - in front of the Poplar in Duksin-ri
고두현Ko Doo Hyun
늦게 온 소포A Late-Arriving Parcel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When The Old Road Turns and Looks at Me
고영민Ko Young Min
봄의 정치The Politics of Spring
시인 앞Before the Poet
권선희Kwon Sun Hee
매월여인숙Maewol Yeoinsuk
간독Gandok
권지영Kwon Ji Young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Sad Words Because of Being Beautiful
기억 속의 너 - 세월호 아이들을 그리며
You - In Memory of the Sewol Ferry Children
김명리Kim Myoung Ri
노래가 쏟아지는 오후An Afternoon Overflowing with Songs
비밀 중의 비밀The Secret of Secrets
김옥종Kim Ok Jong
우리가 닮아간다는 것Growing to Resemble Each Other
여전히Still
김완Kim Wan
문門의 상대성The Relativity of Doors
지상의 말들Words of the Earth
김용만Kim Yong Man
꼬마 눈사람Little Snowman
왜Why
김윤현Kim Yun Hyun
바닥에 대하여On the Bottom
지름길Shortcut
김윤환Kim Yun Hwan
뼈에도 꽃이 피는Flowers Blooming even on Bones
칼집Sheath
김정원Kim Jeong Won
낙화Falling Flowers
목련Magnolia
김희정Kim Hee Jeong
골령골· 두 번째Golyeonggol · 2
골령골-스물일곱 번째Golyeonggol · 27
나종영Na Jong Young
물염勿染의 시Poetry of Non-imbuement
낙타Camel
맹문재Maeng Mun Jae
사북 골목에서In the Alleys of Sabuk
책이 무거운 이유Why Books Are Heavy
서숙희Seo Sook Hee
빈Bin
시보다 먼저Before Poetry
손세실리아Son Cecilia
반 뼘Half a Handspan
섬Island
손창기Son Chang Gi
빨강 뒤에 오는 파랑The Blue Coming after Red
사랑Love
손현숙Son Hyun Sook
멀어도 걷는 사람The One Who Walks Though Far Away
담쟁이Ivy
신휘Shin Hwi
마음이 운다My Soul is Crying
봄이 머물다 간다Spring Stays, Then Leaves
여국현Yeo Kook Hyun
안개Fog
푸른 전등이 있는 페르시안 풍 카페의 풍경
A Scene of a Cafe by the Lake with a Persian-style of Blue Lamps
여연Yeo Yeon
가벼워서 무거운Heavy Because of Lightness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여영현Yeo Young Hyun
공명Resonance
사랑이 그렇게 지나갔다Love Passed Like That
유은희You Eun Hee
사랑Love
수취인 불명Addressee Unknown
유종You Jong
안녕Bye
파업Strike
이소암Lee So Ahm
소리에도 꽃이 핀다 – 이명耳鳴
Flowers are Blooming in Sound - Tinnitus
어디로Where To
이송희Lee Song Hee
대명사들 Pronouns
비의 문장The Sentence of Rain
이지담Lee Ji Dam
게르와 별The Ger and the Star
고백Confession
장우원Jang WooWeon
기차를 기다린다Waiting for the Train
수궁가 한 대목처럼Like a Phrase from Sugungga
전선용Jeon Seon Yong
바지랑대Bajirangdae
봄의 궤도Orbit of Spring
정한용Jeong Han Yong
툭, 잎이 지고Tuk, a Leaf Falls
언젠가 우리 다시Someday, We will Meet Again
주영국Joo Young Kook
검열Censorship
그리운 단비The Longed-for Gentle Rain
천지경Cheon Ji Kyung
다정한 귀신Tender-hearted Ghosts
울음 바이러스The Crying Virus
최라라Choi Ra Ra
협곡Canyon
4월April
허향숙Hoe Hyang Sook
귀가Returning Home
슬픔은 늙지 않는다Sadness Does Not Grow Old
홍해리Hong Hae Ri
역설Paradox
가을 들녘에 서서Standing in the Autumn Fields
■ 본문
늘 뒤따라오던 길이 나를 앞질러 가기 시작한다
지나온 길은 직선 아니면 곡선
주저앉아 목 놓고 눈 감아도
이 길 아니면 저 길, 그랬던 길이
어느 날부터 여러 갈래 여러 각도로
내 앞을 질러간다
아침엔 꿈틀대는 리본처럼 푸르게
저녁엔 칭칭대는 붕대처럼 하얗게
들판 지나 사막 지나 두 팔 벌리고
골짜기와 암벽 지나 성긴 돌틈까지
물가에 비친 나뭇가지 따라 흔들리다가
바다 바깥 먼 항로를 마구 내달리다가
어느 날 낯빛을 바꾸면서 이 길이 맞느냐고
남 얘기하듯, 천연덕스레 내 얼굴을 바라보며
갈래갈래 절레절레
오래된 습관처럼 뒤따라오던 길이 갑자기
앞질러 가기 시작하다 잊은 듯
돌아서서 나에게 길을 묻는 낯선 풍경,
- 고두현 시인,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전문
The road that always trailed behind now races ahead;
The road I have trodden was at times curved, at times straight.
Though I sat, eyes closed, not Knowing what to do,
The road of choice was always one of two
And then one day, it ran ahead of me,
Forming forks, bends, and branching paths,
.
In the morning, it fluttered, blue as ribbons,
In the evening, it wound white as bandages,
Stretching far beyond the fields, deserts, valleys, and cliffs
Into deep, rocky clefts;
It swayed like branches reflected on water,
Racing wildly o’er the ocean’s distant path,
And one day, with a changed face,
It asked me quite indifferently
Whether this was the right path-
Looking at me, shaking its head as if speaking of someone else.
The road that followed me like an old habit,
Suddenly ran ahead, and then, as if it had forgotten something,
Turned back to ask me for directions;
Such a strange and wondrous landscape.
- Ko Doo Hyun, 「When the Old Road Turns Back and Looks at Me」
시인아
시를 쓰려거든
시를 그대가 쓴다고 생각하지 마라
시는 밤하늘의 별빛과 들판의 바람소리
강가의 돌멩이와
산 너머 구름의 말을 빌린 것이다
시인아 시를 만들지 마시라
시는 한줄기 아침 햇살, 붉은 저녁노을
시린 달빛의 언어가
어린 풀벌레와 짐승의 피울음 소리를 넘어
가까스로 오는 것이다
시는 어두워지는 숲속
날아가는 산새들이 불러주는 상흔의 노래
나지막한 그 숨결 그 품 안에서
살아오는 것이다
시인아
그대가 진정 시를 쓰려거든
지상의 모든 시를
새벽 눈물 메마른 소금호수에
다 흘려버린 후
가난한 세월에도 물들지 않는
물염의 시를 새기시라.
- 나종영 시인, 「물염勿染의 시」 전문
Poet,
If you want to write poetry
Don’t think that you’re writing poetry
Poetry is to borrow the starlight in the night sky,
The sound of the wind in the fields,
The words of the stones by the river
And the clouds beyond the mountain.
Poet, do not make poems.
Poetry is a ray of morning sunlight, a red sunset
And the language of cold moonlight
Which come faintly the sounds of young grasshoppers
And the blood-spewing cris od animals.
Poetry is a song of scars sung by flying mountain birds
In the darkening forest.
In that soft breath, in that embrace
Poetry comes alive.
Poet,
If you really want to write poetry,
After pouring out
All the poetry of the earth
Into the dry salt lake of tears
Engrave the poem of imbuement
Which will not be stained by the times of poverty.
- Na Jong Young, 「Poetry of Non-imbuement」
지난날의 항쟁을 지도 삼아
길을 알려주는 토민土民을 만나기도 하지만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가 없기에
골목은 추상적이다
폭죽처럼 터지는 카지노의 불빛도
골목을 밝혀주지 못한다
폴짝폴짝 탄 먼지를 일으키며 걸어가던 아이들
사택 문을 열고 나오던 해진 옷 같은 아이들
나는 그 골목에서 아버지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입갱하는 광차들
석탄이 달라붙은 도랑물을
“우리는 산업역군 보람에 산다”는 표어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마지막 방문이라고 다짐하고
골목 끝에서 뒤돌아보았을 때
아버지는 개집처럼 서 있었다
- 맹문재 시인, 「사북 골목에서」 전문
Though I sometimes meet the locals,
Who guide the way with past struggles as a map,
Yet with no fathers in work clothes,
The alley feels abstract.
The casino lights, bursting like fireworks,
Cannot light up alley.
The children, stirring up coal dust with cch step,
The children, emerging from the company houses like worm-out clothes;
In that aliey,
I ate kimchi stew cooked by my father,
And watched with unfamiliarity;
The tramcars entering the coal pits,
The gutter water mixed with coal,
And the slogan saying;
“We are the industrial army living with pride.”
Pledging it would be my last visit,
When I turned back at the end of the alley,
My father stood like a doghouse.
- Maeng Moon Jae, 「In the Alleys of Sabuk」
점심을 먹고 나서
텔레비전 원격 조정기를 손에 쥔 채
숨소리 없이
앉아 조는 어머니
꿈에 그리던 님이라도 만났는지
풀썩,
옆으로 꺾이는 꽃송이
내 어깨로 받치는데
너무 가벼워 무거운 꽃잎
바람 들지 못하게
얇은 담요 한 장 덮어 놓고
한참 동안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나풀거리지도 않는다
한평생 무겁게 사시느라 고단하셨나
이제 힘 다 빠져
가난한 내 어깨에 핀 어머니
꽃자국 아프다
- 여연 시인, 「가벼워서 무거운」 전문
My mother after lunch
Dozing off
Holding the TV remote control
Without a soun of breath;
As if meeting her yearning love in a dream
Flop,
The bud of a flower sliding to the side
Which I held on my shoulder
Was too heavy because it was too light;
Covering it with a thin blanker
So she would not be cold,
And gazing on the face,
Which never moved
As if tired after a life of heavy hardship.
My mother, blooming on my shoulder
Entirely exhausted;
The mark of her flower aches in me.
- Yeo Yeon, 「Heavy Because of Lightness」
노지 바람에 일어설 줄 모르는 꽃,
어머니 등은 노란 꽃가루 만발입니다
조문처럼 다녀간 별빛이 간지럼을 유발할 때
동백은 소문없이 내 정수리에 피고 집니다
허세 부리는 욕창과 거드름 피우는 불면
돌아누울 때마다 지구는 무너지고
방언 같은 옹알이는 고장난 테잎처럼 꿀렁댑니다
질주는 마친 생의 미등
몇 백만 광년 거리에서 온 기별이
정맥을 좇아 수액으로 흘러가고
기도가 으스러져 섬망이 될 즈음
내 허물, 네 죄는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동선이 모호해진 별의 움직임
자전이 힘들어 타래 풀린 실 같은 다리는
끈 떨어진 연입니다
퇴적된 봄밤의 궤적
애기똥풀 한아름 안은 어머니
이 밤, 아리랑 넘습니다
- 전선용 시인, 「봄의 궤도」
A flower, oblivious as it reses in the open field wind,
My mother’s back blooms fully with yellow pollen.
When the starlight, like a mourner, stirs a tingle,
Camellias silently bloom upon my head without a whisper.
With the arrogance of bedsores and insomnia sprouting a haughty air,
Whenever I turn over, the Earth crumbles,
Dialectical babble, like a broken tape, fumbling.
A dim light of life, exhausted after running,
Messages from millipns of light years away
Flow like sap through veins,
And just as prayers begin to wane, turning into delirium,
My flaws, your sins, grow vast like snowballs.
The movement of stars on a nebulous path,
Legs, weary of rotation, unravel like loose threads,
Are kites 져소 cut strings.
The layered trajectory of a spring night,
Mother, clutching a bouquet of celandine,
Tonight, she crosses Arirang.
- Jeon Seon Yong, 「Orbit of Spring」
■ 옮긴이의 말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2022년 3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웹 매거진 《시인뉴스포엠》의 〈여국현 시인의 우리시를 영시로〉라는 칼럼을 통해 번역·게재된 작품들입니다. 수록된 시의 선정은 역자의 개인적 선호에 따른 것이지만, 한 편 한 편의 시인들은 모두 오늘의 한국 문학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목소리들로 현대 한국 서정시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엮으며, 《시인뉴스포엠》에 실렸던 번역들을 다시 다듬고 수정하여 한 권의 완성된 형태로 정리했습니다. 이 책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25 장애예술인 창작 지원사업’의 후원으로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집은 제가 현대 한국시를 영어로 옮긴 다섯 번째 주요 프로젝트로, 앞서 진행한 『박인환 시선집』(박인환문학관 기획, 2021), 임보 시인의 『산상문답』(2022), 박소원 시인의 『아, 아』(2024), 그리고 아직 미출간된 정지원의 시조 사진집에 이어지는 작업입니다.
저는 한국어의 결과 맛을 살리면서도 영어권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번역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한국어의 섬세한 뉘앙스와 음악성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에는 필연적인 한계가 있음을 겸허히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를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소개하려는 이 노력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습니다.
작품 번역을 허락해 주신 참여 시인들, 귀한 지면을 내어주신 김창희 편집인과 《시인뉴스포엠》 편집팀, 그리고 본 시집의 출간을 후원해 주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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