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태: 어른이 된다는 것을
봄바람은 여전히 살갑지만, 얼음 틈새로 새싹들이 조금씩 움트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 어른들의 삶을 동경했다.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무게는 어린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난달, 특강을 위해 용인 아모레퍼시픽을 다녀왔다. 가는 길, 창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차체가 흔들렸지만, 다행히 회사에서 보내준 리무진승용차 덕분에 편안한 이동이 가능했다.
장거리 이동 시간은 내게 소중한 사색의 시간이다.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풍경을 그리며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참 편했다. “형님!” 한마디면 밥도 얻어먹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제는 후배들이 “형님!” 하고 다가온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아니라, 누군가가 기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설날이면 그 변화가 더욱 실감 난다. 후배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세배를 오면, 우리 부부는 그들을 맞이하며 맞절을 한다. 아직은 일방적으로 세배를 받을 나이는 아니기에.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세뱃돈 부담이 만만치 않다. 후배 한 명이 아이 둘을 데려와도 열 명이면 스무 명. 그런데 문제는 돈만이 아니었다. ‘큰아빠’로서의 품위 유지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은 기대를 품고 왔을 테고,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돈 없으면 어른 노릇도, 좋은 리더가 되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 세배 의례를 마친 후, 안락의자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새해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잊혀진다. 나 역시 그랬다. 올해도 몇 가지 중요한 목표를 세웠지만, 벌써 하나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지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다. 이제는 결심한 것을 실천해야 할 때다. 통 크게 살고 싶고, 마음속으로 품었던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 그리고 그 실천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첫걸음을 떼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그 한 걸음이 내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겁고, 때로는 고단하다. 하지만 그 고단함을 피하지 않고 꾸준히 해내는 것, 그것이 어른으로서의 진정한 성숙이 아닐까. 나이 드는 것은 마치 등산과 같아서 높이 오를수록 숨이 가빠지지만 그만큼 시야가 넓어진다.
2025.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