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형제 여러분,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2,12-22)
- 매일미사 2024.10.22(화) https://missa.cbck.or.kr/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피와 십자가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희생양은 필요한가?』(부제: 성경에 나타난 폭력과 구원)라는 책 제목이 떠오릅니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의 줄거리를 말한다면 그 출발점은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폭력성을 분출시킬 대상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 흔히는 어떤 약함이 있고 자신을 함부로 하여도 저항할 수 없는 이들이 희생양이 됩니다. 구약에서는 제사 때에 바치는 양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타자를, 나의 밖에 있는 무엇을 그 대상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몸소 희생양이 되시고, 그래서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는 이 사슬을 끊으십니다. 밖에서 희생양을 찾으시지 않고 스스로 희생양이 되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몸으로 받으시어 멈추게 하십니다. 이 정도가 제가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고, 잔인하지 않은 방식으로 평화가 이루어졌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부질없는 일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셨을 때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른 방법들을 다 써 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예언자들도 죽이고 그들의 말을 없애 버리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느님께서는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에페 2,16).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셨으니,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안에서 희생양을 찾고 미움을 쏟아 내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안소근 실비아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학교), 매일미사(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24.10.22 오늘의 묵상글